복된 가정” 2001-12-13 16:14:07 read : 909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 128:1~6 설교자 : 임영수
먼저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까?” 이 물음에 대해 여러분 각자가 스스로에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는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는 자녀의 입장에서 우리 가정은 행복한 가정인가? 라고 묻고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되신다면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렇지 않고 불행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지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 행복하지 못한 가정의 표준을 경제적 여유에 둡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행복한 가정이고, 가난하면 불행한 가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우선 돈을 많이 벌려고 합니다. 돈이 가정의 행복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는 있지만 행복의 절대적인 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돈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돈 때문에 형제끼리 적대관계가 되기도 하고, 가정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돈이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행복의 절대 요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팔레스틴의 어느 지방의 농부가 일꾼들과 함께 그의 소유지인 넓은 땅에 울타리를 치고 한쪽에는 포도나무를 심고, 다른 한 쪽에는 무화과 나무 묘목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해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기다린 보람도 없이 포도나무에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열매들이 열렸고, 무화과 나무 묘목은 거의 자라지 못하고 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매우 실망했습니다. 주인은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열리지 않고, 무화과 나무는 자라지 않을까? 몇 일 동안 조사한 끝에 그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그 밭에는 포도열매가 열릴 수 있고, 무화과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자양분이 없었습니다. 토양이 좋지 않았습니다.
농부는 일꾼들을 불러 그 사실을 알려주고 일꾼들과 함께 포도가 열릴 수 있고 무화과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밭에 흙 갈이를 하고 좋은 비료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포도나무와 무화과 묘목을 심었습니다. 몇 해 후에 포도나무에는 먹음직한 포도열매가 달렸고, 무화과 나무는 크게 자라 역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드디어 농부는 수고한 만큼의 소득을 얻게 되어서 기뻐했습니다.
본문 시편에서 말하는 복된 가정, 또는 행복한 가정은 돈이 많은 가정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된 가정은 수고한 만큼의 노동의 소득이 있고, 풍부한 열매가 있는 가정입니다.
시인은 그러한 복된 가정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이것을 의역하면 아내는 아내됨, 어머니됨에 만족하고, 자녀들은 잘 양육되어 성장해 간다는 뜻입니다.
복된 가정은 노동의 대가가 있고, 풍성한 열매가 맺힐 수 있는 옥토와 같은 가정입니다. 식물이 잘 자라는 밭에는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영양소들이 있어야 합니다. 토양의 질이 좋아야 합니다. 복된 가정이 되려면 수고한 만큼의 소득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영적 영양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될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에는 수고한 만큼의 소득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이 원하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영적 자양분들이 있게 됩니다. 그러한 영적 영양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복된 가정이 되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은 교훈과 훈계, 모범, 사랑, 화목, 이해, 격려, 지지, 안정과 같은 것들입니다.
교훈과 훈계, 모범은 사람을 사람답게 합니다. 사람을 바르게 세웁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어갑니다.
사랑은 자녀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필요한 영적 자양분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해 주는 근원입니다. 부모로부터 사랑의 공급을 받지 못한 자녀들은 나이는 먹고 키는 자라지만 속사람이 자라지 못합니다. 마음에 안정을 갖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이 가족끼리의 화목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7:1)
격려는 핀잔주고, 주눅이 들게하고, 열등감을 갖게 하지 않습니다. 희망, 자신감,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들은 열등감, 자기비하, 실망에서 벗어나서 인생을 활기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는 서로서로 격려가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격려하고, 자녀들은 부모들을 격려합니다. 그래서 가족들 서로에게 용기, 희망, 위로를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비판하고, 꾸중하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약해도 우리를 지지해주시고, 우리를 세워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는 ‘지지’가 있습니다. 지지의 기반이 없이는 살아가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러한 옥토와 같은 복된 가정에서는 시인이 말하는 복이 있습니다.
첫째, 수고한 만큼의 소득을 얻게 됩니다.
둘째, 좋은 부부의 관계가 형성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셋째, 자녀들이 건실하게 성장해서 사회에 유익을 주는 축복이 있습니다.
