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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는 지도력
    2002-01-06 22:02:55   read : 1305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 12. 16. 야고보5:13-18



    I.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지도자

    우리 몸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기관이 있다면 바로 심장입니다. 눈 코 귀 입 손발이 쉴때가 있고 오장육부가 모두 쉴때가 있지만 심장은 쉬는 법이 없습니다. 심장이 엄추면 그것은 곧 죽은 것입니다.

    기도는 피의 순환과 같습니다. 몸속의 더러운 것을 걸러내고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는 개인도 작은 공동체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공동체의 아픔을 치유하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어 갑니다.

    기도가 많이 있지만 고난 당하는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우선되는 기도입니다. 사실 중보사역이란 인간의 사역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고유한 사역입니다. 하늘에 계신 주님은 이 중보기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고 구원받은 백성을 지켜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신 것은 당신의 이 고귀한 사역, 세상을 다스리는 이 자리로 우리를 초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이 주님의 자리로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래서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로 이웃과 세상을 섬기는 지도자들입니다. 지배자가 아니라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란, 이웃을 세워주고 섬겨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섬기고자 할 때 가장 강력한 방편이 바로 기도입니다. 왜요? 내가 도우는 것 보다 주님이 도와주실 때에 가장 확실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특별히 오늘 본문은 고난 당하는 자, 병든 자를 위해 교회 지도자들이 기도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참 신비한 것입니다. 이 고난의 순간을 오히려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가는 기회로, 지도자들이 그 지도력을 발휘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II. 너희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언젠가 극동방송이 전국에 있는 기독교인 771명을 대상으로 제일 좋아하는 찬송과 복음성가가 무엇인가를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찬송가 중에는 1위 "나같은 죄인 살리신", 2위 "지금까지 지내온 것" 이었습니다. 복음성가로는 단연 "축복송"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금은 목사의 부인이 된 송정미씨의 축복송 가사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있지만, 담대하게 주를 바라보는 너의 영혼
    너의 영혼 우리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의 영혼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 오! 할렐루야!

    축복은 아편 같은게 아니라는 위대한 메시지입니다. 성도앞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성도는 어려움 가운데 주를 바라보고 승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 영혼이 아름다워지고 그 영혼을 바라보는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일찍이 석가모니는 생.노.병.사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이 네 가지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인생의 고난들을 숙명적으로 묵묵히 받아 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물론 성경도 인생의 고난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숙명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시작하며 성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 누가 감히 이 질문앞에 "No. 아니요" 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저마다 환경속에도 고난이 있고, 육체적 고난, 정신적 고난, 영적 고난 뿐만아니라 복음을 위한 고난도 있습니다.

    이 본문을 받아 읽던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 즉, 당시의 신자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 직업을 잃고 밥을 굶던 사람들, 남편이 사자에게 찢겨져 죽고 자식이 화형당한 사람들, 병이 들었으나 약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의 저자 야고보는 초대교회 최고지도자 였습니다. 성도들의 이러한 형편을 보고 기도하도록 요청합니다. 야고보는 특별히 기도의 사람으로 얼마나 기도했는지 그 별명이 낙타무릎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지도자들이 해야 할 사역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역이 바로 이처럼 고난당하는 성도들의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는 일입니다.

    아마 오늘 아침 교회에 나아오신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안타까운 문제를 안고 나오신 분, 마음속에 깊은 번민을 가진채 나오신 분, 병든 가족 때문에 깊은 시름을 지닌채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이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런가하면 한없는 만족과 기쁨 때문에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인생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고난의 순간을 기도하는 기회로, 평안한 자리를 찬송하는 자리로,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평안한데 내 이웃이 고난과 질병가운데 있을 때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III. 신앙의 시금석 : 고난을 어떻게 대처하느냐?

    고난의 순간을 어떻게 대처하느냐? 여기에 신앙인과 불신앙인, 그리스도인과 자연인의 갈림길이 있습니다.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 그것이 곧 우리 신앙의 시금석이요, 인격 성숙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입니다.

    우선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들을 보십시다.
    그들은 조그마한 어려움을 당할 때면 너무나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고 자학하고 저주하고 하나님앞에 원망하고 이웃을 향하여 불평합니다. 그러다가 조금만 일이 잘되고 번영하는가 싶으면 "천상천하 유아 독존" 교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러분 술좌석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어 보셨습니까? 모두 저 잘났다는 얘기, 자기 똑똑하다는 얘기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모두 불신앙의 특징들입니다.

