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로 옷 입는 생활 2001-12-28 16:48:49 read : 1087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로마 13:11-14
일시: 12/02/2001(주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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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待臨節) 첫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늘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며 살지만, 특히 이 대림 절기는 주님의 오심(성탄)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에 우리는, "왜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 "과연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하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고통 많은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 즉 성육신(成肉身)은 신비이며, 이것이야말로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모른 체 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아픔에 깊이 참여하실 뿐만 아니라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시며, 항상 우리를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죄를 씻기시며, 우리들 하나 하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의 차원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유명한 교부(敎父) 어거스틴이 회심(回心)한 말씀입니다. 어거스틴은 죄와 방탕으로 얼룩진 삶을 살면서,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마음속에 깊은 슬픔이 솟구쳐 올라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집어들고 읽으라. 집어들고 읽으라"는 목소리를 그가 들었습니다. 그는 눈물이 뒤범벅이 된 채로 일어나서 마침 펼쳐있던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는 이 구절 외에 더 이상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방탕하고 죄된 생활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가 가까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11절에서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 보다 가까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종말이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종말이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세상의 종말을 뜻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세(末世)라고 말합니다. 자연 환경의 파괴나 식량 위기나 심지어는 물 부족 사태, 또한 전쟁과 테러의 발생, 인간의 극심한 도덕적 타락 현상 등을 목격하면서 "세상 종말이 가까워 왔다"고 얘기합니다. 맞는 말처럼 여겨집니다. 이것을 바로 본문에선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 온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종말이란 개인의 종말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걸 생각하면, 어떤 때는 희망을 가졌다가도 맥이 탁 빠지는 것을 느낄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죽음은 각자의 운명입니다. 유명한 시인 릴케가 "주여, 나에게 고유한 죽음, 큰 죽음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는데, 이것은 참으로 의미 있게 살다 이 세상살이를 마감하고 싶다는 기도입니다. 무언가를 많이 이루려고 잔뜩 계획했다가도 생사(生死)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제 너의 삶은 여기서 끝이다"라고 선언하시면, 우리는 금방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리 세상이 지금 험악하고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세상 종말이 왔다고, 말세(末世)가 되었다고 절망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 그렇게 단언(斷言)할 수도 없습니다. 하여튼, 본문은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이렇게 하라"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1. 늘 깨어 있는 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11절에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때'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죄의 잠에서 깰 때'입니다. '육신의 안일의 잠에서 깰 때'입니다. '게으름과 태만의 잠에서 깰 때'입니다. '영적 사망의 잠에서 깨어날 때'입니다(매튜 헨리). 항상 그 시대에는 선각자(先覺者)들이 있었습니다. 선각자란 먼저 깬 사람입니다. 요즘 이 시대는 옛날 그 어떤 시대보다 더 어둡고 혼탁한 시대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도 이처럼 암울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처럼 어둡고 답답하고 방향을 알 수 없는 시대에도 먼저 깨어 있는 이들이 늘 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사람들의 혼을 하나님은 깨우셨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늘 깨어 있는 생활이란 어떤 것입니까?
먼저, 이것은 '영혼의 문제, 내면의 문제'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으라는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영혼의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들 눈에 보이는 세계,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들에게 강의를 할 때마다, 목회(牧會)가 무엇인지 얘기하곤 합니다. 목회란 "영혼을 돌보는 것"(cura animarum, care of souls)임을 강조합니다. 저의 책『한국 교회 영적 성장을 위한 융의 분석 심리학』을 저의 지도교수였던 Boris Matthews 박사에게 보냈더니 미국에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제 책의 참고 문헌을 본 후에 저에게 "You are Jungian, Christian, and spiritual worker. 'Cura animarum!' 'your first love'"라고 써 보냈습니다. 제가 정말 아주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영혼의 돌봄"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를 설교하는 사람이나, 심방하는 사람쯤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입니다. 설교를 하든, 심방을 하든, 상담을 하든, 교회 행정을 보든, 모든 일이 다 '영혼의 돌봄'이라는 주제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영혼의 의사'(physician of souls)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물질적인 것 모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혼의 문제, 내면 세계에 더욱 관심을 갖고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우선적으로 쏟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종말의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서 회개할 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못됐다고 생각되면, 지금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이게 회개입니다. 또,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명심해서 들어야 합니다. 이것저것 무엇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혼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보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관심 가져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사는 것이라고 하신 겁니다. 바로 영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는 말은 "지금은 어두움의 일(죄)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을 때"라는 말입니다.
12절에 보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했습니다. 우선,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아주 정확하게 우리에게 삶의 지침을 준 것입니다. 어둠의 행실이 무엇인지는 13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호사한 연회와 술 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말라." 이런 것들이 어둠에 속한 행실이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어둠의 자식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둠의 자식'을 요한 복음 17:12에서는 '멸망의 자식'이라고 했고, 베드로후서 2:14에는 '저주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3:10에서는 '마귀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 각자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혹시 멸망 받을 일, 저주받을 일, 마귀가 좋아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는지 철저하게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만에 하나라도 연관되어 있다면 즉시 거기서 떠나야 합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 주님이 부르실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와 기한은 하늘 아버지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어두움의 일을 벗고,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하라고 한 것입니다.
