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 2001-12-14 11:07:25 read : 1072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말씀 : 역대하 36장 22-23절, 잠언 21장 1절
지난 월요일 인천 공항을 떠나 중국의 심양을 거쳐 연길 시를 다녀왔습니다. 직항로가 있다고는 하나 쉽게 비행기 표를 구할 수가 없어서 돌아가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서울 북노회와 미국의 시애틀 노회가 협력하여 도움을 주고 있는 연변대학교 부설 복지병원을 후원하기 위한 프로잭트의 일환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복지 병원에서 이동 진료를 위한 버스를 장만하는 일을 두 노회가 혐력하여 돕기로 결정하였는데 그것을 위하여 가게 된 것입니다. 날씨가 고르지 않아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연길에 도착하였습니다. 영접하기 위하여 나온 병원장님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과 인사를 나눈 후 숙소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동안 연길 시가 일년전과는 완연하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넓어진 도로와 새로 세워진 건물들, 그리고 지금도 한창 공사중인 많은 빌딩들이 있었습니다. 대 도시의 모습을 하나 하나 갖추어 가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어떤 도시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놀라운 변화가 연길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병원장의 초대로 저녁을 북한 분들이 경영하는 유경 식당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요리사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지난 번 방문했을 때는 질문에 대답도 잘 하지 않고 무척이나 어색하게 대하던 북한 분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아주 친절하게 대하였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남북 정상 회담이 있은 후부터 전과는 달리 친절해 졌고 마음을 열고 받아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달라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고 연변대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특별히 복지병원을 찾아 이동진료를 위한 버스 구입 비를 전달하였습니다. 이사장은 한국에서 가신 장로님이셨고 원장은 그곳에서 철저한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노회가 증정하는 것이기에 기도하고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일의 중심이 하나님이시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함께 한 모든 분들이 고개를 숙여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중국 공산당원들과 함께 기도를 한다는 것이 정말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병원을 둘러보고 진달래라는 냉면 집에서 점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희망복지 타운을 방문하였습니다. 한국에 가면 일확천금(一攫千金)을 할 수 있다는 감언유혹에 넘어가 재산을 팔아 한국에 오려다가 사기꾼에게 당하여 전 재산을 잃고 알거지가 되어 길에 나 앉았던 사람들, 그래서 삶의 희망을 잃고 죽음만을 생각하던 사람들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고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어 새롭게 인생을 살도록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속아 재산을 잃고 가정이 파괴된 사람들의 수가 보고된 것만 10만이 넘고 추정 치로는 30만이 넘을 것이라는 보고입니다. 정말 해도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고국에 와서 삶의 기회를 얻으려는 동포들의 등을 처 배를 불렸으니 그 배가 온전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가룟인 유다의 배처럼 터지는 저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애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저며오는 아픔을 가졌습니다. 집 한 채를 지을 정도의 혐력금을 주었습니다. 현재까지는 40여 채의 집이 지어져 있었고 목표는 100채라고 합니다. 이미 사 놓은 땅에다 자신들의 노동력으로 짓기 때문에 우리 돈으로 약 600만원만 있으면 한 채의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장석교회에서도 뜻이 있는 성도가 있다면 혼자서 한 채를 지어 주어도 좋고 아니면 여럿이 협력하여 지어 줄 수 있다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저녁은 복지병원 이사장의 초대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연변대학교 총장을 비롯하여 이사장님과 병원의 원장님과 부원장 등이 참여한 성대한 접대였습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맛이 있다는 개장국으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그들의 마음이 많이 열려있고 점점 세계를 받아드리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한국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있었고 신앙에 대하여서도 상당한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5시에 출발하여 백두산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번 선교 여행시 정상에 오르기는 했으나 날씨가 너무 흐리고 비바람이 불어 정상에 있는 팻말만 보았지 다른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오르고 싶었습니다. 출발하려는데 전에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바 있는 한 분이 '이 회장님, 무사히 다녀오시고 날씨가 좋아 백두산 잘 보고 오시라고 아침에 기도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뜻밖에 말을 들으면서 입을 열어 스스로 기도했다고 하는 그들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공산주의 치하에서 전 생을 살아왔고 거기에 충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다 보니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이 손을 대시기 시작하셨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녁을 먹으면서 어떻게 기도했느냐는 질문을 하자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것도 아니고 땅에 계신 것도 아니고 우리 마음에 계신 분이니 그 분에게 기도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대답하는 말을 들으면서 이미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장하고 계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인 역대하 36장 22-23절에 보면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찌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유다를 치고 많은 성전 보화를 빼앗아 왔고 수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왔던 앞선 바벨론의 왕과는 달리 바사를 일으킨 고레스는 잡혀온 유다 백성들로 돌아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을 허락하게 됨에 대하여 본문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왕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0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때가 되매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감동하게 