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딸: 저자 박혜란 목사, 입을 열다 / 이단에 빠진 아내 때문에 교회 떠나는 대전중앙교회 이목사 2015-04-03 11:38:47 read : 2873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목사의 딸: 저자 박혜란 목사, 직접 입을 열다
책에 대한 논란 일축…"숨기려 말고 한국교회 문제 직시해라" 장성현 기자
▲ 박혜란 목사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그의 자택에 머물고 있었다. 거실에는 박윤선 목사와 김애련 씨가 젊었을 적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었다. 박혜란 목사는 어머니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해 가족사진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고 박윤선 목사의 숨겨진 가족사를 다룬 책 <목사의 딸>(아가페북스). 책이 출판된 지 4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치열해졌다. 처음에는 박 목사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목사의 딸>이 왜곡된 시각으로 쓰인 책이자, 한국교회에 해악을 끼치는 책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관련 기사: <목사의 딸>, 한국교회에 득일까 독일까)
최근에는 한발 더 나가, 책 내용이 대부분 허구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관련 기사: <목사의 딸> 박혜란의 사촌 형부 목사, "이 책은 거짓") <뉴스앤조이>는 사실 확인을 위해 곧바로 박혜란 목사와 인터뷰를 추진했다. 하지만 박 목사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제약이 따랐다. 결국 박 목사가 귀국하는 3월 중순까지 기다려, 박 목사를 직접 만나 보기로 했다.
박혜란 목사는 박윤선 목사와 첫째 부인 김애련 씨의 3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1970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45세 늦은 나이에 덴버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할렐루야교회에서 성경대학 강사로 활동하다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뉴스앤조이>는 3월 25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박혜란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박 목사는 사이버 강의 녹화를 위해 3월 19일 한국을 찾았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70이 넘은 나이 탓인지 귀에 보청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질문에 답할 때면 막힘이 없었고, 사전에 전달한 질문지에도 하나하나 답을 달아 놓았다.
인터뷰는 3시간가량 진행했다. <뉴스앤조이>는 집필 동기부터 박윤선 목사의 상습적 폭행, 김애련 씨(박윤선 목사의 첫째 부인)의 소천 당시의 상황 등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박 목사는 어떤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스스로 '컴맹'이라 자처하는 그이지만, 주변에서 하도 말이 많아 인터넷에 어떤 글들이 올라왔는지 직접 찾아봤다고 했다.
▲ 박혜란 목사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 특히 힘들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책 내용은 모두 사실"
박 목사는 책에 진실이 아닌 내용이나 과장된 내용은 없다고 했다. 편집인이 내용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문장 순서를 바꾸거나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려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소제목이나 과장된 표현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내용은 자신이 갖고 있던 자료(편지, 일기)를 토대로 작성했다고 했다. 책에 담지 못한 더 심한 사건도 있지만, 글의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라 넣지 않았다고 했다.
집필 동기는 분명했다. 진실을 남기기 위한 목적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했다. 박윤선 목사는 신학적으로나 인성적으로 분명한 결함이 있는데, 한국교회는 박 목사를 우상 섬기듯 추앙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잘못된 유산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그 폐해가 한국교회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3년 전에 합신대학교에서 정암 기념 사업회를 열었다. 강단에서 아버지 설교를 복창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세 권짜리 책도 냈다. <부르심, 네 꼴 보고 은혜를 받겠느냐>, <기도, 죽기 내기로 기도하라> 등이었다. 내용은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제목부터 문제가 심각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다. 죽기 살기로 하는 걸 어떻게 교제라고 할 수 있나? 아버지는 이런 것들을 많이 강조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
아버지의 잘못된 가르침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아무런 성찰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기도를 열심히 해서 뭘 받아 내려고 한다. 우상숭배다. 마치 신령 나무에 딱 매달려 놔주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기를 쓰고 교회에서 살게 하고, 헌금하게 하고, 봉사하게 한다. 다 교세를 늘리기 위한 방편이지, 교회의 본래 가치가 아니다. 아직까지 이런 내용의 책을 팔고, 설교하는 게 문제다."
아버지는 '개인' 아닌 한국교회 '지도자'
박혜란 목사는 아버지의 허물을 들춰내기 위해 책을 쓴 게 아니라고 했다. 아버지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이고, 아버지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에 집필을 다짐했다고 했다. 그 역시 논란이 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이렇게까지 크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김수흥 목사(박윤선 목사의 조카사위)가 <목사의 딸>을 비판하며 창세기의 노아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노아)가 술에 취해 벗었을 때 아들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버지 행동을 떠벌렸으나, 셈과 야벳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나를 함과 비교한 것이다. 하지만 노아와 아버지는 완전히 다르다. 노아는 한 개인이지만, 아버지는 한국교회의 지도자다. 하나님은 지도자였던 모세의 잘못은 엄중히 꾸짖으셨다. 아버지 역시 지도자로 숭배를 받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한 개인에 불과했다면 이런 책을 쓸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지만,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아직도 아버지를 성인 모시듯 한다.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주변 목회자들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한국교회 문제를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박윤선 목사에 대한 비판이 필요했다. 마침 나에게 자료가 많았고, 한국교회를 위해 책을 쓰게 됐다."