며칠 전에 제 친구 목사가 쪽지 하나를 저에게 보냈습니다. 거기에는 아주 유익한 글들이 적혀있었는데, 새 사람 운동 본부에서 만든 삶의 원칙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건강 생활>을 하려면 다음 여섯 가지를 실천하라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① 밝고 명랑하게 살기
② 스스로 감동 창출(創出)하기
③ 매일 일만 걸음 걷기
④ 하루 한끼는 배고팠다 먹기
⑤ 하루 한 번 땀 흘리기
⑥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기
일리가 있는 제안입니다. 특히 여기서 여섯 번째,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기'는 분노(어두운 생각)를 다 버리자는 것인데, 이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밝고 명랑하게 살라'는 제안도 실천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꼭 그대로 해 보십시오.
2.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고 하는 뜻은 무엇일까요? 옷은 그 사람의 신분(身分)과 품격(品格)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지난 한 주간 씨름을 했습니다. 그 때 이 말씀은 저에게 두 가지 의미로 강하게 다가 왔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전하려고 합니다.
먼저, 성실하고 충성된 생활,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7장에 보면, 하나냐라는 사람을 가리켜 충성되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런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그리스도인과 교인을 구분해야 된다는 말들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사람들이고, 교인은 그저 교회 왔다갔다하는 사람―그가 교회의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다"하면, 우선 성실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22에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誠實)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실'이란 주인에 대한 종의 마땅한 자세를 가리킵니다. 여러분은 다 주님의 종이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의 종'이라고 하는 말이 목회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한국 교회에서는 통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주의 종입니다. 종은 성실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한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쓰십니다. 성실하지 못하면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성실한 사람을 들라면 <요셉>을 들고 싶습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억울한 일도 당했습니다.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성실한 사람이었기에 그를 하나님이 큰 일꾼으로 쓰신 것을 여러분이 다 아실 겁니다. 일자리가 없다고 사람들이 불평합니다. 물론 사람이 많다보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어떤 일을 맡기려고 할 때에 쓸 만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정말 신뢰가 가는 성실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성실한 사람은 쓰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충성(忠誠)된 사람을 얘기했는데, 성경에는 충성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구약에서 가장 충성된 사람을 들자면 저는 <모세>를 들고 싶습니다. 히브리서 3:5에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忠誠)하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 아버지께 충성된 분이셨습니다. 죽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 히브리서 3:6에 보면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2에는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2:10에는 환난 받을 것을 말씀하고 나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변함 없이 충성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둘째로,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빛 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빛이라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빛을 받아서 사는 것입니다. 그때 인생을 정말 의미 있게, 신실하게 살 수 있고, 어두움 속에서 헤매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생활이야말로 가장 복된 삶입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귀한 예물을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을 따라 왔다고 했습니다. 그 때 밝은 별이 아기 예수가 태어나신 곳으로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여기서 밝고 귀한 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2:3에 보면,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되기를 소원하며 삽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저는 새벽기도 올 때마다 하늘을 쳐다봅니다. 새벽 별이 유난히 밝은 것을 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새벽 별 되신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하셨으며,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하셨습니다.
지난 수요일, 안산 남지방 교역자 부부세미나 강사로 갔는데 지하철을 타고 내린 역 이름이 '상록수(常綠樹) 역'이었습니다. 그 역에는 심훈의 소설『상록수』의 실제 주인공 최 용신 선생에 관한 내용이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안산시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최용신 선생은 감리교 여 전도사로, 지금 안산 남지방에 속한 샘골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농촌 운동을 통해 무지한 마을 사람들의 계몽 교육을 실시했고 마을 아이들을 모아 성경과 한글을 가르쳤으며, 새로운 영농 방법을 지도했고, 학생·청년층을 대상으로 기독교적 신앙과 민족정신을 불어넣었고, 농촌 위생과 건강법 등을 가르치는 일에도 혼신을 다했던 분입니다. 5년 동안에 초인적인 봉사로 인해 건강을 잃고, 극심한 장 중첩증에 시달리다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26세의 아까운 나이로 별세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묘가 샘골교회 옆에 조성된 공원에 지금도 있습니다. 1939년에 쓰여진 『최용신 소전』(류달영 작)과 월간잡지『신가정』(1935년 5월호)에 기초하여 쓰여진 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실제 선생의 삶은 잘 알려진 소설 속의 채 영신 보다 훨씬 숭고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선생은 오 천년의 우리 역사상 일찍이 한번도 없었던 나라의 이름마저 없어져 버린 가장 암울했던 일제 강점의 시기에 온 몸을 불살라 이 땅위에 희생과 봉사의 정신과 참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계몽정신을 선포하고 떠나셨습니다. 순결한 전 생애를 민족적 사명과 이상의 제단 위에 온전히 바치고 가셨습니다. 비록 육신은 잠들었으나 선생의 순수한 사랑과 고귀한 희생, 계몽의 횃불은 국민의 가슴속에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로 승화되었습니다. '상록수 정신'으로 역사의 고난을 극복해 가는 협동과 단결, 개척의 민족정신을 영원히 푸르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분이 26세의 꽃다운 나이로 빨리 가셨지만, 그분은 지금도 우리 가슴에 빛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 성도들은 "어두운 세상에 등불을 밝히는 교회가 되자"는 표어를 가지고 살았고 이제 한해를 거의 마감하고 있습니다. 자랑스런 최 용신 선생의 후예로서 우리도 있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며 삽시다. 이것이 그리스도 옷 입은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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