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삼상7:3-4)
들어가는 말
많은 사람들은 인생이 특별히 어려운 때를 당했을 때, 평안했더라면 생각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특별한 불행이나 어려움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소원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라가 큰 위기를 만나거나 이방의 민족들로부터 고난을 받을 때에 자주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많은 수단들을 주셨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시고 늘 선지자의 음성을 듣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율법들을 배우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신앙적으로 깊이 침체되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은혜로 우리를 깨닫게 해 주는 것들이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이 본문의 무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참 블레셋이라고 하는 아주 강력한 기마민족의 나라에게 침략을 당하던 때의 일입니다. 블레셋의 끊임없는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유명한 '미스바의 집회'가 열리게 되는데 사무엘이 그 미스바의 집회를 말하기 전에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블레셋 족속으로부터 압박과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을 때에, 비로소 여호와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는데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혀 도우시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고통을 당하도록 버려두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도 빼앗기고 싸움에도 지고 블레셋에게 압박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점점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요인도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생각하실 때에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커다란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스다롯도 섬기고 이방신을 섬기며 살아가면서도 그 속에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려거든"이라는 말씀은 쉽게 얘기하면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는다면" 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여기에서 기도한다든지 하나님 앞에 매달린다든지 하는 것보다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서, 이방신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내 안에 없애야 할 것들을 없애는 작업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것과 이방신들을 제해 버리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는가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신들을 들여놓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방신들을 들여놓고 그들과 관계를 맺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세적인 축복을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하나는 이방신들을 통해서 축복을 받기 원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방신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방신들에게 미움을 받고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방 신전이라고 하는 우상의 종교인 피난처 속에서 보호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이미 기름진 농토를 가지고 곡식을 일구면서 살아가고 있었고 그들의 삶 가운데는 종교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이방 종교의 신들에게 밉게 보이면서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담대한 신앙이 점점 약화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것들을 의지하고 그런 것들로부터 보호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런 신앙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은 그들이 어떤 식으로 모이고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던지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 제가 아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장난삼아 혹은 무슨 기대감을 가지고 이름 보러 다니고 사주팔자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아주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팔자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우주에 떠도는 원리나 어떤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생명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은혜를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주시는 그 힘과 능력과 계획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참 팔자가 드센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왜 그런 길을 가겠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들의 삶을 움직였던 것은 인생의 선입견이나 팔자나 운명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 길을 가게 하시고 지금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고 계시다. 이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이방의 땅에 들어가서 이방신들을 섬긴 것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의 피치못할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확신은 없고 이 낯설고 물설은 이방의 땅에서 살고는 싶고 하니까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의 신도 들여놓고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신앙이 쉽지 않다고 말했듯이, 국가적인 차원으로 생각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방신을 섬기게 하는 '탐심'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이 무슨 신이었나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주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방신들을 섬기는 그 모든 동기가 결국은 '탐심'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보호 받고 싶다는 탐심, 그리고 축복 받고 싶다는 욕망, 이런 것들이었어요. 그것도 신앙 밖에서 축복 받고 보호받고싶다는 본능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의 신들로부터 보호 받기를 원했고 그들의 축복을 받아서 살기를 원했지만, 우리는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들을 의지하면서 거기로부터 보호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입고 마실 수 있는 것이 있는데도 과다하게 물질의 욕심을 내고 그 물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심에 붙잡히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물질이 자기를 보호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들풀과 같이 살아가는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내일에 대한 염려를 계속 쌓아 두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인간은 항상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 합니다. 그런데도 죽은 다음에 갈 영혼을 위한 처소에 대해서는 예비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시느냐 하면, 하나님 이외에는 우리에게 참된 도움이 없고 주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런 보호자가 없는 그러한 인생인 것 같은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참된 도움이고 하나님만이 내 인생을 참으로 지키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 금년 한 해도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으로 내가 살아왔고 그리고 내년에도 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갈 것이다. 주님이 나를 도우시면 나는 도움을 받을 것이요, 하나님이 나를 세우시면 나는 설 것이요, 주님이 나를 버리시면 나는 버림을 받을 것이다. 그런 하나님만을 향한 절대 의존적인 신앙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그러니까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추구한다라는 말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산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서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것은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해 버려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어떤 의지하는 것이 있고 우리에게 어떤 믿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잃어버릴 때에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론가 기우는 마음
그러니까 성경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은 "너희는 오늘 섬길 자를 택하라. 하나님만을 섬기든지 아니면 그만 두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라. 안 섬기면서 섬긴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께는 고통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말하라. 아니면 하나님을 버리겠다고 말하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너희들은 생각하는데, 그러나 너희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닌 이유는 너희가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태도를 분명히 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마음의 특징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면 나머지는 눈에 들어오지를 않게 됩니다. 마음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고 그 쪽으로 향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다른 욕망과 생각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의 마음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한 가지에 깊이 미치고 살게끔 되어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이 생기가 없고 불안해 집니다. 돈 하나에 미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사람 하나 볼 때마다 그걸 다 돈으로 생각해요. 인신매매 하는 거지요. 오락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시는 화투를 치지 않겠다고 손목을 끊어버리고도 그 의족을 가지고 다시 화투를 한다고 합니다. 이게 인생의 모습입니다.
마음이 한 번 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면 나머지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한 쪽으로 기울어 진 것을 가리켜서 흔히들 "눈이 먼다" 라고 얘기하잖습니까? 눈이 멀기 시작하면 나머지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판단이 흐려지는 거예요. 어느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그 사람 하나에 눈이 멀어버리면 그 사람의 결점이라든지 모든 게 정상적인 판단으로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세상은 바로 이렇게 마음이 세상의 것들을 향한 채 살아가는 겁니다. 가치 없는 것들을 사랑하고 가치 없는 것들에 탐닉하면서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 마음이 향하지 않는 신앙 생활,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 믿음 생활, 이런 것들로부터 먼저 돌이키는 것들이 마음에서 일어나야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찾지 못하도록 만드는 가장 커다란 대적은 항상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안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환경이나 여건이 우리로 하여금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실 우리의 대적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무릇 지킬만한 모든 것보다 너희 마음을 지키라"고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모든 선하고 악한 것이 그 마음에서 난다고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고, 그렇게 스스로 조심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토록 우리에게 당부하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 다음에는 그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히 간절한 기도나 부르짖는 간구가 아니라 모든 삶이 동원되어서 그 모든 삶이 하나님을 찾고 추구하는 그 촛점에 맞춰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질을 소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의지한 그 마음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가 가지고 있어도 이것이 내 인생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마음을 가지고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향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그의 삶과 신앙의 생활에 진정한 변화가 오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추구해 가는 가운데 그의 삶이 변하고 인생이 바뀌고 영혼이 변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맺음말
한 해가 지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한 해동안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아스라합니다. 그리고 무엇 하나 특별히 이루어 놓은 게 없는 것이 한 해를 넘길 적마다 느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해가 바뀌고 연도가 바뀌어도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변경되지 않는 것을 기억하면서 어제와 같은 걸음으로 주님을 찾고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런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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