▲ 박 목사는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전에, 한국교회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비춰지고 있는지, 한국교회가 본질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목사의 딸>은 삼류 소설?…"아버지는 욱하는 스타일"
박윤선 목사 가정과 가까이 지낸 박 목사의 제자들은 책의 내용이 허구라고 말한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박윤선 목사의 조카사위였던 김수흥 목사는 책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글을 <뉴스앤조이>에 기고했고, LA에 사는 박혜란 목사의 이복동생인 박성은 전도사도 참고 자료라며 장문의 메일을 <뉴스앤조이>에 보냈다. 이들은 책의 내용이 대부분 허구라고 주장했고, 박 목사의 저의를 의심했다. 박혜란 목사에게 이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먼저 박윤선 목사가 김애련 씨와 자녀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일부터 물었다. 박혜란 목사는 사실이라고 했다. 박윤선 목사는 분노가 많고 성미가 급한 성격이어서 폭행은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고 했다. 집에 잠깐 머물고 돌아갔던 외부인들이 폭행 사실을 모르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김애련 씨)께 다녀왔다고 인사했다. 평소 같았으면 왔느냐며 반갑게 맞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방 안에 가만히 숨어 계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렸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을 여러 번 목격했다. 춘호 오빠(박윤선 목사의 첫째 아들)나 요한 오빠(박윤선 목사의 둘째 아들)는 더 자주 목격했다. 언니 오빠들은 어머니가 맞는 모습도 봤다. 밖에서는 성인처럼 추앙받는 아버지였지만, 가정에서는 자녀들과 어머니께 폭력을 행사하는 분이었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우리를 더 힘들게 했다.
재혼하고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화주 어머니(박윤선 목사의 둘째 부인)가 오신 후로는 자녀들에게나 어머니에게나 폭력을 쓰지 않았다. 아예 말대꾸 자체를 하지 않았다. 싸움을 걸어오면 가만히 계셨다. 어머니(김애련 씨)가 갑작스럽게 떠난 후로 충격을 받으셨던 것 같다. 조강지처가 빨리 죽은 사람들은 후처에게 굉장히 잘한다. 또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서다. 이복동생들은 아버지의 예전 모습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와 성은이는 14년 차이가 난다. 우리 형제들은 이복동생들에게 예전 일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박윤선 목사와 김애련 씨가 다툰 이유를 자식들 때문이라고 한다. 교단이나 신학교 내에서 박 목사가 바른 소리를 하면 "박 목사는 자기 아들이나 잘 다스리라"는 소리를 들었고, 이런 문제가 부부 싸움의 발단이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목사는 첫째 오빠(박춘호 씨)의 비행으로 아버지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버지의 잘못에서 비롯된 싸움도 잦았다고 했다.
"춘호 오빠는 아버지의 의처증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임신을 피하기 위해 잠자릴 거부하시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의심했다. 낮에 남자가 집안에 뭘 고치러 와도 큰 싸움이 났다. 춘자 언니(박윤선 목사의 첫째 딸)는 아버지의 급한 성미를 싸움의 원인으로 생각했다.
돈 문제도 있다. 많은 사람이 아버지께서 가난한 신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신 내준 일을 회자한다. 헌데, 어느 누구도 어머니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녀는 6명이고, 신학생들과 손님들은 거의 매일같이 집에 찾아와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모든 일을 어머니와 상의 없이 혼자 결정했다. 어머니는 홀로 가정 살림을 떠안고 있었다."
"내막도 모르는 사람들이 거짓 운운"
▲ 박혜란 목사는 아버지가 겉으로는 거룩하게 보여도, 그 이면에 감춰진 모습도 많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목사의 딸>에는 김애련 씨의 사망 당시의 상황이 자세히 나온다.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이던 박윤선 목사는 김애련 씨 사망 후 10일 만에 귀국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박혜란 목사가 아버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당시 정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글을 썼다고 비판한다.
"귀국이 늦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시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귀국 후 행동이 문제였다. 충격에 빠진 자녀들에게 아무런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자기 할 일에만 몰두했다. 그 뒤로도 어머니의 추도 예배를 한번도 드리지 않았고, 어머니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재혼 문제도 그렇다. 아버지가 공부와 목회만 아는 분이었고, 젊었기 때문에 여자가 필요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당시 요한 오빠는 17살이었고, 나는 13살이었다. 자녀들에게 허락을 구했어야 했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알려는 줬어야 했다. 따로 나가서 살 것 같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집으로 데리고 올 사람이라면 결혼 전에 결혼한다는 말이라도 해야 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박윤선 목사의 둘째 부인인 이화주 씨가 전처의 자녀들을 차별했다는 내용은 사실일까. 책에 따르면 이화주 씨는 전차와 후처의 자식들을 차별하고, 전처의 자녀들에게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박윤선 목사의 제자들은 이화주 씨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후처로서 전처 자녀들에게 그만큼 잘한 분도 없다는 것이다.
"책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집에 잠깐 들러서 아버지와 얘기나 하고 돌아갔던 사람들이다. 부엌에서 살림을 도와줬던 아주머니들이 그들보다 집안 사정을 더 잘 알 것이다. 남자들은 그런 걸 볼 수도 없고, 또 그들이 보는 앞에서는 이화주 어머니가 저주하는 말을 뱉을 수도 없다. 허순길 박사는 단열(박윤선 목사의 셋째 아들)의 공부를 봐주기 위해 집에 들락거렸다. 허 박사와 인사는 했지만, 한번도 대화를 해 보지 않았다. 글을 보니까 나를 혜란이라고 부르더라 상당히 불쾌했다.
이복동생들이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 또한 당연하다. 우리 형제들은 이화주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외부에 전혀 말하지 않았고,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나와 제일 가까운 분인 외숙모에게도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버지께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께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걸 집념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어떤 이들은 이화주 어머니가 남에게 돈을 꾸어 나의 대학 등록금을 대 줬는데 어떻게 차별 운운할 수 있냐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도 사실이 아니다. 돈 꾸는 일은 자주 있었다. 등록금 말고도 생활비가 항상 부족해 큰아버지 신세를 많이 졌다. 당시 서울대학교 등록금은 다른 대학의 반도 안됐다.
4년 내내 등록금을 대 준 것도 아니다. 1년간은 가정교사를 하면서 스스로 학비를 마련했고, 한 학기는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등록금을 낼 때면 항상 불평했다. 혜란이 등록금 때문에 못살겠다는 말을 자주했다. 집에 가면 그런 불평을 계속 늘어놓으셨다. 집에 가는 게 끔찍이 싫었다."
