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4월 04일 (금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목사를 막아라, 텅빈본당 /목사 연금 1,600억으로 '돈 장사'한 집사 구속/ 캄보디아 박율 목사 체포 충격               최태민 구국선교단 참여 목사들 / 십일조 하지 말라는 목사 /한우갈비’외치는 기감목사들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서울광장서 개막 /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무죄               선교사들 위한 안식관 두 곳/ '노트북이 뭐라고' 소송 총동원한 사랑의교회               언더우드 후손 28명 우리 고향은 South Korea/ 군종장교 범죄               박수홍,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 예의/ 죽음의 질(Well dying) 중요               목사님이 운영하는 중고자동차 매매센터               예장통합 ‘제2의 세습방지법안’ 총회 통과/ 예수님처럼 교회도 하늘에서 내려와야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적극 반대 /목회자의 고백 7가지 실수               총회장 2명을 배출한 여인의 힘! /복음화율 10% 안 되는데 주일학교만 1천 명              

  홈     이삼규     강문호.     고신일     곽선희.     김광일.     김기석.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성광.     김성수     김은호     김정호.     김홍도.     류영모.     명설교     박봉수.     오주철.     옥한흠     유기성     이동원     이성희.     이양덕.     이영무     이윤재     이재철.박영선     이정익     조봉희.     조용기.     주준태     지용수     피영민     하용조     한경직.     홍정길.임영수     해외목사님     관     괄사치유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한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사건별설교(구약)     사건별설교(신약)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샘플설교
  오래된 설교(왕)
  카드,핸드폰결제

설교내용검색

네이버.다음.구글


시작페이지 설정


호산나 자동차


교회인쇄주보디자인


밀알.현수막.주보


제주2박3일210.000원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남학매일성경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베리타스칼럼
  • 강남신앙간증
  • 아멘넷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강문호목사
  • 고신일목사
  • 김기석목사
  • 김대동목사
  • 김명혁목사
  • 김성광목사
  • 김승욱목사
  • 김형준목사
  • 김흥규목사
  • 명성훈목사
  • 박광철목사
  • 박건목사
  • 소강석목사
  • 이동원목사
  • 이성희목사
  • 이한규목사
  • 정근두목사
  • 정태기목사
  • 조태환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교단 사이트

    말씀,QT

    사전.지도사이트

    성화,주보그림자료

    성경연구공부자료

    성경신학 자료

    Home

    마산 무학산,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 / ‘악동뮤지션’ 음악천재로 키운 이성근 선교사 부부
    2013-04-19 10:55:25   read : 5604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산 무학산,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를 찾아서

    ▲ 기도바위. (사진 제공 이명화)

    생명의 계절, 부활의 계절이다. 계절 좋고 꽃도 좋은 4월. 무학산에도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최단거리 코스라고 택한 서원곡 길은 제법 가팔랐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로 이어졌다. 너덜지대를 지나고 걱정바위 앞에서 잠시 휴식하며 마산 앞바다와 시내를 내다보며 땀을 식히며 호흡을 가다듬었고 오름길 이어지다가 '365사랑의 계단'을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씩 걸어 365개의 계단을 다 올라 보니 넓디넓은 평원. 서마지기라 부르는 곳이다.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서마지기 넓은 안부엔 울긋불긋 많은 등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올해는 유난히 봄이 일찍 도착했고 봄꽃들이 미리미리 피어 버렸건만 근래 들어 며칠 바짝 꽃샘추위를 하더니 활기차게 피어나던 꽃들이 그만 주춤, 파리하게 얼어붙었다. 진달래꽃으로 만발할 때였지만 꽃샘추위로 피다 말고 얼었거나 꽃봉오리가 움츠려 든 것들이 많았다.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양지바른 풀섶에 앉아 점심을 먹은 후 또 하나의 365사랑의 계단 길 올라 365개의 계단 끝에 무학산 정상에 도착했다. 마창대교와 다도해, 마산 앞바다가 펼쳐져 있고 곳곳마다 능선길이요 갈림길이었다. 남쪽 바다를 굽어보는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761.4m)은 신라 말기에 이곳에 머물렀던 최치원이 산을 보고는 학이 나는 형세라고 했다고 해서 이때부터 무학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오늘 우리가 만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도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였다. 몇 년 전에 힘든 걸음해서 만나지 못했던 기도바위를 이번엔 꼭 찾고 싶었다. 계속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한참을 걸었다. 길을 못 찾아 조금 헤맸지만 곧 학봉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산불초소에서 학봉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고,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처였던 십자바위는 의외로 쉽게 찾았다. 이렇게 눈에 잘 띄건만 예전엔 왜 그리 헤맸을까. 오늘 보니 주기철 목사님이 기도하셨다는 기도바위는 십자 모양이 뚜렷해서 눈에 띄었다.

    십자바위를 찾고 보니 그동안 산행을 하면서 쌓인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힘들게 걸어 온 보람이 있었다. 발바닥은 쓰라리고 아파서 절뚝거리다시피 해서 걸어왔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 뒤에 산자락에는 봄꽃들이 피고 지고 또 연두 빛 잎새들이 돋아나면서 고운 빛깔들로 점점이 물들어 있었다. 색색의 물감을 찍어놓은 것처럼 아련했다. 생명의 계절, 기적의 계절 4월의 산 빛이었다. 4월에 찾은 십자바위 주변은 산꽃들이 피고지고 연두 빛깔의 곱디고운 새순이 돋아나면서 멋진 그림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를 찾은 기쁨으로 피곤함도 잊은 채로 우리는 기도바위 위에 올라 마산 시내와 앞바다를 일별하고 또 앉아 보기도 하고 기도로 무릎 꿇기도 하면서 목사님의 부르짖어 기도하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그 기도의 신앙과 정신을 다시 생각하며 묵상하였다.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 일대기 <일사각오>(김요한 저)에 보면, 어릴 때부터 목사님은 유난히 산을 찾는 습성이 몸에 배여 있었다고 쓰고 있다. "고향 웅천의 천자봉에서부터 정주 오산의 제석산, 평양의 묘향산 금강산, 양산읍의 명곡리산, 부산의 구덕산 등 지난 세월에 수도 없이 산을 찾았고 거기서 엎드려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응답을 받은 것이다. 그가 마산으로 왔을 때 제일 먼저 찾은 곳이 무학산이었다(184페이지)"고 기록해 있다.



    ▲ 마산 무학산 십자바위. (사진 제공 이명화)

    주기철 목사님이 자주 찾았던 무학산 기도바위. 밤을 새우며 눈물로 기도했던 기도처가 바로 여기였다. 목사님이 마산 문창교회에 부임한 1931년 7월 하순부터 이곳 무학산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한다. 그는 "지금 중대한 사명을 띠고 마산으로 왔는데 연약한 종을 내버려두지 마시고 지혜와 능력을 달라면서 이틀이 멀다 하고 무학산을 찾았다고 한다. 그때 당시에 셋째 아들(6살)과 함께 자주 올랐는데 그 아이가 10살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한다.

    아들 영해는 아버지가 바위 위에 엎드려 기도하는 동안 그 밑에서 몇 시간이고 무료하게 놀았다. 아버지의 울부짖는 기도 소리를 들어가며 괜스레 슬퍼져서 엄숙해지는 때도 있었다고 한다. 새벽이나 밤이나 시나브로 올랐던 기도바위. 기도의 종, 말씀의 종이었던 주기철 목사님의 목회의 원동력은 기도였고,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순교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그른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성경에도 많은 산들이 나온다. 산의 사람들, 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름들이 나온다. 하나님의 임재가 산을 중심으로 많이 역사한 것들을 볼 수 있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출 19:20), 엘리야는 갈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기도하다가 '손만 한 구름' 한 조각(왕상 18:44)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고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던 땅에 많은 비가 내렸다. 예수님은 무시로 산에 올라 기도하셨고 변화 산에서 그 모습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 주시기도 하였다.

