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상대적입니다.
지금 수험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에게는 자기가 들어가기 원하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제일 행복해 보일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에게는 두말할 것 없습니다,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제일 행복해 보입니다.
어느 대학에서 교수들의 구두를 닦아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연구실을 돌아다
니면서 교수들의 구두를 거두어다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은 다음에 다시 갖다
주곤 합니다. 그런데 늘 밝은 얼굴을 하고 휘파람을 불면서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교수 한 분이 신을 벗어주면서 무심코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무엇이
좋아서 늘 싱글벙글 웃고 다니느냐? 너는 이 다음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 그
러자 소년은 얼굴을 활짝 피면서 "예, 아저씨, 저는 태권도 도장 주인이 되는
것이 꿈이에요. 제가 운동을 좋아하거든요. 태권도 도장을 세우기 위해 지금도
얼마씩 저축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녁에는 태권도 도장에 나가 태권도를 배
우고 있어요. 한 번 보시겠어요?" 하더니 구두를 바닥에 내려놓고 "얏-!"하면서
태권도 폼을 잡더라고 하더랍니다.
교수는 이 소년이 너무나 분명한 꿈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서 무심코 "네가 나
보다 더 행복하다. 아니 너는 이 대학에 드나드는 학생들과 교직원 모두 보다도
행복한 녀석이다"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행복의 기준은 이렇게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말하는 사람입니까?
21절입니다. 고초와 재난을 겪으면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
입니다.
22절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합니다" 할 수 있는 사람, 행복한 사
람입니다.
역시 22절의 뒷부분입니다. "우리가 진멸(殄滅)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살아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입니다.
24절과 25절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구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23절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의 인자와 긍휼을 아침마다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주의 성실이 크시도소이다"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입니
다.
이런 사람은 매일이 행복합니다. 그 행복이 매일매일 쌓입니다.
오래 전에 은행의 예금 종류들 가운데 매일 매일 푼돈을 저축하도록 하는 예금
이 잠깐 있었습니다. 시장에서 하루하루 버는 사람들, 아까 그 구두닦이 소년
같은 사람들의 저축을 유도하기 위해서 만든 저금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예금은 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이자가 아주 높았습니다.
행복을 하루하루 쌓으면 이자가 많습니다. 그 행복이 점점 더 커집니다.
하루의 시작을 짜증과 원망과 불평과 걱정으로 시작하는 것과 아름다운 생각,
감사하는 마음, 기쁨과 찬양, 행복감으로 시작하는 것은 그 결과에 차이가 있습
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재수 없다고 말하면 점점 재수 없게 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점점 더 행복해
집니다.
아침마다 주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함을 발견하는 사람, "주님의 성실함이 큽
니다"라고 말하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의 성실하심 때문에 매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질서를 주관하시는 분이 주님이신데 주님이 성실하지 않으면 지구라는 버스를
음주한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행복은 훈련을 통해서 누릴 수 있습니다. 아침마다 잠에서 깨었을 때 다른
생각이 찾아오면 얼른 쫓아내고 주님의 인자와 긍휼을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성
실이 큼을 발견하는 훈련을 하세요. 처음에는 잘 안됩니다. 그러나 자꾸 훈련하
세요. 그러면 나중에는 저절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습관과 성격과 운명은 바꿀 수 없다고 하는데 사람의 의지와 훈련에 의해 어
느 정도 바꿀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영적인 힘에 의해 이것들을 다스릴 수 있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사실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 한 분이 심장이 좋지 않아서 인공심장박동기(人工心臟博動器)를 달
았습니다. 주변에서 많이 염려했습니다. '저 목사님이 일을 제대로 하실 수 있을
까?' 더구나 그 목사님은 원래 건강이 좋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폐
를 크게 앓은 일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그 이후에도 변함없
이, 아니 그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가족들은 그 비결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주님, 어제 밤
사이에 박동기가 멈춰서 제가 숨을 거둘 수 있었는데 제 생명을 연장시켜 주셔
서 아침을 맞게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감사하면서 아침을 맞이하니까 건강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가운데서
도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아침을 새로운 아침으로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어제와 같은 아침이 아닙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아침마다 새로운
아침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신문을 봅니다. 그저께도 오고 어제도 오고, 매일같이 오는 신
문인데 신문이 왜 기다려집니까?