의문의 꼬리는 책의 출판 시기로까지 이어진다. 박윤선 목사와 이화주 씨가 살아 있을 때는 책을 내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책을 출판한 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반론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악랄한 말들이다. 도대체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5년 전부터 집필을 준비했고, 4년 전에 탈고했다. 아가페 출판사에 찾아가기 전에 ㅅ출판사와 ㅎ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했다. 두 곳 모두 처음에는 반겼다. 하지만 내부 회의를 거쳐야 한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고, 결국에는 출판을 못하겠다고 하더라.
내가 직접 아가페에 원고를 보내진 않았다. 친구에게 원고를 보여 줬고, 그 친구가 아가페에 원고를 보냈다. 아가페도 출판 여부를 놓고 직원들의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정형철 대표가 출판을 적극 지지했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늦어진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복수심이다 이런 말은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다. 처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20년이 넘었다. 진실을 남겨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책을 썼다."
▲ 인터뷰는 3시간 가까이 이어졌지만, 박 목사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어렸을 적 추억을 얘기할 때는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아버지에 의한 강제 결혼이었나…가치관 차이로 남편과 불화
결혼 문제는 어떨까. 박혜란 목사는 <목사의 딸>에서 자신은 결혼을 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박윤선 목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혜란 목사가 결혼을 밀어붙였다고 주장한다. 박윤선 목사가 신앙이 약했던 사람을 사위로 받아들일 리 없고, 둘은 죽고 못 사는 연애 끝에 결혼했다는 것이다.
박혜란 목사는 황당해했다. 도대체 자신의 연애사를 어디에서 듣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공대를 다니다 보니 주변에 남자들이 많았다. 나는 남자를 무서워했다. 결혼할 생각도 없었다. 현재의 남편이 졸업 후에도 계속 따라다녔다. 집에 가면 문밖에 와 있었고, 어딜 가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 당시에는 친구가 없어 외로웠고, 일할 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남편의 도움을 받았다. 그때부터 왕래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추호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부산으로 내려가시기 전에 그 남자와 결혼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 그냥 친구다"라고 했고, 아버지는 결혼할 사람도 아닌데 왜 만나느냐며 화를 내셨다. 만나는 남자가 있는데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하니, 아버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께 뺨을 맞았다.
아버지는 많이 불안해했다. 나 혼자 서울에서 지내는 것도 그렇고, 당시에는 일이 늦게 끝나 통행금지 시간이 다 돼서 집에 도착하곤 했으니 말이다. 당시에 나는 자존감이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 없이 자란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를 던진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과 결혼한 것 같다.
도대체 남의 연애사를 얼마나 잘 안다고 그런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의 결혼 문제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연애 얘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왜 남의 결혼 문제까지 추측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 반항했다는 얘기도 나오더라. 부모님께 꾸지람받은 일은 거의 없었다. 결혼 문제로 아버지께 처음으로 맞았다. 그때 아버지가 자유 방종 뭐 이런 말을 했고, 그 말을 어머니가 이복동생이나 김수흥 목사에게 얘기한 것 같다."
책에 쓰인 대로 그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가치관의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어느 정도 단념하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지낸다고 했다. 경제적인 상황도 좋아져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 수 있는 수준은 된다고 했다.
남편과의 불화로 불면증을 앓기도 했다. 젊었을 때부터 민감한 성격 탓에 종종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6년 전에는 증상이 심해져 전문 상담가를 찾아가 상담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남편과의 갈등이 누적되고, 나이가 들자 증상이 심해졌다. 하지만 지속적인 상담 치료와 목회 활동을 통해 현재는 거의 완치됐다고 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이화주 씨의 자녀들은 이복형제들을 친누나와 친형처럼 따랐는데, 박혜란 목사는 왜 항상 자신들을 이복동생이라고 부르는지, 동생들은 궁금해한다."
박 목사는 이복동생들을 차별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사용한 건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계모나 이복동생이라는 표현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이복동생(Half-Brother)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한인 교계에는 박윤선 목사의 전처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책에서 이복동생이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했다.
한국교회 갱신 위해 책 집필
박혜란 목사는 인터뷰 내내 아버지를 힐난할 목적으로 책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통해 한국교회가 말씀과 기도의 전통을 유산으로 받았고, 동시에 아버지의 한계를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그대로 답습한다고 했다. 한국교회를 위해 아버지에 대한 바른 평가가 필요했고, 아버지의 한계를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에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했다.
▲ 박 목사는 저녁 식사 후에는 항상 성경을 읽는다고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성경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고 했다. 자신은 철저한 문자주의자라며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 의미를 찾는다고 했다. 현재는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을 대조해 가며 잘못 번역된 부분을 수정하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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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에 빠진 아내 때문에 교회 떠나는 담임목사 대전중앙교회 이목사
고별 설교…노회에 시무 사면서 제출
이용필 기자
▲ 대전중앙교회 교인들은 이 목사의 사임을 만류하고 나섰다. 교회 현관문과 로비에 이 목사를 지지하는 플래카드 등을 내걸고 "함께 교회를 지켜나가자"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대전중앙교회는 이ㅇㅇ 담임목사님을 지키고 싶습니다." 3월 29일 일요일, 대전중앙교회 현관문 상단에 한 장의 플래카드가 걸렸다. 바로 밑에는 "하나님이 세운 목사님 결코 흔들리면 안 됩니다"라는 문구가 보였다. 대전중앙교회 이 아무개 담임목사의 사임을 만류하는 교인들이 이날 직접 설치한 것이었다.
