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자 2001-12-15 21:06:26 read : 940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로마서 8:1-1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1>
저는 오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이런 제목으로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한문 글귀에 부부는 이성합이요, 형제는 일기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으로 부부라는 한 몸을 이루게 되고 그 부부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한 핏줄을 타고났기 때문에 형제자매라고 일컫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때로는 선한 목자로, 그를 믿고 따르는 자를 양으로, 때로는 하나님을 임금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의 백성으로 때로는 예수님을 신랑으로 그리고 예수 믿는 성도를 신부로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신랑과 신부가 한 몸을 이룬 부부가 된다는 것에는 놀라운 신비가 있는데 거기에는 사랑이 있고, 행복이 있고, 거기에 새로운 생명이 자꾸 태어납니다.
또 성경은 어떤 위치에 따라서 그것이 축복일수도 있고 저주일수도 있고, 그것이 천국일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점으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평화를 누린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예수 안에는 축복이 있고 승리가 있고 구원이 있고 행복이 있고 천국이 있으나 예수 밖에는 저주가 있고 패배가 있고 멸망과 불행, 지옥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잔치 비유를 하시면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문 바깥으로 쫓아내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런 말을 하셨고, 달란트 비유가운데서도 하나님 마음에 합당치 않은 사람들을 바깥 어두운데 쫓아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성경은 밖은 저주요 심판이요, 멸망이요, 지옥인데, 안은 언제나 승리요, 행복이요, 구원이요, 천국으로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더없는 행복인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이 그 사람 마음에 계시고 또 나는 예수 안에 있으니 이는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데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이 있고, 사람이 인정해주는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믿음은 어떤 착한 행실을 보고 역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달라 라고 어떤 감탄을 하거나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 놓은 구원의 도리를 우리가 깨닫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함을 의미합니다.
아담 이후에 모든 인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죄와 원죄로 인해서 사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멀어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고행으로 선행으로 철학으로 도덕으로 윤리로 어떤 지식으로 과학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태어난 새끼 표범이 어미 표범에게 있는 반점을 자기 노력으로 지우려해도 없앨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해서 죄인 되기 전에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그래서 이를 가리켜 원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사람이 많이 울어서 눈물로 지워지거나 금식을 많이 하고 철야를 많이 하고 많이 울어서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로 타락한 인간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나섰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 분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 이하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만물이 그 말씀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 그것을 도성인신, 영어로 인카네이션(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도가 어떤 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53장6절에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다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 사람이 지었는데 죗값은 예수님이 대신 받도록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려 죽으심은 당신의 죄 때문이 아니고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대신 죽었으니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혹은 속죄양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믿어 구원받게 된 것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 구원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자기를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 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영접한 자는 그리고 그 마음에 주님이 계신 자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이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유죄판결을 받지 아니하고 무죄 선언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자유인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우리 공로가 아니고 첫째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거역할 수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된 것이니 우리는 평생토록 예수님의 십자가를 높이고 자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비밀을 그 날이 오면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여기서 그 날이라는 말은 성령님이 강림했던 오순절 날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감람산에서 500여 형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고 난 이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들어가서 열흘동안 전혀 기도에 힘썼는데 예수님이 부활한 날로부터 시작해서 50일째 되는 날 하나님의 신이 그들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성전을 삼고 하나님이 그 곳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크게 둘로 나누는데 우리가 예배드리기 위해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건물, 예배당이 성전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귀한 성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현주소, 하나님의 성전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신 줄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성전 삼고 우리 안에 거하시고 나도 예수 안에 거하기 위해서 해야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사람들이 성전 안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갖다 놓고 장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을 벌려놓고 외국에서 온 사람들 환전한다는 구실을 붙여서 돈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분이 가득 하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소와 양을 전부 성전 바깥으로 내몰았습니다.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도 이것들을 가지고 바깥으로 나가라고 다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환전하는 상을 둘러 엎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내 아버지의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어늘 어찌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으며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냐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니 속되고 추악한 곳에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니 순수하고 깨끗하고 구별된 성결된 곳에 주님이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성전을 깨끗하고 순수하고 거룩하게 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신이 임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때에 우리들은 실질적으로 경험적으로 죄와 사망에서 해방됨을 우리가 느낄 수 있고 그로 인해 행복에 젖어들 수 있는 것인데 그래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니 너희가 죄악을 멀리 버리라. 그리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께로부터 너희에게 이를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니이까?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말하지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험하고 우린 비록 약하고 괴로운 세상이지만 우리 속에 평화의 신, 하나님의 신이 지배하고 다스리면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495장 찬송가 가사에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이 중한 죄짐을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가 무슨 음식을 먹고 마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니 이런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의 심령에, 여러분의 가정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중세의 수도원에 어느 날 한 사람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지기가 문을 열고 보니 거기에는 신부복장을 한 어떤 사람이 서있었습니다. 누구를 찾으십니까? 네, 저는 평화를 찾아 왔습니다. 저는 지금 평화를 찾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사람이 바로 신곡이라고 하는 소설을 쓴 단테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평화를 갈망합니다. 평화를 구하고 찾습니다.
