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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지 포교전략과 교리에 대한 신학적 비평(2)
    2011-11-24 20:03:39   read : 655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덕술 목사(예수님사랑교회, 에제르상담센터 소장)

    이 글은 이덕술 목사(예수님사랑교회, 에제르상담센터 소장)가 Grace The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제출한 ‘선교학적 시각으로 조망한 한국교회 이단운동(異端運動)에 대한 분석적 비판과 개혁주의 신학적 준거(準據)에 의한 전략적 접근 - 신천지 교주 이만희를 중심으로-’라는 2010년 논문을 축약한 글입니다. 신천지의 전도전략은 물론 조직·선교 신학적 문제점과 한국교회 이단 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을 연구한 자료로서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사려됩니다. <편집자주>


    신천지의 요한계시록의 실상교리(實相敎理)에 대한 개혁주의적 비판

    본 장에서는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실상교리에 대한 개혁주의적 비판을 시도했다. 신천지의 교리적 특성은 일반 이단들과는 달리 독특하다. 단순한 성경 및 조직 신학적 차원에서만 고찰하면, 교주, 이만희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난해하다. 그것은 신천지만이 가지고 있는 ‘실상교리’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신천지가 주장하는 실상교리가 무엇이며 요한계시록 각 장의 실상교리를 어떻게 만들어 주장하고 있는지 주밀(周密)하게 파악해 보자.

    필자는 신천지에서 실상 교육할 때 사용하는 요한계시록 각 장의 그림들을 이해를 돕고자 수록하였다. 요한계시록 총 22장 중에 선택적으로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실상 비판을 시도하였다. 본 장에서 선별하여 다룬 부분만 바로 이해를 해도 신천지의 실상교리 체계의 전체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신천지 이단 상담을 효과적으로 하기 원하는 자들에게는, 이 실상교리를 반드시 이해하여야 그들과 대화가 가능함을 미리 주지시키는 바이다. 본 장 끝부분에서는 신천지의 핵심교리인 ‘실상교리’ 속에 신천지의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을 돕기 위하여 문화와 세계관을 소개하였다.

    Ⅰ.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의 요한계시록 해석 원리

    신천지는 일반 정통교회의 요한계시록 해석법을 따르지 않는다. 신천지는 신천지식의 독특한 요한계시록 해석법을 가지고 있다. 신천지의 요한계시록에 대한 사고체계를 이해해야 상담할 때 피상담자를 효과적으로 깨우칠 수 있다. 신천지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A. 신천지는 요한계시록 1장부터 22장까지의 전장(全章)이 시간 및 사건 순으로 전개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한다.

    신천지는 요한계시록에 사건의 전후를 구분하는 ‘이 일 후에’ 라는 말씀이 6회가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요한계시록 1:1-8절까지는 계시록의 전장 사건을 보고 듣고 요약한 결론으로 해석하고, 본론은 요한계시록 1:9절부터 시작된다고 한다(이만희, <천지창조>, (안양: 도서출판 신천지), 186; <계시록 실상 통합 교육> 강의안, 5).

    첫 번째 ‘이 일 후에’(계 4:1)는 2, 3장의 편지를 보낸 사건 후 사건으로, 두 번째 ‘이 일 후에’(계 7:1)는 6장의 선민 심판 후 144,000인(印)치는 사건으로, 세 번째 ‘이 일 후에’(계 7:9)는 144,000 인친 후 흰 무리 구원 사건으로, 네 번째 ‘이 일 후에’(계 15:5)는 증거장막 성전(유리 바다)에 모인 후 사건으로, 다섯 번째 ‘이 일 후에’(계 18:1)는 17장의 음녀(淫女) 심판 후의 사건으로, 여섯 번째 ‘이 일 후에’(계 19:1)는 18장의 바벨론 심판 후의 사건으로 해석한다(이만희, <천지창조>, 186-7;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계시록 실상 통합 교육> 강의안, 5-6).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이 일 후에’는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환상의 논리적 순서를 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적인(temporal) 속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적인(rhetorical) 표현기법으로 봐야 한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서울: 이레서원, 2006, 238-239). 또한 요한계시록 1:19의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Everything you see: things that are, things about to be. Eugene Peterson, The Message, 이하 Message로 함, Revelation 1:19)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삼등분하여 해석하는 것은 이해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구분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과도하게 단순화(單純化)시키는 오류를 낳는다.

    2-3장의 내용에도 당시의 현재적 사건이지만 미래적 종말론적 사건을 예시하는 내용을 가지며, 4장 이후에도 단순히 미래적 사건만이 아니라 현재적 사건을 서술한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98-102). 그러므로 이러한 단순화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 막는 걸림돌(scandalon)이 될 수 있다.

    B. 신천지는 요한계시록 전장(全章)을 예언으로 간주하고 그 예언이 이루어진 실제 실상(實相)이 이미 있다고 해석한다.

    이만희는 요한계시록의 “전장 사건은 길 예비 등불의 역사를 하는 일곱 사자의 출현으로 시작된다”(이만희, <천지창조>, 186)라고 한다. 즉 이만희는 신약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진 곳이 “1966-1993년 대한민국 경기도 과천 소재 산하 일곱 별이라고 주장한 일곱 목자가 하나님과 언약한 성전이었다”(이만희, <계시록의 실상>, 14)라고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요한계시록의 전장(全章)을 과거에 ‘과천’에서 있었던 사건과 인물들을 실상으로 대입하여 해석을 하고 있다.

    “계시록을 증거한 필자의 간증은 계시록이요, 2000년 전 밧모섬에서 사도요한이 본 장래사가 오늘날 실상으로 이룬 것을 예수님과 천사들로부터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한 것이다”(이만희, <계시록의 실상>, 14).

    신천지인들은 이와 같이 이만희가 주장하는 대로, 1966년부터 시작된 신천지의 설립 배경과 사건, 인물, 연혁 등을 요한계시록의 실상(實相)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체계를 이해하려면 그들이 믿고 있는 실상들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특히 신천지인들을 상담하려면 성경의 바른 해석과 함께 동시에 그러한 실상의 모순들을 주밀하게 규명해 줘야 한다.