    하나님을 만난 믿음의 선배들만 보아도 산에서 기도하였던 기도의 사람들이 많다. 한상동 목사님은 경남 하동군 진교리에서 사역할 때에도 밤 2시 혹은 3시경에 일어나 산에 올라가 숲속에서 금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했다.

    "나는 이곳에서(경남 하동군 진교리) 비로소 진정한 기도의 재미를 맛보았으며 경험을 얻었다. 밤 2시, 혹은 3시, 늦으면 4시경에 일어나서 산에 올라가 숲속에서 기도하는데 처음에는 바람소리, 나뭇잎 소리에 무슨 짐승이 나오는 것 같아서 무서움으로 기도도 잘하지 못하였으나 주께서 성령으로 은혜를 베푸셔서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셔 주시마고 약속하신 말씀이 믿어졌다.

    (마 28:20) 나는 바람 소리도, 나뭇잎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도무지 육신의 감각이란 것을 모르고 오직 주님과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시간이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혹은 세 시간 동안 괴로운 줄도 모르며 피곤한 줄도 모르고 기도할 수 있게 되어, 그 기도하는 시간이 나에게 있어서는 말할 수 없이 즐거운 시간이 되어졌다(<한상동 목사, 그의 생애와 사상>, 243페이지)." 또한 신사참배 문제로 고민하면서 무척산에서 기도했던 한상동 목사님이기에 무척산 하면, 한상동 목사님이 떠오른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투옥된 한국 기독교 신자 중 한 사람인 조수옥 권사는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성도도 모두 신사참배에 동참하는 것을 목도하고서 '난 가지 않는다'고 결단하고서 사천 와룡산에 올라 울부짖어 기도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 조수옥>에 보면 그 당시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산에는 덩치 큰 까만 바위만 있을 뿐, 바람막이가 될 만한 바위는 물론, 몸을 기댈 만한 나무조차 없었습니다. 움직일 만한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에 저는 일단 바위 위에 앉았습니다. 밤이 자꾸 깊어갔습니다. 칠흑 같은 흑암은 저에게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바람이 차가워지면서 몸은 다시 소름이 끼쳐왔습니다.

    …저쪽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과 산짐승들이 포효하며 내게 덤벼오는 것 같았고 사방의 어둠은 몸서리치는 공포로 나를 에워싸 무서운 냉기가 감돌았습니다. '주여-주여-' 목이 터져라 외치며 주를 불렀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지 못한 내 모습은 이렇게 초라했습니다. …(중략)…그런데 그때 갑자기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는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은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49~51페이지)."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처였던 십자바위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일사각오>에 보면, 1985년 5월 5일, CBS에서 '십자바위에 흐르는 기도의 물결'이란 제목으로 특집 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 바위에 얽힌 이야기 한 대목. "주기철 목사님이 이곳에서 기도하실 때에 일본 순사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그분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목사님을 보이지 않게 감싸 주셔서 결국 잡지 못했습니다. 목사님께서 기도를 마치자 그때 성령의 불이 떨어져서 이 바위가 십자 모양으로 갈라졌습니다('1985.5.5. CBS 방송 원고'에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십자 모양으로 갈라진 것이 자연 현상이든 기적이든 실용주의와 합리주의 세속에 물들고 몸을 사리고 시간을 사리는 요즘의 우리들의 부끄러운 삶에 지금도 순교적인 신앙과 목숨 건 기도의 중요성을 무언으로 일깨워 주고 있었다. 우리는 기도바위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십자바위는 사진에 담고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 내려왔다.

    "우리 주님 날 위해 십자가 고초 당하시고 십자가 지고 돌아가셨는데 나 어찌 죽음이 무섭다고 주님을 모른 체하오리이까. 오직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순교자는 초인이 아닙니다. 다만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그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악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퍼렇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에 드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일사각오>, 386페이지)."
    이명화 / <오마이뉴스>·<양산시민신문> 시민기자


    ================================================
    ‘악동뮤지션’ 음악천재로 키운 이성근 선교사 부부

    “기타 두 달 배우더니 자작곡 만들더라고요”



    ‘악동뮤지션’ 이찬혁(17)·수현(14) 남매가 지난 7일 ‘K팝스타2’ 파이널 무대에서 우승을 확정짓자 심사위원인 가수 박진영은 이렇게 극찬했다. “악동뮤지션은 노래와 퍼포먼스만으로 심사하면 안 된다. 부모님이 어떻게 키우면 저렇게 아이들이 자라는지…. 보충수업 학원과외 그런 거 했으면 저렇게 됐을까. 정말 아름다운 친구들이다.”

    궁금했다. 과연 그들의 부모는 두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지난 1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광림교회(박동찬 목사)에서 남매의 부모인 이성근(43) 주세희(41) 선교사를 만났다. 부부는 일산광림교회와 선교단체인 한국다리놓는사람들(대표 박정관 목사)에서 2008년 5월 공동파송 받고 현재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예배와 찬양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신앙관을 비롯해 건강하고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가정예배와 성경읽기, 묵상을 생활화했고 아이들에게 주어진 재능과 은사가 발견되고 드러나도록 도왔습니다.”

    부부가 남매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건 지금부터 1년 전쯤이다. 당시 찬혁·수현 남매는 몽골한인교회 찬양팀에서 또래 친구들과 노래하고 춤추는 걸 즐겼다. 수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고 찬혁이는 노래보단 춤에 자질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찬혁이가 그즈음에 교회 형한테 기타를 두 달 정도 배웠는데 어느 날 간단하게 아는 코드만 갖고 ‘뚱땅’ 거리더니 노래를 만들었다며 불러줬습니다. 제목이 ‘갤럭시’인데 무슨 스마트폰도 아니고 유치하고 장난스럽겠거니 생각하고 기대감 없이 들었지요. 그런데 가사가 시적이고 멜로디도 귀에 쏙 들어오는 게 노래가 좋더라고요.”

    찬양사역자로 활동해온 아빠의 칭찬과 격려에 찬혁이는 으쓱했다. 첫 자작곡 ‘갤럭시’에 이어 다음날 두 번째로 만든 ‘똑딱똑딱’을 들려줬다. 이렇게 찬혁이는 한 주에 한곡씩을 만들어냈다.

    “방송을 보셨으면 아실 텐데요, 사실 찬혁이가 가사 실수를 좀 했습니다. 아이의 머릿속에 많은 아이디어가 있다 보니 잘 외우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도 순간 떠오르면 동생에게 들려주고 수현이는 외웠다가 나중에 곡으로 완성합니다.”

    이렇게 남매가 경연 전까지 만든 노래가 48곡에 이른다. “다릴 꼬았지 배배 꼬였지. 발가락부터 시작된 성장판 닫히는 이 기분….” 악동뮤지션이 방송에서 처음 선보인 자작곡 ‘다리꼬지마’의 일부다. 이 외에 ‘매력있어’ ‘라면인건가’ ‘못나니’ ‘크레센도’ 등이 사랑받고 있다.

    “못나니는 원래 ‘못난이’로 써야 맞습니다. 제가 찬혁이에게 ‘글자가 잘못됐으니 고쳐야 한다’고 몇 번 이야기했을 때 찬혁이는 ‘일부러 그렇게 썼다’며 끝까지 고치지 않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 아이만의 숨은 뜻이 있었던 겁니다. 부정적인 이미지의 ‘못난이’를 귀여운 상징으로서의 ‘못나니’로 표현하고 싶어했지요.”

