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낮예배 설교에서 저는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의 야곱과 하나님을 만난 이후의 야곱,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다음의 야곱이 다르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서 세겜이란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딸인 디나가 세겜 추장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이 일을 알고 계교를 써서 추장 집안을 몰살해 버렸습니다. 멋있게 복수를 했지만 이제 큰 일이 났습니다. 가나안 주민이 이 소식을 들으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예전의 야곱 같으면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을까요?
가나안 주민들에게 많은 물질을 보내서 그들을 무마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 받고 눈 좀 감아주시오!" 실제로 그는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에서와의 문제를 많은 예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아니면 주변의 다른 부족들과 동맹을 맺어 방어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렇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추장의 아들이 야곱의 딸 디나를 성폭행 한 일이 발생한 다음에 추장이 찾아와서 자기 아들과 당신 딸 디나를 결혼시키자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함께 여기서 살면서 땅을 마음대로 매매하며 잘 살게 하겠다고 합니다. 추장의 아들도 아버지를 거들어서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라"고 합니다(창34: 11). 혼수와 예물도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합니다.
이전의 야곱 같으면 "그럽시다!"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은 달라졌습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벧엘은 야곱이 외삼촌의 집으로 가던 길에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축복의 약속을 하셨고, 야곱은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은 첫 신앙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세기적인 대부흥사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청소년 시절에 어느 집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강사가 설교를 한 다음에 "오늘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오"라고 청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손들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이 때의 일을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께로 나와왔을 때 나는 어떤 감동도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나는 눈물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내가 집회에서 결단을 하고 앞으로 나갔을 때 겁을 먹었던 것
외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습니다.
내가 맨 앞자리에 서 있던 그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바보스럽고 우매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내면에서 그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느
꼈습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어떤 기자가 내게 와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면 나는 "글쎄올시다. 나는 다만 앞으로 가서 저 설교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을 따름입니다"라고 얼버무렸거나 또는 그 비슷한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내면에서 그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내
삶의 방향을 전환시켰으며 삶의 차원을 변화시켰고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
는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부흥사 생활을 하면서 이 때의 이 감격을 늘 생생하게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런 감격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그것이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세기적인 대부흥사로 만든 비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 임원 임명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임원 여러분, 벧엘로 올라가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임원으로 처음 선출되었을 때의 그 감격, 그 다짐을 새롭게 기억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작년 당회에서 처음 집사로, 권사로 선출되어 오늘 처음으로 임명받는 집사님과 권사님들, 오늘의 이 마음가짐을 그대로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일어나 벨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을 듣고 야곱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전 같으면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벧엘은 세겜에서 남쪽으로 120리입니다. 우선 '이 많은 식구들과 양 떼들을 끌고 그 먼 길을 어떻게 가?' 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동하는 동안에 습격을 받으면 어떻게 하지?'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있는 자리에서 습격을 받으면 어떻게 방어를 해 보겠는데 이동 중에 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3절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임원 여러분, 벧엘로 올라가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는 임원들 되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후4: 1∼2)하는 말씀에 순종하여 충성하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 21)하는 말씀에 담긴 교훈에 순종하여 적은 일에 충성하는 착하고 충성된 임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23: 11) 바울에게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며 담대하게 증언하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 35)하는 주의 말씀에 따라 추수하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딤전3: 8∼9)하는 말씀에 순종하여 정결한 생활을 하시는 임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제단을 쌓으라"고 하시자 야곱은 자기 집과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들에게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고 벨엘로 올라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그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을 뿐인데 왜 이방 신상을 버리고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고,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까지 하느라고 야단이지?' 이런 질문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보고 몇 시에 일어나서 밥을 먹는데 반찬은 무엇을 해서 먹고, 이런 것까지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일상생활의 자세한 부분들은 우리가 말씀의 원리에 입각해서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실천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정책을 정하는데 "교육부는 이렇게 하고 재정경제부는 이렇게 하고 건설교통부는 이렇게 하고…"하지 않습니다. "올해 정책방향은 이렇습니다"하면 각 부처가 각각 계획을 수립해서 실천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모두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것이 우리 나라 관료사회의 큰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담배 피우지 말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성경이 다 완성된 다음에 담배가 등장했기 때문에 담배라는 말이 성경에 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에 자동차, 컴퓨터, 이런 단어가 나오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절제에 힘쓰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네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도 있고 네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전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 말씀을 실제 생활에 적용할 때 우리는 그 해독이 크다는 사실이 나날이 밝혀지고 있는 담배로 우리의 몸을 더럽힐 수 없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것을 너무 자세하게 규정하려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말 하나를 잘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은 일이 아니고 어떻게 하는 것은 일인지를 하나하나 규정했습니다. 안식일에 환자가 찾아왔을 때 의사는 어느 정도 다친 환자는 치료해 주어도 좋고 어느 정도 다친 환자는 치료해주면 일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것이 되고 너무 자세하게 설명하다보니 오히려 지키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되기 위해서 벧엘로 올라가는데 이방신상을 가지고 가는 것, 부정한 몸으로 가는 것, 입던 옷을 입고 가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서양 사람들이 옷 입는 생활을 하는 것 보면 좋은 옷은 그저 한 두 벌 가지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검소한 옷, 편한 옷, 활동적인 옷을 입습니다. 잔치라든가 좋을 일이 있을 때는 한두 벌 있는 좋은 옷을 입고 나섭니다. 주일에 교회 갈 때는 반드시 좋은 옷을 입고 나오지요.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 생활에 구체적으로 잘 적용했습니다. 확대 재생산을 했습니다.