    C. 신천지는 요한계시록의 사건이 “선민의 배도, 멸망, 구원의 순리로 진행된다”(이만희, <천지창조>, 186)라고 하며 그 실상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만희는 배멸구(背滅救: 背道, 滅亡, 救援의 순환 역사)의 순리를 요한계시록의 세 가지 비밀로 연결시킨다(이만희, <천지창조>, 186-7). 즉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의 비밀’(계1:20)은 배도의 실상이며(이만희, <계시록 완전해설>, 75; <신천지 발전사>, 30-31) ‘음녀와 일곱 머리 열 뿔의 비밀’(계17:7)은 멸망의 실상이며(이만희, <계시록의 진상>, 183-4, 266; <신천지 발전사>, 38, 44) ‘일곱째 나팔의 비밀’(계10:7)은 구원의 실상이다(이만희, <계시록의 진상>, 148, 213)라는 것이다.

    D. 신천지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구약의 인명, 지명 및 단어들까지 신천지 교육과정 초등과정 단계에서 ‘비유 풀이’ 하여 익힌 것을 코드(암호)와 같이 대입하여 성경을 해석한다.

    ‘비유풀이’는 비유를 코드(암호)로 대입하여 해석하는 짝짓기식 성경 풀이이다. 예를 들면 ‘머리 = 목자’, ‘뿔 = 장로’로 암호화(encoding)한 것을, 요한계시록 ‘일곱 머리 열 뿔 가진 짐승’(계12:3; 12:1;17:7)에 대입하여 해석한다. 그러면 ‘일곱 머리’는 목자7명의 실물 실상으로 등장하게 되고, ‘열 뿔’은 장로 10명의 실물실상(實物實相)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제 이만희가 계시로 받았다는 요한계시록의 실상을 각 장 별로 살펴보면서 그 실체를 밝히고, 성경해석학적으로 비판과 함께 그 실상의 모순점들을 규명해 보자. 특히 신천지에서 요한계시록 실상교리를 각 장 별로 교육할 때 사용하는 ‘그림 화보’를 그대로 삽입함으로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좀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전 정보를 제공한다면, 요한계시록 각 장의 그림 화보에 나타나는 인물 중에, 왼쪽 가슴에 ‘이긴자’ 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자가 신천지 교주, ‘이만희’ 이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사도 요한’ 자리에 모두 ‘이만희’를 대입 시키면 그 것이 신천지식(式) 요한계시록의 실상이 된다. 이러한 전장(全章)에 대한 전이해(前理解)를 가지고 각 장을 살펴보자

    요한계시록 1장의 실상 교리에는 신천지에서 주장하는 ‘사도 요한격(格) 대언자’ 와 ‘구름 타고 오시는 재림주’, ‘알파와 오메가’,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등이 있다.


    ▲ <그림 01> 신천지 요한계시록 1장 실상 화보

    A. ‘사도 요한격(格)의 대언자(代言者)’ 해석 문제
    이만희는 이 시대를 요한계시록 실상 시대로 보고 자신이 이 시대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도 요한격의 대언자라고 한다. 먼저 이만희가 주장하는 사도 요한격의 위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나타내 주는 성경구절은 요한계시록 1:1이다. 여기에 계시의 전달 과정이 있는데 【그림01】의 좌측 상단과 같다. 계시의 전달과정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에게, 천사는 사도 요한에게, 사도 요한은 종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여기서 오늘날 사도 요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자가 이긴자(註: 이만희)이고, 이만희가 14만4천명의 종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만희는 【그림01】에서 보여주는 바과 같이 천사(성령)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직접 받은 자이고, 나머지 종들은 사도 요한격 대언자인 이만희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자.

    “그러므로 우리가 찾고 만나야 할 사람은 사도 요한격인 야곱(보혜사: 이스라엘) 곧 승리자를 만나야 아버지와 아들의 계시를 받게 되고,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이만희, 󰡔계시록의 진상Ⅱ󰡕, 52p).

    여기서 사도 요한격인 사람은 바로 교주, 이만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사도 요한격인 사람이 또 ‘보혜사(保惠師)’라고도 주장한다. 즉 이만희가 보혜사가 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보혜사인 이만희 자신이 삼위일체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이 사람은 예수님이 보내시는 보혜사로 오셔서, 사도요한의 입장에서 성경을 가지고 너희인 우리에게 예수님의 뜻과 일을 알려주는 것이다”(위의 책, 50p)라고 하였고, “그러면 이 보혜사는 어느 위치에 있는 사명자인가 알아보자, 성령이신 성부(아브라함)는 성자 예수(이삭)를 낳았고, 성령이신 예수(이삭)는 성자 보혜사(야곱)를 낳았으니 이것이 삼위이다”(위의 책, 37p).

    또한 신천지 교주, 이만희는 요한계시록 1:17도 예언으로 해석하고, 그 실상으로 1980년 봄에 경험한 자신의 개인적 신비 체험을 대입시킨다. 그리고 이만희 자신이 본문에 나오는 사도 요한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나 저자(註: 교주, 이만희)는 1957년 5월 10일 속세를 떠나 입산 수도 길에서, 성령체를 만나 혈서로 충성을 맹세 한 후 ○○교회에 인도 되었고, 3년 후 본 교회로부터 버림받아 다시 시골농민이 되었다. 그 후 1980년 봄, 구름을 입고 오시는 성령체에게 안수를 받고 책과 지팡이를 받게 되었으며, 성령에게 이끌리어 가서 책에 기록된 말씀의 실체 곧, 하나님 사자들의 조직의 비밀과 사단의 사자들 조직의 비밀을 보여주며, 책에 써서 교회들에게 보내라는 성령의 지시에 따라 기록된 것이므로, 이 책은 사람의 고안이나 지식과 연구로 낸 것이 아니다”(이만희, <계시록 완전해설>, 머리말; 만국소성회 편, <영핵>, (안양: 신천지, 1996), 76p).

