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2001-12-13 15:35:52 read : 1090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 52:13~53:9 / 요 1:29~34 설교자 : 임영수
먼저 엘리 비젤의 회고록 “밤”의 한 대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소개하기 전 그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가 엘리 비젤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엘리 비젤은 시게트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시게트는 역사적으로 루마니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에 속했던 곳입니다. 그는 시게트 마을에서 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살았습니다. 1944년 그의 나이 열다섯 살 때 시게트에도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지고 독일군이 시게트 마을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곳 유대인들은 집단 거주지 게토로 이동하여 거기에서 잠시 머물다가 드디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게 되었습니다. 엘리 비젤은 거기에서 어머니와 누이들이 산채로 소각로에 던지어져 불에 타는 것을 용광로의 불꽃과 굴뚝의 검은 연기 속에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유대인들 중 얼마는 부나 수용소로 옮겨 가게 됩니다.. 그때 엘리 비젤 역시 그의 아버지와 함께 부나 수용소로 옮겨가고, 거기에서 다시 글라이비츠 수용소로, 또다시 북헨발트 수용소로 전전합니다. 글라이비츠에서 북헨발트까지 기차로 수송되는 도중, 한 화물칸에 유대인 백명이 실렸으나 북헨발트까지 기차로 수송되는 도중 추위와 굶주림과 질병으로 아흔명이 죽고 겨우 열명이 살아 남게됩니다.
엘리 비젤과 그의 아버지 클로모 비젤은 이 열명의 생존자 속에 들어 있었으나 아버지는 굶주림과 질병으로 기력이 극도로 쇠약해지자, 1945년 1월 27일과 29일 사이에,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아버지를 나치 독일의 친위대들이 침대에서 끌어내어 화장장에 쳐넣어버리고 만 것을 엘리는 뒤늦게 확인하게 됩니다. 그때 엘리의 나이 열여섯, 그해 4월 그는 북헨발트 수용소에서 해방을 맞아 자유의 몸이 됩니다.
북헨발트 수용소를 떠난 그는 파리로 거처를 옮겨 1947년부터 1950년까지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합니다. 작가가 된 그는 그의 체험을 쓴 작품을 프랑스어로 발표합니다. 그후 1956년에 미국으로 이민하여, 뉴욕의 유대교 신학교에서 유대교 신학을 공부하고 1968년에는 뉴욕의 히브리 유니온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1968년에는 인권 운동가로서의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1972년 이후 뉴욕 시티 칼리지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회고록 ‘밤’은 바로 이러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쓴 것입니다.
회고록의 배경이 되는 아우슈비츠와 비르켄아우의 화장장과 화장터에서 매일같이 수천수만의 유대인들이 죽어가는 것을 유대인들은 직접 목격합니다. 그들 중에서 건장한 유대인들은 화부로 뽑혀 살아있는 연약한 유대인을 자기 손으로 화덕에 집어넣어야만 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화덕에 던져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죽이고 죽어가는 장면이 이제는 예사로워 감정마저 마비된 줄 알았던 어느날 부나 수용소 안에는 두 남자와 한 어린 아이의 교수형 집행이 있었습니다. 그 때 장면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제물 세 사람은 의자 위로 올라갔다. 세 사람의 목은 똑같은 순간에 올가미에 끼워졌다. ‘자유만세!’ 어른 두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이는 말이 없었다.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그는 어디에 있는가? 내 뒤에서 어느 누가 물음을 던졌다. 수용소 소장의 신호가 있자, 세 의자가 쓰러졌다. 수용소 전역에 정적이 꽉 끼쳤다. 지평선 위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탈모!‘ 수용소 소장이 고함쳤다. 쉰 목소리였다. 우리는 울고 있었다. ’착모!‘ 그리고 분열 행군이 시작되었다.
두 어른은 이미 살아있지 않았다. 그들의 늘어진 혀는 부어 오른채, 푸른색깔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 줄은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몸이 너무 가벼웠기 때문에 아이가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반 시간 이상이나 거기에 그대로 두어져,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버둥거렸고, 우리의 눈앞에서 단말마의 고통을 서서히 당하면서 죽어갔다. 우리는 소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봐야 했다. 내가 그 앞을 통과 했을 때, 소년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의 혀는 여전히 붉었고, 두 눈도 아직 흐려지지 않았다.