먼저 수고한 만큼의 소득의 복을 얻게 됩니다. 어떤 소득의 복인가? 자녀들이 건실하게 성장합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안정된 인격으로서 그들이 해야 할 생의 모험을 충분히 잘 해냅니다. 그리고 생의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역경, 시련, 고난을 잘 감당해 갑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잘사는 것을 생의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그들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재물에서 생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올바르게 사는 것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에 재물의 많고 적음에 크게 동요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생의 의미와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과도한 욕심을 갖지 않고 언제나 성실하게 수고한 만큼의 대가에 대해 자족합니다. 그들은 매일 스스로 일하며 자신과 가족의 생계 꾸려 나가며 떳떳이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복된 가정에는 좋은 부부의 관계 형성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나 부부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결혼 생활에 불행해 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복된 가정에서는 그러한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해결해 가면서 건전한 가정으로 만들어 갑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의 의미와 목적대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갑니다. 그렇게 될 때 가정은 진정한 의미에서 안식처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이 건실하게 성장해서 사회에 유익을 주는 일꾼들이 됩니다. 복된 가정에서는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 사랑합니다. 그들은 가정을 자녀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안정된 양육 장소로 만들어 갑니다. 그들은 자녀를 그들의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녀들에 대한 인간적인 야망을 품지 않게 됩니다. 그들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늘 기도합니다.
자녀들은 계속해서 자라야 합니다. 복된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바르게 양육되기 때문에 바르게 성장해갑니다. 자녀들의 수가 많은 것만이 축복이 아닙니다. 시편에서 말하는 자녀의 축복은 바르게 양육되어 바르게 성장해 가는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버지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주여, 내 아이를,
약해질 때 자신을 아는 강한 힘을
두려움 앞에서는 용기를
올곧음으로 인한 패배에는 긍지를 가지며
승리하였을 때 겸허하고 온유한 자로 키우게 하소서.
내 아이가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을
가장 보배로운 가치로 삼고 살도록 키우게 하소서.
비오니
내 아이를 평탄한 길로만 이끌지 마시고
고난과 역경의 사람으로도 인도하소서.
하여
거센 폭풍우에도 견딜 줄 알게 하시며
패배한 이에게는 사랑으로 대할 줄 알게 하소서.
맑은 마음
드높은 목적으로 살며
남을 지배하려 들기 전에
자신을 지배하며
미래를 향해 발돋움하면서도
과거를 잊지 않는 아이로 키우게 하소서.
내 아이가
이 모든 것을 이루게 된 후에도
주여, 나 당신께 청하오니
그가 풍부한 유머를 지니고
진지하게 인생을 살게 하시되
지나침이 없게 하소서.
그에게 겸손을 주시어
참 위대함은 단순함이요,
참 지혜는 마음의 개방이며,
참된 힘은 온유함임을 늘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이렇게 된다면
먼 훗날
나는 그의 아비로서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당신께 조용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 D. 맥아더 -
가정의 영향은 한 가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가정은 그 시대 사회에는 물론 그 이후에도 계속 영향을 줍니다. 미국의 한 사회학자가 마틴 캐리커크라는 주정뱅이 떠돌이의 자손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캐리커크의 마누라도 비슷한 여자였습니다. 이 조사가 진행된 것은 1920년 무렵이었습니다. 그리고 캐리커크가 살고 있었던 것은 1770년 무렵이었습니다. 그 150년 동안 마틴 캐리커크의 자손은 모두 480명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그중 143명이 정신 박약아, 36명이 사생아, 24명이 알콜중독자, 3명이 간질병 환자, 82명이 어려서 죽고, 3명이 살인죄로 처형당했습니다. 마틴 캐리커크가 막아내기 어려운 해독의 흐름을 이 세상에 쏟아 놓은 사내라는 것은 이 숫자에 의해 분명해졌다고 하겠습니다.
윌리엄 바클레이는,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자손손에 대해 유산을 남기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유산은 “아들에게서 손자에게로 이어지는 오점을 남길 수 있는가 하면, 후대에 이르기까지 좋은 자극이 되는 아름다운 점을 남길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누구나 “자손을 뛰어넘어 다시 영원한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서만 우리는 인생을 올바른 저울로 달 수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우리가 현실의 시간의 세계에만 딸린 생물이라면, 여러 가지 해도 좋을 일이 많을 것이다. 생명이 이와같이 한정된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 좋을 대로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의 시간의 세계에만 속하는 생물이 아니고, 영원한 세계에도 속하는 존재이며, 그리고 시간 안에 있는 우리 자세가 영원 속에 있는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때때로 먼 데를 바라보는 일이 결코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고 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아멘
여호와를 경외하는 복된 가정은 예루살렘의 번영을 가져오며, 나라 전체에 평강을 가져오게 됩니다. 사랑하는 부모, 자녀 여러분 복된 가정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가정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많을 때 사회는 밝아지고 건실한 나라가 됩니다. 우리시대에서 당면한 세계적 위기는 환경의 파괴와 더불어 가정의 파괴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인류의 종말을 예고해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가정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고 가정을 바르게 세워가야 하며, 또 파괴된 가정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돌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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