매일 매일 새로운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문과 같은 아침을 맞
이해야 합니다.
어느 회사 사장님 한 분이 개성이 매우 강했습니다. 이 분은 "사장실이 크고 화
려한 회사일수록 실속이 없는 회사이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방을 아주 검소하
게 꾸몄습니다. "그 건물의 화장실이 깨끗하면 그 건물이 모두 깨끗하다고 보아
도 좋다"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회사 건물을 청소하는 분
은 화장실 청소에 제일 많은 공을 들여야했습니다.
요즘 고속도로 휴게실 운영하는 분들이 같은 생각을 갖게된 것 같습니다.
이 분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묵은 달력 걸어놓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9월 2일인데 만일 어느 사무실에 8월 달력이 걸려 있는 것이 발견되면
심하게 야단을 쳤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달을 주셨는데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않고 받
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큰일을 할 수 없다" 했습니다.
어느 직원이 사장의 그런 성격을 알고서 월말에 퇴근할 때 달력을 한 장 미리
떼어놓았습니다. 사장이 그것을 알고 또 야단을 쳤습니다. '주어진 시간의 마지
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인데 자네는 벼가 익지도 않았는데 낫을 들고 덤
벼들 사람이로군!'
개성이 매우 강하지요. 그런데 그 회사, 아주 잘 됩니다. 요즘과 같은 불경기 가
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실속있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침이 되었는데 어제 저녁의 기분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성도 여러분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시기 바
랍니다.
지금은 9월의 아침입니다. 9월이 새로운 9월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또한 가을의 아침입니다. 이 가을을 새로운 가을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
니다. 목양교회의 올해 가을은 정말 새로운 가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는 것은 예레미야가 지금 심한 슬픔
가운데서도 이런 고백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멸망당했습니다.
왕궁과 집들이 불타고 동족들은 죽거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무엇보다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성경의 이름이 예레미야 애가인데 '예레
미야가 부른 슬픈 노래' 이런 뜻입니다. 조가라고 할 수도 있고 만가(輓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하나 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ffer:
1906. 2. 4.∼1945. 4. 9.) 목사님의 경우입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를 때 교회는 침묵을 지키거나 히
틀러에게 협조했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 잘 한다고 그들은 예수
님을 십자가에 매단 종족이니까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양심적인 목사님들이 주님 앞에 바른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고 고백교회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이 고백교회 운동의 지도자였습니다.
히틀러 암살을 계획했다가 발각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형을 언도 받았습니
다. 이제 사형을 기다리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데 그런 가운데서 이런 시를 남
겼습니다.
하나님, 아침 일찍 주님을 향해 부르옵니다.
나를 도와 기도하게 하시고 생각을 주께 집중할 수 있게 하소서.
나 혼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내가 있는 곳은 어둠이오나
주님 곁에는 빛이 있습니다.
나는 고독하오나 주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십니다.
나는 겁에 질려 있으나 주께는 도움이 있습니다.
나는 불안하오나 그 품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내 말은 신랄하지만 주님께는 인내가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오나 주님은 나의 갈 길을 아시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께서는 나처럼 가난하셨고 비참했으며 체포되었고 버림당하셨습니다.
주께서는 모든 인간의 곤궁을 알고 계시옵니다.
비록 단 한 명의 사람이 내 곁에 없다 하더라도
주께서는 머무르십니다.
나를 잊으시는 일 없이 찾고 찾아 주시옵니다.
내가 주님을 찾아 들어오기를 주께서는 바라고 계시옵니다.
주여, 그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발자취를 따릅니다.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감옥 속에서도 이런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며 옥중생활을 했기 때문에 본회퍼
는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감옥에서 편지를 보
내고 집필하는 자유가 주어졌는데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회퍼의 저작물
들은 대개 이 때 기록된 것들입니다.