    방송 후 자막 실수가 아니냐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외국인의 고백’ 중 ‘Qurious’ 역시 찬혁이가 가사를 쓰며 일부러 ‘C’를 ‘Q’로 바꾼 것이다. 이에 대해 어머니는 “Curious를 더 강조하고 싶어 ‘Q’로 표기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톡톡 튀는 가사에 따라 부르기 쉬운 감각적인 멜로디까지…. 자작곡만 불렀다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천재 뮤지션’이지만 이렇게 오기까지 모든 게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몽골로 간 첫해, 남매는 선교사 자녀(MK·Missionary Kids)들이 다니는 학교에 들어갔으나 적응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 도저히 학교를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다. 1년 만에 MK스쿨에서 나와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EBSe’에서 영어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1년간 온 가족이 같이 공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가 아이의 공부를 가르치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고 급기야 사춘기에 접어든 찬혁이는 아빠와 갈등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온 종일 같이 지내면서 이런저런 간섭을 받으니까 아이들이 학교에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마음과 달리 형편 때문에 아이들이 원하는 일을 해주지 못하니 부모로서 많이 속상했습니다. 그때 힘들어 울기도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홈스쿨링의 주인은 나(하나님)다. 선생도 나인데 왜 너희가 선생 노릇을 하려고 하느냐. 부모인 너희도 학생인데,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느냐.”

    간섭하고 평가하고 가르치는 것을 내려놓자 오히려 남매에게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다른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부모는 옆에서 조금씩 격려해줬고 결국 어린 남매 스스로 꿈을 찾아 열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었다.

    이 선교사 부부가 남매를 통해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예전에 춤추는 거 좋아하고 인정받았을 때 찬혁이에게 진로에 대해 물으면 ‘춤추는 목사’ ‘춤추는 선교사’를 얘기하곤 했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현재 두 아이는 자기들의 노래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 노래 안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세상을 엿봅니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행복에너지를 다른 이들과 마음껏 나눴으면 합니다.”

    악동뮤지션은 오는 22일 부모와 함께 몽골로 갔다가 6월 초쯤 귀국한다. 앞으로의 진로를 정하는 것도 이때쯤 될 것 같다. ‘K팝스타2’ 우승으로 받은 3억원의 상금에 대해 이 선교사는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웃을 위한 좋은 일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
    오정현 목사가 비운 강단, 왜 총신 교수를 처음 세웠을까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유사시 주로 교수들이 메워… ‘학문과 현장 괴리 지양’ 위해 반대 모형도 필요 김지찬 교수(총신대), 유병국 선교사(WEC 국제동원 대표), 박용규 교수(총신대). 이들은 최근 3주간 사랑의교회 주일예배 강단에 섰던 설교자들이다. 세 명 중 두 명이 신학교 교수다. 김지찬 교수는 해외 집회로 자리를 비운 이찬수 목사를 대신해 14일 분당우리교회 주일예배 강단에도 섰다.



    ▲국내 교회들은 어떤 이유로 주일예배 강단이 공석이 됐을 때, 주로 신학교 교수들에게 임시로 이를 맡기고 있다(상기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음). ⓒ크리스천투데이 DB

    교수들, 교회 이해관계서 비교적 자유로워

    교회의 담임목사가 어떤 이유로 잠시 주일예배 설교를 하지 못할 때, 교회는 그 공석을 신학교 교수로 채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신학교 교수들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도 수업이 없는 주일, 교회에서 설교자로 교인들을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경험은 대형교단의 인준 신학교 교수일수록 더 많은 것이 보통이다.

    특히 최근 내홍을 겪으며 담임목사가 꽤 오랜 기간 주일예배 강단에 설 수 없었던 교회들을 보면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강북제일교회는 소속 교단(예장 통합)의 인준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교수들을, 분당중앙교회(담임 최종천 목사) 역시 총신대학교 교수들을 임시 설교자로 초빙했다. 주안장로교회는 아예 장신대 주승중 교수를 지난해 후임 담임목사로 청빙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교회들은 왜 신학교 교수들을 임시 설교자로 선호하는 것일까. 총신대 김지찬 교수는 “신학교 교수들은 설사 분쟁 중인 교회라도 그곳의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며 “신학적으로도 이미 검증된 이들이라 교회들이 자주 초청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찬 교수는 오랜 교수 생활 동안 여러 차례 목회 현장에서 설교자로 강단에 선 경험을 가지고 있다. 김 교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가끔 설교자로 목회 현장에 가면,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좀 더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며 “그러다 보면 그 차이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이는 교수로서의 자세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설교 후 얻는 피드백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신학교 교수에 대한 교회들의 이 같은 선호는 자연스레 담임목사 청빙으로도 이어진다. 이미 언급한 주안장로교회를 비롯해 국·내외 다수 교회들이 신학교 교수들을 후임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신학교들, 교수 임용 때 주로 계량적 기준 적용

    이렇게 신학교 교수가 설교자로 목회 현장에 투입되는 사례는 흔하지만, 반대로 목회자가 그 경험을 살려 신학교에서 교수로 예비 목회자들을 가르치는 경우는 아직 그리 많지 않다. 목회자들 중 담임목사와 교수를 겸하는 이들은 간혹 있으나, 목회를 하다 아예 신학교로 자리를 옮기는 예는 찾기 힘들다.

    한 신학교 교수는 “현재 국내 신학교들은 교수들을 임용할 때 학위와 실적 등 주로 계량적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일반 대학들과 달리 신학교는 예비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곳이고, 따라서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학교에서의 학문이 목회 현장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오늘날, 연륜 있는 목회자의 교수 초빙은 신학교 개혁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랜 교수 생활을 접고 수 년 전 교회를 개척한 한 목회자는 “국내 유명 신학대는 교수 임용 기준에 ‘목회 경력 5년’을 명시하고 있는데도, 실제 그 학교 교수들 중에 이 기준에 맞는 이는 많지 않다”면서 “이것만 봐도 지금 한국의 신학이 얼마나 본질에서 멀어졌는가를 금방 알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추락하는 정치 목사…마지막 '몸부림'

    박헌성, 정점에서 면직까지 '정치 목사 몰락기'
    전현진 ( 메일보내기 )( wjsguswlswls )

    "마력이 있다. 사람을 사로잡는 능력이 굉장히 좋다"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총회장 김남수 목사·KAPC) 역사상 최연소 총회장에 오르며 막강한 정치력으로 '교계 정치 정점에 섰다‘는 평을 받기도 했던 박헌성 씨를 기억하는 한 목회자의 말이다. 약 3천 만 달러 이상 투입된 초대형 예배당을 건축하며 세를 과시했던 그는 소속 노회를 본인의 의지대로 좌지우지 했다는 공공연한 평가가 있는 등 그 위세가 남달랐다. LA 지역 목회자들은 그를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실력자'로 기억했다. 그런 그가 면직·출교 처분을 받고 몰락했다.

    지난해 11월, KAPC 서가주노회(당시 노회장 원희천 목사)는 임시노회를 열어 박헌성 씨(당시 나성열릴문교회 당회장)에 대해 면직·출교 치리를 결의했다. 함께 제출된 증거로 드러난 박 씨의 치리 이유는 4가지, △여집사 ㅇ씨에 대한 성폭행 및 간음 △국제개혁대학교 총장 재직 당시 불법 박사 학위 남발 △불법 이사회를 통해 국제개혁대학교 총장직에 불법 취임 △뇌물을 수수하고 헤브론교회를 불법 분립해 교회 건물을 다른 교단으로 넘어가게 한 일이다.