그러나 어디간들 평화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단지 위장된 평화가 있을 뿐입니다. 또 단지 일시적인 평화가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골다 메이여 수상은 중동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한 보좌관이 찾아와서 수상님, 기쁘지요? 하고 인사를 합니다. 전쟁에 이겼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때에 메이여 수상이 집권하고 있을 때에 중동전쟁은 군사력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열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겼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여 수상은 희색이 없었습니다. 보좌관이 물었습니다. 수상님, 왜 기쁘지 않습니까? 뭐가 기쁜가? 한 번의 전쟁에 이겼다고 기뻐할 수 있습니까? 진정한 기쁨은 저 멀리 보이는 벌판에 딸기꽃이 피는 날 우리는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또 다시 전쟁은 시작되고 있으니 진정한 평화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내 영혼이 사망의 법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613가지의 조항을 다 충족할 수 없는 우리, 울어도 참아도 해결 받을 수 없는 죄인의 운명,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우리, 죄사함을 받은 우리, 성령님을 모시는 자의 마음속에 평화가 있는 것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이런 평화가 있는 것이니 여러분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두번째 주어진 은혜가 있습니다. 위대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속죄의 은혜고, 또 하나는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원수 되게 했습니다. 그러면 원수가 친구로 바뀌도록 하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죄악의 장벽을 허물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빈 손들고 나와서 십자가를 붙들기만 하면 곧 천국에 가는 은혜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이 험악한 죄악세상에서 머물러 있는 날 동안에 우리를 괴롭히는 죄악,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분인데 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마귀를 이기시고 사망을 이기신, 죄악을 이기신 그 권세자 주님이 멀리 계신 것이 아니고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성전 삼고 여기 계시니 그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1절 이하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고, 우리 속에 이미 이기고 계신 주님이 붙들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승리에 우리가 동참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장, 즉 고린도전서 15장57절에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주안의 수고가 결단코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5:4절 이하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권세자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 이상, 주님이 강하면 나도 함께 강하고, 주님이 지혜로우면 우리도 함께 지혜롭기 때문에 주님의 승리 안에서 우리도 함께 승리자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은 죄악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를 멀리하고 성결을 지켜 살아야 합니다.
요한1서 3장8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
요한1서 5: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켜 살면 주님도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가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약할 수록 주님을 더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의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재물이나 건강이나 지식을 더욱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주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많은 것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한정된 것이고 무한한 것이 아닙니다. 재물은 독수리 날개처럼 언젠가는 우리 곁을 날개를 달고 떠날 날이 옵니다. 이팔청춘의 아름다운 시절에서 세월열차가 어느덧 우리를 저 늙은이가 되게 합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영원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합니다.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학, 박사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자와 천한 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다가 은혜를 입혀서 세상의 모든 것을 갖췄다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은 아무 육체라도 자기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했으니 여러분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고,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건들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능히 이겨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죄와 싸워 이기는 자들을 위해 예비된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죄악과 싸워서 이기는 자들을 위해서 우리에게 약속된 것들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쓴 편지 가운데 마지막 주신 메시지가 바로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실과를 주어 먹게 하겠다. 서머나교회에는 이기는 자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리라. 버가모교회에 준 말씀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줄 것이며 흰 돌을 줄 것이라. 두아디라교회에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말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겠다. 사데교회에는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할 것이다. 빌리델비아교회에는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고 그 기둥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리라. 라오디게야 교회에 편지하며 이기는 자가 되면 나와 함께 보좌에 앉게 하겠다. 귀 있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교회이든지 동일하게 요구한 것 딱 한 가지는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습니까? 내 힘만 의지하면 패할 수 밖에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고 날 붙잡아 주면 내가 의로운 병기로 나타나면 주님은 우리를 승리자가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2:14절에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 속에 남아있는 죄악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주님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은 세상 물결따라 적당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고기는 물 위로 떠올라와 물결따라 떠내려갑니다. 그러나 비록 몸집이 작아도 살아있는 고기는 물결을 헤치며 올라갑니다. 우리 속에 예수의 부활생명이 있으면 죄악의 유혹이 아무리 거세게 우리를 엄습해 온다고 할지라도 내 안에 있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대처하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니 그의 부활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날마다 주와 더불어 승리하기 위해서 해야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악과 정욕에 붙어있는 마음을 항상 십자가에 못박아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예수님이 나를 통해서 드러나기 위해서는 욕심의 나, 시기와 질투의 나, 교만과 고집에 붙들려 있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온유와 겸손의 주님이 나를 통해서 드러나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죄악을 버리고 자기를 깨뜨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줄로 믿습니다.
