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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광야 교회
    2001-12-26 16:47:59   read : 949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행 7: 37∼45



    성경에는 교회들의 이름이 여럿 나옵니다. 에베소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빌라델비아교회, 라오디게아교회, 로마교회,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 빌립보교회, 골로새교회, 데살로니가교회…, 성경에 나오는 교회들은 대개 그 교회가 있는 지역의 이름을 따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거의 유일하게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이름을 가진 교회가 하나 등장합니다. 어느 교회입니까?
    오늘의 본문 38절에 나옵니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그렇습니다. 광야 교회입니다.

    광야 교회, 무슨 뜻입니까?

    좁게는 '광야 안에 있는 교회', 이런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향해 가는 도중에 광야생활을 합니다. 이 때 광야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 특히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모인 백성들을 스데반은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광야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본문은 스데반이 순교 직전에 한 최후 설교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모임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임, 이것이 광야 교회입니다.

    그 다음에 넓게는 '광야는 교회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거칠고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넓은 지역을 광야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는 황무한 사막지역, 바위투성이의 사막지역, 수풀 등도 때로는 광야라고 적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해서 고생스러운 곳입니다.

    저는 이번에 성지순례를 하면서 큰 은혜를 받고 많은 것을 깨달았는데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가 광야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 하는 것입니다. 거의 사막입니다. 광야 가운데산이 있기도 하지만 나무는 정말 한 그루도 없습니다. 광야에 풀이라고는 타마리스크라는 이름을 가진 빈약한 모습의 풀이 조금씩 나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나무는 성경에 나오는 싯딤나무, 성경에 조각목( 角木)이라고도 되어 있는 일종의 아카시아 나무들을 한참 가다가 한 그루씩 만날 수 있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면서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이런 문제를 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고 그 안에 둘 법궤를 만들 때 싯딤나무로 만들었는데 왜 싯딤나무로 만들었을까요?"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습니다. 단단해서, 벌레가 잘 먹지 않아서, 저는 점잖게 "싯딤나무는 평범한 나무인데 평범한 것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가이드가 웃으며 말하기를 "정답은 광야에는 싯딤나무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무가 없습니다.
    광야를 보면 영어 단어로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받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40년을 지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시내산 정상에서 성지순례 팀의 예배를 인도하면서 설교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평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을 막 욕하고 그랬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때 내가 광야에 나왔더라면 내가 앞장서서 불평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강도 높은 신앙훈련을 받습니다. 영성훈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 만나와 메추라기, 생수, 불신앙에 대한 무서운 징벌, 이런 것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생생하게 깨닫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 노예부족에서 신앙민족으로 전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광야는 전체가 교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려운 일을 겪으면 '나는 지금 광야를 통과하고 있다, 나는 지금 영성훈련을 받고 있다, 나는 지금 광야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다'하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지금 광야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아직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것 아닙니다. 교육관 준공해서 좋은 환경 속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 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나라도 지금 광야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해서 이대로가 좋다고 하는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착각입니다. 민족역사에 대한 배신입니다. 통일을 향해서 꾸준히 나가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교회에서 어떤 것들을 합니까?

    먼저, 살아 있는 말씀을 받습니다.
    38절입니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말씀을 받는데 그냥 말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을 받습니다.