    박 씨는 면직된 이후에도 징계를 내린 서가주노회를 '불법'이라 주장하며 자신의 세력들을 규합해 자신은 여전히 목사이며 '서가주노회' 소속이라 하고 있다. 하지만 KAPC 역대 총회장들의 모임인 상임발전위원회(위원장 장영춘 목사)는 박 씨에게 면직 처분을 내린 서가주노회의 결정에 손을 들어주었다. LA 교계 한 관계자는 박 씨가 한국 최대 교단인 합동 인사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복권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미주뉴스앤조이>는 LA 현지를 찾아 박 씨와 직·간접으로 알고 지낸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다양한 문서 자료를 참조하여 교계 정치 정점에서 면직·출교 처분을 받기까지 박 씨의 몰락을 정리했다. 당사자들의 요구에 따라 인터뷰에 응한 관계자들의 실명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 기사는 총 3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본 기사는 그 마지막 내용이다. (① 정치 목사의 탄생, ② 교계의 큰손)

    몰락의 시작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달려온 박 씨의 자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가짜 박사 학위' 사건이 <미주뉴스앤조이>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다. 이 사건으로 미주 교계에 새겨진 박 씨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관련 기사 : 국제개혁신학교, 불법 박사 학위 남발 들통)

    국제개혁대학교는 미국 신학교 학력 인증기관인 ABHE(The Association for Biblical Higher Education)의 준회원 상태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남발했다. 박사 학위 과정 개설이 불가능한 준회원 상태에서 한국과 미주에 광고를 내고 수십 명의 목회자들을 모집,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것이 문제가 돼 당시 한국에 있던 부총장 오세택 목사는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 받았고, 미국 시민권자인 박 씨의 책임 여부는 한국 법원에서 다루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LA 교계 관계자들은 국제개혁대학교 가짜 박사 학위 사건이 박 씨가 몰락한 첫 시작이었다고 평가했다. 사진은 국제개혁대학교 부총장 오세택 목사에 사기죄로 유죄 결정을 받은 약식 명령. (미주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실제 책임자였던 박 씨는 아무런 책임 없이 총장직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나기만 했다. 당시 법원은 오 목사에게 "ABHE에서 인준 받은 목회학 박사 과정을 운영할 수 없다는 등의 제반사항을 고지하지 아니하여 이에 속은 9명으로부터 11회에 걸쳐 합계 2,040만 원을 등록금 명목으로 교부받아 이를 편취했다"며 사기죄를 판결했다. 이 같은 판시는 박 씨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당시 오 목사의 딸 명의로 개설된 통장으로 최고 660만 원부터 120만원까지 박사 과정 등록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겼다. 대부분 학생들은 180만 원을 냈다. 2009년 봄 학기 목회학 박사 과정에 등록한 학생은 83명, 일인당 등록금을 180만 원으로 계산할 경우 한 학기 등록금 총액은 1억 4,940만 원이다. 사기 판결을 받은 오 목사 계좌의 2,040만 원을 제외하면 1억 2,900만 원이 남는다. 박 씨는 이 돈의 행방에 대해 "잘 모르겠다"며 입을 다문 것이다. (관련 기사 : 국제개혁신학교, 부총장 사기죄로 유죄 판결 )

    박 씨는 가짜 박사 학위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2010년 7월 정기 이사회에서 사퇴를 선언하고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박 씨를 둘러싼 주변 분위기도 조금씩 흔들렸다. 가짜 박사 학위 수여로 박 씨와 일부 이사진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대부분의 이사진들조차 학교가 박사 학위 과정으로 얻은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국제개혁대학교가 개설한 과목은 목회학 박사 과정뿐만이 아니다. 다른 과정을 통해 학생들을 모집해 벌어들인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학교 이사진들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중 가짜 박사 학위 사건이 터지고 일부 이사진들과 박 씨가 갈등을 빚은 것이다. 이때 박 씨는 전임 총장이자 자신을 배신하고 교인들을 몰고 교회를 개척한 박 씨의 일을 용서해주기도 했던 조천일 목사와 다시 한 번 갈등을 빚기도 했다.

    박 씨의 사퇴 이후 황은영 목사가 총장으로 선임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당시 황 목사를 두고 박 씨의 '대리인이다'는 평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황 목사는 이후 ABHE 퇴출 위기에 몰리며 준회원 명단에서 빠지기도 했던 국제개혁대학교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힘썼다고 했다. 최선을 다해 조직을 재정비하고 ABHE 정회원이 되어 '가짜'가 아닌 목회학 박사 과정을 개설하려 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그 결실이 열매를 맺을 시기가 왔다. 황 목사는 ABHE와 소통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등 정회원 승격이 눈앞에 보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총장도 모르는 이사회가 소집됐다. 그 때 황 목사는 총장직에서 해임됐다. 그리고 박 씨는 다시 총장으로 돌아왔다. 황 목사는 이사회가 소집된다는 것을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사진 다수도 모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사회 전에 총장 자리를 내려놓으라는 협박 전화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때 새로운 이사장과 이사진을 구성하고, 박 씨는 다시 총장직을 되찾았다.

    황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총장이 사임 의사도 밝히지 않았는데, 사임 처리가 될 수 있는 것이냐"고 말했다. 박 씨가 불법으로 이사회를 소집한 일은 이후 서가주노회가 박 씨에 대해 면직 처분을 내린 이유가 됐다.

    신축 건물과 함께 무너진 박 씨



    ▲ 완공을 눈 앞에 두고 멈춰 버린 나성열린문교회 신축 건물.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박 씨가 몰락한 두 번째 계기는 박 씨가 자랑했던 교회 건축이 실패한 것이다. 교회 건축 당시부터 무리한 진행으로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박 씨는 늘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로 그 웅대한 계획을 자랑했다.

    박 씨의 건축은 교회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은행과 협상에 나서 순조로운 듯 진행됐다. 하지만 3천여만 불이 투입된 교회 건축은 결국 난관에 부딪쳤다.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면서 대출금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다.

    한 교회 관계자는 대출금 일부 상환 혹은 일정 담보 금액을 설절해야될 때 박 씨가 필요한 금액을 은행에 지불하지 않고, 거액의 채무자들이 간혹 보이는 '배짱'을 과시하며 은행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때 박 씨는 LA 교계에서 교회 건축 및 매매에 관여하며 이익을 챙긴 사채업자 박아무개 씨에게 교회 소유권을 맡겨 채불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완성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교회 신축 건물은 경매에 넘어가 차압되고 그 소유권은 넘어갔다. 박 씨와 나성열린문교회가 다시 건물의 소유권을 되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전 교회 관계자와 교계 인사들의 설명이다.

    박 씨가 지으려 했던 나성열린문교회의 신축 예배당은 97% 공정 상태에서 중단됐다. 이미 소유권이 넘어간 교회 신축 건물의 외관은 완공 직전 상태다. 건물 주변의 간단한 시설 정비만 하면 언제든 입주가 가능한 듯 보였다. 흔히 새 예배당에 입주하고 치르는 '헌당 예배'를 눈 앞에 두고 교회 건물이 은행에 넘어간 것이다. 이 일은 LA 지역에 논란이 되며 여론의 관심을 받았다.

    흉물스러워진 건물 주위로 철망이 세워져 출입을 굳게 막고 있었다. 건물이 차압되기 직전까지 박 씨는 성도들에게 '교회 건축이 아무 문제없다'고 강조해왔다. 교회 관계자들은 건물 내부에 들여놓을 가구 및 물품들을 알아보고 있었고, 교계와 일반 한인 언론들은 박 씨와 그의 건축을 홍보했다. 결국 건축을 둘러싸고 있던 크고 작은 신용의 문제들을 오판한 박 씨가 교인들이 공들여 세운 건물을 통째로 은행에 넘긴 것이었다.



    ▲ 나성열린문교회 박 씨는 교회 건축이 실패하고 기존 예배당에서도 쫓겨나자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교인들과 인근 지역 예배당을 빌려 모이고 있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정치 목사의 끝, 면직

    박 씨의 위세는 날로 꺾여 갔다.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교인들과 동료 목회자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려 했다. 그런 그를 자신의 방패막이 삼아온 소속 서가주노회에서 면직·출교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일부 교계 단체에서 박 씨의 성범죄 문제를 정식으로 총회에 지적하고, LA 지역 신문에 박 씨의 범죄 사실이 보도되자 KAPC 서부 지역 3개 노회(남가주·가주·LA중앙)에서 총회에 박 씨 문제를 정식으로 제소했다.

