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보아스의 시선 2001-12-26 17:01:57 read : 1031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룻 2:8∼14
어제(12월22일)「중앙일보」 12면에 한 소방관을 인터뷰한 기사가 전면으로 실
렸습니다. 서울 서부소방서 119 구조대원인 올해 설흔다섯인 젊은 소방관인데
쉬지 않고 장애아동 수용시설이나 고아원, 독거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착한 일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이 분은 '119 산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홍제동 주택가 화재 때 소방관들이 아직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을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같은 소방서의 동료 소방관 여섯 명이 순직한 일이 있었
는데 이 소방관은 그 뒤로부터 살아 있는 것이 갑자기 고마워지고 그들의 삶
까지 모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기에
는 삶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뒤에 박봉을 털
어가며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내용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이 기독교인이 아닌가 확인
하려다가 기사 가운데 진화작업이 끝난 다음에 담배를 피어물었다는 내용이 있
어서 그만 두었습니다. 담배를 핀다면 기독교인이 아닐 확률이 높았고, 기독교
인이라면 '그렇게 좋은 일을 하는 교인이면서 담배는 왜 피워?' 실망하기 쉬웠
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소방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느 보험회사에서는 올해를
빛낸 한국인으로 119 구조대를 선정했고 대학생들에게 "어느 직업이 국가적으
로 사회적으로 공헌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사를 하니까 첫째가 소방
공무원, 둘째가 환경미화원, 셋째가 교사, 꼴지는 국회의원이라고 나타났습니다.
그 인터뷰 기사 가운데 소방관의 기도문이 있는데 내용이 좋아서 소개해 드립
니다.
제가 업무에 부름 받을 때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도 언제나 만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어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저의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봐주소서.
이 인터뷰 기사에서 독자들의 가슴을 찌르는 것은 소방관의 이 말입니다.
"아내는 늘, 젊디젊은 사람이 위도 좀 바라보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푸념이지
만, 내 눈엔 자꾸 아래가 보입니다. 나보다 힘겹고 추운 사람들 말입니다"
이 소방관은 아래를 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순직동료
6명 몫의 삶 세상 밝히는데 쓰고파"이고 부제목 가운데 하나가 "아내는 위를
보자지만 밑바닥 삶이 자꾸 눈에 밟혀"입니다.
아래를 보고 산다는 것은 불쌍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에게 깊
은 관심을 갖고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아래를 보며 살아야합니다. 위를 보려면 신앙적인 것의 위를 보세요. '저
분은 나보다 성경을 더 많이 읽는데…, 저 분은 나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는
데… 저 분은 나보다 전도를 더 많이 하는데… 저 분은 나보다 구제를 더 많
이 하는데…' 이렇게 신앙적인 것은 위를 보고, 물질적인 것은 밑을 보세요. 이
것을 거꾸로 하는 분들이 많은데 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꿩 사육장에 가니까 위를 보지 못하도록 눈에 무엇을 가려 놓았습니다. 그 이
유를 들었는데 잊었습니다.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그런 것을 씌우세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보아스도 시선을 아래로 하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베들레헴 사람인데 베들레헴 성읍 밖에 넓은 밭을 가지고 있었습니
다. 보리 추수가 시작되었는데 보아스가 밭에 왔습니다. 보리 추수가 제대로 진
행되고 있나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 먼저 하늘을 보아야 하겠지요. '비가 오면 추수를 할 수 없고 이미 추수
해 놓은 보리들이 썩기 쉬운데 날씨가 어떤가?' 알아보기 위해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일꾼들이 보리를 얼마나 베었나? 올해 수확량이 얼마나 되겠나?'
알아보기 위해 곡식 쌓아 놓은 것을 보아야하겠지요.
구두 수선하는 분은 사람 보다 그 사람의 구두를 보고 양복을 만드는 분은 사
람보다 그 사람이 입은 옷을 먼저 봅니다. 자동차 판매회사 사원은 사람보다
그 사람의 차를 먼저 봅니다. '저 사람의 차가 낡았구나! 저 사람에게 접근하면
자동차를 팔 가능성이 있겠구나!'
6·25 때 저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토목기술자였는데 남
쪽지방에서 공사를 하다가 6·25를 만나 자동적으로 피난한 것이 되었고 나머
지 식구들은 서울에 남아 고생을 했습니다.
