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치고… 버리라 2001-12-25 17:11:24 read : 1069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시편 37편 1-8절)
할렐루야!
우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인터넷에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수진)이 제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은 아직 못했습니다. 편지 내용 중 일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시골에서 비가 안와서 곡식이 잘 안자라고 있어요.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 비가 안오면 곡식이 많이 굶어서 우리가 다 죽어요. 목사님, 비좀 내리게 기도해 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비가 안오면 곡식이 안 자라고 다 굶어 죽으니까 기도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가뭄이 자연재앙으로 그칠 수도 있으나 성경에 보면 이런 자연재앙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적도 많음을 압니다. 이럴 때 우리가 가만히 지켜 보고 사람들끼리 돈이나 모아서 양수기만 갖다 댄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허물과 죄를 자백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리 기둥교회 주변에도 보면 생기는 것이 술집입니다. 전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이렇게 온 국민이 목숨을 걸고 술을 많이 먹는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습니다. 술 만드는 데 드는 물을 논에 대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만큼 그렇게 우리나라가 술 먹는 일에, 방탕한 일에 으뜸 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이 오늘 예배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전에 우리 두 손 높이 들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복된 날, 하나님께 예배 하는 자리에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이 뒤숭숭하고 경제적으로 힘들며
날은 더워 짜증나는 이 때에 그래도 우리 누울 곳이 있고
먹을 밥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가뭄으로 어렵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가뭄으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합니다.
우리는 먼저 만물을 주관하시고 창조하신 하나님께 구하오니
주여 이 땅에 비를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계절의 가뭄 뿐 아니라 경제적인 가뭄과
영적인 가뭄을 두려워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들이 손 들고 기도하옵나이다.
연약한 저희들이지만 우리의 들려진 손을 붙들어 주시옵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온 땅이 가뭄으로 어렵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농사 짓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어렵다고 야단입니다.
하나님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경제적인 가뭄도 있습니다.
주여, 저들의 경제적인 가뭄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적인 가뭄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이럴 때 일수록 더 많이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듦으로 실패함으로 어려운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기둥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구합니다.
평안한 양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군대에, 객지에, 선교사로, 유학생으로, 취업으로 외국에 나가 있는 성도들
하나님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 거룩한 주일 예배를 위해
숨은 자리에서 수많은 봉사자들이 땀흘리고 있습니다.
저들의 봉사가 헛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즘에는 사람들이 쉽게 병들고 쉽게 죽습니다. 특별히 갑자기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갑자기 죽는 것을 '돌연사(突然死)'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40대 이후에 많았던 돌연사가 지금은 30대에도 많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한 사람이 신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맥박을 증가시키고 혈압을 상승시켜 협심증과 심근경색 등 돌연사와 직접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일보 5월 10일]
다시 말해서 돌연사의 주 원인이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stress)'라는 말은 '강조, 중점, 압력, 압박, 긴장'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트레스의 대부분이 "분노"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화를 내십니까? 지난 한주간 동안에 화를 몇 번이나 내셨습니까? 우리는 차분하게 사는 듯 해도 의외로 화를 많이 냅니다. 우리는 대개 남에게 잘못한 것은 생각지 못하고 남이 나에게 잘못한 것만 문제를 삼습니다. 그렇게 분노를 가지고 화를 내는 것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친구를 잃어버리고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는지요?
성경에서는 "분 내기를 더디 하라"고 했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에 화낸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토록 화낼 일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우리가 삶속에서 저지른 죄나 허물을 보시고 그때 그때 분을 내셨다면 우리가 과연 '오늘을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노는 인간을 비참하게 하는 죄중의 하나입니다. 엄마의 젖을 빠는 아기도 화가 나면 젖을 빨지 않는다고 합니다. '분냄'은 자신의 삶의 방법까지도 포기해 버릴 수 있는 무서운 것입니다. 분노라는 것은 부부사이도 갈라 놓고 심하면 가정을 파괴해 버립니다. 분노는 사탄이 이용하는 가장 적절하고 쉬운 도구일 수도 있습니다. 신앙적인 질서를 무너뜨리고 교회와 등을 돌리게 하고 결국 하나님을 등지게 하기도 합니다. "원망과 분노, 분노와 원망",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진 감정의 한 표현이지만, 너무도 쉽고 편하게 짓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막혔던 홍해를 기적으로 건넜고, 광야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렸던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되었습니다. 매 순간순간,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많이 쉽게 지은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을 인도하여 낸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는 것이었고,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분을 내었습니다.
