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온통 휩싸일 때 2001-12-28 16:47:55 read : 1114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시편 56편
일시: 11/25/2001(주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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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케터링(Memorial Sloan-Kettering) 암 센터가 10억 분의 1m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나노기술'을 암 치료에 적용, 백혈병 등 6종류의 암에서 뚜렷한 효능을 확인했다고 과학잡지 사이언스 최신호(11월16일자)가 전했습니다. '나노제너레이터'(nanogenerator)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항체에 방사성 원자인 악티늄-225를 결합시킨 것으로, 혈관 속을 흐르다가 암세포를 찾아 공격합니다. 원리는 항체가 암세포를 찾아가 달라붙거나 암세포 속으로 침투하면 방사성 원소가 높은 에너지의 알파(α) 입자를 방출해 암세포를 죽인다고 합니다. 연구팀을 이끈 데이비드 셰인버그(Scheinberg) 박사는 "알파 입자들은 세포에게는 치명적이지만 확산 범위가 좁기 때문에 정상세포는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쥐에 백혈병·유방암·전립선암 등을 주입한 뒤, 이 나노 발전기를 시험한 결과 암이 완전히 소멸됐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내년에 인체 임상(臨床) 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랍니다.
이런 희망적인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어도, 암은 아직 정복되지 않은 채, 우리 현대인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지난해에만 새로 발생한 암 환자가 1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가장 많은 암은 위암(胃癌)이고,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암은 췌장암(膵臟癌)이라고 합니다. 암에 대한 공포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여러 가지 공포증(恐怖症)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광장 공포증: 넓은 장소뿐만 아니라, 혼자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여행을 간다든지, 비행기를 타는데 대한 다양합니다. 이런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여, 듬직한 보호자가 옆에 있으면 전혀 공포나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 공포증: 낯선 사람들이나, 평가를 받는 타인들 앞에 서는데 대해 공포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 공포증 중에는 대인(對人) 공포증이 있습니다.
이 이외에도 특수한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국한된 공포증을 가지고 무서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포증의 대상으로는 특정 동물(예를 들어 고양이), 높은 곳, 어둠, 천둥, 비행, 폐쇄된 공간, 공중 변소에서의 배뇨 또는 배변, 치과의 방문, 피나 상처를 목격하는 것, 주사 받는 것, 시체나 질병에 대한 노출 등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에이즈, 시험, 방사능, 탄저균, 성병, 공해 등이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그 내면에 무언가 불안(不安)이 깊이 깔려있는 것인데, 정신 분석 이론에 의하면, 불안이란 해결되지 않은 무의식적(無意識的) 갈등이 표현된 증상이라고 봅니다.
이런 병적인 두려움이나 공포, 불안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러 가지로 인해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에 싸여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에 빠져 있으면 무엇 하나 명쾌(明快)하게 좋은 것, 즐거운 것이 없을 것이고, 사는 것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 것입니다. 두려움에 휩싸일 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고 했습니다. 11절에서 다시 시인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 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두려워하는 마음이 드는 날에는 오직 주님을 의지하여 그 두려움을 극복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할 때 다윗은 심한 곤경에 처해서 깊은 두려움의 수렁에 빠져있을 때였습니다. 이 시의 제목은 영장으로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말은 '멀리 있는 침묵의 비둘기'라는 뜻인데, 바로 다윗을 가리킵니다. 이 때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에게 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어떤 사람이나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두려움에서 건져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큰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가 의지할 분은 주님이십니다.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를 의지하면 그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주님을 굳게 의지할 때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고후 4:8-9)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것은 "주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5-26)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시편 시인은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시 69:17)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기도를 드릴 때, 응답 받기를 바랍니다.