    평소에는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하던 말씀이 어느 순간에 살아 있고 활력이 있는 말씀으로 내게 다가오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어떤 분이 고린도후서 1장을 여러 번 읽었는데 평소에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면서 읽었습니다. 몹시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만난 가운데서 우연히 고린도후서 1장을 읽는데 3절에서 5절까지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이 말씀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이 말씀에 의지해서 고통의 골짜기를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수험생이 밤늦게까지 수험공부를 하다가 지쳐서 교과서를 덮었습니다. 마침 성경이 옆에 있어서 무심코 성경을 뒤척이는데 이사야서 43장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 말씀이 얼마나 좋았는지 그 날 밤에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수험준비 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자신감을 갖고 공부를 해서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체험은 자주 할수록 좋습니다. 설교 시간마다 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자주, 아니 늘, 여러분과 저에게 받아들여지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또한 지도자에게 불순종하고 예전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깨닫습니다.
    39절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그렇게 하다가 그저 며칠이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복지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40년을 광야에서 헤매면서 죽어갑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닫습니다. 금송아지 만들어 제사 드리다가 하나님에게 외면 당하고 버림받는 일을 겪습니다.
    41절과 42절 앞부분입니다.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늘의 별들, 피조물을 섬기도록 내버려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게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봉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봉사해야 할 피조물을 섬기는 것은 모순되고 아주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것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잘들 해봐! 하면서 내버려두십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섬기고 기뻐하다가 하나님에게 외면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너무 자랑하고 의지합니다. 자기 손으로 만든 컴퓨터, 자기 손으로 만든 조직과 제도, 자기 손으로 쌓아올린 경제적인 부, 이런 것들을 너무 의지합니다.
    앞으로는 로봇이 많이 발달해서 로봇에 많은 것을 의지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은 이용해야지 그것을 의지하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섬기려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큰 실수를 한 것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므리바에 이르렀을 때 크게 불평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20: 5), 모세가 하나님께 호소하니까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가지고 회중을 모으고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회중을 반석 앞에 모으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분풀이하는 마음으로, '보아라!' 하면서 힘껏 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하면서 쳤으니까요.
    물이 나올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을 주셨다!"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도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민20: 12a) 하셨으니까요.
    그 결과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순종하지 않고 자기 힘에 의지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결과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모세가 두 번 두드린 것으로 전해진 바위가 지금도 요르단 땅에 남아 있습니다. 그 때 흘러내리기 시작한 물이 지금도 풍부한 수량으로 그대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 바위 앞에서 세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모세 형님,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그렇게 성질을 내고 두들기셨습니까?"
    (이 '모세 형님'이라는 칭호는 상당히 외람된 것이지만 웬일인지 그 바위 앞에 서니까 저절로 그렇게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눈물이 핑 돌아요.
    둘째는 혈기 부리지 말아야겠다,
    셋째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다
    세상에 제일 든든하고 좋은 일은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에게 향하시고 우리를 지켜보시며 우리를 지켜 주시는 일이고 반대로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일은 하나님이 안면 바꾸시는 일, 안면 몰수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나, 당신 몰라!" 하면 그것보다 더 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기며 기뻐할 때 하나님은 외면하셨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 24절에서 26절까지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증거의 장막을 만들었습니다.
    44절과 45절입니다.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이 증거의 장막은 일반적으로 성막, 또는 회막(會幕)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회막은 만남의 장막이라는 뜻입니다. 면회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늘 하나님을 만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은 추상적인 하나님, 관념적인 하나님, 이론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먹을 것을 주시고, 마실 물을 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고, 적과 싸워 이기게 하고, 다른 신을 섬기면 진노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보통 말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 생동하는 말씀이 된 것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또는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모세 자신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만난 곳은 어디입니까? 애굽 왕실이었습니까?
    미디안 광야에서였습니다. 거기에서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서 동족을 건져내라는 사명을 받고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하시는 하나님의 정체를 확인하게 됩니다.
    모세는 광야생활을 깊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더 가까이에서, 더 분명하게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모세 이전에 하갈도 광야로 쫓겨났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부터 보호의 약속을 받습니다.