    반론하자면 요한계시록1: 17의 사건은 예언이 아니고 초대교회 때에 사도 요한이 경험한 사건일 뿐이다. 이만희는 자신의 신비 체험을 요한계시록 10:8-11과 11:1의 책과 지팡이를 받은 사건의 실상으로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이만희가 그 책의 내용이 ‘말씀의 실체’라고 하며 ‘곧 하나님 사자들의 조직의 비밀과 사단의 사자들 조직의 비밀’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하나님 사자들의 조직의 비밀’은 요한계시록 1:20의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의 실상을 의미하며, ‘사단의 사자들 조직의 비밀’은 요한계시록 17:7절의 ‘음녀(淫女)와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의 실상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주, 이만희는 이러한 자기가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을 책에 써서 교회들에게 보내라고 하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요한계시록 1:4절과 11절의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사건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신천지 발전사에서는 이 부분을 ‘1980년 9월 하나님이 택하신 대언자(代言者) 증인(註: 교주, 이만희)이 과천 소재 청계 산하에 있는 첫 장막 일곱 사자에게 편지로 증거하다”(신천지 증거장막성전 편, <신천지 발전사>, 4p)라고 연혁(沿革)에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첫 장막’이라 함은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에 해당되는 실상이라 일컫는 이만희의 선배 교주, 유재열이 이끌고 있던 ‘대한기독교 장막성전’을 가리킨다. 이만희는 이것을 ‘첫 장막’이라 하고, 자신이 설립한 성전은 요한계시록 15:5절의 ‘증거 장막 성전’에 해당되는 두 번째 장막 성전이라고 하며 차별화시켰다.

    B. ‘구름 타고 오시는 재림주(再臨主)’ 해석 문제
    이만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요한계시록1:7절과 연결하여 구름 타고 오는 재림주라고 까지 주장한다. 여기서 이만희는 “구름 타고 오시리니”(He’s on his way! riding the clouds Message, Rev. 1:7)를 비유 풀이하여 ‘구름 = 성령’으로 해석하고, 예수의 영은 영(靈)으로 재림하시는데 그 예수의 영이 교주, 이만희에게 임함으로 재림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주, 이만희는 재림주의 육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확인해 보자.

    “구름 타고 오신다고 하신 것은 구름은 성령이다”(이만희, <계시록 완전해설>, 72). “구름은 영을 말한다. 이 영은 또한 말씀이다”(김건남, 김병희, <신탄>, 354). “구름 타고 오신 예수님은(계1:1-8) 한 육체에게 오신다(계1:12-20) 이 사람도 초림 때와 같이 영적 말구유에서 탄생된다. … 이는 하나님이 구름 타고 오사 예수에게 임한 것 같이 구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은 택한 한 사람에게 임하여 동서남북 사방에서 알곡(말씀 지킨자)을 추수하여(마13: , 계14:14-16) 새 이스라엘을 창조하신다(행1:6-8, 계7: )”(이만희, <성도와 천국>, 77-78). “재림주를 찌른 자도 본다는 말은 곧 재림의 주와 함께한 자(보혜사: 사도 요한)의 말을 핍박하는 자들이 곧 찌른 자들이요, 주님의 성전된 자(보혜사)를 보는 것이 곧 주를 보는 것이다”(이만희, <계시록의 진상∏>, 41).

    이러한 이단적인 신천지의 주장들에 미혹된 자들을 위하여 반론해 보자. 이만희의 주장은 하나님의 영이 예수라는 육체에 임하여 초림이 이루어진 것처럼, 예수의 영이 이만희라는 육체에 임하여 재림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러한 그의 주장이 맞으려면, 예수의 육체에 임하여 초림하셨다는 하나님의 영이 승천하실 때, 육체는 버려 두고 영만이 승천하셨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예수의 영이 이만희에게 영으로 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영으로 생각할 때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있다’고 하시면서 육체를 가지고 계셨음을 나타내셨고(눅 24:36-39), 육체를 가지시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행 1:9). 그리고 예수님은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고 천사들을 통하여 알려 주셨다. 그렇다면 승천하실 때 육체와 영이 함께 승천하신 것처럼, 재림하실 때도 예수님이 육체와 영이 함께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이다. 예수님의 영이 교주, 이만희 육체에 임하여 재림했다는 교리는 황당하고, 참람하며 비성경적이다.

    위에 열거한 내용들을 종합하면 교주, 이만희는 교묘하게, “사도 요한격인 사명자 = 보혜사 = 삼위 하나님 =재림주”교리를 만들어 자신이 재림주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재림주가 한 육체에 온다는 교리는 선배 교주들이 이미 숱하게 주장하던 교리였다.

    C. ‘알파와 오메가’ 해석 문제

    교주, 이만희는 자신을 사도 요한격 대언자, 구름 타고 오시는 재림주라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알파와 오메가”(계1:8)가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알파와 오메가는 시작과 끝을 말한다. 시작은 씨(胚芽)요, 끝은 열매이다. 시작은 예언이요, 끝은 실상이다. 성경 속에 감추인 모든 비밀이 실상이 나타남으로 열매로 결실하여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진다. …이 말씀은 아시아 한반도 땅에 세례 요한의 사명자가 길을 예비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의 성령도 그곳에 오셔서 역사하심을 말해준다”(이만희, <계시록 실상>, 36-37).

    【도표10】의 비교에서 뒷부분으로 갈수록 새로운 문구가 점층적으로 덧붙여지고 있다. 21:6절은 ‘처음과 나중’이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과 끝’으로 번역해야 헬라어 표현상 다른 구절과 맞아 그렇게 새로 번역 하였다.

    【도표10】요한계시록의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에 관한 비교표

    1:8
    1:17
    21:6c
    22:13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

    하나님
    예수님
    하나님
    예수님




    요한계시록 1:8에서는 하나님께서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시고, 1:17에서는 “처음과 나중”(“First and last”, Message, Rev. 1:17)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21:6절에서는 ‘알파와 오메가’에 ‘시작과 끝’이 덧붙여져 하나님 자신에게 적용되고, 22:13절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표현이 모두 예수님에게 적용되어 사용되었다.