    서가주노회 일부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소속 노회원을 타 노회에서 치리 요구하는 상황이 되자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야 될 문제'라며 임시노회 소집을 요구했다. 하지만 박 씨에 대한 비판을 앞장서 방어하던 당시 노회장 정종윤 씨가 이를 묵살했고, 임시노회 소집을 3차례 이상 거부하자 서가주노회 목회자들은 총회 법에 따라 임시노회를 소집하고 박 씨와 정씨를 면직했다고 설명했다.

    박 씨의 면직 소식은 미주 교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영향력을 과시해온 정치 목사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믿어왔던 노회에서 면직된 것이다. 면직된 이후 박 씨는 항소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항소하지 않는다. 대신 박 씨는 자신의 정치력을 모조리 쏟아 냈다. 자신에게 면직 처분을 내린 서가주노회 임시노회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한 것이다.

    두 곳의 서가주노회가 자신이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KAPC 총회장 김남수 목사는 교단발전상임위원회 회의 요청했다. 이 회의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임원회의 사항에 따라 박 씨에게 면직 처분을 내린 서가주노회의 결정을 합법이라고 총회가 손을 들어주게 된 셈이다. 이러한 결의 내용에 따라 박 씨의 면직은 사실상 총회의 승인을 받게 됐다. LA 한 교계 인사는 항소하지 않은 박 씨는 총대 자격을 잃고, 지역 신문에 면직 공고가 발표됐으니, 박 씨의 치리 문제는 이미 마무리 된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박 씨가 총회에 항소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서가주노회'를 조직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교계 관계자는 박 씨가 총회를 향해 항소할 경우 자신에 면직 처분을 내린 노회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자신에 면직 처분을 내린 서가주노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총회장 등 총회 임원에 대해 불신임하면서 교단을 떠나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또한 자신의 면직 사유가 되기도 했던 범죄에 대한 목회자들의 관심을 돌리고, '교계 정치 싸움'으로 자신의 문제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면직, 그 후

    박 씨는 면직되어 KAPC 헌법에 따라 목사직을 잃었지만, 여전히 자신은 목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성열린문교회 건물이 은행에 넘어간 뒤 박 씨는 일부 교인들과 인근 교회 건물을 빌려 모임을 갖고 있다. 많은 이들이 박 씨를 떠났지만, 그의 가족과 친지들을 비롯해 일부 교인들이 여전히 그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교단 직영으로 운영되는 국제개혁신학교의 총장직 또한 내려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황은영 목사는 국제개혁신학교 정관은 교단 헌법에 따르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목사직을 박탈 당한 박 씨는 총장 자격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교회법이 양심에 따르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박 씨의 퇴임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다만 노회와 교단의 치리와 그 법을 따르도록 선서하고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무시한다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 황 목사의 말이다.



    ▲ 면직된 박 씨는 여전히 국제개혁대학교 총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국제개혁대학교 ABHE 정회원 인준 당시 박 씨(왼쪽)와 이사장 서종천 목사(오른쪽). (사진 출처 : 인터넷 갈무리)

    여전히 총장직을 지키고 있는 박 씨.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올해 2월 국제개혁대학교는 ABHE 총회에서 정회원 자격을 획득했다. 정식으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씨와 '7월 이사회'에서 선출된 이사장 서종천 목사, 이사회 서기 정종윤 씨 등이 그 주역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아직까지 자신에 대한 징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그이지만 결국 '면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 박 씨는 예장 합동 인사들을 통해 이후 일어난 자신의 면직 처분에서 벗어날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합동 측과 LA 교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박 씨가 올해 5월 열리는 총회에서 총회장 불신임을 결의하고 총회를 탈퇴한 뒤, 예장 합동 미주노회를 세워 KAPC에서 잃은 자신의 목사직을 회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씨가 면직된 뒤 자신의 추종 세력들과 세운 '서가주노회'는 지난 3월 노회를 열어 <미주뉴스앤조이> 보도로 알려지게 된 총회장 횡령 사건을 빌미로 총회장에 불신임을 결의한 상태다. (관련 기사 : KAPC 뉴욕동노회 '총회장 연루 공금 횡령 확인')

    '총회에서 큰 일 벌어질 것'

    ▲ 철망에 갖혀 접근을 금지 당한 나성열린문교회 신축 건물.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박 씨의 면직은 LA 지역 사회에 큰 화제가 되었다. 그가 90년대 초 여집사 ㅇ씨를 성폭행한 일이 20년을 지나 그의 목에 다시 칼이 되어 돌아왔다. <미주뉴스앤조이>와 만난 ㅇ씨는 여전히 상처를 안고, 원망과 분노를 품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교계 관계자들은 노회의 면직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정치력을 써 복권하려고 애쓰는 박 씨를 두고 혀를 찼다. 위용을 자랑하던 건물은 쇠사슬과 철망에 갇힌 채 LA의 흉물이 되어 갔다. 전도지를 나눠주던 교인들이 '박헌성에게나 전도하라'는 말을 듣는 일까지 벌어졌다. 박 씨 성폭행 증거로 나온 나체사진은 '성범죄 목사의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사회에 퍼졌다.

    올 5월 KAPC 총회도 박 씨 덕분에 때 아닌 주목을 받게 됐다. LA 지역 교계 신문 기자 중 한 사람은 '총회에서 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면직을 받은 박 씨가 자신의 정치력을 발휘해 총회에서 어떤 일을 벌일지, 그 행보가 주목된다는 뜻이다. 총회장 출신으로 면직되고 LA 지역 신문에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라는 이름으로 오르내리던 그는 목사로서 몰락했지만, '정치'로 다시 재개를 꿈꾸는 것일까.
    전현진 기자 / jin23@newsnjoy.us


    ===================================================
    레위기 설교 노트

    예언자의 눈으로 레위기를 읽어라
    성기문 (ksung)

    구약 레위기를 제대로 설교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구약 레위기를 제대로 적용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레위기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논의에서 레위기 혹은 구약의 제사 제도라는 표현을 병행해서 사용하게 될 것이다.

    레위기가 상당 부분이긴 하지만, 구약의 제사 제도를 전부 포괄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레위기와 구약 제사 제도가 동의어는 아니지만, 레위기를 설교한다는 점에서 함께 이해해야 한다. 구약 제사 제도는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오경 속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시간과 공간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실제 레위기 설교와 관련된 부분만 집중적으로 다루어보기로 한다.

    레위기를 잘 설교하려면, 우선 당시 청중에게 주어졌던 레위기라는 책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를 잘 알아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레위기는 오경 속에서 읽어야 한다. 또한 레위기 책을 읽던 구약 사람들과 신약 사람들은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읽었을까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레위기 메시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의미 자체를 혹은 오경 내에서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는 것도 유익하겠지만, 설교자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레위기 본문 혹은 제사 제도를 이스라엘 왕조시대에 그것이 어떻게 이해(적용)되었는가를 비교하면서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구약 역사서를 보면, 구약 제사 제도에 대한 증거들이 너무나 단편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 기술적인 연구와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신약이 구약 제사 제도를 어떻게 이해하였는가도 레위기 설교 적용의 필수 요소다. 이번 기사에서는 구약 왕조 시대의 문헌인 예언서, 특히 이사야서 1:11~15에 나타난 제사 제도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고 다음 기사에서는 복음서에 나타난 구약 제사 제도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자. 그 후에 오경 내에서 제사 제도를 다뤄 보자.

    1. 예언자들은 제사 제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구약 예언자들은 제사 제도를 구성하는 제사장이나 제사 시스템이나 성전 자체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퍼부었다. 예언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에 도입된 제사 제도는 도입된 지 몇 백 년이 지나지 않아 용도 폐기해야 할 정도로 그 본질과 의미를 상실해 버렸던 것이다.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이사야서의 고발은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같은 다른 예언서들의 고발에 비해 약하면 약했지 절대로 지나친 것이 아니다. 여기에 인용된 이사야 본문에서 ()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추가한 표현이다.

