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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곡의 골짜기를 지날찌라도
    2001-12-24 20:39:29   read : 1163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 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여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시편 84:5-8)

    들어가는 말
    본문의 앞 4절에서는 하나님의 집만이 가지는 놀라운 특징이 나옵니다. 그것은 '헤세드', '아가페'입니다. 곧 긍휼과 자비입니다. 가치가 없는 참새나 제비 같은 것들이 안전하게 깃들 수 있는 곳이 성소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교회를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의 집단은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며 교회는 스스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도 교회에 오면 왠지 집보다 더 편하고 기쁘고 더 많은 은혜가 후히 주어지는 곳임을 인식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 곁에 있을 때 우리는 축복의 그림자들을 경험하고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에 소망이 없는 자들이 와서 긍휼을 얻고 세상에서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가치 없는 인생들이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소중하게 여김을 받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어서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런 긍휼의 힘을 잃어버리고 가치 없는 죄인들을 용납하고 품어 주는 일에 실패하는 이유는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쓰레기와 같았던 인생의 삶이 우리에게도 있었던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잊어 버리는 까닭은 자기가 하나님께 어떻게 긍휼히 여김을 받아서 여기까지 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교회와 한 지체가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은 근본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긍휼히 여기시는 지를 자신의 신앙생활 속에서 깊이 체험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긍휼히 여기기에는 너무나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깨달은 대로 살아가는 곳이 교회라는 곳입니다.
    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은 잠시 잠깐 머무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이유 없이 와서 오래 살 것을 작정하고 주저앉는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거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임하신다'는 말과 똑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오래도록 사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누리는 복
    그러면서 5절은 그 하나님의 집에서의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당신 안에서 그에게 힘이 있는 그 사람은 행복하도다'라고 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고 그 마음의 큰 길이 있는 사람들은 복이 있도다.'라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그렇게 한없는 은혜를 입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힘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예배는 2천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서 모인 곳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추도행사나 단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인 모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항상 예수 그리스도는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의 죽으심은 기념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 은혜를 기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감격을 찾고 거기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일이 일어 날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와 역사를 모두 합하여 마지막 결론을 생각하여 남는 것은 그리스도, 나,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 그리스도는 기념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얻는 힘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으로만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세상과 죄악을 이기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힘이 필요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우리 삶 속에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어떤 힘, 그리고 믿음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어떤 능력들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역사를 일으키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배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그 사람이 세상에서 실패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무엇으로 파도와 같이 밀려오며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세상을 이기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바른 관계를 가지고 그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구체화시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주어지는 특권은 "힘"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놓여진 인생은 두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당당하게 어두운 세상을 불꽃처럼 살아가는 것과, 둘째는 하나님을 버리고 불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 3의 길이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불순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결단하여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제 3의 길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예수만을 믿고 살아가는 인생을 꽃처럼 향기 나는 삶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가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한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는 다시 한번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을 하늘로부터 공급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생활할 때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생각할 뿐만아니라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나의 길로 삼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참된 행복 그것만이 우리에게 유일한 참된 행복이라는 확신과 신념을 어디에서 갖게 됩니까? 그것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교회가 없는 사람들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전심으로 사랑하면서 사랑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없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 불행이 영적인 삶에 얼마나 크게 역사하는지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적인 삶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질적인 고아들이 교회 속에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몸은 교회에 있습니다. 그리고 헌금과 감사를 하고 기도를 드리며 헌신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교회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그런 정도의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참된 힘을 받으면서 살아 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큰 힘과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자들은 교회를 사랑하면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교회를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조건적으로 사랑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 사람의 이름만을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것입니다. 교회 속에 사랑하는 지체들이 함께 있고 그 속에서 우리들이 영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기며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힘입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그 이름을 교회 가운데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의 관계가 깨어진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일들이 먼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피상적이고 잘못된 것들은 크게 각성하여서 바로 잡아야 합니다. 부흥의 때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뜨겁게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므로 부흥이 스쳐 지나가지 않는 곳에서는 따라서 순교자가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힘을 얻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주신 교회에서 하나님은 모인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그 마음에 대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길' 언제든지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힘을 주실 수 있도록 그러한 하나님과의 화목한 대로를 가지고 사는 삶이 교회와 관계를 갖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이 때에 우리의 영적인 삶이 올바르게 됩니다.
    또한 사람들은 교회의 영적인 상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오늘날은 교회를 위한 중보의 기도가 희박해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안에서 지체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갖는 관계가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인의 이 고백의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장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영적인 상태가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닫으며 교회이면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일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지면 우리의 신앙이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지체된 관계가 단순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는 은혜를 받은 대로 섬기는 것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속에서는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는 뜨거운 사랑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기억하면 그 사랑이 우리 마음에 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증인이 되지만 대표적인 경우가 사도 바울이 그렇습니다.