    이러한 호칭의 사용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속성을 매우 집약적으로 표현해 준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로서 역사를 시작하셨고 완성하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용례(用例)를 적용하면 예수님께 하나님의 속성을 적용할 뿐만 아니라,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완성을 이룬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알파와 오메가’는 하나님과 예수님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이만희가 자칭 ‘처음과 끝’이라는 것은 자칭 하나님, 자칭 재림주라는 주장이 되는 바 이는 참람한 패설(悖說)일 뿐이다.

    D.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 해석 문제

    교주, 이만희가 주장하는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의 실상(계1:20), 그리고 일곱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에 대한 실상(계1:4, 11) 문제에 대하여 고찰해 보자.

    첫째, 교주, 이만희는 일곱 별과 일곱 교회를 예언과 실상 개념으로 해석한다.
    그는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가 있는 곳이 한국이며, 한국에서도 경기도 안양시 과천이라고 주장한다. 본문의 일곱 교회는 첫 장막(前 교주, 유재열)이라고 하며 거기서 함께 맹세하고 시작했던 8명의 핵심 멤버들이 일곱 별이라고 주장한다. 신천지 발전사 화보에는 일곱 별의 얼굴 사진까지 실어 놓았다. 교주, 이만희의 <계시록 진상2>와 <신천지 발전사>를 대조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지구촌을 보시고 아시아 중 해 돋는 동방이라고 하셨으면 그러므로 서방 소아시아가 아니다. 동방 해 돋는 극동이 우리나라라는 것은 틀림없는데 우리나라 중 그 곳은 어디일까? 출애굽기 25장에서 본바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거하실 장막을 지으시고 그 안에 일곱 등잔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중 일곱 금 촛대(일곱 교회)가 있는 곳이 하나님이 계신 장막이 된다”(이만희, <계시록 진상>, 49-50).

    “첫 장막의 역사는 이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7명은 천사 직분으로 1명은 제사장 직분으로 역사했다. 이들 중 유인구 씨와 유재열 씨는 부자지간이다. 이것은 2000년전 사가랴와 세례요한이 부자지간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세례요한의 등불의 역사도 약속의 말씀대로 출현된 것처럼, 오늘날 나타난 첫 장막의 7별과 7금 촛대의 역사도 약속의 말씀대로 출현된 길 예비 등불 역사이다(계1:20)”(<신천지 발전사>, 31).

    그런데 교주, 이만희에 따르면 대한기독교 장막성전(前 교주, 유재열)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선민들이 모인 곳이며 유재열은 하나님과 언약한 목자였는데,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이방의 교법(敎法)을(한순렬, <종교세계의 관심사>10; ‘언약의 교법’은 유재열 장막성전 교법이고, ‘이방의 교법’이란 기성 교회의 교법(敎法)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 배도(背道) 행위를 한 배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만국소성회 편, <영핵>, 67-68). 오늘날 이 사건의 실상이 요한계시록 1장에서 말하는 ‘일곱 별과 일곱 교회의 비밀’이라고 주장한다.

    교주, 이만희의 해석에 있어서 큰 오류는 일곱 별과 일곱 교회를 예언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요한계시록에는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계1:19)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 일곱 별과 일곱 교회는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에 해당된다. 일곱 교회를 ‘언제?, 어디에?, 교회 수는?’이라는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언제인가? 21세기인가? 1세기인가? 본문에 ‘이제 있는 일’이란 사도 요한이 생존했던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 A.D. 1세기를 의미한다. 요한계시록은 A.D. 1세기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를 모두 예언한 것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많지만 이미 이루어진 일이 더 많다. 이것을 20세기에 이루어질 예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② 어디인가? 한국인가? 또는 터어키(소아시아/Asia Minor)인가? 일곱 교회의 이름은 한국에는 전혀없는 이름이다. 터어키에 실존했던 교회들이요, 도시들이다(상담시: 성서지도 참조). 버가모(페라가몬), 에베소, 사데 … 등. 일곱 교회가 길 예비 교회이며, 때문에 재림주가 ‘동방(한국)’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성경에 언급된 동방이 한국이라는 주장도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 동방(한국)으로 예수님이 재림하는 것도, 새로운 목자가 오는 것도 아니다(Norman L. Geisler, Ron Rhodes, Correcting the Cults-Expert Responses to their Scripture Twisting, (Grand Rapids, MI: Baker Book 2005), 307-308).

    ③ 교회 수는 몇 교회인가? 계시록의 이긴자가 나오는 교회는 분명히 서로 다른 7교회이다. 반면에 신천지가 실상으로 말하는 ‘장막성전(前 교주, 유재열)’은 1교회이다. 같을 수가 없다(계 1:4-일곱 교회, 계 1:11-일곱 교회, 계 1:20-일곱 별=일곱 교회의 사자, 일곱 촛대 = 일곱 교회)

    두 번째, 신천지에서는 일곱 교회 일곱 사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실상은 교주, 이만희가 유재열(前 교주)이 언약을 어기고 배도했을 때(1980년9월), 그와 함께 하는 일곱 사자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신천지 발전사>, 4).

    반론하자면 이만희의 주장에는 두 가지의 오류가 있다. 첫째, 대한기독교 장막성전이 시작되는 1957년 당시 언약을 맹세한 8명 중 1명이 이미 탈퇴했으며, 1969년과 1980년에 각각 3명씩 총 6명이 장막 성전을 탈퇴했기 때문에, 편지를 보낼 당시 장막 성전에는 1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일곱 명의 간부에게 편지를 썼다고 하는지 의문시 된다(<신천지 발전사>, 30.; 부록 [그림11] 요한계시록1:19-20절의 ‘네가 본 것’의 신천지 실상 참조).

