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두운 세상에 등불을 밝히는 교회(4): 깨달음 2001-12-28 13:42:16 read : 1169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사야 1:2-10
일시: 02/11/2001(주일 낮)
-----------------
제 1차 성지순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는 10여 일 간 소아시아 일곱 교회와 고린도 교회의 흔적을 살펴보았습니다. 소아시아는 지금의 터키 땅인데, 우리가 신약 성경에서 읽는 바울과 요한의 행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순례의 길을 따라 가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감사한 것은 연세가 70이 넘으신 어른들도 꽤 계셨는데 저보다도 오히려 음식을 잘 드시고, 다리 아프다는 말씀도 전혀 하지 않으셔서 편안하게 여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심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옛 그리스도인들이 제대로 된 믿음을 지키지 못했을 때 교회가 다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터키 제국에게 넘어감으로써 결국 그 아름답고 웅장하던 성 소피아 교회가 지금은 다 망가져 버린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회교도들이 들어와서 그 교회를 완전히 망가뜨려 놓은 현장을 우리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십자가를 그 교회 곳곳에 새겨 놓았는데 회교도들이 그 십자가를 다 회칠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망가뜨려 놓았고, 그 교회를 회교 사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신앙을 제대로 우리가 지키지 못할 때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어두운 세상에 등불을 밝히는 교회가 되자"는 표어를 가지고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은 다만 한 해만 할 것이 아니라 계속 해 나가야 할 일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어디 하나 제대로 된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 깜깜하고 혼돈된 세상입니다. 이 세상의 희망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땅의 교회가 살아 있을 때 이 세상 사람들을 혼돈과 어둠에서 건져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깨달음에 대한 말씀을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먼저 살펴봅시다.
1.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얼마 전 간증 설교로 은혜를 끼쳐 주신 이 영덕 장로님은 어느 날 성찬을 받다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또 얼마나 교만한지를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그후로 겸손한 자세를 갖고 주님을 의지하여 오늘의 장로님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저는 사도 바울이 정말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음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지식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가 당시 로마 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가 좋은 가문 출신이어서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전적으로 주님 앞에서 부정하고 주님만 따라갔던 주님의 종(노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학문, 출신 배경, 특권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난 후 "나는 죄인 중에 괴수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깨달음이 없이는 결코 겸손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도 없습니다.
본문 3절에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고 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을 두고 한탄한 것입니다. 특히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그 몸이 병들고, 마음이 피곤하고,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맞은 흔적밖에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를 향해 주님은,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사 1:18-19)이라고 하십니다.
이번에 천신만고 끝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라이프 스토리가 1월 호『신동아』에 난 것을 읽었습니다. 거기에는 "돌아온 탕자 세계 정상에 오르다"라는 제목으로 자세하게 조지 부시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특히 제 눈길을 끈 것은 그가 절제 모르는 술 주정뱅이였다는 것입니다. 부시의 가장 친한 친구인 돈 에반스라는 사람은 그 당시 부시에 대해서 이런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는 절제 할 줄을 몰랐다. 한번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자제력이라고는 없었다." 사람들은 부시의 40대 이전 인생만 가지고서는 그가 정치인으로 성공하리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그에게 주셨습니다. 1985년 여름, 부시는 집안의 오랜 친구이자 정신적인 조언자였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을 만납니다. 부시는 이 때의 일을 "그레이엄 목사님이 내 가슴에 씨를 하나 심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바뀌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특히 그의 부인 로라는 방황하던 부시를 옆에서 끝까지 지켜 주었던 좋은 감리교인 이었기에 그는 원래 소년 시절 장로교인이었으나 감리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부시는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내내 자신의 중간 이름인 Walker의 첫 번째 자인 W를 손가락으로 표시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저는 부시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얻게 됨으로서 승리자(winner)가 되어 백악관으로 걸어 들어(walker) 갔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늘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2.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이번 그리스 여정 중에서 특히 감동 깊었던 것은 소크라테스에 관한 일화였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 시피 그는 위대한 철학자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고 그 당시 사회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던 그리스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던 분입니다. 그는 정말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philosopher)이었습니다. 그가 정치인들의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알라"는 소리를 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이 대단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를 때에 문제가 많이 일어납니다. 만용을 부릴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을 학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인식(self-knowledge)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없고, 또 성숙할 수 도 없습니다. 심리학에서는 각 학파마다 자기 실현을 얘기하는데, 이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는 것(발견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배운 게 많아도 무지한 자입니다. 호세아서에는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4:14)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자신의 모습을 깨달아 가야 합니다.
3.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왜 내가 이 땅에 태어났으며,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내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이것을 빅터 프랑클은 "창조적 가치를 인식"하면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고 표현했습니다. 프랑클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로버트 레슬리는『예수와 의미요법』이라는 책에서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급하게 예수님께 충성을 맹세 한 적도 있고, 나중에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베드로는 상황이 절박해 지면 불안정하게 되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기독교 역사상 그렇게도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레슬리는 베드로가 변화한 것은 그가 맡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요한복음 21장 4-9절에 예수께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자신의 사명(使命)이 주님의 양떼를 돌보는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뭔가 자기 자신의 출세와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고 하다가 무력한 예수님에게 실망을 하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깨닫고 자기 생명까지도 그것을 위해서 받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있는 장로들에게 고별 연설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번에 바울의 선교 여정을 따라가면서 느낀 것은 바울 사도는 이 말 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해야 할 일을 발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할 일을 발견하셨습니까? 세상에 썩어질 권세나 명예, 혹은 물질을 얻기 위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는 구체적인 사명을 여러분이 발견한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복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4.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저절로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호세아 7장 9절에 "백발이 얼룩얼룩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 도다"고 했습니다. 또 이사야 6장 9-10절에 보면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 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 고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고침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은 그 마음이 돌밭이나 가시 떨기와 같은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에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은혜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요, 이런 사람은 "결실 하여 혹 백 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된다"(마태 13:23)고 주님은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열고 사모하며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깨달음으로써 얻는 기쁨(法悅)은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이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깨달으려면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예수께서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열려 성경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누가 24:45). 오, 성령이시여! 나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말씀으로 은혜와 복이 충만한 나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5.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항상 자신을 살피는 생활을 합시다.
시편 시인은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 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편 139:23-24)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늘 자신을 살피며 자세를 가질 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날마다 조용한 시간(quite time)을 가집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 속으로 깊이 침잠할 수 있고, 이것은 명상이나 사색, 혹은 깊은 상념(想念)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10분이라도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건강한 삶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는 생활,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서 들여다보는 생활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고, 영혼이 풍요로워 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날마다 여호와를 찾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편 27편 8절에 보면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찾을 때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아니하실 뿐 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심을 깨닫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