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서서…넘치게 하라 2001-12-25 17:13:28 read : 1289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장 6-7절)
<목회기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30여년 전 기둥교회가 여기 부천 땅에 세워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다음주일이면 창립 3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30년 동안
기둥교회가 성장하고 일하는 교회 되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새로운 땅과 새로운 비전(vision)을 주셔서
30년의 지루함이 아니라 가슴 설렘을 주셨으니
연약하지만 감당할 만한 믿음주시고, 감당할 능력도 주시고,
감당할 경제적 넉넉함도 허락하시옵소서.
특별히 다음 주일은 맥추감사 주일로
반년 동안의 삶을 정리하며 감사하는 주일인데
우리 모두 힘들고 어렵지만
최선을 다하는 감사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매주일 감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범사의 감사가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6·25의 아픔을 가진 우리 민족입니다.
더이상 상이용사나 전쟁 고아가 없도록
하나님 이 땅에 평화를 지켜 주시옵소서.
군대에 가 있는 믿음의 자녀들을 지켜 주시고
오늘 예배가 평안하고 기쁨이 충만한 은혜로운 예배가 될 터인데
이 자리에 있지 못하고 외국에, 객지에 나가 있는 이들
병상에 누워 있는 이들에게도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범사를 주님께서 주장하여 주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벌써 2001년 6월의 마지막 주일이고 반 년이 지나갑니다. 반 년 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것, 고통 당한 것, 마음 상한 것을 다 접으시고 좋은 일, 기뻤던 일, 흐뭇한 일만 생각하시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가끔 화가 난다고 해서 분을 내고 성질을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자기 손해입니다.
앤드류 버넷이라고 하는 사람이 경미한 접촉사고가 일어난데 분개해 상대방의 애완견을 고속도로에 집어던져 숨지게 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의 애견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 강아지 살해범은 징역 3년의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국민일보 2001. 6. 21.] 여러분, 화가 난다고 개를 집어 던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을 내는 것은 다 자신에게 손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부족한 제가 둔한 입술로 말씀을 전하지만, 두렵고 떨림으로 입을 열지만,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날 제자들이 말씀을 전할 때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알아 들었던 것처럼(행2:1-13), 오늘 여러분의 생각, 환경이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여러분 각자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은혜되고 능력이 나타나는 시간 될 줄 믿습니다.
본문(골2:6-7)에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행하되(골2:6)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2:6)
예수님을 주(Lord)로 받았다는 것은
- 예수께서 구원자로 오셨고,
-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 들여서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모든 복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를 "주(Lord)"로 받은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다는 진리를 믿지 못하는 사람, 마음에 의심이 있는 사람들은 예배를 통해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음으로, 예수를 주로 받음으로 복을 받은 사람은 "그 안에서 행하되"라고 했습니다(골2:6). 이 말씀은 "삶 전체를 그분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잠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함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시적인 지적 감동이나 일시적인 감정에 의한 흥분에 의해 예수 믿는다고 고백하고 예수 믿는다고 교회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속에, 생활속에 표현되어야 하는 신앙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문 성경에 보면 "그 안에서 행하되"라는 말씀이 "~, continue to live in him,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안에서 살되 "계속해서, 변함없이"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분 좋을 때는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 하다가 기분 나쁠 때는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칭찬하고 박수 쳐 주면 신앙생활 잘 하고 일 하다가 지적 받고 비난 받으면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생활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그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골2:7)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이 성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의 뿌리를 어디에 박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경에 어디에 뿌리를 박으라고 했습니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영양분을 받아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신앙의 뿌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리면 누가 뭐래도,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에 변함이 없습니다. 때로 눈물 흘리고, 손가락질 받아도, 땀흘려 봉사하는데 가슴 아픈 소리를 들어도…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 내린 신앙은 견고히 서 있습니다. 물론 가끔 흔들리기도 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마음 상하는 일에, 말에 흔들릴 수 있고 휘청 거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뿌리는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요동이 없습니다. 잠시 흔들리는 것 같지만 든든한 뿌리로 여전히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다가 어떤 사람이 마음 아픈 이야기를 하고, 여러분을 향해 손가락질 하고, 때로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을 뽑는 일이 있어도, 조금 흔들릴 수는 있지만 그 뿌리가 요동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누가 흔들거든 "그래, 흔들어라~ 재미있다. 내가 뽑힐 줄 아냐~" 오히려 즐길 줄 아는 여유 있는 믿음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가끔 속상한 소리, 터무늬 없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게 "아유 누가 목사님을 속상하게 하겠어요"하십니다. 아주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목사의 눈에서 눈물을 뽑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고,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도 합니다. 길을 가다가 눈이 아파서 한쪽 눈을 찡그리고 눈을 비비면 윙크했다고 하고, 제 시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인사하는 사람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갈 때는 "목사님은 내가 인사했는데도 아는 척도 안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승용차의 창에 썬팅을 해서 누가 운전하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운전을 하고 가다가 목사님 차를 발견하고 목이 아프게 인사를 했는데도 쳐다 보지도 않고 갔다"고 하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누가 인사를 하는지 보여야 말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 마음 속에 "사람이 많아 그렇지"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없으면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인이 아무도 없는 개척교회에서 사모님하고 둘이 앉아서 목회하는 전도사님, 목사님들이 그런 말을 듣겠습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워낙 큰나무는 감히 못 건드립니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밑에서 긁기만 합니다. 지나가는 개가 오줌을 누어도 오히려 더 잘 자랍니다. 잠시 나무가 흔들려도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큰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요동함이 없는 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 (~overflowing with thankfulness).