    둘째, 이긴자는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성경에서 이긴자는 편지를 받는 일곱 교회 안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신천지에서는 이만희가 밧모섬에서 편지를 보내고 있는 사도 요한격인 대언자라고 하면서, 동시에 교회 안에서 편지를 받고 이긴자가 되어야할 대상이 되어있으니 이율배반적이다. 편지를 보낸 자도 사도 요한격인 교주, 이만희 자신이요, 편지를 받고 이긴자도 황당하게도 교주 이만희 자신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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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지 포교전략과 교리에 대한 신학적 비평(4)

    2011년 08월 19일 (금) 07:19:5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덕술 목사(예수님사랑교회, 에제르상담센터 소장)

    이 글은 이덕술 목사(예수님사랑교회, 에제르상담센터 소장)가 Grace The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제출한 ‘선교학적 시각으로 조망한 한국교회 이단운동(異端運動)에 대한 분석적 비판과 개혁주의 신학적 준거(準據)에 의한 전략적 접근 - 신천지 교주 이만희를 중심으로-’라는 2010년 논문을 축약한 글입니다. 신천지의 전도전략은 물론 조직·선교 신학적 문제점과 한국교회 이단 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을 연구한 자료로서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사려됩니다. <편집자주>

    Ⅲ.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2-3장의 실상교리 비판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다룰 주제는 한국 토종 이단의 자칭 교주들이 자신들을 신격화(神格化)하기 위하여 고안하여 낸 공통분모로서 ‘이긴자 교리’와 ‘새 이름 교리’이다. 그리고 ‘이만희의 삼위일체 교리’이다. 요한계시록2장, 3장의 실상 화보는 이만희가 자신이 이긴자이기 때문에, 이긴자에게 약속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 역사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림02】에 나타나는 주인공 인물이 교주, 이만희이다. 특히 이만희는 자신이 이긴자로서 예수의 새 이름으로 온 자일 뿐만 아니라 참람하게도 삼위일체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패설(悖說)들에 대하여 하나씩 살펴보고 반론해 보자.



    ▲ 【그림02】 신천지 요한계시록 2-3장 실상 화보

    A. ‘이긴자(이만희)’해석 문제
    교주, 이만희는 자신을 이긴자라고 한다. 이만희는 누구와 언제 싸워 이겼다는 말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이긴자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그와 함께한 성도들이다(계17:14). 성경에 나타난 이긴자는 무엇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인가? 그것은 사단(계17:14, 계12:11)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며, 세상(요16:33, 골2:15, 요일5:4-5)을 이긴 것이며, 사망(고전15:54,, 57)을 이기고 부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교주, 이만희는 사탄과 싸워 이겼는가? 세상이 그의 말 한 마디에 순종하는가? 이만희는 죽었다가 부활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이긴자는 예수님이시며 그와 함께한 성도들뿐이다. 이만희가 이긴자의 반열에 들어 올 수 있는 길은 회개하고 참성도가 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고 고소당하여 법정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2년 6개월의 실제 형량이 주어졌던 바가 있으니 이는 ‘이긴자’가 아니라 ‘진자’이다.

    B. ‘새 이름(이만희)’해석 문제

    교주, 이만희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이긴자(교주, 이만희)에게 임하여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이긴자인 자신의 이름이 곧 예수님의 새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새 이름 교리는 한국 토종 이단들의 공통 분모이다. 교주 자신을 신격화(神格化) 시키는 교리이다.

    “여기서 다른 보혜사라 함은 예수 자신이 보혜사인고로, 장차 재림 때에 나타날 보혜사를 다른 보혜사라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른 보혜사(註: 교주, 이만희)는 과거처럼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오지 아니하고, 다만 주의 이름(명분)으로 다른 새 이름(자기의 실명)을 가지고 오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나의 새 이름이라 한 것이다”(이만희, <계시록의 진상>, 63).

    교주, 이만희는 예수님의 새 이름을 예수님의 초림(初臨) 때를 빙자하여 자신과 연결시킨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출3:15)였으나, 신약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은 없고 예수의 이름만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와 아버지는 하나(요10:30)라고 하시고, 요한복음 14장 9절에는 자기를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자라고 하였으니,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새 이름이 예수였다”(이만희, <계시상>, 75).

    ‘예수님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라는 것이 ‘아버지의 새 이름이 예수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윗도 불레셋 사람들에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라고 했는데, 그렇다고 ‘다윗’이라는 이름이 여호와의 새 이름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구약에 나타난 ‘새 이름’의 배경은 이사야 62:2절이다. 그리고 신약에 나타난 ‘새 이름’의 배경은 계 2:17과 3:12, 그리고 19:12, 13, 16절이다. 이사야 62:2은 예루살렘을 새롭게 변화시켜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뿔라, 헵시바)으로 불리게 해주신다는 의미이다.

    계2:17의 ‘흰 돌’에 새겨진 새 이름이란 당시에 고대 재판 시 사용되었던 흰돌(무죄 판결)과 축제 입장용 티켓인 흰돌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의인의 자격으로 영광스런 자리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고대 사회나 구약에서 어떤 사람, 특별히 하나님의 이름을 얻는 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능력에 함께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150-152.; Colin Brown,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Vol. I, 이하 NIDNTT로 함(Grand Rapids, MI: Zondervan(1979), 248-249).

    본문에 언급된 예수님의 새 이름은 사도 요한이 본문을 기록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그 후에 주어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을 보면 예수님의 이름들이 여러 개가 등장한다. 그 중에 계시록9:16에 “만왕의 왕 만유의 주”라는 이름이 나온다. 빌립보서 2: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C. 이만희의 삼위일체 해석 문제

    교주, 이만희는 일반 교단의 목자들이 삼위일체에 대하여 “성부, 성자, 성령을 삼위일체라고 하나, 이 또한 삼위(三位)는 되나 일체(一體)는 안된다”라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삼위일체론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註: 이만희)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고 약속하신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이다.” 본문 3:21절의 말씀은 위(位)가 셋(註: 성부, 성자, 이긴자)이요 육체(註: 이만희)는 하나이니 삼위일체라 할 수 있다”(이만희, <계시>, 82).

