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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믿느냐?
    2001-12-25 17:24:09   read : 1025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요한복음 11장 17-27절)
    <목회기도>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를 살게 하신 하나님, 생명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숨쉬는 오늘 하나님 마음에 합하기 원합니다.
    말하는 오늘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기 원합니다.
    복된 주일 기둥교회에서 예배 드립니다.
    일평생 주일성수하며 예배를 귀중히 여기는 삶이 되도록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할 성도 중에
    병들어 병원에 있는 이, 가정에 있는 이, 요양처에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힘든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총을 들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믿음의 사람으로 부끄럽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외국에 유학중이며, 취업으로 나가 있는 이들, 여행 중인 이들
    모두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여기 각기 형편과 사정이 다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맘되어 모였습니다.
    신령한 은혜를 나누는 복된 시간 되게 하시고
    말씀을 전하는 부족한 종은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 어떻게 왔든지 어떤 이유로 왔든지 구경을 왔어도 지나가다 들렸어도 기둥교회에서 예배 드리게 됨을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큰 은혜와 평강의 복을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지난주간에 태국에 다녀왔습니다. [태국선교회]에서 태국에 신학교를 세워 현지 태국 사람들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공부시켜 보다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하려는 일을 협의하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태국에는 정말 많은 승려와 많은 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그들 나름대로의 기도처가 있었는데 호텔에서도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많은 것들을 보면서 "과연 저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으며 바르게 믿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는 중에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지, 바르게 믿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크리스챤이 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은 "죽음"을 인정합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인정합니다. 여러분도 인정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죽음 뒤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인물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인정합니다. 유대땅에 살았던 젊은이, 30 갓 넘어 십자가에 처형되어 죽었던 그 예수님을 인정합니다. 그의 죽음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셨고, 하늘에 오르셔서 다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오실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챤이 된다는 것은 '몇 가지를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창1:, 히11:6).
    그래서 여러분이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가장 첫 번 째로 해야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죽게 되어 있으며
    인간 스스로는 그 죄와 죽음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의지를 믿고, 자기의 지식과 힘을 믿지만 그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 하나님께서 먼저 구원의 길을 허락해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신학적으로는 그것을 "선행적 은총"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허락해 주셨는데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요3:16)을 믿어야 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세상에 얽매인 육체는 죽음을 맞게 되며
    그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히8:27) 등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 Christian"(행11:26)이라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행26:28, 벧전 4:16).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계십니까?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대해 감사하십니까?
    아직도 믿음이 없다면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듣는 중에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인 우리는
    - 복음이신 예수를 믿고(행8:35, 롬1:1-4, 고전15:1-8)
    -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살려고(빌1:27)
    -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이 되려고(행13:22)
    -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고전15:58).


    "죽었더라 죽었더라"

    그런데 어떻습니까?
    신앙생활 하는 우리들에게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최종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죽음"입니다. "죽는 것과 과연 죽음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이 좋은 날, 하필 <죽음>입니까? 설교할 내용이 그렇게 없습니까?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이런 말씀을 전하도록 인도하신 성령님께서 이 시간 말씀 중에 역사하시면, 아니 역사하셔서… 생명을 살리고, 믿음을 살리고, 소망과 사랑을 살리는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남편을 끈질기게 설득해서 결국 그 남편은 교회에 한번만 가기로 약속을 하고 함께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러니 그 자매님은 자연히 예배시간에 '찬양대는 무슨 찬양을 할까? 목사님의 설교는 어떤 내용일까?' 하고 궁금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성경본문이 창세기 5장이었는데 내용이 "누가 누구를 낳았고 몇 년 살다가 죽었더라"하는 이야기만 반복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더욱이 "죽었더라"하는 말이 8번이나 계속 해서 나왔습니다. 그 자매는 실망을 해서 '하필이면 오늘 따라 죽었더라 죽었더라 계속 죽었더라만 하실까'하고 낙심이 되어 남편의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3주 후에 남편은 교회에 등록을 했습니다. 자기 손으로 등록카드에 이름을 쓰고 등록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부인은 남편이 등록을 하니 너무 좋아서 예배를 마친 후"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기로 결심을 했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남편이 말하기를 "3주전에 '죽었더라 죽었더라' 하는 그 말이 내 마음에 와 닿으면서 '너도 죽을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면 안되겠다 내가 예수 믿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친구 '나사로'의 죽음

    예수님은 베다니에 살던 '나사로'라는 사람과 아주 가까운 사이었습니다. 나사로는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베다니에 살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11절에 보면 예수님이 나사로를 향해 "친구 나사로"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친구'는 취미가 같거나 친한 학교 동창일 경우를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친구'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친구>라는 뜻은
    • 요한복음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요한복음 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야고보서 2:23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예수님이 나사로를 향해 '이는 내 친구'라고 한 것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예수님과 가까웠던, 예수님이 '친구'라고 불러주셨던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절에 보면 나사로의 누이들이 병든 나사로가 심각해지고 죽을 때가 된 것 같아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알려드렸습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 다급한 일, 죽음이 임박할 때, 연락해 도움을 청할 때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먼저 알리시기를 바랍니다. 지역장과 지역담당 전도사님과 지역목사님, 그리고 제게도 알려 주셔야 합니다.