"넘치게"라는 말은 영어로 "overflowing"이라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컵에 물을 적당히 붓는 것이 아니라 넘쳐 흐르게 담는 것을 말합니다. 물이 넘쳐 흐르듯이 감사를 넘치게 하라는 말입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생명 주신 것에 감사하고, 살려 주신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기둥교회에서는 권사님 한 분, 집사님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떤 성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무슨 교회가 초상이 나면 알려 주어야지 광고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둥교회에서는 평균 일주일에 3건은 초상이 나는데 매 주일, 매 예배 때마다 "초상났습니다. 초상났습니다"하고 광고하면 사람들이 "기둥교회에 가면 죽나보다"하는 생각을 가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초상이 나면 관계되는 사람과 선교회원들에게만 알리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에도 3가정이 슬픔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한 일 아닙니까.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옷 입을 수 있고, 밥먹을 수 있고, 누워 잠잘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필리핀에서 입지 않는 옷, 안 쓰는 식기류… 등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 여름에도 몽골에 선교하러 청년들이 가게 되는데 겨울 옷을 걷어 달라고 합니다. 여러분, 입을 옷이 없습니까? 저는 "교회에 올 때는 노출이 심하지 않은 어깨를 가리는 옷을 입으라, 양말을 신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없어서 먹지 못하고, 없어서 못 입고, 없어서 양말을 신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있는데도 여유를 부리고 멋을 내는 것입니다.
가정이 있음에, 신앙생활 하면서 교회가 있어 예배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0년 동안 기둥교회가 빛 되고 소금된 일을 하면서 멋진 예배당을 짓고 끊임없이 베풀고 교회를 세우고 돕는 일을 하면서도 대지를 확장하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은혜와 복인 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이(7월 1일) 기둥교회가 창립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창립 30주년 준비 위원들에게 가장 오래된 성도는 누구인지, 교사와 찬양대원으로 오랫동안 봉사한 사람은 어떤 분들인지 조사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한테 감사패와 선물을 주자는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30년 가까이 봉사한 안내위원, 속회강사, 주방 봉사자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저 혼자 고민하다가 마음 속에 결정을 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아무 것도 안 주기로 했습니다. 창립 30주년에 몇몇 사람에게 포상을 하려다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줄 뻔 했습니다. 그래도 30주년인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너무 섭섭해서 모든 교인들에게 잔치떡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중부연회 원로목사님들이 70여명이 되는데 그분들을 모두 초청했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제외하고는 40~50여명이 오실 수 있다고 하는데 정성껏 준비하여 식사 대접을 하고, 지금은 은퇴를 하셨지만 그분들에게 "우리 기둥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은혜와 평강 속에서 복받는 삶이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요청 하려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30년 동안, 10년, 5년 동안 무엇을 했든지 교회에서 땀흘리고 봉사한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6장 1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칭찬 받고, 박수 받으면 하늘 나라에 가서 받을 복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알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맥추감사절(창립 30주년 기념주일)
다음 주일은 창립 30주년 기념주일이기도 하지만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반 년 동안의 삶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처음 지킨 절기이며 그들은 중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맥추감사절을 지켰습니다(출23:14-17). 맥추절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기 때문에 초실절(初實節)이라고도 하며, 유월절을 지나 일곱째 주일에 지킴으로 칠칠절(七七節)이라고도 합니다. 맥추절은 수고하여 얻은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 감사가 더욱 넘쳤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맥추감사절을 지켜야 할까요?
성경에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4장 22절에는 칠칠절 곧 맥추절을 지키라고 했고, 신명기 15장 9-10절에서는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것이 아닌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처음 익은 열매(초실) 주심에 감사하는 것이 당연한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자와 불평하는 자는 전혀 다른 심령상태를 가지게 됩니다. 감사하는 영혼은 기쁨과 축복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나 불평 불만을 토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두움의 생활을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이고 불평은 축복의 문을 잠그는 자물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리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1장 3절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기 때문입니다.