2.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하며 사정을 아뢰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計數) 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대적에게 쫓기는 중에 흘린 모든 눈물을 병에 담으시라는 것입니다. 즉 그의 모든 고난을 하나님께서 헤아려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 구절대로 로마의 폭군 네로가 그대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슬픈 일이 있으면 네로는 "눈물단지를 가져와라"고 해서 눈물을 짜서 병에 담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전혀 격에 어울리지 않는 우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곤 하셨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아버지께 아뢰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두려움이 엄습할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조용히 주께 엎드려,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뢰며 기도합시다.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 사함을 너 받으라(1절)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네 마음을 쏟아 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후렴)
빌립보 4:6-7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삶 속으로 밀려들 때 기도하고 간구 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讚頌)하올지라"고 했습니다. 10절을『표준새번역』으로 보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만 찬양합니다. 나는 주의 말씀만을 찬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약속의 말씀을 묵상(默想)할 때,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많이 주셨습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 보면,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굳세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도와주신다고 했습니다. 붙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도와주고 붙들어줘도 힘이 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붙들어주시고, 함께 하신다고 하셨으니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놀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또,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이 얼마나 든든한 말씀이 아닙니까! 이런 약속의 말씀으로 성경은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믿음으로 나갈 때, 두려움이 다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할 때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기네로서는 받아 들일수도 실천할 수도 없는 부당한 관습을 선전하고 있다고 고소를 하자, 치안관들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쳤습니다. 그리고 깊은 감옥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단단히 채웠습니다. 한 밤중에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찬미(讚美)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고, 감옥의 터전이 흔들리고, 문들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습니다. 우리도 깊은 고난과 고독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면(드높이면), 우리를 꼭꼭 묶고 있던 모든 어두움(두려움과 불안)의 족쇄가 풀리는 것입니다.
또, 여리고 성(城)이 어떻게 무너졌다고 했습니까?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고, 그 나팔 소리를 듣고서 백성이 일제히 큰소리를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수 6:20)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감람산으로 가면서 예수님 일행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마 26:30)고 했습니다. 이처럼 찬양은 힘이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도 종교 개혁을 하면서 죽음의 위협을 수 없이 당했습니다. 그때 그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고 찬송을 부르며 나아갔습니다. 그 때 마귀가 물러가고, 온갖 두려움이 사라져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두려움이 엄습할 때 주님을 힘차게 찬송합시다. 그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4. 주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요일 4:18에 보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바로 주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바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1절)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 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2절)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후렴)
그러면, 주안에 거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무엇을 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에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시 46:10)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을 잠깐 멈추라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을 잠깐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교부들은 '거룩한 여가'(otium sanctum)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내재(內在)하시는 그리스도를 숨 낮추어 묵상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내적(內的) 친교(親交)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바쁜 삶 가운데서도 진정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케노틱 묵상'(kenotic meditation)이 필요합니다(캘빈 밀러). 이것은 빌립보서 2:5-8에 나오는 자신을 비우신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셔드리기 위해 나의 걱정, 근심, 두려움에 쌓인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하루 10분이라도 이런 나를 텅텅 비우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나를 비우고 나면, 비로소 그리스도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나의 전 존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거의 죽게되었을 때, 예언자 이사야가 주님의 말씀을 그에게 전합니다. "네게 죽게되었으니, 너희 집안 모든 일을 정리하여라. 네가 다시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이럴 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히스기야는 이런 말을 듣자 그의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흐느껴 울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 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의 목숨을 15년이나 더 연장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에서 벗어나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주께서 저를 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금을 뜯으며,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사는 날 동안, 우리가 주의 성전에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깊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 부른 노래입니다. 그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주시게 될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자신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서약(誓約)한 대로 하나님께 <감사(感謝)의 제사(祭祀)>를 드리겠다(12절)는 것입니다.
다윗은 13절에서 감사제(感謝祭)를 드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생명을 죽음에서 건져 주셨기에, 그리고 <생명의 빛>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도록 붙들어 주셨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오늘은 교회력(敎會曆)으로는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 왕 축일(祝日)>입니다. 만왕(萬王)의 왕(王) 되신 우리 그리스도께서 온갖 죄와 고통과 두려움에서 우리를 건져주셨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께 감사하며, 평생 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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