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더 큰 은혜를 받으려면(2) 2001-12-28 16:36:25 read : 1126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야고보 4:6-8
일시: 10/14/2001(주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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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근본적으로 <자기 존재(存在)의 근원(根源)>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分離되면), 결국 삶의 무의미와 절망, 불안과 공포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이런 상태를 갈라디아 5장 4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으로 지음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영적(靈的)인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영적(靈的)인 존재라는 것은,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 친밀(親密)하고도 인격적(人格的)인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주 하나님과 떨어져서, 아무 관계없이 사는 것은 죄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분리된 것 그 자체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은 매우 약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요즘 인간이 매우 약한 존재라는 걸 요즘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전쟁과 테러의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특히, 테러로 인한 불안 심리가 온 세계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탄저병으로 몇 명이 죽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자, 테러 범들이 탄저병균을 생물무기로 이용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탄저병균은 사람에게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 동물의 전염병이며, 또 사람이 감염되었다고 해도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전염되는 일은 거의 없답니다. 탄저병균을 흡입하면, 초기증세가 감기와 비슷하지만, 진행이 빨라서 환자는 심한 호흡곤란과 함께 쇼크(shock) 상태에 빠지게 되고, 결국 며칠 안에 죽는다고 합니다. 탄저병균은 폭탄이나 미사일에 넣어 사용할 수 있으나 테러리스트들은 탄전병균이 든 가루를 우편으로 보낸다든지, 통풍구에 투입하는 방법으로 퍼뜨릴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이런 불안한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할 수 없게 된 상황이 되었기에, 더 더욱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주님의 은혜가운데 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려면 될 수 있는 대로 우리 생활을 단순화(單純化)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다 하면서는, 정말 중요한 것을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한정(限定)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이 베푸시는 더 큰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봅시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합시다.
8절에 보면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聖潔)케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은혜를 받으려면 손도 깨끗이 하고, 마음도 깨끗이 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깨끗이 한다는 것은 욕심(慾心)을 버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5-26절에 보면,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방종)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소경 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음속에 있는 탐욕과 방종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사실 욕심이 문제입니다. 욕심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갈 5:24)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는 아직도 욕심(慾心)이 꿈틀대고 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는 8년만에 여의도 만한 쓰레기 산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서울, 경기, 인천만 해도 연간 트럭으로 60만∼100백만 대 분의 쓰레기가 쌓인다고 합니다. 지난 8년 간 쌓인 쓰레기가 서울 여의도 면적의 1.37배이며, 높이가 40m에 이르는 쓰레기 산이 생겼다고 합니다. 수도권 쓰레기 매립 지는 모두 592만평이나 되며, 다섯 공구의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기반 공사에만 1조원이 넘는 돈이 든다고 합니다. 이 쓰레기 산에서 엄청난 악취가 나는데, 영하의 추위에서도 구토가 날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쓰레기는 바로 인간의 탐욕의 결과로 쌓이는 것입니다. 특히 음식 쓰레기 문제는 우리 나라에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접시에 묻은 소스까지 다 빵으로 닦아서 먹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음식 쓰레기는 지나친 음식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에, 얼마든지 줄일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말씀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하면 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건축업을 하는 분이 있으면 설계도대로 철저하게 양심적으로 공사하십시오. 철근을 몇 mm짜리 몇 개를 넣어야 한다고 하면, 그대로 정직하게 하십시오. 또 여러분 중에 식당을 하는 분이 있으면 내 식구에게 먹이는 것처럼 깨끗하게 음식을 만들고, 그릇을 잘 소독하고, 손님을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겠다는 생각,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딤전 6:9)라고 하신 말씀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손을 깨끗이 하라. 마음을 성결케 하라" 고 했습니다. 그래야 더 큰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큰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윌리엄 코우퍼(William Cowper)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 우연히 성경을 읽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믿음의 눈이 뜨여졌고,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을 깨닫고 기쁨을 되찾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믿음을 키워갔습니다. 코우퍼 씨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애창(愛唱)되는 훌륭한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샘물과 같은 보혈은>(Cleansing Fountain, 190장)입니다. 그가 처음 작시한 내용을 그대로 직역한 것이 있어 소개합니다.
1. 임마누엘의 몸에서 흘러나온 보혈의 샘물이 있네
그곳에 뛰어든 죄인은 모든 더러운 죄를 씻음 받는 도다.
모든 죄 씻음 받네 모든 죄 씻음 받네
그곳에 뛰어든 모든 죄인은 모든 죄 씻음 받네
2. 죽어가던 강도 이 샘 발견하고 기뻐했네
저 강도 같이 악하던 나 또한 모든 죄 씻음 받았네
내 모든 죄 씻음 받았네 내 모든 죄 씻음 받았네
저 강도 같은 나 또한 모든 죄 씻음 받았네
3. 믿음으로 주님의 피가 넘쳐흐르는 시내를 보았다네
구속의 사랑이 나의 찬송제목 되었으니 살 동안 늘 부르겠네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구속의 사랑이 찬송제목 되었으니 늘 찬송하겠네
우리 모두, 주님의 거룩한 보혈로 죄 씻음 받아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믿읍시다. 이제 이걸 깨닫고, 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합시다. 그 때 날마다 더 큰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합시다.
