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 그러니까 2,000년도 815는 정말 감격의 날이었습니다.
나는 부산 감림산 기도원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4시가 남쪽에서는 코엑스에서,북쪽에서는 고려 호텔에서 각각 100가정씩 50년전에 헤어진 핏줄들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집회가 없는 시간이어서 나는 TV를 보며 앉았다가 2시간 동안 혼자 울었습니다. 누가 옆에 있었더라면 같이 이야기하며 조금 울었을 것을 아무도 없이 혼자 앉아 있었기에 하염없이 혼자 울었습니다.
그렇게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눈물을 많이 흘린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내가 어머니 모태에서 자라고 있을 때 아버지가 월남하셨습니다. 3살이 되어서야 남쪽으로 피난나와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낯선 남자이고 아버지가 무엇인 지 몰라 어머니가 안겨 주어도 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살 되도록 얼마나 울며 자랐는 지 내 별명은 <울보>였답니다. 밥 먹을 때에는 교대로 업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모두가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버지 못 만날 팔자인가 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울던 내가 이렇게 저렇게 일하며 눈물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50년전에 잃어버린 눈물 보자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 선화 할머니는 95세였습니다.작은 아들 하나 못 데리고 월남하여 일생을 한맺힌 가운데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작은 아들이 이북에서 내려와서 자기 앞에 서는 순간 말문이 닫히고 말았습니다. 멍하니 보다가 기절하여 의사들의 응급처치하였으나 깨어나지 않자 들 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이 TV에 나타났습니다.
1.4 후퇴때 남동생이 밖에 나가 있고 가족은 급히 대동강을 넘어야 하기에 떨어뜨리고 이남으로 피란을 하였습니다. 50년 만에 남동생과 누나가 만났습니다.아주 어려서 헤어졌는 데 얼굴을 기억할지 몰라 서로 고민하였습니다. 만나서 대화입니다.
누나 ; 만나서 금방 내가 누나인지를 알았나?
동생 ; 핏줄이 뭐길레 누가 안 가르쳐 주어도 누나인 줄 알았다
이북에서 온 남자 한 분은 어머니를 만나며 말했습니다.
<내려오며 울지 않고 껄걸 웃으리라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내려와 어머니를 보니 너무 많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정말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핏줄이 뭐길레....
72세된 김 희영씨는 아내 정 춘자(72)와 아들 상교(52세)를 끌어 안고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그는 50년 두 식구를 충복 중원에 두고 서울로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가 의용군으로 북으로 끌려 왔습니다.
8년만에 아내는 재혼하였으나 재혼한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다시 두 식구가 되었습니다. 50년동안 가족을 그리던 김 희영은 이번에 방남을 신청하여 내려 왔습니다. 서울에서 다시 만난 3식구는 끌어 안고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내는 "여보! 재혼하였었어요.미안해요"라고 말하자 북에서 온 남편은 "지금까지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면서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2살된 아들을 끌어 안고 "아빠 머리에는 늘 어린 네 모습만 아련히 남아 있었는 데 이렇게 컸구나"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닦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출4;24-26)
이 이야기의 배경이 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애급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는 그 때 게르솜이라는 아들과 엘르아살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4식구가 같이 애급으로 갈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아내 십보라가 재빨리 차돌로 두 아들 할례를 행하고 그 베어낸 피부를 모세 앞으로 던졌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의 생명을 건져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잘 풀리지 않는 성경중 가장 난해한 성경 구절중에 하나입니다. 이해하지 못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1.왜 모세를 하나님이 죽으시려 하였는 지 이유가 분명치 않습니다.
2.왜 할례를 모세가 행하지 않고 여자가 행하였는 지 이상합니다.
3.왜 피는 아들이 흘리고 모세가 피남편이 되었는 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4.왜 하나님은 할례를 행하려고 하면 할례를 행하라고 지시하시지 가만히 계시다가 그 것 안 했다고 죽이려고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말 모를 말씀입니다. 이런 문제를 푼 이는 아직 없습니다. 모두 어려운 성경 구절이라고만 주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미리암이 아들 양피를 베어 피덩어리를 모세에게 던지며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라고 한 후 남편 모세의 생명이 안전하였다는 것만은 본문으로 분명한 사실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피가 있어야 하나님이 살려 주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 피는 자기들의 피가 아니라 아들의 피였습니다.
대신관계와 대인관계에는 피가 있어야 진정한 생명의 관계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관계에는 신약으로는 예수 피가,구약으로는 짐승피가 뿌려져야 생명이 있습니다.인간과 인간 관계도 같습니다. 피로 가까워져야 진정한 생명의 관계임을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2-18)
피관계가 생명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물보다 피가 진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번 상봉단은 피가 얼마나 진한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피보다 진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입니다.
중세기 순교자들은 늘 말했습니다.