원망과 분노 그것은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가진 기본적인 감정입니다. 문제는 그 기본적인 감정을 조절하고 관리(control)하지 못하면 분을 내고 그로인하여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분노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향해 쉽게 분노하고 원망합니다. 심한 사람은 욥의 탄식과 같이 자신을 원망합니다. 욥기 3장 11절에 보면 욥은 "내가 어머니의 태에서 차라리 죽어 나왔더라면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하며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까지 원망하고 분노했습니다.
자신을 향해 분노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외모, 출생, 삶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키는 왜 작을까, 몸매는 왜 이럴까, 그 흔한 쌍꺼풀이 내 눈에는 왜 없을까?… "
여러분, 제 눈을 자세히 보셨습니까? 제 눈이 굉장히 예쁘게 생겼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안 믿으시겠지만, 안경을 벗은 제 눈을 보면 어떤 여자분들은 제 눈과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 쌍꺼풀이 있고 예쁘다고 해서 어디에 가면 밥을 더 주지도 않습니다. 물건을 사러 가도 쌍꺼풀이 있다고 물건값을 깎아 주는 법도 없습니다. 무엇이 다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까만 머리카락이 맘에 안 든다고 노랑색, 빨강색으로 염색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사람들 가운데는 노랑머리가 싫어서 검정색으로 염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염색하는 것에 대해 노인분들은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노인분들의 흰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는 것은 문제가 안되고 젊은 사람들의 검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것에 대해 흉하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백발은 노인의 영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흰머리를 검게 염색하면서 검은머리를 노랗게 염색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기 자신에 대해 감사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신경쓰기 때문에 머리 색도 바꿔보고 옷차림도 이런 저런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분개합니다.
미용실에 가서 손질하고 나온 여자들 가운데 자기 머리 모양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예쁜 모습에 대해서는 일단 배가 아프기 때문에 칭찬하기 보다는 "파마가 덜 나왔네. 너무 꼬부라졌네… "하면서 흠을 잡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 분개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분노합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원망하고 분노하는 것에서 발전하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분개하고 원망합니다. 남편을 향해 분개하고 아내를 향해 분개합니다. "아이구 내가 미쳤지 눈에 콩깍지가 씌였지. 내가 저런 인간을 만나다니…"하면서 투덜댑니다. 친구 잘못 만나 그렇고, 선생님을 잘못 만났다, 교수 잘못 만나서 이 모양이 되었다고 모두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댑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속회 강사가 틀렸고, 선교회장이 틀렸고, 임원이 틀렸고, 찬양대의 지휘자가 어떻고, 반주자가 어떻고… 다 남에게만 핑계를 댑니다. 자신은 아무 흠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다가 그 분노가 세상으로 확대됩니다. "이 놈의 세상이 왜 이런가"하면서 세상 탓만 합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1절)
본문 시편 37편 1절에 보면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불평하다 불평하다 행악자에게까지 불평을 했습니다. 불의한 자들이 그릇된 방법으로, 악한 방법으로 타인의 땀을, 피를 빼앗아 풍족하게 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불평하며 실망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들이 잘산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원망하고 손가락질 하지만 자기가 급할 때는 그 사람들처럼 합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악하게 라도 잘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Christian)"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지만 이 세상의 법, 이 세상의 조건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나와 세상법에 어울려 사는 내가 갈등을 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 갈등이 너무 심해서 로마서 7장 24절에 보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7장 21절에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답게, 세례 받은 사람답게, 집사·권사·장로의 직분을 받은 사람답게 살려면 갈등이 생깁니다. 매일 매순간 선택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니 세상적인 것을 손해 봐야 하고 세상적인 것을 따르자니 하나님이 두려운 마음이 우리들 속에 있습니다.