1945년 4월 8일, 주일, 본회퍼 목사님이 동료 죄수들이 예배를 인도하고 났을
때 평복 차림의 사내 둘이 와서 본회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사형 집행을 당하
기 위해 끌려나가는 것을 알고서 그는 같이 수암되어 있던 영국군 장교에게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죠. 그러나 나에게는 생의 시작입니다" 라는 말을 남겼습
니다. 그 말 그대로 되어 본회퍼 목사님은 그 다음 날 처형 당했지만 그의 신학
은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지금 현대교회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
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하나님, 아침 일찍 주님을 향해 부르옵니다. 나를 도와 기도
하게 하시고 생각을 주께 집중할 수 있게 하소서. 나 혼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
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나는 겁에 질려 있으나
주께는 도움이 있습니다." 했습니다. 아침에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새벽에 도우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을
때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을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
대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만나도 아침에 내렸습니다. 아침에 이슬이 진 사면
에 있는데 그 이슬이 마른 후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만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침마다 만나를 통해 주의 사랑과 보호와 성실하심을 깨닫
고 광야생활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로우랜드 프로데로(Rowland E. Prothero) 라는 신학자가 쓴 「인생과 시편」이
라는 책에는 로마 시대 지하공동묘지에 숨어살면서 신앙을 지키던 초대교회 성
도들의 생활 모습이 잘 그려져 있는데 그들은 아침이 되면 시 73편을 암송하며
감사를 드렸고 저녁에는 시편 14편을
암송하며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아침에 암송한 시편 73편의 끝 부분을 읽어 드립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73: 25∼28)
이와 비슷한 사례를 우리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6·25 때 포병소위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었던 조창호(趙昌浩) 소위가 50년 가
까이 북한에서 힘들게 살다가 몇 해 전에 탈북을 해서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또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분은 온 가정이 예수를 잘 믿는 집안이었습니다. 6·25 전에 효자동 근처에
살면서 새문안교회에 출석했는데 어머니가 늘 새벽기도에 나가서 자녀들을 위
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 분이 포로가 되어 북한의 탄광에서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새벽이 되면 "아,
이 시간에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겠구나!" 이것을 생각하고 했다고 합니다.
50년을 매일 아침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힘이 솟고, 그 힘을 가지
고 하루를 버티고 일 년을 버티고 50년 가까이 버티다가 드디어 탈북에 성공한
것입니다.
여기 수험생의 어머니들, 자녀들을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수험생 자녀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엇이었습니
까?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가 한 첫 번째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아침의 첫 생각은 그 날 하루를 지배하기 쉽습니다.
아침의 첫 말 한 마디는 그 날 하루의 말들을 지배하기 쉽습니다. 처음에 기분
나쁜 말을 했으면 계속해서 기분 나쁜 말을 하기 쉽고 처음에 감사의 말을 했
으면 계속해서 감사의 말을 하기 쉽습니다..
예레미야와 같은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이 예전에 소풍 가는 날의 아침처럼 설레는 아침이 되기 바랍니다.
결혼식 하는 날의 아침처럼 되기 바랍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의 시를 소개해 드립니다.
문 앞에 이르시어 모든 것들을 빛으로 물들이시는 이여!
나의 주님이시여!
무한한 감사를 드리옵니다.
따사로운 빛으로 그대는 입맞추시니 아침은 즐겁고 낮이 밝아오니이다
머리칼은 바람에 나부끼고 정원의 향기로운 꽃봉오리는 주홍색으로 부풀고
눈인양 나부끼었습니다.
온 누리는 작열하는 씨름판처럼 보이고 파도는 편주 속의 나를 희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축제의 막이 오릅니다. 나는 또다시 작열하고 고귀한
기쁨들을 사 랑하여 가슴에 품었습니다. 모든 환희로움 속에서 부드러움
속에 잠길 때까지
성도 여러분,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아침마다 주님의 인자와 긍휼을 새롭게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아침마다 주의 성실이 큰 것을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그 날이 행복해집니다. 그 날이 행복하면 그 다음날도 행복합니다. 행복은 관성
(慣性) 작용을 합니다.
주일은 한 주간의 아침입니다. 주일을 이렇게 맞이하면 그 주간이 행복합니다.
지금은 9월의 아침입니다. 지금 예레미야가 부른 노래를 부르면 9월이 행복해집
니다.
이 가을을 새로운 가을로 고백해야 합니다. 목양교회의 올해 가을은 정말 새로
운 가을이 되어야합니다.
아침마다 주님의 인자와 긍휼을 새롭게 느끼고 주님의 성실이 크다고 고백해서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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