"크리스챤의 유일한 친척은 성도들이다"
어째서 혈통가정보다 영통가정이 더 중요할 가요? 왜 우리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모인 복음 가족이 혈연 가족보다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1.혈연 가족은 일시적이만 복음 가족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혈연 가족은 이 땅에서 뿐입니다.25살에 결혼하여 90세 산다고 하여도 65년입니다.그러나 복음 가정은 영원합니다.
한번은 부활이 없다고 하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이들이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만일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그 둘째와 세째가 저를 취하고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이 다 저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눅20;27-33)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눅20;34-36)
천국에 가면 모두가 한 가족입니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한번 바라 보십시요. 영원히 같이 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바라 보십시요. 사랑과 애정이 갈 것입니다.
이같이 혈연가족은 일시적이요 복음 가족은 영원하기에 예수님은 복음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이번 이산 가족들은 3박4일간 6번 만나고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영원한 가족입니다.
2.복음 가족은 혈연 가족보다 자주 만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피를 나눈 형제 자매들과 일년에 몇 번이나 만나고 있습니까?
나는 태안에 떨어져 살고 계신 아버지와 일년에 5번 만나기가 바쁩니다. 우리는 피난민 가족이기에 남한 전체에 4가정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기가 그렇게 힘들 수가 없습니다.
오랜만에 한번 만나면 얼굴에 주름살이 늘었고 머리에 흰 머리가 더 생겨 변화가 분명한 때에 만나곤 합니다.오랫만에 고모가 나를 만나면 늘 이렇게 말합니다.
"그 동안에 너 늙었구나!"
그러나 우리 복음의 가족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만납니다. 매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피보다 복음이 진한 것입니다.
구약 최초의 교회는 성막 교회입니다. 신약 최초의 교회는 초대 교회입니다.
구약 최초의 교회인 성막 교회와 신약 최초의 교회인 초대 교회와를 버티고 있는 기둥이 셋 있습니다.
모이는 곳은 표적이요 흩어진 곳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흩어지면 선교였습니다. 표적과 사랑 그리고 선교 이 세 가지가 교회의 본질입니다.
성막에는 날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교차되었습니다. 두 기둥은 "내가 이 집에 임재하고 있다"라고 하시는 말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에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행2;42-43)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는 이런 표적이 날마다 교회에서 일어나도록 하여야 합니다
성막교회와 초대교회의 두 번째 기둥은 사랑입니다. 성막 교회에서는 사랑이 가정 교회로 나타났습니다. 성막 교회는 10부장,50부장,100부장,1,000부장으로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10부장을 중심으로 공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에서도 가정 교회로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
성막교회와 초대교회의 세 번째 기둥은 선교입니다. 표적과 사랑의 방향은 선교였습니다. 성막 교회에서는 내적 선교였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에 당시 받은 율법을 철저히 공부하는 내적 선교였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외적 선교였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성막교회와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모였고 자주 모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피보다 복음이 진한 법입니다.
2.복음 가족은 혈연 가족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혈연 가정은 요즈음 많아야 4명입니다.두 자녀만 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교하는 파나이는 한 집에 아이들이 15명 가량입니다. 그래도 한 가족 수는 20명 안 짝일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가족은 수 백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천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 백명이 한 가정 식구들처럼 사랑스럽게 지낼 수가 있는 것이 복음 가족입니다.
다같이 천국을 맛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복음 가족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형제 자매들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한 분이라면 모두가 한 가족입니다.
4.복음 가족은 혈연 가족보다 진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피보다 진합니다.피로 안 되는 것을 복음으로는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피보다 진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복음 가족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복음 가족인 우리는 다음과 같은 믿음의 자세가 요구됩니다.
1.우리 아버지는 한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2.영원한 가족인 것을 믿고 사랑하며 자꾸만 만나야 합니다.
성막교회가 10부장을 중심으로 가정에서 모인 것처럼, 초대교회가 가정에서 10여명씩 사랑을 나누며 모인 것처럼 자꾸만 모이고 뜨겁게 사랑하여야 합니다. 혈연가족보다 더 진하게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3.우리는 수백년 후에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어야 합니다. 50년 후에 다시 만나도 이렇게 반가운 데 수 백년 후에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수 백년후에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며 한없이 혼자서 흥분하였습니다.
이번 북한 방문단중에 유일하게 목사가 한 분 있었습니다. 우리 감리교 원로 목사인 백만국 목사님이십니다. 황해도 신낙교회에서 목회하던 중 6.25를 만나 피난나오다가 가족과 개성에서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혼자 월남하여 다시 재혼하여 감리교 목사로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북에는 아내 딸 그리고 동생이 있었는 데 그 동안 아내와 동생은 죽고 50살된 딸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늘 이북에 귀를 대고 있으니까 여로 통로를 통하여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피덩어리였던 딸을 만났습니다. 50년을 한 순간에 보는 순간 그는 오직 통곡이었습니다. 다시 헤어져야 하지만 그 부녀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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