교회 로비 곳곳에도 이 목사의 사임을 반대하는 플래카드 등이 내걸렸다. "한마음 한뜻 한 입술로 이ㅇㅇ 담임목사님과 끝까지 함께합시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길 잃은 양입니다." 본당 입구 오른편 벽면에는 편지와 다양한 색깔의 포스트잇이 부착돼 있었는데, 멀리서 보니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였다. 이 목사의 사임을 만류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날은 이 목사의 마지막 설교가 있는 날이었다. 이 목사는 아내 신 아무개 씨를 비롯해 은혜로교회 측 신자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3월 29일까지 시무하겠다고 3주 전 예배 시간에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아내가 이단에 빠진 목사, 교인은 지지·노회는 사임 희망)
강단에 오른 이 목사는 '사역자와 교회'(행 12:1-17)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고별 설교였지만 평소와 다르지 않았고, 교인들도 동요 없이 경청했다. 이 목사는 살면서 누구나 인생의 위기를 겪는다면서 절대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기도로 무장하자고 다독였다. 또 이번 일을 통해 교회가 더욱 강해지고 건강해지기를 바랐다.
교인들에게 한 가지 부탁도 했다. 사탄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교회 지도자들을 공격하는 전략을 펼친다면서 사역자들의 영과 건강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설교가 끝난 뒤 이 목사는 짧게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대전중앙교회에 부임한 지 16개월 정도 됐는데 부득이하게 하나님께서 쉬어라 하고, 교계는 여러 일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회복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 은혜로교회 측으로부터 사퇴 촉구를 받아 온 대전중앙교회 이 아무개 목사가 3월 29일 고별 설교를 했다. 이 목사는 교인들에게 이번 일을 통해 교회가 더욱 강해지고 건강해져 세움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설교가 끝난 뒤 통성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교인들은 웃으면서 이 목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일부 교인들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기자가 만난 다수의 교인은 이 목사의 사임과 관련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남자 집사는 "우리는 목사님이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목사님의 뜻이 완고하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여자 권사는 "목회를 참 잘하셨는데, 이렇게 일찍 떠날 줄 몰랐다"고 말했다.
▲ 4부 예배가 끝난 뒤,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이 목사의 뒷모습. 일부 교인들은 헤어짐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 기자는 이 목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목사는 더 이상 논란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거절했다.
앞서 이 목사는 3월 23일 예장합동 대전노회(강희섭 노회장) 조사처리위원회(조사위)에 시무 사면서를 제출했다. 이 목사의 아내 신 아무개 씨가 이단에 개입된 정황 등을 조사 중인 조사위는 3월 30일, 이 목사의 사임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대전중앙교회 측은 담임목사 사임 문제와는 별개로, 소송을 통해 은혜로교회 측에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은혜로교회의 접근 금지 가처분을 포함 손괴, 명예훼손, 허위 사실 유포, 폭행 등의 문제와 대해 이미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한편, 이 목사의 사퇴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여 온 은혜로교회는 또 시위를 열 것으로 보인다. 4월 1일부터 5일까지 대전중앙교회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 본당 입구 오른편 벽면에는 편지와 다양한 색깔의 포스트잇이 부착돼 있었는데, 멀리서 보니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였다. 이 목사의 사임을 만류하는 내용을 담은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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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째 수감 중인 김홍도 목사, 항소심서 징역 3년 구형
4월 30일 선고 공판...김홍도 목사 쪽, 로고스 비방 거듭 사과
이용필 기자
▲ 사기 미수, 위조 사문서 행사, 무고, 명예훼손 죄목 등으로 구속 수감 중인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3월 31일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3년형을 구형받았다. 김 목사 측 변호인은 명예훼손을 제외한 나머지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지난해 10월 2일,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77)는 법정 구속됐다. 사기 미수를 비롯해 위조 사문서 행사, 무고,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죄목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6개월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금란교회 측은 법원에 보석 신청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세 번이나 구속 기간을 갱신하며 공판을 이어 가고 있다.
3월 31일 오후 4시, 서울북부지방법원 501호 형사 법정에서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렸다. 재판부의 등장과 함께 공판은 시작됐다. 잠시 뒤 하늘색 줄무늬 수의를 입은 김 목사가 법정 옆문을 통해 들어섰다. 함께 구속 수감 중인 금란교회 전 사무국장 박 아무개 장로가 뒤를 따랐다. 이들은 방청석에 있는 금란교회 관계자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은 뒤 자리에 앉았다.
이들이 법정에 서게 된 것은 미국에 있는 선교 단체 'International Peace Institute(IPI)'와 관련이 깊다. 지난 2012년, 김 목사는 위약금 반환 문제로 IPI와 민사소송을 벌였다. 당시 IPI 소송 대리인으로 법무법인(유한) 로고스가 나서자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김 목사는 한때 자신을 변호했던 로고스 측이 비밀 유지 의무, 쌍방대리 금지 의무 등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진정서를 넣었다. 2013년 3월, <조선일보>와 <국민일보>에 로고스를 비난하는 광고도 게재했다. 그러면서 김 목사 측은 IPI 내부 고발자로부터 받았다는 제1, 제2 문서를 법원에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각 문서에는 로고스 대표 변호사의 서명이 기재돼 있었고, 양측이 주고받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러자 로고스 측은 위조 사문서 행사, 사기 미수 등 5가지 혐의로 김 목사와 금란교회 전 사무국장 박 아무개 장로를 검찰에 고소했다. (관련 기사: 법정 구속된 김홍도 목사, 알고 보니) 검찰은 이들을 사기 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하고,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혐의 대부분을 인정하고, 김 목사와 박 장로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김 목사와 박 장로의 항소심 소송 대리인으로 나선 법무법인 광장과 산지 측 변호인단은 무죄를 주장했다. 이들은 로고스의 명예를 훼손한 것 외에는 피고인들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했다. IPI 내부 고발자로부터 입수한 제1, 제2 문서가 진짜라고 확신하고, 신문광고 등을 통해 로고스를 비방한 죄밖에 없다는 것이다. 변호인 측은 공판 내내 "로고스 대표께 사죄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위조된 문서를 최초로 수령한 사람은 박 장로였다. 그는 문서를 받자마자 김홍도 목사에게 보고했다. 김 목사는 신문에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무장의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인 측은 "(위조된) 문서에 비법률적인 용어가 많고 형식상의 문제도 있지만, 변호인들조차 문서가 위조됐다고 확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비전문가의 경우 그대로 믿을 수 있다고 했다.
