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물질이 꼭 필요합니다. 물질 문제에 대해 성도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말씀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둘째, 우리는 물질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이다, 잘 관리해야할 책임이 있다.
셋째, 우리는 많이 벌어 좋은 일에, 하나님의 일에 많이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감리교 창설자인 요한 웨슬리 선생이 특별히 강조한 것입니다.
넷째, 소득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서 와야 한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시민운동 기구 가운데 경실련(經實聯)이 있습니다. 경실련은 경제정의실천 시민운동연합을 줄인 말인데 기독교인들이 이 운동에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경제정의 실천운동의 골자가 이것입니다. 소득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서 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섯째, 기독교인은 경건과 절제에 힘쓰는 가운데 검소한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여섯째,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그리고 많이 봉헌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일곱째, 먹고 마시는 문제를 가지고 너무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맡겨야 한다.
이것은 산상보훈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물질에 대해 가져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7절과 18절의 말씀입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하나님은 남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하게 그리고 공평하게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나와서 제일 먼저 부딪친 것이 먹는 문제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두어 달 만에 먹는 문제로 원망이 생겼습니다. 원망의 내용이 16장 3절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 때 "먹을 것이 떨어졌네. 바로의 고집을 꺾으시고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지!" 했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해야 하지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이와 같은 원망은 하나님께 향하여 하는 것이라고 8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원망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렇지요. 부족한 우리의 원망과 무지와 불평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갚아주신 체험을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에 나가 만나를 거두는데 거둘 때는 많기도 하고 적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되어보니 많게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둔 것이 되었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하나님은 공평하게 주신다, 이 말씀에 대해서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누구는 몇 천 CC짜리 고급 승용차 타고 다니고 나는 조그만 차 타고 다니는데…", 저는 용산 이촌동에 오래 살았는데 이촌동은 1960년대 중반에 우리 나라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진 본격적인 아파트 단지입니다.
지금은 그 아파트가 모두 더운물이 나오는 중앙집중난방들이 되었습니다만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왼쪽은 공무원 아파트라고 해서 연탄을 때는 소형 아파트들이었고 오른쪽은 한강 맨션이라고 해서 더운물이 나오는 아파트들이 있었습니다. 택시 타고 이촌동에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갑시다" 하는 것과 "왼쪽으로 갑시다" 하는 것에 따라서 기사의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누구는 오른쪽에 살고, 나는 왼쪽에 살고…", 이렇게 말하면서 "같지 않다!"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같습니다. 우리는 공평하게 받았습니다.
우선 남에게 주지 않은 것을 나에게 주신 것이 많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남에게 주지 않은 것을 나에게는 주신 것이 많습니다. 그것을 많이 발견하는 사람일수록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왜 나에게만 이렇게 많이 주셨지?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지 않아? 이거 불공평하지 않아!" 하는 사람,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 정도까지 자라기 바랍니다.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기에 자세하게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뇌성마비 찬송시인 송명희(宋明姬) 자매의 "나"라는 찬송시 가사를 다른 각도에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는 일찍 곡이 붙여져서 복음성가로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에 쉽게 기억할 것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으며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 찬송시는 송명희 자매가 스무 살 전후해서 쓴 것인데 그 어머니 최정임 권사님의 말을 들어보면 이 때 송명희 자매는 사춘기의 감정이 생겨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마비된 손으로 어머니의 루즈를 집어서 자기 입술에 바르기 위해 애쓰기도 하던 때였다고 합니다. 다른 또래들은 활짝 핀 모습으로 이성 교제도 하고 즐겁게 지낼 때 자기는 온 몸이 마비되어 지하 셋방에서 지내면서도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이 찬송시는 열한 줄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앞의 석 줄만 남들은 갖고 있으나 자기에게는 없는 것을 말하고 있고 나머지 여덟 줄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는 주지 않고 자기에게만 준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뇌성마비 환자가 자기에게 안 준 것 3, 자기에게만 준 것 8의 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비율이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많이 가진 것 같은 사람도 남는 것 없고 적게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사람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같게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길게 보면 역시 많이 거둔 자나 적게 거둔 자나 같습니다. 연세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저희 교회도 자주 오셨던 김동길(金東吉) 박사가 성묘하기 위해 공동묘지에 갔다가 쓴 수필이 있는데 그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누구나 흙 만두 하나가 되는구나!"