    이와 같이 교주, 이만희는 삼위일체란 예수님께서 이긴자(육체)에게 임하사 하나되어 성전의 보좌에 앉는 것이며, 이것이 곧 예수님의 보좌에 앉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주, 이만희는 하나님의 보좌에 자신 스스로 앉고 있으며, 경배의 대상으로 자리를 이동한 것이다. 본문에서 이긴자는 예수님과 성도들이다. 교주, 이만희에게만 주어진 특혜가 아니다. 성경에서의 삼위일체는 하나님은 하나이시며 삼위가 계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존재가 삼위일체라는 것이지 하나님과 인간 예수(필자 註: 이만희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아니함), 그리고 인간 이만희와의 합일(合一)을 의미하지 않는다.

    Ⅵ.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7장의 실상교리 비판

    한국 토종(土種) 이단들의 공통 분모는 요한계시록 7장의 ‘해 돋는 곳’ 즉 동방을 한국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치는 천사를 교주로 둔갑시킨다. 뿐만 아니라 인침을 받은 144,000인은 자신들의 집단이며 그 수가 차면 종말이 온다는 조건부(條件附) 종말론을 부각시킨다. 【그림03】은 신천지의 이러한 교리를 담은 화보이다.


    ▲ 【그림03】신천지의 요한계시록 7장 실상 화보

    A. ‘동방(한국)의 천사(이만희)’ 해석 문제

    신천지에는 동방(한국)의 의인 교리가 있다. 요한계시록 7:2절에 보면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라고 되어 있다. 이만희는 ‘해 돋는 곳’ 즉 동방이 한반도 중에 신천지 장막성전(帳幕聖殿)이 있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7장의 인치는 사건은 오늘날 과천 소재 신천지에서 이루고 있다”는 주장이다(이만희, <천지창조>, (과천: 신천지, 2007), 205p). 확인해 보자.

    “해 돋는 곳에서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올라와서 12지파 144,000을 인치신다. 해 돋는 곳은 지구의 동쪽을 말함이요. …이 역사는 지구 중 아시아, 아시아 중에서도 동방, 동방 중에서도 땅끝, 땅 모퉁이 한반도이며, 한반도 중에서도 일곱 금 촛대가 있는 장막(교회)에서 선천(先天) 세계(처음 하늘나라)를 마치고, 후천(後天) 세계(새 하늘과 새 예루살렘)의 역사가 펼쳐지는 것을 말했으니, 새 역사 새 시대가 열리는 인치는 역사가 있게 된다”(이만희, <계시록완전해설>, (안양: 신천지, 1986), 114; Norman Geisler는 요한계시록 7장 2절의 East는 지리적 영역(geographical area)도 아니고, 설혹 그 말이 지리적으로 동쪽이라 할지라도 한국은 아니라고 했다. Norman L. Geisler, Correcting the Cults, 306-307).

    동방을 한국이라 해석하는 동방의 의인 교리는 통일교의 문선명, 엘리야 선교원의 박명호, 하나님의 교회의 안상홍 등 한국 이단의 계보에 등장하는 모든 교주들의 공통된 주장이다(진용식, <무료성경신학원 이만희의 정체는?>, (서울: 도서출판 성산, 1999), 15). 신천지에서 출판한 <신탄>에 보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천사가 등장하는 해 돋는 곳(계7: 2-5)과 하나님의 모략(謀略)을 성취할 사자(사41:1-4사람, 또는 사46:10-11독수리)가 부름 받는 동방, 땅끝, 땅 모퉁이가 한국이라고 한다(김건남, 김병희, <신탄>, (안양: 도서출판 신천지, 1985), 363).

    성경에서 말하는 동방은 동해와 서해가 있고 4계절이 뚜렷한 나라(슥14:7-8)로 소개되어 있고, 동방예의지국 즉 인도의 시성(詩聖) 타골 같은 사람이 ‘동방의 빛’이라 예찬한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이 성경에 기록된 동방이라고 한다(김건남, 김병희, <신탄>, 364-5). 뿐만 아니라 그 “해 돋는 동방의 사람”이라는 주인공이 이만희 자신이라고 주장한다(이만희, <계시록 진상Ⅱ>, 49). 【그림03】의 한 중앙을 보면 육계(肉界)의 12제자들의 한 가운데 위치한 자가 동방 곧 한국의 과천에 소재한 신천지에서 인(印)치고 있다는 동방의 천사 이만희의 모습이다.

    반론하자면 성경에서의 동방은 한국이 아니다. 성경에서의 동, 서, 남, 북의 방향을 가리키는 지명은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의 지역을 가리키고 있다.
    1) <기독교 대백과사전> 4권에 의하면 “이 명칭은 팔레스타인 등 동남쪽에 펼쳐져 있는 아라비아의 일부 지역에 해당된다”(<기독교대백과사전>, (서울: 기독교문사, 1982), 594).

    2) 성경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경 66권이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저자에 의해 쓰였지만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동방’도 마찬가지다. ‘동방’에 대한 다음 성경 구절을 직접 확인해 보면, 성경의 동방은 “에덴”(창2:8), “앗수르”(창2:11-14), “시날 평지”(창11:2), “아라바”(수12:1; 겔47:18), “동방의 경계는 요단”(수18:20; 삿6:33), “동방사람 욥”(욥1:1-3), “동방박사≠한국인” (마2:1), “유브라데 강 건너편”(계16:12;신11:24;수1:4)임을 알 수 있다.

    3) 이사야서의 ‘동방에서 일으킨 의인, 독수리’는 이만희(재림주, 보혜사, 이긴자)가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이다(진용식, <무료성경신학원 이만희의 정체는?>, (서울: 성산, 1999), 19). 이사야41:2절과 이사야44:28-45:3절을 대조하여 보고, 에스라1:1절과 역대하36:22절에서 그 성취를 확인하면 이사야서의 동방의 의인은 고레스왕이다.

    4) 이스라엘에도 동해, 서해가 있고, 여름, 겨울이 있다. 동해, 서해 관련 성구는 신11:24; 신34:2; 겔47:18; 욜2:20 등이고, 사계절에 대한 관련 성구는 출32:22; 삼하16:1; 잠6:8; 아2:11; 요10:22; 딤후4:21 등이다.