    11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져오는)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제단에서 드려지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제단에서 뿌려지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그런 식으로) 너희가 내 앞에 (제물을 가지고)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그런 식으로 제물을 드리라고) 요구하였느뇨

    그것은 내 (성전)마당만 밟는 것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피곤하였느니라

    15 너희가 (기도하려고 하늘을 향해) 양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사실 이와 같은 예언자들의 극단적인 비판은 예수 시대에나 우리 시대에도 그 울림이 크다고 하겠다. 예배의 핵심인 헌금과 예배 의식과 기도를 부인하는 일은 그 형식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제사란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다리 같은 것이었다.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은 만나고 교제할 뿐만 아니라,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결하게 되고 거룩해지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과의 연결 고리를 끊으시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져다 바치는 모든 제물과 의식과 절차들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선언하신다.

    이 단락이 우리에게 주는 인상은 당시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제물("너희의 무수한 제물" 11절)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져왔는지, 이들이 온갖 종교 의식을 수행하면서도 삶에서 불의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가("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 14절) 하는 것이다. 제물이라는 것이 헌제자가 정성껏 가져와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열납)을 소망하는 것인데, 하나님으로부터 온갖 부정적이고 기분 나쁜 평가만이 즐비하다("유익하뇨?", "기뻐하지 않고", "견디지 못하고", "싫어하고", "피곤하다').

    사실 우리는 가끔 하나님과의 만남과 그의 교훈과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여기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부정적인 평가를 늘어놓지 않는가? 그런데 결국은 '가증한 것'이라는 말(13절)까지 나오고 말았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피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첫째는 죄요, 둘째는 부정한 것이며, 셋째는 가증한 것이다. 이 토에바(가증)는 말 그대로 아주 역겨운 상태를 말한다. 죄를 지어도 부정해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금해야 하거늘, 역겨운 상태라니… 이와 같이 예언자들이 당시의 제사 제도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제사와 관련된 중요한 개념들과 단어들을 역설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예언서를 잘 읽는 것과 레위기를 잘 읽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필자가 주장하듯이 두 가지 책은 함께 읽어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집중적으로 함께 읽어야 할 부분이 있다. 또한 제물과 제사 제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예언서를 먼저 읽고 레위기를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제사장과 제사와 성전에 대한 예언자들의 신랄한 비판을 읽노라면, 레위기와 구약 제사 제도의 본질과 타락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날 것이고 레위기 본문에 더 착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예언서 없이 레위기를 읽어 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예언자와 제사장을 서로 상극인 계층으로 이해하였다. 예언자는 기존 제도를 비판하고 제사장은 기존 제도를 보존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예언서를 보면, 예언자들은 타락한 제사장들뿐만 아니라, 타락한 예언자들도 비판하며, 또 중요한 예언자들은 제사장 가문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 기사에 살펴보겠지만, 복음서에서 예수가 당대의 제사 제도에 대한 '비판적' 예언자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그러한 점에서도 구약의 예언자적 비판은 복음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며, 우리가 기존의 종교 시스템에 대한 예언자적 설교를 하는 데 있어서 유익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구약 왕조 시대 예언자들은 제사 제도 자체의 의미와 가치를 '부정'한다기보다는 변질되고 오해된 것에 대하여 통렬히 '비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제사 제도는 이스라엘 신앙을 유지시켜 주는 뿌리이자 기둥이었지만, 그것이 썩고 부패하여 하나님 자신의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예언자들의 설교가 당시 청중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까를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와 같이 예언자 시대의 종교개혁은 당시 제사 제도를 유지시켜 주는 다양한 제물과 복잡한 의식 절차, 혹은 관료화된 제사장과 제사 절차와 성전 존재 자체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했다. 그와 같이 레위기가 말하는 내용을 예언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레위기를 현대 교회 앞에서 설교하려는 설교자에게 필요하다. 이것은 그러한 설교를 듣는 청중에게도 필요한 시각이다. 우리가 매주 공예배에서 듣는 설교자의 메시지가 이스라엘 왕조 시대의 타락한 제사장의 메시지인가, 부패성을 드러내는 예언자의 메시지인가를 분별하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계속).

    성기문 / 신명기 해설서 <모세의 고별설교> 저자, <레위기 주해와 설교>도 출판 예정이다.


    ===============================================
    빚 문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

    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6 : 자본/대부에 관한 기독교경제윤리
    희년함께 (landliberty)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와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영화 모두 빚 문제가 영화의 배경에 깔려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영화 '화차'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신용카드 빚으로 인해 불행해진 여성의 인생을 그린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火車)를 각색하여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 화차에서 배우 김민희는 아버지가 남긴 빚으로 인해 한 여자의 인생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잘 보여 준다.

    영화 '피에타'에서 배우 이정진은 끔찍한 방법으로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 '강도'로 나온다. 영화 피에타는 우리 사회의 끔찍한 빚 문제를 잘 보여 주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피에타3법(이자제한법, 공정대출법, 공정채권추심법)'이라는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빚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문제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1000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국가 부채도 1000조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2012년 말 정부 부채는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재정 적자를 기록하면서 445조 9000억 원으로 늘었고, 중앙 공기업 부채는 442조 원, 지방 공기업 부채는 70조 원대로 늘어났다고 한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국가 부채가 1000조 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가계 부채도 집값 및 전월세 폭등으로 인한 대출과 사업 및 생계로 인한 대출을 합쳐 1000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학자금 대출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주변에 빚 없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빚을 지는 이런 세상이 정상적인 세상일까?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개인이나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이자와 원금을 갚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는 누군가에게 돈이나 재화를 꾸어 주고 이자와 원금을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 꾸어 주고 이자와 원금을 받는 것에 대해 뭐라고 말씀할까? 꾸어 주고 이자를 받는 것과 빚보증, 저당/담보에 관한 성경 말씀을 먼저 살펴보자.

    대부와 이자에 관한 성경 말씀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출 22:25~26)."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레 25:36~37)."

    "매 칠 년 끝에는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면제 규례는 이러합니다. 누구든지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동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방 사람에게 준 빚은 갚으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신들의 동족에게 준 빚은 면제해 주어야 합니다(신 15:1~3, 표준새번역)."

    "네가 형제에게 꾸어 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 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 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신 23:19~20)."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하며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18:8~9)."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거나 이자를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결코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반드시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18:13)."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리나 이자를 받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의 아버지의 죄악으로 죽지 아니하고 반드시 살겠고 (겔18:17)."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돈과 이자를 받았으며 이익을 탐하여 이웃을 속여 빼앗았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2:12)."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느5:6~13)."

    "높은 이자로 재산을 늘리는 것은, 마침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혜로 베풀어질 재산을 쌓아 두는 것이다(잠 28:8, 표준새번역)."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시 15:5)."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시 37:21)."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눅 6:35)."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눅 19:23)."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빚보증에 관한 성경 말씀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잠 11:15)."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잠 17:18)."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잠 20:16)."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잠 22:26)."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잠 27:13)."

    "너보다 더 세력 있는 사람에게 돈을 꾸어 주지 말아라. 혹 꾸어 주었거든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하여라. 네 능력 이상으로 보증을 서지 말며 보증을 섰으면 대신 갚을 각오를 하여라(집회서 8:12~13)."

    빚에 따른 저당/담보에 관한 성경 말씀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출 22:26~27)."