서울이 수복된 다음에 아버지가 트럭에 사과를 많이 싣고 오셨는데 그 때 하도
굶주렸던 탓도 있었겠지만 아버지보다 사과에 눈이 더 먼저 갔습니다. 입으로
는 "아버지-"하면서 사과 쪽으로 먼저 달려가던 일이 기억납니다. 배고픈 사람
은 먹을 것을 먼저 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시선을 위로해서 하늘을 보고, 시선을 앞으로 해서 보리 베어
놓은 것 쌓아놓은 것을 먼저 보지 않고 먼저 시선을 밑으로 해서 일꾼들을 보
았습니다. 일꾼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젊은 여인을 발
견하고 호의를 베푸는 것이 오늘 본문이 내용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보아스의 시선이라고 했는데 보아스의 시선은 밑을 보는 시
선입니다. 불쌍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
을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풀이하면서 보아스가 이성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룻에 대해 호
의를 베풀었다고 기록한 책들을 여러 권 보았습니다. 룻이 미인이고 정숙해 보
이는 여인이고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써놓은
책도 있는데 틀린 이야기입니다.
보아스는 나이가 많았습니다. 5절을 보면 룻을 보고 "이는 누구의 소녀냐", '소
녀'라고 했고 8절을 보면 룻에게 "내 딸아 들으라" '딸'이라고 부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3장10절을 보면 룻에게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
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고 한 것을 보아
도 보아스가 나이가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젊은 이성에 대한 충동적 호기
심 같은 것은 벗어났을 나이입니다.
보아스의 인품을 보아도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룻기 2장 20절을
보면 보아스는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는 사
람으로 소문 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에 대해서 대단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보아스가 이성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룻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보
기는 어렵습니다.
보아스가 평범한 유대인이었다면 '웬 이방여인이 내 밭에 들어와 있단 말이냐?
당장 쫓아내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그 여인이 이방 모압에서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
어머니의 고향으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12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네가 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했습니
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이 말을 이렇게 적용해야합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향해서는 "하나님께서 한국에 돈 벌러 온 여러분이 한국에
서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일이 없이 안전하게 일하며 돈을 많이 벌어 돌아가
게 하시고, 여러분이 여기 와 있는 동안 고향에 있는 가족들도 평안하게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신문의 조선족 관계 특집 연재를 보니까 한국에 온 조
선족 동포의 중국에 있는 가정들이 깨지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탈북자들을 향해서는 "허너님께서, 북한에서 살 수가 없어서 목숨을 걸고 탈출
해서 다른 곳에서 떠돌다가 이곳에 온 여러분이 이곳에 잘 적응하며 뿌리를 내
리고 자유를 누리며 편안하게 사시도록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이
곳에서 예수를 믿어 육신의 자유뿐만 아니라 영혼의 자유도 누리게 되기 바랍
니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도 하나님이 잘 보호해 주셔서 통일되는 날 반갑
게 만나게 되기 바랍니다"
저희 교회가 올해는 탈북자들을 위해서 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올해 교회의
일들을 정리할 때 부족하고 아쉬운 점들, 주님께 송구스러운 일들이 여럿 있지
만 통일과 북한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라고 하면서 탈북자 돕는 일을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작년까지는 탈북자 한 가정을 잘 보살피면서 그 가정이
한국에 정착하는 일을 도와주었는데 그 가정이 탈북자들이 집단으로 사는 곳으
로 이사한 다음에는 탈북자 문제에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청년 하나가 개인
적으로 탈북자 교육시설인 하나원을 자주 찾아가서 그들을 돕고 있어서 조금
위로가 됩니다만 교회적으로는 탈북자들을 위해 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남의 밭에 와서 이삭을 줍는 것이 불
쌍해서, 더구나 남편을 잃고 역시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타향인 베들
레헴에 와서 고생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불쌍해서 온정을 베풉니다.
이렇게 시선을 밑으로 해서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서 사랑을 베푼 보아스의 핏
줄을 통해서 예수님이 탄생했습니다.
그 예수님이야말로 온전히 밑을 보는 시선의 소유자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앞을
보고 좌우만 보면서 지내셨다면 예수님, 이 땅에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가 있고 밤이 없고 사망이 없고 애통
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고 천군과 천사들이 시중을
들고, 얼마나 좋습니까?