    나사로의 누이들도 나사로가 아팠을 때 먼저 예수님께 그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즉시 나사로에게 가시지 않고 계시던 곳에서 이틀이 지난 후에야(요11:6) 나사로에게로 향하셨습니다(요11:11).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요11:17)라는 말씀을 통해 볼 때 나사로가 위독하여 예수님께 연락하러 사람이 가고, 예수님이 머물던 곳에서 이틀 후에 움직이셨고, 나사로의 집에 도착해 보니 나사로가 죽은 지 4일 된 것으로 보아 나사로의 병을 알리러 예수님께 사람을 보낸 직후 운명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유대인이) 나사로 가족들을 위해 위문하러"왔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위문을 받는 것을 보면 나사로는 덕이 있는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덕(德)"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죽은 그 사람을 생각할 때 "그 사람이 죽은 것이 안타깝다.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었다"라고 하며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놈 잘 죽었다. 시원하다"라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사는 동안 덕을 끼치며 살아야 합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 많은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위로하러 왔던 것처럼, 신앙생활하는 우리들이 슬픔 당한 사람이 있으면 위로하러 갈 줄 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고 성도들끼리 어려움을 당했을 때 찾아가서 위로하고 그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믿음의 형제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둥교회 교인들 가운데도 다른 사람의 가정에 슬픈 일을 당했을 때 한 번도 안가고, 돌아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자기네 집에 어려움을 당하면 "아무도 안 온다, 무슨 교회가 사랑이 없냐"고 투덜댑니다. 여러분,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덕을 끼치며 사시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과 슬픔을 위로하며 사시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슬픔을 당해, 조문객을 맞고 있는 나사로의 집에 이미 나사로가 무덤에 묻힌 지 나흘 이 된 때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기 전에 오시기를 기대했던 예수님이 오셨다니까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와 마르다는 섭섭해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르다는 "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실 수 있는 분, 이긴, 분이기에 예수님이 계셨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늦게 오심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21절에 보면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11:21)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2절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11:32)

    마리아 마르다 자매는
    -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 나사로를 친구로 여기셨던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어쩌면 늦게 도착하신 예수님께 자매는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는 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죽음을 표현한 말씀이 있습니다.
    • 눅16:22 - 천사들에 의해 옮겨지는 것
    • 눅23:43 - 낙원으로의 이동
    • 요14:2 -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는 것
    • 고후5:8 -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
    • 빌 1:21 - 유익함
    • 빌 1:23 - 훨씬 더 나은 곳으로 떠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 잘하고 믿음 생활 잘 한다 해도 이 세상에 더 오래 살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들의 소망입니다. 더 오래 남고 싶은 것, 그리고 떠난 사람을 향해서도 "더 사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도 자기의 오라비였던 '나사로'에 대하여 이와 같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텐데, 예수님은 죽은 오라비를 죽지 않게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하는 마음입니다.

    성경에는 "죽은 사람을 살리신 이야기"가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 구약성경에 보면 선지자들이 죽은 사람을 살렸던 이야기가 몇 번 나옵니다.
    - 열왕기상17:22에는 엘리야가 머물렀던 집 주인 여자의 아이를 살린 일
    - 열왕기하 4:35에는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이를 살린 일
    - 열왕기하 13:21에는 엘리사가 죽어 장사 지낸 후 도적의 무리 들이 지경을 범하니 장사 지내는 자들이 시체를 엘리사 묘실(무덤)에 던지니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으니 회생하였다는 일들이 있습니다.

    ••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었던 사람을 살려낸 이야기가 몇 번 나옵니다.
    - 마가복음 5:35-43에는 야이로의 열 두 살난 딸을 <장례식 전>에 살려내신 일
    - 누가복음 7:11-17에는 과부의 외아들을 <장례식 중>에 살리신 일
    - 요한복음 11:11-44에 보면 이미 무덤에 묻어둔 나사로를 <장례식 후>에 살려내신 일입니다.