    "사람이 맷돌이나 그 위짝을 전당 잡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당 잡음이니라(신 24:6)."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 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전당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신 24:10~13)."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욥기 24:2~4)."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주며 강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하며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하지 아니하고 이 죄악 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 산 위에서 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거나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거나 강탈하거나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주지 아니하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거나 이자를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결코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반드시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버지가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도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도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도 아니하며 사람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저당을 잡지도 아니하며

    강탈하지도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리나 이자를 받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의 아버지의 죄악으로 죽지 아니하고 반드시 살겠고 그의 아버지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강탈하고 백성들 중에서 선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는 그의 죄악으로 죽으리라(겔 18:7~18)."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겔 33:15)."

    "그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느 5:1~5)."

    성경은 이자 자체를 금하는가

    빚에 대한 성경의 전체적인 느낌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다. 빚을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는 느낌이다. 구약의 율법서(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와 예언서(에스겔), 느헤미야, 시편, 지혜서(잠언), 신약의 복음서(누가복음)에서는 모두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자 자체를 금하는 것일까?

    구약 율법은 같은 이스라엘 동족에게서 이자 받는 것을 금한다. 이자 금지 규례는 이방인이 아닌 오직 같은 이스라엘 동족에게만 적용된다. 대부분의 성경 말씀은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이방 사람에게 준 빚은 갚으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신들의 동족에게 준 빚은 면제해 주어야 합니다(표준새번역)"라는 신명기 15:3 말씀과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 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라는 신명기 23:20 말씀은 이방인(타국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허용한다.

    성경에는 같은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은 많지만 이자를 받으라는 말씀은 신명기 15:3, 신명기 23:20 두 구절뿐이다. 또 꾸고도 갚지 않는 것에 대해 나쁘다고 말씀하는 것은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라는 시편 37:21 한 구절뿐이다.

    신명기 23:20에 나오는 이자를 받아도 되는 이방인(타국인)은 이방인을 뜻하는 세 가지 히브리어 게르(ger), 토샤브(tosab), 노크리(nokri) 중에서 노크리에 해당한다.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게르)이나 우거하는 자(토샤브)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레 25:35~37)"는 말씀 중에서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는 이방인은 객(게르)과 우거하는 자(토샤브)다. 게르와 토샤브에게서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고 노크리에게서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는 말이다.

    구약학자 시릴 로드(Cyril S. Rodd)는 (Edinburgh: T&T Clark)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사는 게르와 토샤브와는 달리 노크리는 잠시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거나 지나가는 외국 상인이라고 해석한다. 이스라엘 거주자가 아닌 상업을 목적으로 온 이방인(노크리)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는 해석이다.

    이스라엘 동족을 비롯해 게르, 토샤브가 아닌 노크리에게서는 이자를 받아도 되고 이들은 빚 탕감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또 시편 37:21은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준다고 말씀하는 동시에 갚을 수 있는데도 꾸고 갚지 않는 것은 악한 것이라는 채권자와 채무자 양쪽의 윤리를 말씀한다.

    가난한 사람을 '물어뜯는' 이자와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이자

    롤랑 드보(Roland de Vaux)는 <구약시대의 생활 풍속>(대한기독교서회)에서 이자를 뜻하는 히브리어로 네쉐크(neshek)와 타르비트(tarbit) 중에서 네쉐크는 '물어뜯다', 타르비트는 '증가'를 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쉐크는 출애굽기와 신명기, 시편 55:5절에서만 나타나고, 후기 시대의 문서들에서는 네쉐크가 타르비트와 나란히 사용되며 두 의미의 구별을 어렵게 한다고 드보는 말한다.

    드보는 채무자가 빚 문서에 60세겔을 빚졌다고 쓰고 실제 빌리는 돈은 40세겔일 때 20세겔은 채권자에게 이미 '물어뜯긴(네쉐크)' 것이고, 만기일에 60세겔을 되갚을 때 '증가(타르비트)'된 20세겔을 갚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눅 16:1~8에서 빚진 사람의 빚 문서에서 빚을 줄여 주는 불의한 청지기를 오히려 지혜롭다고 칭찬하신 것은 이런 상황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네쉐크를 뜻하는 이자는 가난한 사람을 물어뜯는 부정적인 의미를, 타르비트를 뜻하는 이자는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이자인 것으로 보인다. 가난한 사람을 '물어뜯는' 이자를 받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이자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이자를 금지하고 모든 부채의 탕감을 말씀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어려움을 통해 이자 수익을 얻는 건 비윤리적

    상업을 목적으로 온 타국인이 돈이나 재화를 빌리는 경우는 생활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본을 빌려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길 목적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성경은 암시한다. 만약 누군가가 생활이 어려워서 빌리는 것이 아닌 이윤을 남길 목적으로 남의 자본을 빌려서 사업을 하여 더 많은 이윤을 남겼다면 이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는 말이다.

    예수님도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눅 19:23)"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사업을 위한 대부에 따른 이자는 정당한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사업을 위해 필요한 자본을 빌려 주고 상호 유익을 도모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이런 자본 대부에 따른 이자는 자연스럽고 정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과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서 이자를 받으면서(물어뜯으면서) 이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과 파산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빚을 지는 사람은 땅을 잃은 가난한 사람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평등하게 땅을 분배받고 자기 노동의 열매를 누리며 사는 상태에서 빚을 지게 되는 사람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불가피한 이유로 인해 노동을 할 수 없어서 자기 땅을 희년까지 다른 사람에게 팔고도 가난에 처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불가피한 이유로 인해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은 일단 자기 땅의 일부 혹은 전부에 대한 사용권을 희년까지만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땅을 팔았어도 친족(고엘)이나 자신이 다시 무르기를 할 수 있었다. 친족도 자신도 무르기를 할 수 없으면,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희년까지만 땅의 사용권을 팔 수 있기 때문에, 희년이 되면 다시 땅을 돌려받게 된다.

    구약 이스라엘에서 빚을 지게 되는 사람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희년까지 땅의 사용권을 다 팔고 난 후에도 생계가 어려워 다시 빚을 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희년까지 땅을 팔아 버린 사람은 빚을 갚지 못하면 이스라엘 동족의 품꾼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 이방인의 품꾼이 된다. 이런 사람에게 꾸어 주고 이자를 받는다는 것은 같은 동족을 품꾼이나 종의 상태에 계속 빠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런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희년까지 땅을 팔아 버리고도 생계가 어려워 빚을 진 사람에게 이자를 받게 되면 다시 일어서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가난에 처한 이스라엘 동족에게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서 자기 땅과 가족을 회복하고 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이자를 받지 말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안식년의 빚 탕감, 전부인가 일부인가 유예인가

    신명기 15:1~3에서는 "매 칠 년 끝에는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면제 규례는 이러합니다. 누구든지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동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방 사람에게 준 빚은 갚으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신들의 동족에게 준 빚은 면제해 주어야 합니다(표준새번역)"고 말씀한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은 일곱 번째 안식년(면제년)에 탕감해 주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빚을 탕감해 주라는 유일한 구절인 신명기의 안식년(면제년) 빚 탕감 규례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 어떤 학자는 빚의 완전한 탕감이 아니라 안식년 1년 동안에 진 빚만을 탕감해 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 어떤 학자는 안식년에는 빚을 유예해 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안식년에는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지 못하고 안식년이 끝나면 빚을 다시 받는다는 말이다.