이런 사람은 왜 승리할 수 있느냐? 자기를 비운만큼 하나님의 것이 우리를 채워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십자가의 군병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쓰십시오. 주님이 날 구원했다고 하는 의식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가슴에 의의 흉배를 붙이십시오. 정의감이 불타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허리에는 진리의 띠를 띠십시오. 하나님 말씀이 진리이니 말씀에 의해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복음의 예비한 신발을 신으십시오. 언제나 복음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바 되어 살 때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승리자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이 했던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늘 기도하셨습니다. 새벽기도 하셨습니다.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밤을 지새워 철야 기도하셨습니다. 히 5:7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아들이시라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기도하셨고, 기도하는 예수님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도행전 10:38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하여 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두 번째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 말씀이면 예하고 아니오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후 1:19절 이하에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친아들이시라도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 늘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히브리서 5:8∼9절에 나옵니다. 고난이 있어도,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 말씀이니 지켜 살아야 되겠다 하고 그 길 갔다는 것입니다.
주님 뒤를 따라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 크로스웨이(cross way)는 주님 발자국 위에 나의 발자국을 포개어서 걸어가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특수 체질이 아닙니다. 잠자지 않으면 피곤하고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고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벧전 2:1절 이하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얻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따라 가십시다. 그 길이 힘들고 어려워도, 고난의 십자가의 길일지라도 따라가면 십자가가 끝나면 부활의 영광이 기다릴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No Cross, No Crown,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 힘들고 어려워도 십자가를 붙들고 가십시오. 머지 않아 부활의 동산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줄 믿습니다.
다음에 예수님을 본받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전도입니다.
전도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들을 때 얻습니다. 전하는 이가 없는데 어떻게 들을 수 있으면 듣지 않고 어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유언의 말씀은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주신 목적,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되기 위한 것입니다.
제자 선택의 목적, 사람 낚는 어부 되게 하기 위해서 불렀습니다. 막 1:37절 이하에 보면, 제자들이 주님 찾아와서 말씀합니다. 주님,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나이다. 구원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우리가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해야 하리니 이를 위해서 내가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쫓으시더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멀리 이방나라까지 가서 선교사는 못된다 하더라도 내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자를 건져내야 합니다. 우리의 가족 중에 불신자를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친척 중에 나의 친구 중에 이웃 중에 불신자를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엄청납니다. 첫째는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겠다는 약속은 전도하라는 명령을 받은 자에게만 하신 말씀입니다. 전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기도 응답하겠다고 요한복음 15:16에서 약속합니다.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지난날의 허물을 다 가려준다고 했으며,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늘의 별처럼 빛을 비추게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한 생명이 태어남으로 기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 일을 더 기뻐한다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보십시오.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면 전도하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면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이 따로 계시고 여러분은 따로 살아가는 이중적인 삶이 아니라 주님이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며 주님이 하시는 일을 나도 하며 주님이 좋아하는 일을 나도 하는 것, 한 몸 이룬 것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있다면 전도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전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주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처럼. 어떤 가지든지 나무에게서 진액과 수분을 공급받지 않고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붙어있으면 저절로 과실을 맺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우리는 은사는 달라도 거기에 붙어있는 가지들입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주안에서 사십시오. 주안에서 사는 자는 하나님이 그 마음에 당신의 소원을 집어넣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정죄함이 없게 되었고 심판을 면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말씀을 가지고 나아가면 어두움의 세력은 물러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십시오. 예수님 따라서 예수님을 본받아 전도하며 사십시오. 하나님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할 것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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