    그러면 신앙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스러운 일은 기도와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살아가는 태도는 석가모니처럼 고난을 운명적으로 받아 들이는 것도 아니요, 불신앙인들처럼 하나님께는 원망하고 이웃에겐 불평하고 자신을 향하여서는 쉽게 자학하는 그런 태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의 때에 기도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숭고한 임무요 특권입니다. 기도는 인간의 문제와 하나님의 능력을 연결하는 인간의 무능과 하나님의 권능 다리.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배짱이요, 믿음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어릴 때 동네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아 본적이 있습니다. 부자들은 고운쌀에 찹쌀까지 섞어서 떡을 만듭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부스러기 쌀, 싸래기 쌀을 씻어 떡을 만듭니다. 혹 밀가루를 섞어 만드는 가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계속에 찹쌀을 넣든, 싸래기를 넣든, 밀가루를 넣든 틀을 빠져나올 때는 똑같은 모양의 가래떡이 되어 나옵니다.

    옳습니다. 때로는 기쁨이 넘치고 때로는 눈물이 흐를지라도, 때로는 감사가 넘치고 때로는 고난이 몰아쳐 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틀을 빠져나온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선이라는 모양대로 만들어 집니다. 때문에 신앙인들은 원망, 불평, 자학대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오늘 짧은 본문속에 "기도"라는 단어가 일곱 번이나 반복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IV. 기도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기도하면 어떤 변화,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타스커(tasker)라는 훌륭한 신앙인은 "기도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지 못할 때에라도 기도는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그 문제를 대처할 수 있게 해 준다”라고 했습니다. 대단히 신앙적이고 성경적인 견해입니다.

    기도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첫째,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기도의 가장 영광스러운 결과는 기도하는 내가 변화하는데 있습니다. 기도는 내 잘못을 깨닫게 해줍니다. 나의 부족과 누추함을 알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불순종했던 나를 발견하게 해줍니다. 우리 자녀들이 속을 썩여서 기도하다보면 나 자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속썩이던 자식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위해 기도하다 보면 신랑되신 우리 주님 앞에 나 자신이 얼마나 순결하지 못한 신부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업문제를 놓고 기도하다 보면 나 자신은 하나님의 도움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자신의 부족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서 회개하도록 해 줍니다. 신앙인의 가장 위대한 축복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세워줍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해줍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 줍니다. 하늘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선 나부터 변화시킵니다.

    둘째, 기도는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문제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행위입니다. 언제나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의 역사하실 기회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바로 그 순간에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나를 향해 역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 문제속에 하나님이 간섭하시도록 문을 여는 것이 기도입니다.

    셋째, 기도는 그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나에게 부여해 줍니다. 물이 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영을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풀 수 없는 실력없음이 문제입니다. 이때 기도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 풀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이 땅의 고아의 아버지, 기도의 능력자로 알려진 죠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할 때마다 쉽게 응답해주시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 왜냐하면 금방 응답하셨으면 내가 기도를 쉬었을텐데,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해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는 기도하고 기도했으며 또 매달렸다. 나는 기도를 통하여 기도하는 성품을 얻게 되었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고 너무나도 쉽게 문제를 푸는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넷째, 마음이 즐거운 사람에게 기도는 찬송을 가져다 줍니다. 계속되는 본문 말씀을 보십시다. "너희중에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찬송은 가장 신령한 차원의 기도요 곡조가 붙은 기도입니다. 어떤 종교는 하루종일 중얼중얼 염불만 외워도 됩니다. 어떤 종교는 뜻도 의미도 모르고 절만하면 됩니다.

    세계 수많은 종교 가운데 기독교에만 찬양이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눈을 만든자가 보지 않으랴. 귀를 만든자가 듣지 않으랴."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필요했고 미켈란젤로가 필요했습니다.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는 헨델이 필요했고 하이든이 필요했습니다.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를 고발하는 한 상소문에는 당시 예수믿는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정한 날 정한 시간에 모여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그 시간을 마쳤다." 이 사람들이 찬양하던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때는 로마의 황혼의 그림자가 덮이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술취함과 방탕과 섹스등 지나친 쾌락이 당대의 가치관을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먹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목구멍에 손을 넣어 음식을 토해내고 다시 맛있는 음식을 집어넣고 부른 배로 호모섹스를 즐기며 살던 바로 그 시대였습니다.

    오늘은 어떻습니까? 이 시대에도 즐거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빌딩마다 술집으로 들어 차 있고 세계 어디를 가도 젊은이들 사이에 마약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엔 진정한 웃음과 노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수들이 진정한 노래가 어디 있을까? 하고 마약에 취해 보는 겁니다.

    코메디 황제로 일컬어지는 이주일씨가 지금 폐암으로 임종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제공했지만 나는 진정으로 웃어 본 적이 없고 기뻐해 본적이 없다.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인기를 찾아 헤매는 동안 평생 나는 고독하기만 했다.”

