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5월 02일 (금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목사를 막아라, 텅빈본당 /목사 연금 1,600억으로 '돈 장사'한 집사 구속/ 캄보디아 박율 목사 체포 충격               최태민 구국선교단 참여 목사들 / 십일조 하지 말라는 목사 /한우갈비’외치는 기감목사들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서울광장서 개막 /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무죄               선교사들 위한 안식관 두 곳/ '노트북이 뭐라고' 소송 총동원한 사랑의교회               언더우드 후손 28명 우리 고향은 South Korea/ 군종장교 범죄               박수홍,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 예의/ 죽음의 질(Well dying) 중요               목사님이 운영하는 중고자동차 매매센터               예장통합 ‘제2의 세습방지법안’ 총회 통과/ 예수님처럼 교회도 하늘에서 내려와야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적극 반대 /목회자의 고백 7가지 실수               총회장 2명을 배출한 여인의 힘! /복음화율 10% 안 되는데 주일학교만 1천 명              

  홈     이삼규     강문호.     고신일     곽선희.     김광일.     김기석.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성광.     김성수     김은호     김정호.     김홍도.     류영모.     명설교     박봉수.     오주철.     옥한흠     유기성     이동원     이성희.     이양덕.     이영무     이윤재     이재철.박영선     이정익     조봉희.     조용기.     주준태     지용수     피영민     하용조     한경직.     홍정길.임영수     해외목사님     관     괄사치유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한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사건별설교(구약)     사건별설교(신약)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샘플설교
  오래된 설교(왕)
  카드,핸드폰결제

설교내용검색

네이버.다음.구글


시작페이지 설정


호산나 자동차


교회인쇄주보디자인


밀알.현수막.주보


제주2박3일210.000원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남학매일성경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베리타스칼럼
  • 강남신앙간증
  • 아멘넷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강문호목사
  • 고신일목사
  • 김기석목사
  • 김대동목사
  • 김명혁목사
  • 김성광목사
  • 김승욱목사
  • 김형준목사
  • 김흥규목사
  • 명성훈목사
  • 박광철목사
  • 박건목사
  • 소강석목사
  • 이동원목사
  • 이성희목사
  • 이한규목사
  • 정근두목사
  • 정태기목사
  • 조태환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교단 사이트

    말씀,QT

    사전.지도사이트

    성화,주보그림자료

    성경연구공부자료

    성경신학 자료

    Home

    부르심을 입은 자들
    2001-12-21 14:03:07   read : 1132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고린도전서 1:1-3