    엘리야도 광야의 로뎀 나무 밑에서 하나님이 천사로부터 떡과 물을 받아 먹고 힘을 얻어 호렙산에 이르러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앞서서 광야로 나가서 기도합니다. 시내광야도 무섭지만 예수님이 사십 일 금식기도 하시던 유대 광야도 역시 무서운 곳입니다. 낮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밤이 되면 독사와 전갈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새롭게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를 통과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런 존재이니라" 하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너는 이런 일을 해라"하는 사명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는 "너는 이렇게 살아라" 하는 음성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을 지침을 받는다고 하지요. 삶의 지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광야가 변해서 의미 있는 곳이 됩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광야 교회" 이렇게 정하고서 우리 나라에 실제로 광야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가 있나 조사해 보았더니 대구 달서구에 장로교회가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광야교회와 비슷한 빈들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연희(鄭然喜) 여사가 쓴 실화 신앙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작품에 나오는 광야교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맹의순(孟義淳)이라는 신학생입니다. 실존 인물입니다. 평양 사람인데 해방 직후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을 해서 연세대학, 그 때 연희전문 신학과에 입학했다가 한신대학, 그 때 이름 조선신학교로 전학을 합니다.
    6·25 때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숨어 있다가 간신히 서울을 탈출해서 낙동강을 건넜는데 국군에게 잡혀서 인민군으로 오인 받아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수용됩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맹의순도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곧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의연할 수 있게 해주소서. 주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소서. 이것이 전부가 아니옵고 이것 또한 우리가 가는 길 몫의 일부이오니, 우리는 오직 주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자, 잠잠히 기다리는 자가 되게 해 주소서"
    그리고 이렇게 다짐합니다.
    "이 곳은 광야다. 나는 지금 광야에 서 있다. 이 곳에 내가 왜 서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보고 알고 깨닫기 전에 나가서는 인된다"
    그리고 포로수용소 안에서 전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중공군 환자 포로들을 중심으로 전도를 하며 사랑을 베풉니다. 그렇게 하다가 천막을 얻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의 이름을 광야 교회라고 정합니다.
    맹의순은 광야 교회를 세우고 밖에 있는 자기 친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 친구는 찬송가 256장 "눈을 들어 하늘보라"를 비롯해서 311장, 317장, 그리고 460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를 작곡한 박재훈 목사입니다. 편지 앞부분은 이렇습니다.

    "이 광야에 교회가 세워졌네.
    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천막 막사 한 옆에 십자가가 올리워졌다네 교회에 무슨 이름이 필요하겠는가는, 이 곳이 광야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광야 교회'로 부르기로 했다네. 초막이 아닌 야전용 천막을 세웠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전이라 생각하니 오직 감사하고 기쁘고 떨릴 뿐이었네. 신학교 선후배들과 함께 널조각을 얻어다가 강대상을 만들고 각목 몇 개로 받친 의자를 만들어 들여놓았네. 그리고 첫 예배를 드리면서 기쁨의 눈물로 찬양을 했네.
    그리고 이 민족의 앞길에 펼쳐진 광야를 바라보았네. 가나안 땅, 복지를 찾아가는 길, 이 강야를 거쳐가지 않고서는 다다를 수 없는 곳, 우리가 떠난 이 길이 분명 광야에의 길이라면 그것은 아무리 고난이 겹친 길이라 할지라도 축복으로 향해 가는 길 아니겠나"

    맹의순은 이 광야 교회를 중심으로 열심히 일합니다. 나중에는 좌익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서 석방조치가 취해졌지만 석방을 거부하고 일하다가 과로로 숨을 거둡니다.

    우리들 가운데 광야를 통과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광야를 통과하고 있는 분들이 있고 마음 속에 미움의 광야, 분노의 광야, 갈등의 광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광야를 통과하고 있고 우리 나라도 광야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광야 교회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살아있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그럴 때 광야가 의미 있는 곳이 됩니다. 광야를 통과하는 기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값진 때가 됩니다. 광야 교회는 교회 가운데 가장 소중한 교회가 됩니다.
    광야 교회를 세워 이런 은혜를 받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고, 목양교회가 되고, 이 민족이 되기를 공생애를 광야의 기도로 출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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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축하며 다시 세우는 자
    아름다운 초대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은혜에서 은혜로
    준비가 시작이다
    그날에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사람들
    어린 양의 피
    니느웨도 아끼신 하나님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요시야가 지킨 유월절
    성숙한 자유
    떡을 물 위에 던지는 마음으로
    평등하게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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