여러분 '흙 만두'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김동길 박사님이 한 때 강연을 많이 다닌 일이 있었습니다. 강연 사례비 수입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대 목동부속병원 개원할 때(이 병원은 김동길 박사의 누님으로 이대 총장을 지낸 고 김옥길 박사를 기념하는 병원입니다.) 그것을 모두 헌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질에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이 분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한 때 많이 가졌으나 뒤에 적게 가지게 되는 수도 있고, 반대로 어느 한때는 적게 가졌으나 뒤에는 많이 가지기도 하면서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모두 두고 갑니다. 같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사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첫째, 오늘의 나에게 공평하게 주시는 만나를 발견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을 듣고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이슬이 마른 다음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보고 "이것이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놀라움과 궁금증을 나타내는 이 말이 히브리어로 바로 만나입니다. 정확하게는 "만 후"인데 칠십인 역이라고 히브리말로 된 구약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할 때 "만나"라고 해서 만나가 되었습니다.
만나라는 이름에는 이와 같이 놀라움과 궁금증이 담겨 있습니다. 만나라는 말의 품사는 우선 명사라고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는 감탄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평하게 주시는 사실을 생각하며 놀라며 감사해야 합니다. "만나!", "이것이 무엇이냐?"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을 생각해 보세요. 3,40년 전만 해도 지금 이 무렵은 보리 고개가 시작되는 때였습니다. 여기 젊은 분들, 보리 고개가 무엇인지 아세요?
쌀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나지 않고 그래서 굶는 사람이 많이 생기는 때, 춘궁기(春窮期)를 보리 고개라고 했습니다.
어느 시인이 자기의 시에 "보리 고개 넘어 가기가 힘이 든다"라는 말을 썼는데 이 시가 일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번역하는 일본 사람이 일본에는 보리 고개라는 것이 없으니까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보리 고개라는 말을 "보리밭 사이로 난 언덕"이라고 낭만적으로 번역한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가난에 시달리는 우리 민족이 지금은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만나!"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하느냐?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기 때문이다!" 해야합니다.
자기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세요.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로 살아온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건축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3층 슬라브를 치느라고 밤까지 70여 대의 레미콘이 분주하게 들어 왔습니다.
때때로 조용한 시간에 장부를 펼쳐가며 계산기를 두드려봅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저희가 넉넉한 재정을 가지고 건축을 시작해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건축비를 감당해 왔나, 살펴볼 때 "만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어떻게 감당해 왔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땅 판 돈, 성도들이 힘써 헌금하고 교회가 가진 부동산들을 거의 모두 처분하고 여러 가지 답이 나오지만 하나님이 감당하도록 하셨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4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 만나를 한꺼번에 주시지 않고 매일 매일 주셨습니다. 4절 중간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공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쌓아놓을 만나를 구하지 않고 매일의 만나를 구해야합니다. 쌓아놓을 만나가 있으면 게을러지기 쉽습니다. 간구를 쉬게 됩니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기 쉽습니다.
아프리카 어느 마을에서는 매일 새벽에 추장과 주민 모두가 바닷가에 나가 동쪽을 보며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신이어, 오늘도 해를 주옵소서! 밝아오게 하옵소서!", 약삭빠른 백인이 그것을 보고 나에게 해를 불러오는 신기한 새가 있다며 닭 한 마리를 비싼 값을 받고 팔았습니다. 날마다 닭이 울면 해가 떠오릅니다. 추장과 주민들은 매일 새벽 바닷가에 나가서 빌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선 늦잠꾸러기들이 되었습니다. 게을러졌습니다. 싸움이 많아졌습니다. 도박과 술 중독이 늘어났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이렇게 하면 신이 해를 안 주실 지도 몰라!" 생각하며 삼갔는데 삼가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살라고 하나님은 날마다 거두게 하셨습니다. 남겨두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게 하셨습니다.
다만 안식일에는 하루 거둬 이틀 먹을 수 있게 하셔서 주일 성수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만나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모자라지도 않고 남지도 않게 주셨습니다. 감탄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매일의 만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말씀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자신을 생명이 떡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통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47절에서 51절까지를 읽어 드립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
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
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또 하나의 만나인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면서 받아 먹어야합니다.
몇 해 전에 저희 교회 청년부와 중고등부가 서해안 학암포(鶴岩浦)라는 곳으로 여름수련회를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그 곳의 한 교회를 빌어서 수련회를 했습니다. 그 부근에 큰 발전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 교인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교인이 발전소 쪽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기는 발전소 때문에 망했어요! 쫄딱 망했어요!"