    고린도전서는 3차 전도 여행을 앞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상황을 전해 듣고 교회를 보다 더 아름답게 가꾸기 위하여 쓴 편지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직접 방문할 수 없어서 이 편지를 썼지만, 그는 이 편지를 고린도 교인들만 읽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모든 크리스천이 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양곡교회에서도 이 말씀을 통해 은혜 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몰랐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 모든 서신은 지구촌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 모두를 위해 주신 것처럼, 고린도전서 말씀도 고린도 교회만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양곡교회와 예수를 믿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해 주신 것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서는 바로 여러분과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한 절 한 절을 감사함으로 읽고, 또 그 뜻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서를 쓴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소스데네는 고린도의 회당장)'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소개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입은 바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얻게 되는 교훈이 있습니다.
    목사님으로 교사로 혹은 가르치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나 평신도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나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택하여 불러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 한 사람을 택하여 불러 내셔서 우리의 오늘이 있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종교가 있는데 내가 기독교를 택했고, 여러 우상이 있는데 그것들은 우상이기 때문에 내가 생명의 주님을 택해서 주님의 사도가 되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오해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잡혀 죽을 때 박수를 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를 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는 다메섹 도상에서 그는 신비로운 빛을 보았습니다. 신비로운 빛이 그에게 좍 비쳤습니다. 그 빛이 주님의 빛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택한 일도 없고 예수님을 믿으려고 마음 먹은 일도 없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택하여 세우셨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믿음 생활을 해 보니, 믿는 사람들은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도를 해 보니, 복음을 듣는 사람마다 다 와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만 와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하!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성도들도 그들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여 부르셨구나.'하는 것을 알고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 말씀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도 주님을 믿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자기 경험으로, 노하우로만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너도 내가 택했고, 고린도 교인도 내가 택했고, 모든 성도들도 내가 불렀다.'하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바울이 그렇게 썼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도 똑같은 확신을 갖고 요한복음 6장 4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하나님께서 내게로 불러 주지 않으시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요한복음 15장 16절에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여러분, 우리는 보통 사람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교인이 되고, 내 뜻대로 교회의 성도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오늘 여기에 있게 된 것입니다. 너무 신비롭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마귀도 사람을 부릅니다. 마귀도 가룟 유다를 부르고, 고라를 부르고, 다단을 부르고, 아비람을 부르고, 많은 사람을 부릅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부르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부르십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 29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주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따라 합시다.
    "나의 구원은 안전하다. 방해할 자가 없다."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로마서 8장 35절에도 말씀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로마서 8장 38절, 39절에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과 저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실패해도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저의 구원은 완전합니다.
    가끔 '내가 정말 구원을 받았나?'하는 의심이 생길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심이 생기는 것은 마귀가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사탄을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구원받은 확신 가운데 서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이라 말씀합니다.
    고린도서를 쓴 바울이 사람이지만 거룩하게 되어서 나중에는 자신이 주님의 샘플이라고 고백합니다.
    "나는 주님의 샘플이니 여러분들도 나를 닮도록 하시오."
    고린도는 음란한 도시입니다. 얼마나 방탕하고 더러운 도시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방탕하고 더러운 도시 고린도에 사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믿으면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점점 점점 거룩해져서 성도라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마귀를 따라가면 점점 더 더러워집니다. 더 방탕해집니다. 초라해집니다. 사람 꼴이 형편없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따라가는 우리는 점점 거룩하게 되니, 얼마나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누구든지 아직 공사 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사 중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공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작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이 달보다 다음 달, 금년보다 내년에 우리는 더 거룩하게 됩니다.
    혹 또 넘어져 때가 묻을 때가 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회개하여 더 경건하게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한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의롭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아무리 큰 죄, 더러운 죄, 복잡한 죄, 바다 모래알 같은 많은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을 믿은 그 날, 예수님의 피로 덮임 받아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가 걸음을 걷다가 넘어지듯이,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도 실수하고 넘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결국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도 거룩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제 딸이 신혼 여행을 다녀왔을 때 제가 물었습니다.
    "신혼 여행 잘 갔다왔냐?"
    "예."
    제 아내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좋았니?"
    "예."
    요즈음에는 신혼 여행가서 싸우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제 딸 부부는 싸우지도 않았고 좋았다니, 참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말했습니다.
    "아빠, 비행기 타기 전에 비행장에서 싸우는 신혼 부부를 보았어요."
    "어떻게 싸우더냐?"
    "신부가 신랑한테 '차라리 나가 죽어라.'하며 …"
    신랑이 화가 나서 다른 곳으로 가더랍니다. 그것을 본 제 딸이 걱정이 되어 비행기에 내려서도 그 부부를 찾아보았더니,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안심했답니다.