    민중의 예수라고 추앙받던 김지하 시인이 "자신은 지금 뼈가 시린 고독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게 인생이요 이세상 살이입니다. 바로 이런 시대속에서 신앙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고, 기도는 우리에게 찬송을 가져다 줍니다.

    인생은 고난의 순간이 있는가하면 즐거움의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중 기도를 잊지 않듯이 즐거움의 순간에 찬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곧 잘 감사와 찬양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고난 중 기도해야 할 일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즐거움 중에 찬양하는 일입니다.

    "너희중에 즐거움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 저는 찬송할 것이요" 기도는 슬픔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고 다시 찬송하도록 우리의 생활을 바꾸어 주십니다.

    V. 중보기도의 특권

    지금까지 고난중에 기도할 것과 즐거움중에 찬송할 것을 가르친 본문은 14절로 이어집니다. "너희중에 병든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즉 고난에 좀더 구체적인 예로 병든자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난도 여러종류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중에서 육체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만큼 개인적으로 고독하고 가정적으로 침울하고 이웃들에게 함께 슬픔을 주는 고난은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본문은 재미있는 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교회의 리더들은 병든자가 있으면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카톨릭교회는 이 말씀을 의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소위 기름 바르는 의식인 종유성사가 이 본문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오순절 계통의 사람들은 기름을 성령으로 해석합니다. 본문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요청하며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상처가 있으면 약을 바르고 아프면 약을 먹고 수술할 일이 있으면 수술을 하면서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다 근거가 있고 옳은 해석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말씀을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기름을 마술적으로 생각하여 기름자체가 어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일전에 싱가폴에 들렀을 때 그들 교회의 리더들은 항상 올리브 기름을 가지고 다니다가 병든자가 있으면 이마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면 나은줄로 믿고 기도했습니다. 교회에 세워주신 지도자들의 강력한 역할중 하나가 병든자를 위해 기도하는 지도력입니다.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 이는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루만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기름을 부어주십니다. 당신의 상처에 치료의 기름, 보혈을 하나님께서 발라주십니다 하는 선언이지요.

    이 땅에 살아가다가 질병만큼 많은 고통을 가져다 주는 고난도 없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의 가족이 병으로 쓰러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간 하던 일, 꿈꾸고 계획하던 모든 일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정신적 고통, 경제적 손실로 인하여 한 인간과 가정이 졸지에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평소 건강만큼은 자신만만해 하고 무척이나 패기 만만해 보이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쓰러져서 오랫동안 병상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때 기도하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TV프로 가운데 동물의 왕국이란 프로가 있습니다. 동물들이 떼를 지어서 싸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상처를 안고 동굴 속으로 숨어 들었다가 적들이 물러간 다음, 아침 햇살이 밝아오면 굴속의 이 동물들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상처를 햇빛에 노출시킵니다. 햇빛에는 묘하게도 그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세상 살아가다보면 육체적인 상처 때문에 아파서 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고 받은 상처 때문에 찢겨진 아픈 마음으로 괴로워할 때가 있습니다. 영적인 아픔 때문에 환경적인 좌절 때문에 몸부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절망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한 마리 동물이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햇빛을 쬐듯이 치료하는 광선, 의의 태양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치료하는 능력앞에 우리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기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하라고 성경은 말합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질병으로 고난당하는 자를 위해 함께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공항에서 오류동으로 가는길로 잠깐 차를 달려 가다보면 서안복음병원이라하는 크지 않은 병원이 있습니다. 그 병원 간판 앞에 이런 표어가 붙어있습니다. 「우리는 봉사! 하나님은 치료!」 이웃의 아픈 상처를 위하여 우리가 기도하게 될 때에 내 가족의 아픈 상처를 주님 앞에 드러낼 때에 치료하는 광선. 앞에 노출시키며 하나님의 전능하신 이름을 부르게 될 때에 「우리는 기도! 하나님은 치료!」 이런 기도를 소위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자신의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뿐만 아니라 형제 자매 이웃들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얼마나 기막힌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 청화대에 영향을 끼칠수. 미국에 내정간섭을!