본문 8절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앞의 7절에서 말씀한 "악마를 물리치라. 그러면 악마는 달아날 것이다"는 말씀과 대비되는 말씀입니다.
지난 수요일 우리 교회에서는 <아나바다> 장터를 열었습니다. 튀김도 만들고, 부치기도 하고, 장터 국수도 팔고, 여러 가지 음식을 가지고 아주 풍요한 잔치를 벌렸습니다. 음식 냄새가 교회 로비에 가득했습니다. 모두들 신나 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여기 저기서 음식을 사서 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그 날 교회 마당에서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새우젓을 팔고 있었습니다. 온통 옷에 새우젓 국물이 밴 것 같았습니다. 새우젓을 판 분들에게는 새우젓 냄새가 한동안 났을 것입니다. 또 튀김이나 부치기를 만든 분들도 냄새가 옷에서 났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가까이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까이 하는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친구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기에 친구를 골라 사귀어야 합니다.
이번 미국 세계 무역센터 동시 다발 테러의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44세)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실력자라고 알려졌습니다. 그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소위 그들이 말하는 지하드(聖戰) 전사(戰士)들은 12세 정도부터 철저한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하드는 이슬람인의 의무요, 신앙 행위라고 합니다.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슬람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그들은 투쟁을 하고 있는데, 때로는 엄청난 폭력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조직에 한번 빠지면 그 누구도 여기서 헤어나올 수 없으며, 이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다보면 자신도 그들과 같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즘은 볼 것도 많고, 놀러 갈 곳도 많고, 사람들의 흥미와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것이 많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것들이 다 얼마 안 있으면 시들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까?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진정 만족케 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우리는 그분아래서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지난 주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눈길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떤 것이나, 혹은 그 어떤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면, 그것 혹은 그 사람에게 여러분의 시선(視線)을 돌릴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존재와 가까이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눈길로 보시듯이, 우리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눈길을 주님께 돌리는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 시편 말씀 중에 123편은「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여기서 순례자는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 내가 눈을 들어 주님을 우러러봅니다. 상전의 손을 살피는 종의 눈처럼, 여주인의 손을 살피는 몸종의 눈처럼, 우리의 눈도 주께서 우리에게 자비(慈悲)를 베푸시길 원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바라봅니다."(123:2) 이 시(詩)는 너무나 아름다운 시입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저는, 주님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분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하는 순례자의 마음을 강하게 느끼곤 합니다. 또 신약성경 히브리서 12장 2절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는 말씀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당신의 따사로운 시선을 우리에게 보내고 계십니다. 이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시선을 느끼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한번도 당신의 눈길을 우리에게서 떼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를 감시(監視)하거나 판단(判斷)하거나, 결점(缺點)을 끄집어내려고 쳐다보시는 게 아니라, 따뜻한 사랑의 눈길을 보내시는 겁니다. 이제 그 주님의 눈을 바라보자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를 따뜻한 눈길로 보시듯이, 우리도 주님께 따사로운 눈길을 보내자는 겁니다. 사랑의 눈길로 주님을 바라봅시다. 이것이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시선을 주님께 보내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게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이 언제나 우리 앞에 계신데, 어찌 그분에게 우리의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이 시간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 딸들아. 언제나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너희가 원하는 모든 일을 하면서 기도하여라. 읽을 때도, 일할 때도, 걸을 때도, 먹을 때도, 말할 때도 늘 나를 눈앞에 그리며 끊임없이 나에게 눈길을 보내며 너희가 할 수 있는 대로 나에게 말을 하여라. 너의 눈길을 나에게 보내어라."
기도란 "나의 사랑의 시선을 주님께 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계속해서 따뜻한 시선을 지금도 보내고 계십니다. 내가 주님께 시선을 보내자마자, 주님의 눈과 내 눈이 부딪쳐서 스파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응답이요, 하나님의 역사(役事)입니다. 기도는 역사 하는 힘(큰 효력)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役事)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일간신문에 매우 흥미 있는 기사가 났습니다. "불임여성 치료, 기도도 효과"라는 제목의 기사(2001. 10. 04)였습니다.
불임 치료 시 환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기도를 해도 치료효과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한국과 미국 공동연구진이 내놓았다고 뉴욕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포천 중문의대 차 광렬 학원장(컬럼비아의대 교수)과 로저리오 A 로보(Rogerio A Lobo) 컬럼비아 의대 산부인과 과장은 생식의학 전문지 ‘저널 오브 리프로덕티브 헬스(Journal of Reproductive Health)’ 최근호에 이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1998~99년 서울 차병원에서 불임치료를 받은 환자 199명의 사진을 환자들이 실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캐나다·호주에 있는 각기 다른 기독교 종파 신자들에게 주고 이들이 임신에 성공하도록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한 뒤 기도를 해주는 사람이 없는 환자그룹과 임신성공률을 비교했다. 그 결과 환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기도를 해준 불임치료 여성들의 임신성공률이 기도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여성들보다 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연구자인 로보 박사는“연구결과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이를 발표해야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며 “하지만 두 그룹 사이의 임신 율 차이는 너무나 컸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도 우리가 기도할 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생각하며,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시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나에게 사랑의 눈길을 보내다오." 정말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분에게 사랑의 시선을 보내십시오.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그 때 주님의 사랑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이고, 더 큰 은혜를 힘입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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