    5) 요한계시록의 7:1-4절의 하나님의 인치는 사건은 에스겔9:1-6절의 구약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361.; G. Kittel,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One Volumed Dictionary Tr. by G.W.Bromiley.(Grand Rapids, MI: Eerdmans, 1985), 864-872, 이하 TDNT로 함).

    요한계시록7장과 에스겔9장의 정황과 대조하면 다음과 같다. 에스겔 9장의 ① 죽이는 기계 ② 표 ③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 ④ 이마에 표 ⑤ 이마에 표 있는 자들에 대한 보호 ⑥ 이마에 표 없는 자 심판은, 요한계시록의 ① 바람 ② 인 ③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 ④ 이마에 인 ⑤ 이마에 인 있는 자들에 대한 보호 ⑥ 이마에 인 없는 자의 심판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 7장에서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출발하는 장소와 상황을 ‘해 돋는 곳’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에스겔 7장에서는 먹 그릇을 가지고 출발하는 장소와 상황을 ‘놋 제단 곁’,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성막성전의 구조를 보면 ‘놋 제단’(출27:1-18)은 동쪽 즉 해 돋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도 성전의 동문을 통하여(겔43:1-5) 나타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은 해(시84:11)이시며, 그리스도의 오심 예언도 ‘의로운 해’(말4:2)가 떠오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7장의 ‘해 돋는 곳’은 이만희가 말하는 한국이라는 특정한 나라가 아니라 해(太陽)되신 하나님이 임재 및 현현(顯現)이 있는 성전이며, 의로운 해(太陽)이신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이 증거되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다.

    B. ‘십사만 사천인과 큰 흰 무리’ 해석 문제

    요한계시록 7장에는 144,000명이 하나님의 인침을 받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단들은 항상 요한계시록 7장을 가지고 자기 집단에 속한 자들만이 144,000명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며, 이 사람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즉 이 144,000명이 실제수(實際數)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최초로 이 구절을 자신들의 교리로 활용한 집단은 여호와의 증인과 안식교이다. 그런데 계시록 7장의 144,000명이 실제 수라고 주장하는 교리는 그 내부 모순 때문에 항상 변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실제 이단들도 144,000에 대한 교리를 계속 변경하여 가르쳐 왔다.

    1. 이단들의 144,000인에 대한 세가지 해석
    첫째,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총수가 144,000명이라는 해석
    처음에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에서 이렇게 주장하였으나,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수 많은 성도들 중에 144,000명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말이 안 되는 교리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둘째, 예수님의 재림 시점에서 살아서 구원 받는 사람의 수가 144,000명이라는 해석
    안식교와 안상홍 등이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안식교의 경우는 실제 전세계적으로 교인들이 1,000만이 넘게 되자 이러한 교리에 모순이 생기기 시작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교리가 변경되었다.

    셋째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 제사장의 수가 144,000명이라는 해석
    이들은 일반 성도들은 요한계시록 7장의 후반부에 나오는 흰 옷을 입은 큰 무리이고 144,000명은 제사장의 수라고 가르친다. 신천지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단이 144,000명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 수가 금방 채워질 수 있는 숫자이므로, 교인들로 하여금 조바심을 내게 하고 교주에게 충성을 바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항상 144,000명이 거의 다 찼다고 가르침으로써 교인들의 충성을 유도 한다(신천지의 경우, 실제로는 약 5만 여명 정도지만 때가 긴급하다, 144,000이 거의 다 찼다고 가르쳐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 삶을 다 바치도록 한다).

    반면, 정통 교회는 144,000을 상징수(象徵數)로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로 해석한다. 즉, 요한계시록 7장 후반부에 나오는 흰옷을 입은 큰 무리와 동일한 존재라고 가르친다. 이단들의 주장과 정통 교회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단
    실제 수 → 144,000 ≠ 흰 큰 무리

    정통교회
    상징 수 → 144,000 = 흰 큰 무리


    그러면 신천지의 144,000명에 대한 주장들과 그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시해 보자.

    첫째, 이만희는 인침 받은 144,000명이 문자적 실수(文字的 實數)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영계(靈界)의 144,000의 수, 곧 요한계시록 20:4절의 목 베임을 받은 ‘순교자의 영들’이 144,000이기 때문에, 지상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수도 문자적 144,000이라는 것이다. 이만희의 주장은 그의 저서 <계시록의 진상Ⅰ>과 <계시록진상Ⅱ>에 잘 나타나 있다.

    “시대마다 하늘의 12영이(마26:53-54) 왔다 가셨고, 오늘날도 참조하는 바 말씀이 응하는 회복의 역사임을 알았을 것이다. 또 12지파 144,000은 영계의 144,000의 수가 있으므로 육체의 수도 있게 되는, 새 이스라엘 영계의 본 자손이 되는 것이다”(이만희, <계시록의 진상Ⅱ>, 126).

    “인치는 주의 제단에 동참한 144,000의 신부들이다. 거룩한 성령이요 신랑인 144,000의 영들과 이 땅의 거룩한 자 144,000의 육신을 가진 신부들이 각기 한 쌍을 이루어 혼인 일체가 된다. 마침내 이들은 …첫 열매로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이만희, <계시록 진상>, 301).

    반론하자면 144,000은 문자적 실수(實數)가 아니고 상징수(象徵數)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해석학적 측면에서 144,000은 다른 단어들과 일관성 있는 해석을 적용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7장의 144,000명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뜻하는 것으로서, 1-8절에서는 이 사람들이 인(印) 맞는 장면을, 9-17절에서는 이 사람들이 어떤 특징의 사람들이냐라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즉, 동일한 대상에 대해 반복하여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7:4절에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4,000’이라고 했다. 먼저 여기서 이스라엘 12지파가 문자적으로 혈통적인 이스라엘 12지파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세대주의자(dispensationalist)로 분류된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구분하여 기록하지 않는다(참조 갈3:29; 롬2:29; 빌3:3; 벧전2:9)”(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362).