처음에는 발전소 때문에 고기가 잡히지 않거나 양식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 망했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잘 듣고 보니 아닙니다. 발전소를 지으면서 한전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보상금을 주었습니다. 수억 원을 받은 집안도 있다고 합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되었다고 모두 좋아했습니다. 주위에서는 그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보상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가족들끼리 싸움이 일어나서 음독자살한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살인사건이 난 집안도 생겼습니다. 갑자기 많은 돈이 생기니까 그것을 가지고 먹고 마시는데 탕진해서 패가망신한 사람도 있고 보상금을 잘못 운용해서 보상금을 받기 이전보다 가난해진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교인은 그 마을을 보면서 자기는 가난하게, 힘들게 살지만 가족들과 또 이웃들과 화목하게 사는 것을 감사하면서 지내고 있고, 특히 교회에 출석하면서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을 감사드린다고 말하는데 그 얼굴에 진심이 어려있는 것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
물질 문제만 생각하지 않고 말씀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부지런히 먹기 바랍니다.
셋째, 나누기에 힘써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8장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예루살렘교회를 도울 것을 강하게 권면합니다. 바울은 이 일을 위해서 디도를 고린도교회에 파송했습니다.
바울은 먼저 마게도냐교회가 환란과 가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한 것을 칭찬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이시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신 분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또 이와 같은 구제가 균등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13절과 14절입니다.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이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함이라" 오늘 내가 나의 넉넉한 것으로 남을 도우면 후에 그가 그의 넉넉한 것으로 나의 부족한 것을 돕게 됩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오늘의 본문을 인용하지요.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사회주의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그들은 자본주의가 모순이 많기 때문에 곧 망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는 발달하고 사회주의는 거의 망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대표 격인 중국도 알맹이는 자유경쟁체제를 따르고 있습니다. 옛날의 문화를 보존하는 곳을 민속촌이라고 하는데 북한이 사회주의의 민속촌처럼 남아 있을 뿐입니다.
자본주의가 왜 이렇게 존속하고 발달합니까?
나누기에 힘쓰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에 힘쓰고 노동운동을 통해서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부의 공평한 분배에 힘쓰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본주의 사회는 많은 부작용을 낳습니다. 우리는 나누기에 힘써야 합니다.
사회주의는 강제로 공평해지려고 하다가 공평하게 거지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랑으로, 자발적으로 공평하게 되려고 해야합니다.
크리스천 의사의 사표로 꼽히는 장기려(張起呂) 박사님이 복음병원을 시작할 때 월급 제도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하면 식구 숫자에 따라 생활비를 나누어 가졌습니다. 원장인 장기려 박사님은 식구가 본인과 월남할 때 데리고 나온 아들 하나, 둘이어서 생활비를 적게 가지고 가고 또 한 분 의사인 전종휘(全宗輝)라는 분은 가족이 열하나 이어서 많이 가져갔습니다.
양주에 풀무원이라는 기독교 공동생활체가 있는데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어서 풀무원이라는 이름이 상품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이름을 한삶회라고 바꿨습니다. 그 원장님이 저희 교회에 오셔서 간증을 하신 일이 있지요. 여기서는 지금도 필요한 것을 공평하게 나눠 쓰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넉넉하게 가진 것이 있습니까?
물질을 넉넉하게 가진 것 있으면 나누기에 힘쓰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다 말씀에 부요한 자들입니다. 말씀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것을 나누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40년이 거의 끝나갈 때 모세는 40년을 돌아보면서 백성들에게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고 설교합니다(신8: 4). 때로는 목이 말랐고 때로는 배가 고팠지만 그러나 돌이켜 보니 하나님께서는 남지도 않게 하시고 모자라지도 않게 하시며 40년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목양교회 40년도 그렇게 인도해 주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본문 18절에 "오멜로 되어 본즉"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멜은 애굽의 도량형 기구인데 토기로 된 사발입니다. 한 오멜은 약 2.4 리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으로 보기에는 많이 거두고 적게 거둔 것 같았으나 오멜로 되어보니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됫박이 언제나 정확한데 그 됫박으로 되어 보면 같습니다. 내일 모레가 춘분인데 일 년이 어느 때는 밤이 길고 어느 때는 낮이 길지만 통틀어 보면 같습니다.
물질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공평에 감사 드리며, 오늘의 만나를 발견하고, 말씀의 만나를 부지런히 섭취하며, 나누기에 힘쓰면서 성도로서 바른 물질관을 갖고 물질 문제에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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