인간의 몸을 입고 땅에 내려올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선을 밑으로 하셨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저희들을 보았습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를 들으셨습니다. 특히 죄 짐을 벗지
못하고 멸망 길로 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육신 하셨습니다. 낮은 곳
가운데 낮은 곳인 베들레헴, 천여 년 전에 그의 조상 가운데 하나인 보아스가
시선을 밑으로 해서 이방의 젊은 여인에게 사랑을 베푼 바로 그 곳, 그 곳에서
도 낮은 곳인 마구간으로 오셨습니다.
모세도 시선을 밑으로 한 사람이었습니다. 애굽 왕실의 영화에 취하지 않고 노
예생활을 하는 동족을 보았습니다.
슈바이처, 다미엔 신부, 테레사 수녀, 애양원에서 나환자들을 돌보다 공산당에게
순교하신 손양원 목사님, 모두 시선을 밑으로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시각 장애인인 안요한 목사님을 아실 것입니다. 이 분을 사로잡고 있는
말이 "낮은 데로 임하소서"입니다. 낮은 데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있지요.
이 분이 이제 육십을 넘어 쉬기를 원할 때도 되었습니다. 평생을 힘들게 살아
온 장애인의 나이 육십은 비장애인의 칠십, 팔십과 맞먹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낮은 데 가운데에서도 낮은 데 있는 분들, 시각장애
인들 가운데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시각장애인 양로원을 세우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 안요한 목사님이 책임지고 있는 새빛 맹인선교회를 위
해 봉사하고 있는 청년도 있고 시각장애인 양로원 설립도 도운 성도가 있습니
다.
이 분의 이야기를 쓴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책이 1981년에 처음 나왔는
데 작년 11월에 100쇄(刷)를 냈습니다. 원래는 표지를 그저 조금 두터운 종이로
해서 책을 냈는데, 페이퍼 백(Paper Back)이었는데 100쇄를 기념해서 두꺼운
표지로 고급스럽게 꾸며서 나왔습니다. 어린이 판도 냈고 녹음 테이프도 냈습
니다. 어떤 책이 100쇄를 나온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기독교계에서는 처음
이라고 합니다.
시선을 낮은 데로 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감동적입니다.
성도 여러분, 2001년의 성탄절을 보아스의 시선을 하고, 예수님의 시선을 하고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낮은 데를 보며 불쌍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에
게 깊은 관심을 갖고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탄절을 성탄절답게 맞이
하는 아주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국에서는 군의관들을 교육시킬 때, 중상을 입은 부상병들을 치료할 때 먼저
눈을 보도록 훈련을 시킨다고 합니다. 눈을 보면 그 부상병이 어느 정도 부상
을 입었는지 알 수 있고 무엇보다도 그 눈에 담겨 있는 '나 좀 살려주세요!' 하
는 호소를 읽으면 정성을 다 해 치료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눈을 먼저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낮은 데로 할 때 우리는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습
니다.
20대 80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화점에서 20%의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구입한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도 교인의 20%가 교회 봉사의 대부분을 담당한다
고 합니다. 이 20대 80은 성탄절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데 80%의 사람들
은 백화점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유명 가수들의 디너쇼를 즐기는데 치중
하는 동안 20%의 사람들은 성탄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며 소외된 이웃을 돌아
보는 기회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 20대 80은 정확한 숫자는 아닐 것이지만 여하튼 여러분 이 20% 안에 드시
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시선을 밑으로 하고 사는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보아스
는 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먼저 현세의 축복을 얻습니다.
룻기 2장 1절에 보아스를 '유력한 자'라고 했는데 이 말은 부호라는 뜻입니다.
4절을 보세요. 보리 베는 일꾼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
라", 축복의 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축복의 말로 인사를 합니다. 그러니까 일
꾼들이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화답합니다. 참 아름다
운 노사관계입니다.
우리 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가 노사간의 갈등이고 외국의 기업가들이 한국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노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회 오실 때
수지 쪽에서 선경 스매트 공장 앞으로 오는 분들, 몇 달 째 험악한 말이 적혀
있는 깃발들이 꽂혀있고 회사 담에 '근조'(謹弔)라고 써 있는 만장이 길게 붙
어 있는 것을 보면서 오실 것입니다. 그 앞을 오갈 때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그런데 보아스는 이렇게 일꾼들과 이렇게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합니다.
우리는 한국의 노사현장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화답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또 현숙한 여인 룻을 아내로 맞이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룻은 효성이 가득한
여인이지요. 그 마음을 가지고 남편을 잘 섬겼을 것입니다. 보아스의 어머니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공격하기 전에 보낸 두 정탐꾼을 숨겨준 라합입니다. 기
생 출신이지만 믿음이 좋은 어머니와 현숙한 아내 룻, 그 가정이 얼마나 행복
하였을까요?