최후 변론에서 김홍도 목사는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박 장로는 위조된 문서인 줄 몰랐다고 재차 강조했다. 결심공판이 열린 3월 31일 검찰은 김 목사와 박 장로에게 각각 징역 3년, 징역 2년을 구형했다. 항소심 형사재판 선고는, 4월 30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항소심 민사재판은 '승소'
김홍도 목사가 법정 구속에 이르게 된 것은 IPI와의 민사소송과 관련이 있다. 지난 2000년, 김 목사는 IPI와 북한에 1000명 이상의 교인이 다닐 수 있는 교회를 짓기로 계약하고, 49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2008년까지 교회를 지을 경우 추가로 98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만일,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980만 달러의 위약금을 물기로 했다. IPI는 금란교회 통장으로 돈을 송금했지만,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자 IPI는 김 목사를 상대로 위약금을 포함한 1,40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2011년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김 목사 측은 IPI로부터 받은 돈은 '헌금'이라는 내용의 답변서를 보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미국 법원은 1,40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징벌적 배상 판결을 내렸고, 김 목사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확정됐다.
로고스를 소송 대리인으로 내세운 IPI는 김홍도 목사와 금란교회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강제 집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3년 5월,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 13부는 김 목사와 금란교회에 55만 달러를 배상하라며 IPI의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배상 금액이 과하다는 김 목사 측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졌다. 김 목사 측과 IPI는 항소했다.
항소심 민사 재판부의 판단은 원심과 달랐다. 서울고등법원 민사 33부는 3월 24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원심 판결 중 김 목사와 금란교회 측에 55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부분을 취소하고, IPI의 소를 각하했다.
강제집행을 위한 소송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일례로 미국 IPI 측 소송 대리인의 소장 전달 방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 측에게 우편으로 직접 소장 등을 송부했어야 하는데 택배 운송업체를 통해 전달했다며 적법하지 않다고 했다. 이와 함께 IPI의 항소를 기각하고, 소송비용도 IPI가 부담하라고 주문했다.
민사재판 항소심 결과에 대해 금란교회 측은 반색했다. 현재 진행 중인 항소심 형사재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금란교회 최명수 사무국장은 "두 소송이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좋은 소식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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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성연, 서울광장에서 열릴 퀴어축제 규탄 [2015.04.01 17:52]
“심의위원회 등 적법절차 거치지 않아… 시민들 우롱”
오는 6월 9일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대표회장 안용운 목사, 이하 바성연)이 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1일 발표했다.
서울시 총무과의 관계자는 이에 대해 “총무과는 행사의 호불호를 판단하는 곳이 아니”라며 “사용신고서를 받은 뒤 그 시간대가 비어 있으면 쓰도록 한다”고 설명했었다.
그러나 바성연은 “심의위원회 등 적법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이런 중요한 사안을 시청 직원 담당자가 단독으로 결정했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처사로 시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은 동성애 퀴어 축제 허락을 즉각 철회하고 시민들에게 사과하며, 이러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강력히 요청한다”고 했다.
이들은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모든 책임이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에게 있다”며 “시민들과 특히, 학부모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바성연은 “그 동안 동성애자들의 퀴어 축제 모습을 보면 국민 정서에 반하고 선정적이며, 음란하고 퇴폐적이었다. 2014년 6월 서울 신촌에서 있었던 퀴어 퍼레이드에서도 동일한 모습을 보였다”며 “퀴어 퍼레이드에서 동성애자들이 반라의 모습으로 성행위를 묘사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했고, 법조인들은 이러한 행위가 형법상 공연음란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철회 요구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신촌 퀴어축제 카퍼레이드에서 반나체로 행진하던 참가자들의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이들은 “작년 동성애자들의 ‘나체 광란 축제’를 접한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퍼레이드를 강행하려던 동성애자 측과 반대하는 시민들의 충돌로 일대가 큰 혼란에 빠졌었다”며 “이러한 사태를 보았음에도, 서울시의 상징인 서울광장에서의 퀴어 축제를 승인한 것은 오용된 권력과 타락한 동성애 문화의 결합이며, 서울시장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성결혼을 옹호한 처사와 같은 맥락으로 시민들의 비난을 받기에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바성연 측은 국민 중 74%가 동성애를 ‘정상적인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던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하면서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지 않음에도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한 것은 매우 잘못된 결정”이라며 “이는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가 국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전형적인 독선 정치”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서울시의 상징인 서울광장에서 동성애자들의 축제를 허용함으로써, 많은 청소년들과 국민들에게 동성애의 ‘위험행동’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은 뻔한 일”이라며 “최근 청소년과 청년들 사이에 동성애로 말미암아 에이즈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2009-2011년까지 3년 동안 에이즈에 감염된 10대 청소년의 57%가 동성애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마찬가지로 2011년 미국질병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 13-24세 남성 에이즈 감염자의 94-95%가 동성애로 감염됐다고 한다”며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의 무분별한 동성애 조장으로 우리 청소년들이 에이즈에 걸린다면, 그들의 불행한 삶에 대해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은 어떻게 보상하려는가”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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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회계장부 공개 안 하면 하루에 2,000만 원
서울중앙지법, 갱신위원회의 요구 수용…
교회는 종합 검토 후 대책 마련
이정만 기자
▲ 서울중앙지방법원(민사 51부, 조용현 재판장)이 3월24일, 사랑의교회에 회계장부를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간접 강제금이 하루에 2,000만 원씩 쌓인다. 간접 강제금은 법원이 회계장부 공개를 미루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제도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51부(조용현 재판장)는 3월 24일, 회계장부를 공개하라고 사랑의교회에 명령했다.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하루에 2,000만 원씩 벌금을 내야 한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24일 사랑의교회가 사랑의교회갱신위원회(갱신위) 측에 회계장부를 공개하라는 가처분 판결을 내렸다. 지난 1월, 법원 집행관이 장부를 건네받으러 세 차례에 걸쳐 찾아갔다. 하지만 사랑의교회는 관련 자료가 방대하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장부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자 갱신위는 지난 2월, 사랑의교회에 또 간접강제 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사랑의교회는 법원의 결정문을 받고 7일 이내에 집행관에게 회계장부 등을 건네야 한다.