    저는 라스베가스에서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신랑과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담배를 피우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나오자마자 싸우려면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막 살 수 있어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니 점점 점점 조심하고, 점점 점점 좋아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거룩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를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이웃이, 여러분의 형제가 오늘 막 지저분하게 산다고 그것을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따라 합시다.
    "아직 미완성 작품이다. 하나님께서 작업 중이시다."
    도로 공사할 때는 도로가 엉망이지만 공사가 다 끝나면 얼마나 좋습니까? 집을 지을 때는 그 집이 험해도 집을 다 지어놓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꾸 지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거룩하게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감당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사도로 사명을 받은 사울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그 복음이 오늘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사명을 잘 감당하니 고린도에 복음이 좌악 퍼졌습니다.
    사도에게도 사명이 있고, 우리에게도 사명이 있습니다.
    'calling' calling은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도 목회할 수 있고, 서울에 가서도 목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터가 여기인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오만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저를 오라 해도 저는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 이름도 양곡초등학교입니다. 저는 양곡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시면 떠나야겠지만 말입니다.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사명이 있습니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찬양을 하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또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교사나 구역장님으로 봉사하고, 인상이 좋고 친절한 사람은 안내를 하고, 배짱이 좋은 사람은 차량 안내를 하면 좋습니다. 특별히 차량 안내를 하려면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차량 안내를 하다보면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때도 넉넉히 웃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해병대 출신은 혹 교회에 깡패가 왔을 때 깡패를 물리치는 일을 맡으면 좋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은사가 다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은사가 있습니다.
    미국의 성공한 기업주들에게 어떻게 해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물으니, 모두 어머니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다고 대답하더랍니다. 학교 성적이 좋은 우등생들도 어머니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존경만 받으면 아이들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막 살면 아이들도 막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하나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아버지도 하나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사업을 잘 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 감당을 잘 하면 교회도 지을 수 있고, 선교사를 파송할 수도 있고, 여러 선을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가 있습니다.
    대학 교수도 사명이 있고 의사 선생님도 사명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은은하게 복음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환자들에게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은 기도의 사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골방에서 기도 생활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지상 명령인 전도입니다. 전도는 누구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통령도 전도해야 합니다. 카터 대통령은 전도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등소평은 카터 대통령의 전도를 받고,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카터 대통령의 전도를 몇 번이나 받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만일 박 대통령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술을 마시다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통령도 전도해야 됩니다. 국회의원도 전도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전도는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보다 특별히 여자에게는 갑절의 전도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마자 왜 남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여자들에게 나타나셨을까요? 그래야 부활의 소문이 빨리 퍼지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소문을 퍼뜨리는데 한없는 시간이 걸리지만, 여자들은 무엇을 보았다 하면 금방 퍼뜨리니 그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여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전도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잘 합니다. 남자들도 우리 박 장로님처럼 전도를 잘 하시는 분은 아주 잘 하시지만, 우리 교회에서도 보면 역시 여자들이 전도를 잘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는 전도의 은사를 갑절로 주신 것 같습니다. 하루에 남자는 25000마디의 말을 하는데 여자는 30000마디 이상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남자들도 열심히 전도하시되, 하나님의 딸들은 더 열심히 전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누구에게나 사명이 있고, 또 시간 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섬세하신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루에 몇 번 앉았다가 일어서는지도 아시고, 우리의 걸음까지 다 아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제 몇 발자국을 걸으셨는지 아십니까? 아시는 분은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기 31장 4절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걸음까지 세십니다. 그리고 시간 시간 '지금은 이 일을 할 때다.'하고 인도해 주십니다. 잘 때는 자고, 운동할 때는 운동하고, 밥 먹을 때는 밥 먹고, 기도할 때는 기도하고, 성경 읽을 때는 성경을 읽으라고 그때 그때 감동을 주십니다. 그 감동을 따르면 우리는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종국적으로 우리를 잘 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마귀는 유다를 불러서 배가 터져 죽게 했습니다. 고라, 다단, 아비람을 불에 타 죽게 했습니다. 마귀는 이용한 후에 버립니다. 마귀는 자기를 위해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잘 되게 하시려고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경배만 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섬기러 오셨고, 십자가를 지시고 피와 땀을 다 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워하려고 오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온 우주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마구간에 나셨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배가 고프신 주님께서 때때로 시냇가에 가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드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멀리서 그것을 본 마리아가 "예수야, 떡을 더 많이 만들어라."하니, 주님께서 그 말을 듣지 않으셨답니다. 계속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면 일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가난하게 오셨습니까? 여러분과 저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가난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부요하게 되는 가정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 모두 부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길은 부자가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말씀하십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여러분의 허물이 다 끝났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에 예수님께서 찔리셨습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죄 때문에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주님!'