    그런 능력을 행하셨던 예수님을, 구약시대에도 선지자들이 사람을 살렸던 일을 아는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살 수 있었을 텐데"하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본문 말씀 이후를 살펴 보면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2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가리켜서도 살아 있는 사람의 '오라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가족 중에 먼저 가신 분들을 생각해도 죽었으나 여러분의 형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향해 "나사로야 나오너라"하고 무덤에 있는 나사로에게 살아 있을 때 불렸던 이름 그대로 부르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은 뒤에도 역시 '나사로'였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비록 우스운 이름 일 수도 있고, 태어날 때 부모님이 절에 다니며 지어 왔거나, 점쟁이로부터 받아온 이름으로 불린다 할지라도 예수 믿음으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그 이름으로 세례 받았다면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이후에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 죽은 사람을 어떻게 만나는 지에 관해 의문을 갖게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23-30절에 보면 이 문제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질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만약 재혼을 하게 되었을 때 죽은 다음에 부부관계가 어떻게 맺어지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의 대답하시기를 "그곳에서의 삶에서는 결혼관계가 없고 천사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결혼은 육신의 관계인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새로운 몸을 입기 때문에 천사들 사이와 같다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인지, 아버지인지, 형제인지 다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 안에서 신앙생활 하시다가 하나님 나라에서 다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 뒤에 가질 '몸'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인 표현을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49절에 보면 [썩지 않는 몸]이며, [영광스러운 몸]이며, [신령한 몸]이며, [하늘에 속한 몸]이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런 사실 모든 것들을 묶어 생각해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누이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라(히13:8),
    지금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 죄로 인해 멸망의 죽음으로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믿기만 하면 영생의 길로 인도하십니다(요3:16).
    • 실망과 좌절, 실패와 따돌림 받음으로 한숨 짓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바꿔주십니다(요1:12).
    • 지금도 살기 어려워 이 땅이 살기 싫고 보다 나은 삶을 향한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갖게 해 주십니다(빌3;20).
    • 죽은 것 같은, 죽을 것 같은 소망 없는 사람에게 새 삶과 새 생명을 주십니다.
    • 평안이 없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평안을 주십니다.
    • 이 세상 삶에 욕심을 두던 사람들을 변화시키셔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1) 고백하면서
    순교의 길까지 가게 하십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게 된 것 때문에, 예수 전하는 것 때문에 고생하고 눈물 흘리고 죽음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라는 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고통과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때로는 상상할 수 없는 비극적인 죽음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을 뿐 아니라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 믿음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참된 승리자입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불교의 부처, 이슬람의 마호메트, 몰몬의 조셉 스미스, 여호와의 증인의 찰스 러셀, 유교의 공자, 모든 종교 또는 종교적인 집단의 창설자들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덤을 귀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 지금도 살아 계시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위해 길이 되신 구세주입니다.
    -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도 간섭하실 수 있었고 자신의 죽음도 극복하신 구세주입니다. 그 한마디 요약이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니,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 이것을 믿으십니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면 믿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믿는 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 "살아서 주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영원한 승리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모든 것이 완전하고 편안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지, 무엇이든지 일이 잘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인천에서 개척하여 교인 100여명 모이는 목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땅을 사고 교회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붕을 덮어야 하는데 건축비용이 다 떨어졌습니다. 장마철은 다가오고 지붕은 덮어야 되는데 큰일 났습니다. 그날밤 정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제가 서울에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딘지 기억이 뚜렷한데, 남대문 시장 가는 지하 차도에 조그만 박스안에 복권 파는 곳이었습니다. '어젯밤에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왠지 복권을 사면 될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때 얼마나 안타까왔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겠습니까. "믿습니다. 믿습니다"하며 발표날까지 기분 좋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결국 복권 사는 비용만 들었습니다. 끝자리 하나만 맞아도 본전을 건질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왜 이게 안될까?, 내가 그렇게 기도 많이 했는데 왜 안될까'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믿는 사람이고 예수 믿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안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생 뿐이 아닌 영원한 세계가 있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이 땅의 삶이 어렵다 할지라도 승리의 소망을 가지고,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다시 만날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의 만족거리를 찾는 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는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뿐 아니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는 말씀에 "아멘"입니까?
    오늘 기둥교회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내가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습니까?
    27절에 보면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라는 마르다의 고백이 오늘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만족을 찾는 자가 아니라 영생의 세계를 바라보며, 이 땅에서 자기의 판단과 생각대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사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인간은 나약해서 자기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어떤 때는 자기의 판단대로, 기도 많이 했다고 하는 일들이
    참으로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만들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시고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이 말씀을
    우리들이 믿는다고 고백하는 확실한 믿음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영생의 꿈을 가진 모든 성도들이
    세상에서 땀흘려 애쓴 노력의 결과를
    십일조,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일천번제 예물 등
    여러 가지 제목으로 정성껏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2001년 9월 9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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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서 제자 삼으라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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