사랑의교회가 집행관에게 건네야 하는 자료는 지난해 12월 가처분 신청 때의 내용과 같다. △주계표, 수입 결의서 △사랑의교회의 사무처·재정부·비서실·국제제자훈련원·세계선교부에서 사용한 현금출납장이나 수입지출원장, 지출 관련 증빙서류, 회계전표, 예금계좌 및 그 거래 내역 △담임목사에 대한 사례비와 목회연구비 등 각종 수당, 상여, 각종 활동비 등 지급 내역 및 지출 결의서 또는 품의서 및 영수증 등이다.
<뉴스앤조이>는 사랑의교회에 이번 법원 판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었다. 교회 커뮤니케이션센터 본부장은 "3월 27일에 법원 결정문을 받았다. 내부 검토를 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법원의 가처분 판결에 대한 이의신청 결과도 아직 받지 못했다. 이와 함께 종합적으로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고 했다.
이번 판결을 갱신위는 반기는 분위기다. 갱신위에 속한 한 집사는 "간접 강제금 규모가 큰 만큼 이번에는 사랑의교회가 회계장부 공개에 응하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만약 사랑의교회가 집행관의 요청에 응하면 이후 20일간 집행관이 지정한 장소에서 갱신위 교인들은 회계장부를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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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회 생활 귀신이 사회에선 등신 소릴 들을까
예수님의 사역지...'일상의 삶'도 거룩한 사역이다
신성남
간혹 보면 교회를 위해 하는 일만 '거룩한 사역'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또는 사역이란 목회자나 선교사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 목회자의 삶은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사역이고, 다른 성도들의 일상적인 삶은 그보다 덜 중요한 사역으로 폄하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단한 오해입니다. 성스러운 일과 속된 일을 구분하는 것은 지극히 중세적인 발상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 시대인 신약 교회의 성도에게는 영적인 일과 육적인 일을 구분하거나, 교회 일과 세상일을 따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지체인 성도 자신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삶'도 거룩한 사역이다
구약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려면 원칙적으로 제사장을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해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젠 성도 각자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도 개인의 삶이 바로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이지요.
그 결과 신약 교회에서는 구약의 제사장 같은 별도의 성직자 직분이 따로 없고, 목사와 장로를 포함한 모든 성도는 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평등한 신분입니다. 만일 누구라도 이를 부인한다면, 그는 사이비라고 보아도 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거룩한 사역이라면, 교인들에겐 하나님 말씀대로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사는 것 또한 거룩한 사역입니다. 서로 대등한 신분이지만 각자 다른 직분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가족을 돌보고, 직장에서 동료들과 화평하며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일상적 생활이 모두 다 소중한 '주의 일'이며 '거룩한 사역'입니다. 성령께서는 성도의 일상 속에서 함께 사역하시기를 매우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아무리 40년 동안 성실히 목회하신 원로목사님이라도 50년간 겸허하게 사역하신 여성 집사님 앞에서 특별히 우쭐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제법 목회적 성공(?)을 이룬 일부 대형 교회의 유명 목사님들 중에는 나이 드신 교인들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 그건 그만큼 신앙이 미성숙하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우리는 목사님들의 목회만 성역(거룩한 사역)이 아니라, 성도들의 직장 일도 매우 중요한 성역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그러므로 교회 활동이 성도의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기는 하지만, 교회 일이 성도 사역의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교회당 외에도 가정, 학교, 직장, 사업장, 지역사회, 그리고 기타 사회 활동 등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야 할 거룩한 특권과 의무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다행히 요즘 대부분의 건강한 교회에서는 사역의 균형을 중요시하며 세상 속에서 제자다운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단이나 사이비 교회들을 보면 교회 일만 신성시하며 너무 강조하여 가정생활, 학교생활, 직장 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에 큰 균열이 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교회 사역을 명분으로 하여 가정이나 직장을 소홀히 한다면 이는 결코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만일 제자된 삶이 단순히 '헌신적인 교회 생활' 하나로 충분했다면, 사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사역지는 화려한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단 한 번이라도 "너희는 내 이름으로 큰 건물을 세우고, 그 벽돌 덩어리를 신성시하여 성전이라 기만하고, 집회마다 기복 장사로 열심히 돈을 걷고, 유급 교역자들 잔뜩 고용하여 계급적 조직을 만들고, 허울뿐인 연합 단체들 줄줄이 만들어 감투 나누어 먹고, 이웃 교회에 가서 강사비 듬뿍 챙겨 설교하고, 경쟁적으로 주일 버스 운행하며 양 도둑질에 힘쓰고, 평일은 대충 살면서 주일은 거룩히 지내고, 통성기도 남용하여 분위기 신앙 조장하고, 그리고 주야로 부자가 되기를 강청하며 우아한 종교 생활에 힘쓰라"고 하셨던가요.