    교회를 향한 사랑이 그 인격을 지배하고 삶을 지배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한 것이지 제도에 충성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집 안에서 거하는 자들에게 이런 은혜를 주십니다. 마음 속에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주님이 오실 수 있는 대로가 언제나 열린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드릴 때마다 마음이 청소되어 집니다. 하나님께 붙잡을 때 우리의 믿음은 든든하게 되고 하나님의 손에서 떠나게 되면 거미줄과 같은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 속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늘 새롭게 하면서 항상 힘을 얻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없는 자는 불행합니다. 열심을 잃어버린 자들, 마음의 대로가 막힌 자들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새로운 길을 얻고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한 은혜를 따라서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골짜기를 지날 때에
    교회라는 제도는 선험적인 제도입니다. 인간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 속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자들을 향하여 성경은 말하기를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희는 통곡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 그곳에서 마시는 비를 만듭니다. 비를 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곡'은 보통 우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지르면서 우는 것입니다. 그 통곡의 자리에서 마시운다는 것은 곧 샘이 솟아서 마시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자들이 시련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게 되고 이러한 마음의 대로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복은 히브리어로 "아쉐르"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5장에서 말하는 복의 뜻과 같습니다. 일반적인 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언약의 백성들에게만 주시는 신앙적인 축복입니다. 성경은 이런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초하여 주어지는 복, 그것을 참다운 성도들이 받아야 할 복의 목표로서 제시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런 사람들도 통곡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샘이 터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집과 바른 관계를 맺고 거기에서 힘을 얻고 그 마음 속에 주님이 언제든지 찾아오실 수 있는 대로를 소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지치고 낙담한 골짜기, 아무도 동행이 없는 골짜기에서 그들의 육신이 지치고 낙담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 골짜기에서 샘을 터트리십니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 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라는 찬양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간단하고 사소한 환난이면 주위의 격려나 돈으로 도움이 되지만 극한 통곡의 골짜기에서는 세상의 제물과 사람의 위로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때에 하나님께서 샘을 터트리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일어납니다. 인생을 포기 할 수밖에 없는 시련의 광야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시련의 광야를 지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 이런 힘은 골짜기 자체는 우리에게 찬양의 마음을 주지 못합니다. 그 골짜기 곳곳에서 터지는 샘을 보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고 체험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낙담할 수밖에 없을 때에 용기를 얻고 천만인이 엎드려지는 곳에서도 그 주님 때문에 다시금 새롭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교회와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갖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그 곳에서 터트려지는 하나님의 샘을 보고 즐거워하며 그 샘물을 마시고 통곡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은 골짜기를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사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의무로 나오는 사람들은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향유하지 못합니다. 신령한 은혜로서 하나님과 만나고 영적인 깊은 만남으로 신앙적인 감격을 느껴야만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신앙으로 얻어지는 개인적인 감격이 있어야만 교회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통곡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 마른땅에서 샘이 터트려져서 그 샘의 물을 먹으면서 노래를 부르며 그 골짜기에서 더이상 흐느끼지 않고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때입니다. 이것이 교회 속에서 다시 깨달아져야 할 복음입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특권이라는 감격으로 봉사하여야 직업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뜨거운 동기나 하나님과의 감격도 없으면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른 비가 오면 파종하고 늦은 비가 오면 추수를 합니다. 성경에서 비는 축복을 의미하며 비는 하나님이 내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으면 비를 만들어 내는 은혜를 주십니다. 엘리야처럼 말입니다. 비를 만드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은혜의 혜택을 입히고 세상에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늘 새로운 힘과 그 은혜를 입으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갈 수 있도록 교회를 위해서 교회전체가 하나님을 향하여 갖는 바른 관계를 맺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향하여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는 "힘을 얻고 더 얻어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게 됩니다. 힘을 얻고 더 얻음은 곧 있는 자는 더욱 부요하여지고 시온에서 있게 됩니다. 성소에 있는 이들의 목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나아간다"는 말을 깊이 생각해 봅시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영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새로운 힘과 능력과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며 삶의 방식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면서 교회와의 관계를 점검하여야 할 것입니다.

    맺음말
    마지막으로 종합해 보겠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교회가 없는 자는 불행한 자입니다. 전심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아까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치고 재능을 다하여 섬기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 할 수 있는 교회, 통곡의 골짜기를 지날 때 생각나는 교회가 없음은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항상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8절 하반절의 의미는 "나의 한 기도를 들으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시인의 반복되고 계속 입을 통하여 마음에서 솟아나는 한가지 기도를 드리는 그 제목은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기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만남과 은혜체험으로 말미암은 변화를 경험하고 새롭게 변화되어 가는 놀라운 은혜의 체험의 간증이 있을 때에는 그 장소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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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깨어진 마음과 기도
    순종과 거룩한 영혼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할 때
    부활하신 몸에 남은 고난의 흔적
    스스로 종이 된 자유인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
    기이한 은혜에 감사하라
    염려와 기도(빌4:6-7)
    내게 나아와 들으라(사55:3)
    회개가 기도의 문을 연다
    새 사람을 입으라
    은혜 받기 위한 두 가지 준비
    말씀의 미각(味覺)이 사라졌습니까?(시119:
    복음을 위하여(행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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