본문 시편 37편 3절에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3절)
여러분은 무엇에 의존하고 계십니까? 돈을 의지하십니까? 권세를 의지하십니까? 세상의 향락을 의지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진정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야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려는 마음을 갖고 계십니까? 아니면 돈에 의지하여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하십니까? 건강을 자신하면서 떵떵거리며 "건강해야 돼. 잘 먹어야 돼"하며 먹는 일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라(4절)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은 다시 말해서 기쁨의 근원을, 기준을 하나님께 두라는 뜻입니다.
전 세계 민족 가운데 한국 사람들처럼 여름이면 모든 사람이 반팔 옷을 입고, 겨울이면 모두 긴옷을 입는, 유행을 따라 똑같이 입는 민족이 없다고 합니다. 제가 터어키에 다녀왔습니다. 그곳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30도가 넘는 더위에 반팔 옷을 입고도 그것 조차 벗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본 어떤 남자가 검정색 가죽잠바를 입고 있었습니다. 너무 이상해서 사진을 같이 찍고 싶었는데 그 사람이 화낼까봐 속으로 "별난 사람 다 봤네"하며 사진을 찍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가다 보니 이번에는 어떤 여자가 털이 달린 롱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영상 30도의 온도에도 자신이 춥다고 생각하면 겨울옷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것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판단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맞춰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사람으로 기준을 삼지 말고 하나님께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5절)
"네 가는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길"이라는 말은 '가는 길'이라는 뜻 외에 "방법"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가든지, 그 방법도 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목사님, 뭘 모르시는데 성경대로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라고 되묻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탄식하고, 원망하고 분을 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삽니까? 우리만 그렇습니까? 성경에 보면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 1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좋은 것을 잊어 버리고 기억해 내지 못하는 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 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 때문에 죄에 빠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며 고생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에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엇고 하나님이 그 고통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도자 모세를 세우시고 출애굽시키셨습니다. 홍해를 건넜고, 음식없이 죽을 위기에서 만나를, 고기를 먹기 원할 때 메추라기를 먹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은혜를 잊고 민수기 11장 1절에 보면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받은 은혜와 받은 사랑, 받은 축복을 잊어 버리고 기억하지 않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시103:2)라고 했습니다. 은혜 받은 것을 잊고, 좋았던 것을 잊고, 감사한 것을 잊어 버립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마음속에 기본적으로 과거를 '미화'(美化)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어제 오후에 교회 주방에서 쑥을 넣고 만든 "쑥떡" 다른 말로 "개떡"이라고 하는 떡을 가지고 왔습니다. 여러분, 개떡이 맛있습니까? 솔직히 맛은 없습니다. 옛날에 먹던 음식이니까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요즘에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많습니까. 정말 입에서 살살 녹는 맛있는 음식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개떡이 뭐가 맛있습니까? 보리밥은 맛있습니까? 옛날에 먹던 것이라 먹는 것이지 요즘 아이들한테 보리밥이 맛있다고 자꾸 먹이면 방구만 나오고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 수제비는 맛있습니까? 우리 기둥교회 근처에도 수제비를 맛있게 하는 음식점이 있다고 하는데 수제비가 솔직히 그렇게 맛있습니까? 얼마나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 많은데요… 옛날에, 고생할 때 먹었던 음식이라 먹는 것이지 정말 맛있어서 먹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당시에 고생하고 힘들었던 때를 지금 미화시켜서 아이들에게도 맛있다고 먹으라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옛날 음식을 별로 먹지 않습니다.