하시니 이방 나라의 왕인 고레스가 오히려 유다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오늘 주신 다른 본문 잠언 21장 1절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라는 말씀이 틀림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절대적인 권력이 있는 왕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온 인류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특별히 왕들의 마음을 감동하시사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 모든 나라의 왕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지도자들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북한의 지도자들과 우리의 동포들이 살고 있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감동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권력이나 힘보다는 왕의 마음까지도 조정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마음이란 단어는 심장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인격의 중심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감정적 요소도 있고, 이지적 요소도 있으며, 또한 의지적 요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데, 이 인격의 중심 부분을 가리켜서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감정적 요소나 이지적 요소 또는 의지적 요소의 어느 한 부분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요소의 중심에 있는 마음을 보시는 분이요 또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조정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가장 중심 핵을 주관하실 수 있는 절대 하나님을 바로 깨닫고 믿는 신앙을 가집시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왕의 마음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이 다 하나님의 관심사요 그가 뜻하시면 원하시는 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의 마음을 감동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마음도 감동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내의 마음도 감동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어머니의 마음도 감동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까지도 감동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더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에 감동된 마음을 가진, 그래서 하나님에게 쓰임 받는 귀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포기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인간의 마음을 감동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의 중심에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번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인간의 외모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즉 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잠언 20장 27절에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깊은 뜻이 인간의 마음 속을 밝히 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보시는 하나님의 표준에 어긋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로 가꾸어가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기사 중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부분은 많은 신앙인들에게 큰 감동과 충격을 주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잡아 바치려고 하다가 칼을 대기 직전에 행동을 멈추었으니 아직 바친 것은 아닙니다. 이삭도 물론 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가 이미 바쳤다고 하셨습니다.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보시는 여호와께서는 아마 사흘 전부터 당신의 종 아브라함의 마음이 새카맣게 타서 재로 되어버렸음을 아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학생이 어느 날 학교에 왔는데, 그의 입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입이 퉁퉁 부었느냐고 물었습니다. 학생은 '이 놈의 입이 실수를 해서 큰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주먹으로 사정없이 쥐어박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생은 '이 사람아, 그 입이 무슨 죄가 있나? 심부름꾼에 불과한데 쥐어박으려면 자네 마음을 쥐어박아야지'라고 타일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외적인 행동의 원칙과 충동이 마음에서 울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마음이 되어 선한 것을 추구하고 선한 충동을 가지고 선하게 살려면 선한 마음을 가지도록 다듬어 져야 합니다. 어떤 분이 우리의 마음은 마치 물웅덩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웅덩이에 더러운 물이 들어오느냐 깨끗한 물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그 웅덩이 물 전체가 더러워지기도 하고 깨끗해지기도 합니다. 음탕한 영화나 자꾸 보고 더러운 소설이나 자꾸 읽고 이상한 이야기나 자꾸 듣는다면 그 마음이 고상해 지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웅덩이에 더러운 물이 자꾸 들어오는데 그 웅덩이가 깨끗해질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도 더러운 것을 보고 듣고 말하면 결코 깨끗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경건한 삶에 대한 욕구, 좋은 음악이나 글들을 읽고 배우려는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더욱 바로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평생을 누워 산 뇌성마비 환자였던 미즈노 겐죠씨가 이런 시를 썼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말씀해 주세요
한 마디 말씀만으로 만족합니다.
나의 심령은
하도 작기에
많이 받으면
넘쳐 버릴까 봐
그런 황송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자신의 주장이나 세상의 흐름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감동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을 때만 기쁨이 있고 충만함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스탠리 존스도 '마음은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어떤 사람은 대궐 같은 집에 살면서도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면서도 기쁨과 감사에 넘쳐 살아갑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삶을 더욱 감사하게 하는 마음이 되도록 자신의 힘으로 날개를 팔락거리며 날아가는 작은 새들의 노력 같은 삶이 되지 말고 상승하는 기류에 자신을 맡기고 날개를 퍼득이지 않고도 유유히 하늘로 날아 오르는 독수리와 같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믿음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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