오늘날 왜 개신교가 개독교란 오명을 듣고 있을까요. 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소금이 되지 못 하고 설탕만 뿌리고 있을까요. 왜 교회에서는 독실한 장로요 집사인데, 직장에선 '나일론 신자'란 말을 듣고 있을까요. 과연 왜 우리는 교회 생활에는 귀신이나, 사회생활엔 등신인 병신도가 된 것일까요. 왜 우린 고작 종교적 삶에는 귀신이나, 진리의 삶에는 등신인 맹신도가 된 것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지
예수님은 결코 성전이나 회당 속에 안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초라한 목수의 아들로 우리 곁에 오셨던 그분은 그저 가난한 어부, 멸시받던 세리, 천대받던 창기, 고통받던 병자, 그리고 소외된 민초들 속에서 함께 먹고 자며 겸손히 일하셨을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가정과 친구와 이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젠 만날 교회당 속에서 북적거리며 교회 사역만 주의 일처럼 강조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 세상 속에서 제자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헌신적인 교회 생활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누가 아무리 교회당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교회 일에 열심이 있더라도, 가난과 질병과 차별과 불평등과 압제와 불의와 억울함으로 인해 흐르는 우리 이웃의 눈물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눈물은 사랑이고, 사랑이야말로 가장 '거룩한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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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하느라 동분서주 하는 신옥주 은혜로 신도
종로 퇴계원 대전 찍고 경기 화성에 진출, 곳곳에 집회신고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신옥주 목사 측 은혜로교회 신도들이 시위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서울 종로와 남양주 퇴계원이 주무대이고 대전을 찍더니 요즈음에는 경기도 화성에 진출했다. 원근과 상관없이 거의 매주 출몰한다.
작년 12월 14일 대림감리교회 난입이 시작이었다. 이어 신옥주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한 예장합신(총회장 우종휴 목사)의 총회본부가 있는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작년 12월 30일부터 본격적인 시위를 시작한 은혜로교회 신도들은 심야에 빛과소금교회(담임 최삼경 목사)에 몰려가 송구영신예배 기습시위를 하면서 2015년을 맞더니 그 후 거의 매주 시위에 나서고 있는 것이 포착되고 있다.
▲ LED영상트럭과 어린학생까지 동원한 빛과소금교회 앞 시위
ⓒ<교회와신앙>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굵직한 것만 꼽아도, 1월에 예장합신총회 신년하례예배 밀가루 난동과 <교회와신앙> 출입문 파손 난입이 있었고, 주로 평일에는 서울 연지동 소재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에 토요일 낮과 주일 저녁에 남양주 퇴계원 소재 빛과소금교회 앞에 출몰해 시위를 벌였다. 빛과소금교회 앞 시위 경우 보통 1시간 남짓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동네가 들썩일 정도로 시끄럽게 구호를 외친다. 2월 초에는 CBS 앞과 빛과소금교회에서 시위를 하면서 멀리 대전중앙교회까지 진출해 급기야 25일에 유리문을 깨고 집기류를 부수는 난동을 벌였다.
3월에도 바삐 움직였다. 3월 6일에 은혜로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신 모 씨(대전중앙교회 담임 이 모 목사 부인)을 내세워 기자회견을 열었고, 3월 20일에는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부터 종로를 거쳐 보신각까지 380여명이 조용기·김삼환·오정현 목사 등을 비판하며 ‘평화도보행진’이라는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런 와중에도 빛과소금교회 앞에서의 시위도 틈틈이 이어갔다. 11일(수) 오후 4시 30분경부터 저녁예배 때까지 ‘LED영상트럭’을 동원해 최삼경 목사 등을 비난하는 영상을 돌리며 퇴계원 일대를 누볐고, 15일(일) 저녁에도 시위를 했으며 22일(일) 저녁에는 그냥 철수했다.
요즈음에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에 있는 ㅇ교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앤조이>의 보도에 따르면 3월 26일(목) 오전부터 시작한 시위는 빨강·연두·노랑 조끼를 입은 신옥주 목사 측 은혜로교회 신자 80여 명이 참가했고 앞으로 한 달간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 은혜로교회 30대 여성 신자 나 모 씨가 딸을 돌려달라고 ㅇ교회에 요구하고 있는 데, 딸은 ㅇ교회 집사인 남편 김 모 씨가 데리고 있고 남편 김 모 씨가 아내 나 모 씨에게 은혜로교회가 이단이라면서 다니지 못하게 막아 사이가 벌어진 후 시위가 벌어졌다고 한다. ( 원문 기사 보기 )
4월에도 신옥주 목사 측 은혜로교회 신도들은 시위를 위해 동분서주할 것으로 보인다. <뉴스앤조이>는 “이 목사의 사퇴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여 온 은혜로교회는 또 시위를 열 것으로 보인다. 4월 1일부터 5일까지 대전중앙교회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보도했다. 대전중앙교회 담임 이 모 목사는 은혜로교회에 출석하는 아내 신 모 씨와 이번 시위사태 등으로 교회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진 사임했다. ( 원문 기사 보기 )
은혜로교회 측은 지난 30월 20일 가두시위 때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아직도 강단에서 성경과 다른 거짓말 하는 목사들의 말만 듣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하는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라고 말만하고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외치며 교회만 다니고 기도만 하면 천국에 가는 줄로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라며 “이제는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하나님 말씀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 때이다(엡3:19)”라고 주장하며 한국교회의 대표적 목회자 3인에 대해 신천지나 구원파와 동일선상에서 놓고 비판한 바 있다. ( 원문 기사 보기 )
이 같은 신옥주 목사 측 은혜로교회 신도들의 좌충우돌 식 시위 양상은 신옥주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한 예장합신이나 이단연구가들 또는 은혜로교회 측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항의성 보복의 의미가 진하면서도 대전중앙교회와 화성 ㅇ교회의 경우와 신 모 씨의 기자회견 및 가두시위를 전개하는 행태를 보면 시위 대상과 해당 교회에 피해를 입히면서 시위 자체를 통해 신옥주 목사와 은혜로교회 그리고 자기들의 주장을 부각시키려는 행동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이한 사항은 대전중앙교회 이 모 목사는 은혜로교회 측에 있는 아내에게 자녀을 데리러 간 것이, 화성 ㅇ교회 김 모 집사는 은혜로교회 측에 있는 아내에게 자녀을 내주지 않은 것이 문제의 하나가 되었다. 은혜로교회 신도들의 집회에는 간혹 초중등 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섞여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여하튼 신옥주 목사 측 은혜로교회 신도들의 시위는 계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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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하고 돈 받지 말라
교회내의 퇴폐적 인습이 변해야!