저도 우리 집 아이들을 데리고 전통한식집에 가서 음식을 먹었었습니다. 저는 이것 저것 넣고 비벼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아이들이 다 먹고 나서 제게 "다음부터는 아버지 혼자 오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입맛에는 그런 음식이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마음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얼마나 고생했으면 하나님께 "하나님, 여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고역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고 기름진 가나안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농사 짓지 않아도, 고기 잡지 않아도 될만큼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았을텐데…"하며 옛날을 그리워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인도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을 다 잊어 버리고,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과 기쁨에 대해 감사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즘 사는 우리들이나 옛날 사람들이나 똑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처음 배고픔의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이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출애굽기 16장 31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똑같은 만나를 먹게 되었던 그들은 민수기 21장 5절에 "~우리 마음이 이 박(薄)한 식물을 싫어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꿀섞은 과자같이 맛있었는데 이제는 이 거친 음식이 진저리가 난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만나를 먹었을 때의 꿀섞은 과자같이 맛있었던 그 마음처럼, 예수 믿고 은혜 받아 처음 집사, 권사, 장로가 되었을 때 가졌던 그 결심과 마음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이 처음 만나고, 처음 사랑했을 때, 처음 결혼할 때 다짐했던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 맛들을 잊어 버리고 이 거친 음식이 싫다고 원망하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도 새롭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기 원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재미있고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곳이고, 듣는 곳이어야 합니다. 좋은 곳, 재미있는 곳을 찾아 다니는 분들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교회가 좋고 재미난 곳이라면 거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땅바닥 아래로 떨어진 곳일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목회하던 초대교회도 문제가 있었고 그 위대한 사도 바울이 세우고 목회한 교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기둥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문제를 끌어안고 아파하며 기도하고 눈물 흘리고 그 문제의 책임자가 '나'라고 하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이런 문제가 있고 저 교회는 저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 문제를 끌어안고 얼마나 울어 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세상에 살면서 분을 내고 화를 내며 다른 사람에게 찡그린 얼굴을 보여 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자세를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께 기쁨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길과 방법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기 때문은 아닙니까?
간혹 화를 잘 내는 사람들 가운데 "뒷 끝은 없어요. 뒷 끝은… 저는 한번 화내면 그만이지요" 라고 하시는 분들은 잘 들으십시오.
어느 날 한 목사님이 분노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예배가 끝나자 어떤 부인이 목사님께 다가갔습니다.그 부인은 자기가 성질이 너무 급해서 고민이라며 목사님에게 자기 문제를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작은 일에 가끔 폭발을 하지만, 그리고 나서는 뒤가 없습니다.금방 풀어 버립니다.마음에 두고 꿍하고 있지는 않지요.일분도 안 걸려 그 사람하고 그 자리에서 다 툭툭 털어 버리고 끝납니다”
목사님께서 그 부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정중히 말했습니다.“총과 대포도 그렇습니다.한 방이면 끝나지요.오래 안 걸립니다.그러나 한 방만 쏘아도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한 방 쏜 총에 맞은 사람은 죽습니다. 꽝하고 한번 터진 대포로 인해 건물은 무너집니다. 다 박살나지요. 당신이 한번 터뜨린 분노에 다른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받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픈 시간을 갖습니다.”
분노는 터지고 나면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이스라엘 백성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분쟁을 계속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한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후예입니다. 자기들도 한 할아버지의 후예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싸우고 있습니까? 그들의 분노와 원수 갚음을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향해, 이웃을 향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고 원망하고 분내고 노하는 것을 그치고 버리시기 바랍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복된 주일, 교회에 찾아 나와 예배 드립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며 선을 행하고
여호와를 기뻐하며, 길을 여호와께 맡기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하고 믿음 없는 저희들을 도와 주시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결단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세상에 살면서 땀흘려 애써 모든 것 가운데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금, 건축헌금, 일천번제예물
여러 가지 제목으로 이 시간 예물 드리려고 합니다.
저들의 정성을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2001년 6월 10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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