내 뒤에 있는 사람이 또 물음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때 나는 나의 내면에서 그에게 대답하는 어떤 음성을 들었다. ‘그분이 어디있느냐고? 그 분은 여기있어. 여기 저 교수대에 매달려 있어.“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은 이것을 소재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신학책을 썼습니다.
오늘 본문에 고난의 종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본문에 고난의 종에 대한 묘사는 이렇습니다.
“그는 주 앞에,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을 흩어졌으나,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끌려가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 (53:2~9)
‘고난의 종’에 대한 일반 사람들이 보는 관점은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언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은
“그는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난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징벌, 하나님의 버림입니다. 저 역시 고난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될 때까지 고난에 대한 이해를 하나님의 징벌, 하나님의 버림, 떠남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제가 체험적으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고난은 저의 우매함, 저의 잘못, 저의 거짓,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를 버리시거나, 떠나시지 않고 슬퍼하시며, 아파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하고 있는 고난은 저에게서 시작되어 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파하시고 고통스러워 하시는 그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무감각하신 분이거나, 그 고난을 면제시켜 주시기 위해 뇌물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인간이 저질러 놓은 감당할 수 없는 그 죄를 몸소 담당하시고, 그것 때문에 아파하시고, 고통스러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 나타나 있는 고난의 종은 바로 그 하나님 자신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절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이 죄와 고난에서 치유되고 해방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억압하거나 숨깁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책임을 회피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억에서 추방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우리의 질병, 상처, 불행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 실수, 상처를 찾아내서 아파하며, 부끄러워하며, 고통스러워하면서 하나님의 아픔을 경험해야 합니다.
거기에 속죄의 은총이 있게 됩니다. 죄와 허물을 숨기고, 도피하거나 대신할 희생 양을 찾을수록 우리는 더욱 소외되고 병들어 가게 되고, 피상적인 인간으로 전락되어 갑니다. 희망이 없는 인간으로 되어 갑니다. 우리의 상처를 정직하게 시인하고 받아드리고, 진정 부끄러워하고, 아파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픔을 경험할 때 우리는 거기서 놓임을 받게 됩니다.
고난, 질병은 죄와 관련됩니다. 고난과 질병을 우리는 받아드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질병 뒤에 숨어있는 죄와 상처를 시인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계시다는 것을 아는 사람 역시 많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함께 죽어가시면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지 않고는 그 해결이 없음을 알고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인, 폭력과 같은 온갖 사회적 죄악들이 있는 현장에서 십자가에서 아파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개인적으로 질병, 각종 중독, 정신적인 질환, 마음의 상처로 인해 고통을 경험해가고 있는 거기서 하나님의 고통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부활의 새 소망의 싹이 돋아납니다.
몇 년전에 마더 테레사가 세상을 떠난 후 그와 함께 사역하던 자매들이 외국 기자와 인터뷰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인터뷰 기사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 자매들은 그들 자신이 하는 사역, 즉 길거리에 버려진 사람들을 데려다가 씻기고, 기름을 바르고, 먹여주는 일이 단순히 구제와 봉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 다라면 실증이 나서 지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나, 어른들의 눈망울 속에서 그들과 함께 외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리스도를 보면서, 그 그리스도에게로 자꾸 다가간다고 했습니다.
헨리 나우엔은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고난받는 종의 역사와 연결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운명의 사슬에서 건져내고 우리의 일상적인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으로, 우연발생적인 사건과 사고를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를 찾아내는 기회로 전환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고난, 질병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하나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그가 우리 대신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십니다. 우리의 고통과 질병의 아픔은 하나님의 고통과 그의 아픔의 일부분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그는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아파하시고, 슬퍼하십니다. 우리가 저지른 악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고통, 아픔, 슬픔, 질병등 그 어느 것도 하나님께서 담당하신 것 외에 것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담당하신 것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담당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미 다 파멸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파괴하는 데에는 매우 빠르지만 새 생명을 창조하고, 용서하고, 치유할 수 있는 구원의 능력은 전혀 갖고 있지 못합니다. 구원의 능력, 용서, 상한 심령의 치유, 인간의 거듭남은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이 고난의 종의 모습을 예수께서 그의 생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생은 고난의 종의 생이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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