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과 영성 2001-12-24 20:45:22 read : 1178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훈련과 능력의 차이
필자는 한 때 제자 훈련에 미치다시피 매달린 적이 있었다. 서너 해 동안 오직 그 프로그램 하나에 매달렸다. 많은 기쁨이 있었고 열매도 있었다. 십여 명의 헌신된 청년들이 나의 사역을 돕겠다고 나서게 되었고 따뜻하고 은혜로운 분위기를 가진 작은 공동체가 하나 만들어졌다. 물론 나는 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사역했다. 그리고 그 같은 열매에 대하여 스스로 대단히 만족하였다. 역사 변혁이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성취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고통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늘 말은 하지만, 가슴 깊이 갈망과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며, 점차 조금씩 도덕적으로 변화되어 가고 신앙 생활에 틀이 잡혀가는 지체들을 보며 스스로 만족해하였다.
그후 여러 해가 지났다. 나는 햇수로 팔 년이 넘겨 섬겨 온 그 정든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나의 영혼을 크게 만져 주시는 일이 있었다. 이후로 나는 설교 사역의 중요성에 크게 눈뜨게 되었다. 나의 말씀 선포에 성령의 능력으로 축복해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기도하였을 때, 이전에 몇 해 동안 매달렸어도 볼 수 없었던 일이 한 번의 설교를 통해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어느 주일날 아침에 설교하기 위하여 단에 올랐다. 단에 올라 회중들을 바라보는 순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의 몸과 마음 전부가 기이한 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경험하였다. 말씀을 증거 하면서 나는 회중들 사이에서 감지하게 하신 불결한 죄악들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그로 말미암아 사슬에 매인 양 무리들을 향한 불붙는 긍휼이 함께 나의 맘속에서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교회에서 늘 들어오던 한 본문을 택하여 불과 한 시간 남짓 설교하였을 때, 제일 먼저 한 지체가 비명을 지르며 땅에 주저앉았고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를 올렸다. 수많은 영혼이 일시에 애통하며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세우고 하나님께 반항하였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 의 죄인 된 모습 때문에 마음 아파하며 뒹구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참모습을 순간에 보았고 하찮게 여기며 살아오던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 거룩하심의 빛 아래서 자신들의 존재의 비천함과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일시에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께서 그들에게 전해지는 그 말씀 위에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나의 대치할 수 없는 소망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말씀 사역에서 이 같은 축복을 거두시지 않기를 기도한다. 아니 이러한 사역이 매우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앞으로는 더 크고 위대한 성령의 능력이 나의 말씀 사역 위에 머무시기를 기도한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도 말한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천박한 말장난
제자훈련이 성공하면 "균형 잡힌 제자"들이 만들어지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의 부흥을 경험하면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용사"들이 태어난다. 그리고 그 차이는 바로 성령의 능력이 만들어 낸 차이이다. 사실 항간에 풍미하는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얄팍한 지성주의의 천박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경험하고 영혼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지식이 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향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비취는 거룩의 빛 앞에서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유일한 소망이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구원을 주시는 그분 앞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주님을 만나 보지 못한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는 늘어놓은 말의 유희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한 사람이 성령의 은혜로 복음의 참된 의미에 직면하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훨씬 실제 목회 경험에 가까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성령의 능력은 우리를 십자가의 의미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주고 그 권세는 우리를 반드시 주님을 향해 치우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준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치우치지 아니하면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복음 사역은 이 같은 말씀의 권세를 배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들을 가르치는 자들 자신이 이처럼 거룩한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혀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회개를 깨닫게 하고 통회하게 만들어 준다. 어떤 사람들은 위로를 받게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절망하게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게 만들어 준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맺는 말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영성은 자기만족적인 수도사적 영성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옛 삶과 역사를 뒤집어엎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영성(subersive spirituality)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의 변화 없이는 삶과 역사의 변혁은 불가능하다. 영성은 깊은 능력을 동반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 없이는 누구도 역사를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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