    지금은 이단들도 영적인 이스라엘로 생각한다. 이단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 인, 천사 등은 모두 영적인 의미로, 즉 상징적으로 해석을 하면서 숫자만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을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조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각 지파, 인, 천사 등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면 144,000 또한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일관성 있는 해석일 것이다(요한계시록 어디에서도 이스라엘의 12지파라는 지파(tribes)의 의미가 문자적 인종집단(literal ethnic group)의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다. Norman L. Geisler, Ron Rhodes, Correcting the Cults, 307-308.; Kenneth Wuest, Studies in the Vocabulary of the Greek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Eerdmens, 1976), 212-213, 이하 SVGNT로 함).

    둘째, 이만희는 ‘144,000인’과 ‘큰 흰 무리’는 신분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요한계시록 7: 9절의 ‘이 일 후에’를 근거로 144,000인과 큰 흰 무리를 구분하고 있다. 이만희는 인침 받은 144,000 명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할 자들이며, 큰 흰 무리(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족속인 온 세계)는 그들의 백성으로서 이 144,000을 섬기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144,000명과 흰 옷 입은 큰 무리, 이 둘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9절의 ‘이 일 후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인 맞은 144,000명과 큰 환란에서 나온 흰 옷 입은 사람들의 신분을 구분해 주는 경계가 된다. 144,000명은 처음 익은 열매로서(계14:1-5) 영적 새 이스라엘의 목자(제사장, 왕)가 되고, 흰 옷 입은 큰 무리는 성도(백성)가 된다”(이만희, <천지창조>, 205).

    “본문의 이 일 후는 6장에서 남은 적은 씨로 144,000명을 인친(본장1절-8절) 후에 있을 일임을 알리는 말씀이다”(이만희, <계시록의 실상>, 123). “또 이 일 후라는 말은 12지파 144,000명을 인친 후의 일을 말한다. 이 일 후에 흰 옷 입은 큰 무리는 144,000명의 수가 차고 난 그 다음의 일임을 알아야 한다”(이만희, <계시록 진상>, 127).

    반론하자면 본 장의144,000인과 큰 흰 무리는 다음과 같은 근거로 동일한 교회 공동체임을 확인 할 수 있다.
    1) 요한계시록7:9절의 ‘이 일 후에’ ‘이 후에’로 번역해야 하며, 그러므로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 순서(論理的 順序)이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367; 그래서 Eugene Peterson도 “하나님의 종들” (servants of God)의 묘사에 이후 “즉시” (immediately)라고 번역했다. Message, Rev. 7:1-9 참조).

    2) 성경에는 환상, 꿈을 통한 계시 및 예언이 반복적으로 주어졌다.
    창세기에는 바로 왕이 반복되는 꿈을 통해 7년의 풍년과 흉년을 계시를 받았고, 요셉을 통해 해몽했다. 바로의 첫 번째 꿈은 “살찌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와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의 꿈이었고, 두 번째 꿈은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과 가늘고 마른 일곱 이삭”의 꿈이었다. 요셉이 꿈을 해몽하니 “바로의 꿈은 하나니라”고 했고, “칠년 풍년 후 칠년 흉년”에 대한 것이라 했다. 동일한 예언의 반복 계시이다.

    다니엘 2장의 “큰 신상 환상’과 다니엘 7장의 ‘네 짐승 환상’과 다니엘서8장의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도 동일한 예언의 3중 반복 계시이다. 이는 앞으로 있을 바벨론 → 메데/파사 → 헬라 → 로마 등의 나라의 흥망성쇠에 대한 예언을 꿈을 통하여 3번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또한 7교회, 7인, 7나팔 등으로 동일한 종말론적 역사를 반복적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3) 144,000과 큰 흰 무리는 특성이 같다.
    【도표11】144,000과 큰 흰무리의 공유(共有)적 특성 대비표


    공유(共有)적 특성
    144,000인
    큰 흰 무리

    둘 다 하나님의 성전에 있다
    계14: 1 ‘시온산=성전’
    계7: 15 밤낮 성전에서

    둘 다 어린양과 함께 있다.
    계 14:1 어린양이 함께
    계 7:17 흰 무리의 목자

    둘 다 구속 받은 사람들이다.
    계 14:3 구속함을 얻어
    계 7:14 피에 그 옷을

    둘 다 보좌 앞에서 새 노래한다

    ‘새 노래=구원의 노래’
    계 14:3

    보좌 앞, 새 노래
    계 7:9-10

    보좌 앞, 구원의 노래

    둘 다 어린양의 인도대로 따른다
    계 14:4 어린양이 인도
    계 7:17 어린양이 인도

    둘 다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이다
    계 7:4 이스라엘 자손
    롬 2:28-29 이면적 유대인


    1) 성경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죄인(롬3: 10)임과 동시에 구원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롬10:12)라고 선언하고 있다. 즉 144,000과 큰 흰 무리로 차별하여 구원하지 않는다.

    2) 베드로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거룩한 제사장’(벧전2:5),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했다. 사도 요한도 ‘나라와 제사장’(계1:6)에 대하여 동일하게 언급했다.
    위 성경 구절은 안식교나 신천지에서 인(印)을 쳐서 144,000명을 제사장으로 삼기 훨씬 전에, 예수를 믿고 구원 얻은 초대교회 성도들을 이미 제사장으로 불렀음을 나타내 준다.

    3) 요한계시록14:3절에 보면 ‘144,000인 밖에는 새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고 하였다.
    이단들의 주장이 정확하다면 안상홍이나 이만희가 태어난 21세기에 와서야 새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신천지와 하나님의 교회에는 지금 자기들만이 부르는 새 노래가 있다. ···
    새 노래란 무엇인가? 구약성경 시편에도 새 노래가 여러번 나타난다. 이미 다윗 시대에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있다. 새 노래가 나타나는 성경구절(시98:1; 시96:1-2; 시144:9-10; 시149;11-4)들을 보면 ‘새 노래’란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구원의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44,000명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집단에 속한 사람들만이 해당된다라고 가르치는 이단들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한편 ‘144,000 ≠ 큰 흰무리’라는 이단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큰 흰 무리는 새 노래를 절대로 못 불러야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7:9-10절에 큰 흰 무리는 큰 소리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하며 구원의 새 노래로 찬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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