하면 주님께서 다 끝내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이미 우리의 죄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죄의 고민을 갖고 돌아가시는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죄는 지금 여기에서 다 끝내어야 합니다. 목욕탕에 가면 때를 다 씻고 나가지, 퉁퉁 불린 때를 다시 가지고 가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죄는 여기서, 교회에서 다 끝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그 죄로 불안해하고 고민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려고 상하셨기 때문에 그 상함의 능력은 지금도 그대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배 피는 지금도 솟아나고 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고 징계도 많이 받으신 것은 우리를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불안하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평화는 하늘에서 내려오고 예수께로부터 옵니다. 이 평화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평안하게 하려고 주님께서 여러 가지 핍박을 받으시고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 병에서 살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오늘 밤에, 이 설교 시간에 여러분의 머리에 있는 모든 병이 낫기를 바랍니다. 눈이 나쁜 사람은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귀와 입, 피부, 신경, 뼛속, 모든 것에 있는 작고 큰 병, 모든 세포 속에 있는 병들이 치료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몸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이 밤에도 치료되는 역사가 타나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치료되기를 축원합니다. 치료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우리를 위해 그렇게 찔리시고 상하시고 징계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무덤에 들어가신 것도 우리에게 부활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을 주시기 위해 주님께서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전체, 오심부터 부활, 승천, 재림은 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천국에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 하늘나라 맨션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150평 빌라도 엄청나게 화려하고 좋은데, 우리 주님께서 천국에 지으신 집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집을 바로 여러분과 저를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1-3)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우리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웃게 되는 것입니다.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하만의 싸움은 문지기와 총리 대신의 싸움이었습니다. 모르드개의 직업이 문지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문지기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 문지기와 총리 대신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문지기인 모르드개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도 비교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시니 다윗이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뒹굴 때도 있고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들어가셨듯이, 우리도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무덤에 들어가셔서 지신 것 같았지만 부활하셔서 승리하신 것처럼, 요셉이 감옥에 갈 때는 진 것 같아도 다시 일어난 것처럼, 우리는 결국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웃게 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승리의 깃발을 흔들게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슴칠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면 선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웃어야 됩니다.
    미국 메모리얼 병원에서 건강 교육을 위해 발간한 책에 15초만 웃어도 이틀을 더 살게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틀은 17만 2800초입니다. 그것을 15로 나누면 11520입니다. 15초를 투자하면 11520배의 수입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웃음의 비즈니스가 제일 수지 맞는 비즈니스입니다. 15초 웃고 이틀을 사니, 웃음보다 더 좋은 장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레슬리 웨드헤드 박사는 "기쁨의 반대는 슬픔이 아니고 불신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쁨의 반대는 슬픔이 아니라 불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신앙만 있으면 슬픈 자리에서도 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는 무덤에 들어가면서도 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늘 평화롭게 웃으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기독교,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한국 교회가 뭣 하느냐?" 하는 사람이 많지만, 여러분 가정만 보아도 알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통계를 보면 하루에 세 쌍이 결혼하고 한 쌍이 이혼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회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교인의 가정은 이혼이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혼하는 가정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혼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교회가 나라와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교인들의 부부가 잘 사니 그 자녀들도 반듯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청년들이 막 살고 정신 이상자가 많이 생겨 야단인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 자녀들은 잘 자라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서울의 어느 집에서 한 부부가 새벽 2시까지 싸웠습니다. 싸우는 소리에 생후 2달 된 아기가 깨어서 막 울었습니다. 아빠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기에게 "시끄럽다. 이놈아!"하며 텔레비전 리모트 컨트롤을 던졌는데, 아기가 거기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아기를 도봉산에 몰래 묻었는데 그것이 드러나 아빠 엄마가 구속되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결혼했는데 싸우니 지옥이 된 것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못할 자기 자식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은혜가 없고 평화가 없는 가정, 불신자의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가정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평강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에게는 은혜와 평강이 있어서 서로 싸우지 않고 사랑하며 삽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최고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만복을 다 받은 사람들입니다. 소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소원이 다 성취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려 드립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앞으로 부르실 백성이 이 도시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성에 내 백성이 많으니라. 잠잠하지 말고 외쳐라."
    오늘 성령님께서 저를 통해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에 내가 부를 자가 많으니라. 복음을 전하라."
    우리 모두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이 하루라도 빨리 우리 교회에 와서 구원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복된 배필
    이렇게 삽시다
    결혼에 관한 교훈
    신자중의 법적 시비
    십자가의 도
    성령과 전도
    성령과 생명
    주님께 감사하라
    다윗의 유언
    왕자 아도니야를 통해 주시는 교훈
    심히 아리따운 소녀
    슬기로운 사귐
    두 종류의 누룩
    효과적인 교육
    바울의 자녀들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개인정보취급방침 |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