감사자에게 감사의 조건을 더하시며 어디서나 천국의 삶이 됩니다. 성경에 의하면 첫열매를 드리는 절기인 이 맥추절은 유월절 절기가 시작되면서 50일 후에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유대 월력으로 세 번째 달 첫날입니다. 이는 유대 민족이 지키는 두 개의 추수절 중 첫 번 것으로 곡식에 처음 낫을 댄지 7주 후에 지키는 절기입니다(신16:9).
지금 세상이 어떻습니까? 감사를 모르고 자기만 아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남을 고려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책을 한 권 읽다가 중간 정도 쯤 읽고 책을 덮었습니다. 앞으로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중간쯤 책을 읽다가 웃기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더 이상 책을 그만 읽기로 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호화유람선이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세계를 여행하다가 대서양 가운데서 암초에 부딪쳐서 배에 구멍이 났습니다. 얼마 있으면 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배에 있는 구명 보트를 내리고 모두들 보트에 옮겨 탔습니다. 그런데 한 보트는 4명 밖에 탈수가 없는데 7명이나 탔습니다. 보트가 가라앉으려고 합니다. 3명이 바다에 뛰어 내려야 하는데 그 중에 누가 바다로 뛰어 내리겠습니까? 서로들 남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이때 영국사람이 벌떡 일어서더니 "대영 제국 만세!"를 외치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모두들 역시 신사의 나라 영국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이어서 미국 사람이 일어서더니 "미국 만세!"를 부르고 바다에 뛰어내렸습니다. 이제 한사람만 더 내리면 나머지 4명이 구출 될 수 있습니다. 그 보트에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홍콩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아무도 내리려 하지 않고 다들 옆 사람의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그러면 그렇지. 역시 동방 예의지국…"하고 있는데, 이 한국 사람은 "대한 민국 만세!"를 외치고는 옆에 있는 일본 사람을 확 떠밀어 바다에 빠뜨렸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의 마음 자세입니다. 옆 사람을 밀어 내고도 나만 살면 된다고 하는 의식의 반영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피해를 볼 지, 얼마나 불편할 지에 대해 고려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일 3부 예배 후에 어떤 분이 기도를 해 달라고 해서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꼼짝할 수도 없을 만큼 차가 빽빽이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들이 바르게 주차되어 있으면 다행인데 지난 주에 주차된 모습은 기둥교회 교인들이 주차해 놓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야만인들이 주차해 놓은 것 같이 엉망이었습니다. 주차선 안에 바르게 주차해야 다른 사람들이 그 옆자리에 주차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중간 통로에 주차할 때는 핸들을 정확히 놓고 기어를 중립에 두어야 다른 사람이 그 차를 밀어서라도 나갈 수 있을 텐데… 핸들은 있는 대로 꺾어 놓고 차 문은 잠가 두면 어떻게 합니까. 통로에 주차했으면 예배를 마치고 빨리 내려와 차를 빼주어야 다른 사람들이 나갈텐데 어디에 갔는지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주차장이 비좁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부천에서 우리 기둥교회만큼 주차하기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역 근처에 있는 해태빌딩 주차장에 주차하면 됩니다. 그곳이 걸어서 1시간이 걸리는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3분이면 됩니다. 좀 더 걸으면 부천역에 수백대의 차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이 있습니다. 돈을 내야 한다구요?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도 주차비를 냅니다. 교회의 주차장은 어려운 사람, 장애자들, 병든 사람을 모시고 오는 사람, 먼 곳에서 교회에 찾아 오기에 급급해서 달려 나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자고 해도 들은척 만척입니다. 성경 66권 1189장 어디를 보아도 천국에 주차장이 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주차장 타령을 하는 사람은 천국에 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주차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착한 사람으로 이웃을 고려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밀쳐 내고도 살아남은 한국 사람을 보고 박수를 치는 민족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생을 받고(요3:16), 하나님의 자녀되고(요1:12), 천국의 시민권을 받고(빌3:20) 복된 자가 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리고 견고한 신앙생활을 하며 감사함을 넘치게 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며, 범사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답게
이 세상에서도 선한 사람으로, 칭찬 받는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구하옵기는 예배 드리기 위해 나온 모든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뿐 아니라 세상에 칭찬받는 삶이 되기 위해
땀흘리고 애쓰며 희생하는 그 모든 일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땀흘리고 애써 모은 물질 가운데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금, 건축헌금, 대지확장헌금… 등
여러 가지 제목으로 정성껏 예물을 드리려고 합니다.
준비한 손길 위에 복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2001년 6월 24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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