    특히, 교회안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하고 너는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는 네가 필요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고 너 없이 나 못살고 나 없이 너 못사는 공동체. 이 얼마나 멋진 세계입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만큼 그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추한 꼴은 없을 것입니다.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교회와 국가와 이웃을 위해 기도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날마다 자기 기도밖에 할 줄 모르고 자기 가정이나 내 주변에만 관심을 두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 왕같은 제사장의 신분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졸렬한 신자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중보기도의 권세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부모에게 자식을 축복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목자들은 목원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마귀와 세상의 유혹과 고난으로부터 보호할 책임과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교회의 지도력은 기도하는 지도력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기도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새해엔 한소망교회 리더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것입니다.
    * 교역자들이 교후들의 교적카드를 들고 기도하는 시간, 예배당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시간, 중보기도실을 방문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입니다.
    * 권사님들은 월례기도회로 모여 교우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 장로님들은 성찬의 떡과 잔을 들고 목장을 방문하여 축복기도를 할 것입니다.
    * 교회지도자들이 산에서, 교회에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함께 모여 기도하는 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서 18절은 이 중보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이 엄청난 기도의 능력을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나만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 폭 좁은 신앙인의 졸렬함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엄청난 수력발전소, 화력발전소 아니면 원자력발전소를 만들어 놓고 그 전력중 한줄만 끌어다가 우리집 안방에만 불을 밝히고 있다면 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일입니까? 이 얼마나 큰 손해며 당찮은 일입니까? 기도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육체에 병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주변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신음하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안에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와 나라의 문제들 때문에 성령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는 현장들입니다. 당신의 기도의 능력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기도하면 민족이 깨어 납니다. 당신이 기도하면 가정이 살아납니다. 그러나 당신이 잠들면 민족도 가정도 교회도 잠들고 맙니다.

    종종 공동체가 특별 기도기간을 선포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때입니다. 특별한 기간을 정하고 한자리에 모여서 기도하기로 작정한 기도의 시간을 통하여 모두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권능을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일 새벽부터 모두 일어나십시요. 목장 식구들이 함께 나오십시요. 온가족이 함께 일어나 교회로 나오십시요. 함께 기도하십시다. 능력을 받으십시다. 새로워지십시다.

    VI. 간절히 기도하라

    마지막으로 기도의 특권을 누리는 우리의 자세를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7절 "간절히 기도한즉" 그렇습니다. 뜨겁지 아니한 것은 불이 아니듯이 간절하지 아니한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이 본문을 주석했던 "홀”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고자 합니다.

    「기도는 수학이 아니니 기도의 횟수가 기도의 힘이 되는 것이 아니고,
    기도는 수사학이 아니니 기도의 웅변이 기도의 힘이 되지도 못하며,
    기도는 기하학이 아니니 그 기도의 장단이 기도의 힘이 되지도 못한다.
    기도는 또한 음악도 아니니 그 음성의 아름다움이 힘이 되지도 못한다.
    기도는 또한 논리학도 아니니 그의 논조가 문제 되지도 못하며,
    기도의 순서가 정연한 그 방법이 기도의 힘이 되지 못하며,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가장 관심을 두시는 신학까지도 기도의 힘은 되지 못하고,
    교리가 아무리 좋게 들린다 하여도 기도의 힘은 못된다.
    그러나 '오직 마음의 열심' 이것만이 가장 필요하고 유용한 힘이 된다.」

    지금까지 기도는 사역의 준비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최근의 신학자들이 성경을 진지하고 겸손하게 연구하다가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기도는 사역이다. 사역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역이다. 주일학교 교사들이 성경을 가리키는 것 위대한 사역입니다. 그러나 더 위대한 사역은 어린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골방에서 무릎 꿇고 그 어린 영혼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역입니다.

    목자들이 목장을 방문하며 격려하고 말씀을 가르키는 것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대한 사역은 목원 어린영혼 하나 하나까지도 저들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아버지 앞에 사정을 아뢰는 것, 저들을 축복하는 것, 엎드려 기도하는 그 시간 그것은 그 어떤 시간보다도 가장 능력있는 사역이 되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는 고난의 항아리를 부수는 햄머입니다. 그 햄머를 녹슬게 하지 마십시요. 기도는 치료하는 광선입니다. 그 광선의 통로를 차단하지 마십시요. 기도는 하늘 보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 열쇠가 늘 반짝이게 하십시요. 기도는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선생입니다. 그 선생이 늘 나에게 말하도록 문을 열어 놓으십시요. 기도하는 사람곁에 기쁨의 샘이 솟고, 기도하는 사람곁에 찬양이 있습니다.

    기도는 사랑의 열차입니다. 이 시간에도 그 기도로 당신은 고난중에 있는 이웃에게로 달려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여행중에 있을지라도 중보기도를 통해 당신의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를 통해 당신의 영혼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만날 수 없는 이웃을 당신은 중보기도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도울 수 없는 이웃을 위해 중보기도를 통해 도울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당신의 특권입니다.

    기도할 것이요! 기도할지니라!
    진정한 교회의 지도력은 기도하는 지도력입니다. 기도하고 섬기는 자가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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