우리들의 교회 생활에서 약한 부분 가운데 하나가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에 설교 다섯 번 듣고 적용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보다 한 번 듣고 한두 가지 적용하려고 애쓰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여러분, 벧엘로 올라가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에 잘 적용하는 임원들이 되라는 뜻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야곱의 집안에 이방 신상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우선 라헬이 친정에서 남편을 따라 나올 때 자기 집안의 수호신인 드라빔을 훔쳐 가지고 나왔습니다. 리헬은 그 드라빔을 그대로 간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겜에서 사는 동안에 가나안 풍습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4절을 보면 야곱 집의 사람들이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었다고 했는데 이 귀고리도 가나안 풍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신상의 모습을 한 귀걸이에 신비스러운 글자로 새겨 귀에 달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이 귀걸이에 마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야곱 집안의 사람들은 이 귀걸이들을 떼어서 야곱에게 주었고 야곱은 그것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습니다.
세겜의 상수리나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처음 도착한 곳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였습니다(창12: 6).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뒷날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완성한 다음에 백성들을 모아 "우리는 여호와만 섬기겠나이다"하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여호수아는 큰 돌을 가져다가 세겜의 상수리나무 아래 세우고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수24: 27)고 선포했습니다.
오늘 이 임명예배가 상수리나무가 되기 바랍니다. 임원들, 좋지 못한 습관, 특별히 좋지 못한 언어습관,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관, 교회에 대한 무관심, 열심의 부족, 불순종, 이런 것들을 이 상수리나무 아래 묻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과거를 자꾸 물어보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를 회개의 나무 밑에 묻어 버리는 것은 신앙적인 일입니다.
큰 위기 앞에서 야곱이 한 일을 한마디로 하면 신앙을 새롭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기는 먼저 믿음으로 극복되어야 합니다. "위기는 기회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위기를 믿음으로 극복하려할 때 이 말 그대로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믿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이 사건이 일어나도록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믿음을 새롭게 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목양교회가 그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믿음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믿음을 새롭게 하면 내가 새로워집니다.
믿음을 새롭게 할 때 교회가 새로워집니다.
믿음을 새롭게 할 때 나라가 새로워집니다.
믿음을 새롭게 할 때 그 시대가 새로워집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을 새롭게 하시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야곱 일행은 벧엘을 향해 떠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이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여 추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때쯤 되면 세겜 추장 일족이 야곱의 아들들에게 몰살당한 일이 널리 알려졌을 것입니다.
주변부족들이 들고일어나 원수를 갚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야곱의 집안이 이동 중이어서 습격하기 더 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셔서 추격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셨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은 많은 경우에 구체적인 정황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응해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이 전멸 당할 때도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의 진중에서 쳤다"고만 기록했습니다(사37: 36).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앞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야곱에게 사면 고을의 위협이 있었던 것처럼 목양교회 앞에는 많은 불리한 조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새롭게 하고 일어나 전도와 부흥이라는 벧엘로 올라 갈 때 사면 고을의 추격을 막아주신 주님께서 모든 불리한 조건들을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벧엘로 올라가는 행진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장애가 되는 모든 것들을 물리쳐주시고 그 행진이 순조롭도록 보호하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다시 한 번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야곱은 "발꿈치를 잡았다", "지기 싫다"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힌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은 신앙적인 이름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너는 세속적인 성품을 가진 존재이지만 이제 신앙적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겠고"하는 은총의 말씀입니다.
임원 여러분, 이제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의 많은 직책보다 교회의 직분, 직무를 더 귀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축복의 약속을 하십니다. 본문 밖의 11절과 12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벧엘로 올라가는 임원들 되어 이와 같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임원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벧엘로 올라가는 임원들과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처음 믿음 처음 사랑, 처음 감격 처음 다짐을 회복하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버려야 될 것을 오늘 이 예배를 상수리나무로 삼아 그 밑에 묻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새롭게 하는 임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새로운 존재로 인정받고 축복을 받은 임원들이 되고 성도들이 되고 부족한 종이 되기를 오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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