그 다음에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천여 년 뒤에 인류의 구세주인 예수님이 탄생
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희 교회에 충남 예산이 고향인 분들이 여러분 계신데 예산이 고향인 분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예산은 윤봉
길 의사가 태어난 곳이야!', 그러면 그 밑의 홍성이 고향인 분들은 '홍성에서는
김좌진 장군이 태어났어!', 그런데 보아스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는 예수님이
태어납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의 후손 가운데 다윗이 태어납니다.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부입니다. 룻기 4장
21절과 22절,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그리고 보아스는 예수님의 족보에 오릅니다. 예수님의 족보인 마태복음 1장 가
운데 5절과 6절 앞부분,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하나님은 시선을 밑으로 하는 사람들을 현세에서도 축복하시고 대를 물려가며
축복하십니다. 이런 축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 마지막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성탄절 넉 주일 전부터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리스도는 오셨고, 오시고 있고, 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오셨고, 이천 년 전 베들레헴 마구간에 구세주로 오신 것을 말합
니다. 초림(初臨)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오시고 있고, 말씀과 묵상과 성례전 속에 오늘 나에게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적 강림, 줄여서 현림(現臨)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오실 것, 앞으로 심판주로 오실 것을 말합니다. 재림이라고 부릅니
다.
우리는 대림절에, 초림에 대해 감사하며 기념해야 하며, 현림에 대해 맞아들여
야 하며, 재림에 대해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 대림절을 얼마나 잘 지내고 계십니까?
성탄절은 누구나 잘 알아도 대림절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활절 전에
지키는 사순절은 어느 정도 알아도 성탄절 전에 지켜야 하는 대림절에는 관심
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림절을 잘 지키지 않고 성탄절을 잘 맞이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마세요.
대림절은 좀 숙연하게 보내야합니다. 천주교에서는 대림절 기간에 주일 미사에
서 영광송을 부르지 않습니다. 예전에 서방교회에서는 대림절에도 금식을 하게
했습니다.
대림절에는 강단 장식을 보라색으로 합니다. 사순절에도 보라색을 사용하는데
보라색은 준비, 참회를 나타내는 색입니다.
이제 대림절이 오늘과 내일, 이 이틀만 남아 있고 이틀 뒤는 성탄절인데 이
이틀만이라도 대림절답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보아스처럼, 예수님처럼, 인류의 등불로 기억되고 있는 여러 사람들처럼 시선을
아래로 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애써 도우며 보내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으로 구세군의 자선냄비 앞, 그대로 지나가기 마세요.
요즘은 고속도로 톨게이트 통과할 때 사랑의 동전 모으기 상자가 놓여 있던데
그 앞도 그대로 지나가지 마세요.
교회의 성탄절 예배 헌금은 전액 구제헌금으로 쓰인다는 사실도 기억하시기 바
랍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성탄절 헌금은 전액 구제에, 송구영신 예배 헌금은 전
액 장학금으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탄절 구제 가운데 저희 교회가 이 지역에 들어온 첫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미
화원 위로 잔치는 이제 뿌리를 깊이 내렸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매달 둘째 주일에 교역자와 직원들 생활비를 지급하는데 두
주일 전에 생활비를 받아 먼저 십일조헌금, 건축헌금, 해외선교헌금, 그리고 성
탄절 헌금, 송구영신헌금을 떼어 봉투에 넣어 두었습니다. 수입이 있으면 먼저
헌금할 것부터 따로 떼어놓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는 봉급을 받거
나 수입이 생기면 그 다음 주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 다음날 새벽기도회에 십
일조헌금을 바치는 가정이 여럿 있습니다.
올해 성탄절 설교를 이런 내용으로 준비하면서 오늘 새벽에 성탄절 헌금을 넣
어 둔 봉투를 꺼내 얼마를 더 넣었습니다.
아주 간단하고 초보적인 것, 제가 자주 말씀 드리는 것, 근처에서 외국인 근로
자들 자주 대하는데 그들 향해 손 흔들어 주세요.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2001년의 성탄절은 보아스처럼, 예수님처럼 시선을 밑으로 하여 불우한 이웃
들, 가나한 사람들, 또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며
보내는 가운데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후손들도 복을 받게 하고, 낮은 곳을 보
고 이 땅으로 오신 예수님을 본 받기 위해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고 목
양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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