    안식년의 빚 탕감이 일부 탕감이나 빚의 유예라는 해석의 근거는 안식년에는 땅의 휴경으로 인해 소득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그 해에는 빚을 갚으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이방인에게는 부채 탕감을 해 주지 않은 것도 이방인은 안식년에도 경작을 하여 소득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안식년에 빚을 모두 탕감해 주면 꾸고서도 갚지 않으려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나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식년(면제년)의 부채 탕감이 빚 전부를 탕감해 주는 것이 아닌 안식년 1년간의 빚만을 탕감해 주거나 안식년 1년 동안만 빚 갚는 것을 유예해 주는 것이었다면 빚을 진 사람이 다시 자립하여 자신의 땅과 몸을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하루 빨리 자신의 땅과 몸을 회복하여 자유인이 되라고 말씀하는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에 맞지 않는다. 안식년의 빚 탕감이 안식년 1년간의 빚만을 탕감해 주거나 안식년 1년 동안 빚 갚는 걸 유예해 주었다는 주장은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에 비춰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안식년의 빚 탕감을 회피하기 위해 랍비 힐렐이 프로스불(Prosbul) 제도를 만든 점이나, 고고학적으로 채무자가 안식년을 통해 예상되는 이익을 단념한다는 조항이 담긴 빚 문서가 발견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안식년에 빚을 탕감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안식년의 빚 탕감은 1년간의 빚 탕감이나 빚의 유예가 아닌 전체 탕감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빚으로 인해 저당 잡힌 토지도 안식년에 회복

    대천덕 신부는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홍성사)에서 안식년에는 토지를 경작해서는 안 되며 저당권을 포함한 부채는 탕감되고 품꾼과 종은 해방된다고 말한다. 또한 빚을 져서 토지를 저당 잡힌 경우 안식년에 저당권이 말소되지만 희년까지 대가를 받고 토지 사용권을 빌려 준 경우에는 남은 기간의 임대료를 친족이나 자신이 무르지 않는 한 희년이 되기 전 안식년에도 본래의 임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빚을 져서 저당 잡힌 토지는 안식년에 부채가 탕감됨으로써 다시 되돌아오지만 대가를 받고 희년까지 사용권을 판 토지는 희년까지 남은 값을 치르고 무르기를 하지 않는 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식년에 부채가 탕감되었다는 말은 만약 토지가 저당 잡혔다면 저당 잡힌 토지가 다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율법에서는 토지나 집을 저당 잡을 수는 없고 기껏해야 겉옷을 저당 잡을 수 있다. 겉옷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그 사람의 인격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당 잡은 겉옷마저도 그날 저녁에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겐 겉옷이 덮고 잘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출 22:25).

    구약 이스라엘에서 빚을 지게 되는 사람은 희년까지 토지의 사용권을 다 팔고 난 후에도 생계가 어려워 다시 빚을 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빚을 질 때 토지를 저당 잡을 수는 없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 이스라엘 율법에서는 토지를 영원히 팔 수 없고 토지 무르기나 희년을 통해 언젠가는 다시 토지가 회복되기 때문에 자본을 빌려 줄 때 토지를 저당 잡았다가 빚을 갚지 못하면 토지를 돌려주지 않고 영원히 뺏는 것은 율법이 금하는 죄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느헤미야 5:3~5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을 보면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을 어기고 땅과 집을 저당 잡으면서 돈과 곡식을 빌려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빚을 갚지 못하면 동족을 종으로 만들고 땅과 집, 자식을 빼앗았던 것으로 보인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런 반(反) 희년적인 이스라엘의 죄악에 분노한 것으로 보인다.

    욥기 24:2~4의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저당) 잡으며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는 말씀을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가축도 저당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열왕기하 4:1~7의 말씀을 보면 빚을 갚지 못해 채권자가 과부의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려고 하자 엘리사가 기름을 만들어 주는 기적을 통해 그들을 구해 주는 장면을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빚을 갚지 못하면 자식까지도 빼앗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식을 빼앗아 종으로 만드는 채권자에 대한 느헤미야의 질책과 빚으로 인해 자식이 종이 되는 것을 구해 준 엘리사의 행동,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사 50:1)"라는 말씀을 보면 빚을 갚지 못했을 때 채무자의 자식을 빼앗아 종으로 삼는 것은 성경이 금하는 악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에 담긴 빚에 대한 가르침은…

    땅을 희년까지 팔지 않은 상태에서 빚을 져서 토지가 저당 잡혔다면 저당 잡힌 토지를 안식년에 되돌려 주기 전까지 채권자는 토지를 통해 임대 수익이나 토지의 생산물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저당 집힌 토지는 안식년에 부채가 탕감되면 되돌려 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저당 잡았던 토지를 안식년과 희년이 되어도 되돌려 주지 않는 것은 강탈이자 도둑질이며 동족을 종으로 만드는 죄악이다.

    반면 희년까지 대가를 받고 사용권을 빌려 준 토지까지 남은 값을 물러 주지 않고 안식년에 되돌려 준다면 토지를 빌려 준 사람에게는 이익이고 빌린 사람에게는 불이익이다. 따라서 안식년에는 빚으로 인해 저당 잡힌 토지가 있다면 부채 탕감과 함께 되돌려 주는 것이 맞지만, 희년까지 대가를 받고 사용권을 팔아 버린 토지는 무르기를 하지 않으면 희년이 되기 전까지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구약성경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거나 불가피한 이유로 인해 희년까지 땅을 팔고 가난해진 사람에게는 다시 자립하여 땅과 몸을 회복할 수 있도록 꾸어 주고 이자를 받지 말 것과 함께 안식년(면제년)에는 갚을 수 없는 빚은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이 아닌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무역이나 상업, 사업을 하는 이방인(외국인)에게 빌려 준 자본에 대해서는 이자를 허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구약성경에 담긴 빚에 대한 가르침은 '빈민(貧民) 무이자 대부'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의 탕감', '생산적인 대부의 이자는 허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빚보증에 관해 주로 잠언에 많이 나오는 말씀들은 빚보증을 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다. 대부분 빚보증을 서지 말라는 것이다. 외경인 집회서에는 "네 능력 이상으로 보증을 서지 말며 보증을 섰으면 대신 갚을 각오를 하여라(집회서 8:13)"고 말한다. 성경 말씀은 전체적으로 빚보증을 서지 말거나 대신 갚을 각오를 하면서 능력 안에서 빚보증을 설 것을 말씀하고 있다.

    빚에 따른 저당/담보에 관한 말씀들을 살펴보면 빚을 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겉옷 이외에 다른 것은 저당 잡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채권자가 저당물을 취할 때도 채무자의 집에 들어가서 저당물을 취할 수 없고 채무자가 직접 저당물을 가지고 나와서 주어야 한다(신 24:10~13).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강제로 끌어내는 차압이나 압류, 비인간적인 채권 추심 같은 것은 성경의 뜻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빚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지금까지 교회는 빚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 왔는지, 빚에 관한 성경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현대사회에 실천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고영근 / 희년함께 사무처장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교계소식
    목사를 막아라, 텅빈본당 /목사 연금 1,600억으로 '돈 장사'한 집사 구속/ 캄보디아 박율 목사 체포 충격
    최태민 구국선교단 참여 목사들 / 십일조 하지 말라는 목사 /한우갈비’외치는 기감목사들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서울광장서 개막 /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무죄
    선교사들 위한 안식관 두 곳/ '노트북이 뭐라고' 소송 총동원한 사랑의교회
    언더우드 후손 28명 우리 고향은 South Korea/ 군종장교 범죄
    박수홍,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 예의/ 죽음의 질(Well dying) 중요
    예장통합 ‘제2의 세습방지법안’ 총회 통과/ 예수님처럼 교회도 하늘에서 내려와야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적극 반대 /목회자의 고백 7가지 실수
    총회장 2명을 배출한 여인의 힘! /복음화율 10% 안 되는데 주일학교만 1천 명
    김영란법 시행… 교계는 어떻게 / 무릎으로 승리한 맥아더
    국제성막훈련원, 광야 성막 재현 /서울시, 신천지 위장행사에 혈세 지원
    이정현 대표 , 두려울 때마다 기도/ 칼뱅은 '여성 안수' 인정했다
    이단에게 기회 한 번 주자, 채영남 총회장/교회 선택의 최우선은 여전히 '설교
    목사, 장사의 신(神)이 되다
    다시 만든 벤허 보니 충격적 / 김진홍목사, 검찰조사 /17년 키운 아들, 알고보니 목사님 ..?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개인정보취급방침 |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