1946년 일제로부터 해방(광복)된 그 이듬해에 고향 여주에서 고모님들이 살고 계시는 서울에 올라갔다. 15살 나의 눈에도 사회상은 혼돈이였다. 새로운 정치지도쳬제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에 있는 임정요인이나 독립운동하던 분들이 귀국하던 그때에 미군정이 질서를 관장하고 있었지만 정치 사회 질서는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의 영향하에 남한에도 박헌영을 두목으로 하는 공산당이 합법적인 정치활동을 하고 있을때다.
그들을 가리켜 남로당 혹은 한국인민당이라는 당명을 익히 들은 기억이있다. 공산당의 비조라고 할 수 있는 막스와 레닌의 논리에 힘입어 불세비키 혁명에 성공한 푸로레타리아 공산주의에 물결은 왜정때부터 사회주의를 표방했든 일부 좌익세력과 합류한 좌파세력이 정당활동에 합류했고 선전벽보나 잡지 그리고 단행본들이 쏟아저 나와 거리에 넘처나 있었다.
책의제목들이 나이어린 나에게도 퍽 자극적인 것이였다 그많은 책들 중에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제목이 있었다 그책을 사들고 고모님댁에 와서 읽어보니 대부분이 부르조아적 민주주의에 속하여 있는 기독교를 비판하는 내용이였다. 읽어가는 중에 나의 의식의 눈을 크게 뜨게한 글발이 있었다.
“ 기독교 목사들은 말품팔이꾼이다”라고,
이 공산주의자들의 무신론적 견해는 정당한 논리는 아니지만 내 맘 속에는 이조말 고종황제 치하 말기, 볼티모어 둘레니 지역에 있는 카우처대학 설립자이며, 목사였든 Dr 카우처가 미 북감리교단에 천거하여 파송된 아펜셀라목사 내외가 1884년 한국땅에 감리교회의 복음의 터전을 이룩한 그 무렵 나의 조모님이 신앙을 접하고 손자대 까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신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믿어 온 나의 심령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말은 나이가 들어 집사, 권사, 장로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나 자신을 견제하며 모든 설교자들을 보 는 잣대로 비처지고 있는 것이다. 그 말 자체로 볼 때 “ 공산주의자가 말한 이 말은 진리/眞理 라고 생각 되였다”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개쳬 담임교회와 기관에서 생활비를 받고 있는 이외에 부흥회나 기타 집회에서 설교하고, 말씀 전하는 일의 대가로 돈 받는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먹는 자요,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고 돈받는 자도 영광은 하나님께, 대가는 교회나 집단에서 받는 것인가?
이들이 참 살아게신 하나님을 믿고 전하는 이들이 물질적 대가로 치부하는 것인가!
이는 복음사역을 감당하는이들의 행위는 아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 오래 참고 게시는 주님의 뜻을 악용 하는자들이 아닌 지?
고대 철학자 스피노자(BC.300)가 쓴 글이였든가? 어느 사람이 천국에 갔더란다. 천사의 인도를 따라 어느 건물에 가보았드니 혀바닥만 가득 있었고,다른 큰 건물에 가보니 귀때기만 가득 하더라는 우화/寓話적인 말이 생각난다. 이는 말씀전하고 찬양하며 부당하게 대가를 받는자요, 말씀듣고 행치않은 자를 비유한 우화이다.
때로 볼티모어 시내 유타 길가 레싱톤 마켓 앞에 가보면 태양열이 작열하는 무더운 7.8월에 로변에서 흑인 전도자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예수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자”고 외처대는 전도자의 옆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든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우리교회/kmc of Love 담임목사님이 부흥회인도차 한국에 가신다는 말을 듣고 어느날 교회사무실에서 대화의 시간을 가젓다.
“목사님 이번에 부흥회인도차 가시면 처녀집회가 아니겠읍니까? 이 늙은 장로가 신앙의 선배 입장에서 한가지 꼭 말씀드릴 일이 있읍니다. 이 말의 시행여부는 목사님의 의중에 있읍니다.
목사님 첫 집회때부터 사례비를 받지마십시요. 지금은 교회적으로 대책을 세우지 않았기에 초청한 교회가 비용을 부담하겠지만 제2.3의 교회 집회에서는 자비량으로 집회를 하십시요., 앞으로 미국내에서도 집회 단여오시는 비용도 교회가 예산을 집행하면 될 것이고 이런 계기가 훌륭한 부흥강사로 성장하고 기독교계가 갱신되어지는 호기의 시발점이 되지 않겠읍니까?”라고 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나의 의견의 수행여부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거니와 신앙 양심에 저촉되는 바나 공산주의자의 말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되는 측면은 모든 설교자와 교회적인 일을 하고 부정직한 보수를 받는 이들에게,해당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땅에서 칭찬받고 상 받으면 내가 너희에게 칭찬하고 상줄 바가 없다”고 의미있는 말을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할 바가있다. 하나님 말씀전하고 가르치고 찬양하고 부당하게 돈 받는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먹는자가 아닐까? 주님이 심판의 재림주로 오시기 전에 참 주의 종이요, 참 복음전도자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 볼 일이다.
“속히 오리라 하신 주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시록20장11절이하)
고대진 원로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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