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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추수
    2002-01-06 18:53:31   read : 1510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 10. 14. 누가복음 16:19-31



    I. 연습게임 없는 인생

    우리나라 어떤 사람이 미국에 가서 운전면허증을 땄습니다. 차를 사 고속도로를 달려가는데 트래픽에 걸려서 꼼짝하지를 않습니다. 옆을 힐끗 쳐다봤더니 한 줄이 그대로 비어 있네요. 살짝 빠져서 신나서 달려가는데 웽웽웽 교통경찰차량이 달려왔습니다. 이 길은 다이아몬드 레인 - 두 사람 이상이 탑승을 해야 들어설 수 있는 길 입니다. 당신은 혼자서 이 길에 들어섰으니 면허증을 주십시오. 앞길이 캄캄해집니다. 한국에서 하던 버릇이 있어서 한 번만 봐 달라고 얘길 해야 되는데 영어가 막힙니다. 그래서 얼른 콩글리쉬를 합니다. Look at me only one. - 한 번만 봐주십시오. 경찰이 갸우뚱거리며 이 무슨 말인가? 대답을 합니다. No Soup. - 국물도 없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입니다. 가을이 되었는데 거둘 것이 없는 농부는 불쌍한 사람이지요. 봄에 씨 뿌린 것이 없으면 가을이 되어도 No Soup - 국물도 없습니다. 더구나 인생의 마지막 추수의 날 - 거둘 것이 없는 사람들,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서 애원해도 소용없고 떼를 써도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을은 감사를 회복하는 계절입니다. 감사엔 참 신비가 있습니다. 감사할수록 감사는 더욱 더 커지는 신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 앞에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의 응답이 없었습니다. 안타깝게 생각하고 밤에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천사가 내려와서 교인들의 기도를 바구니에 담고 있었습니다. 이쪽 바구니는 교인들의 간구의 제목을 담는 바구니였고 이쪽 바구니는 교인들의 감사를 담는 바구니였습니다. 간구의 바구니 - 이것 주십시요. 저것 주십시요. 하는 기도는 차고도 흘러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바구니는 저 밑바닥에 조금 깔려서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천사가 기도의 바구니를 들고 하늘에 올라가는데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애를 쓰고 또 애를 써도 땅을 향하여 곤두박질하고 말더랍니다.

    안타깝게 생각하고 쳐다보고 있는데 몸이 붕 뜨더니 하늘나라로 인도를 받습니다. 하늘나라 문을 열고 들어가서 봤더니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에 응답 주시려고 큼직한 보화 창고에 보화를 준비해 두었는데 한 창고는 텅텅 비어 있었고 한 창고는 가득 채워져 있더랍니다. 이 빈 창고는 도대체 무슨 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이것 주십시요. 저것 주십시요. 간구할 때마다 주는 보화 창고입니다. 하도 사람들이 긁어가서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창고는 감사의 창고인데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더 부어 주기 위해서 쌓아놓은 보물들인데 감사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쌓여 있더라고 하는 얘기지요.

    10월은 추수감사주일이 있는 감사의 달입니다. 어느 때 우리가 감사하지 않으리요 만은 다시 한번 내 인생의 감사의 제목들을 더듬어 보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회복하는 절기입니다. 내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을 더듬어 감사하며 내게 주신 분복들을 감사하며 풍성한 영적인 복들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뒤돌아보아도 모든 것이 감사뿐인 것을 오늘 내 주변에 있는 모든 환경들을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내가 잘 나서 얻은 것 아니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감사뿐입니다. 내일을 내다보면 하나님께서 또 어떻게 나를 인도해 주실까? 더 아름다운 자리로 인도해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소망가운데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마지막 추수감사주일을 보내고 그 결실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게고 뿌릴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는 것이며 출발이 있으면 종착이 있게 마련입니다. 역사는 나선형도 아닙니다. 돌고 도는 윤회도 아닙니다. 오직 직선이 있을 뿐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종착역이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끝이 있다. 이것이 지혜로운 인생들의 인생관입니다.

    세상적인 일에는 연습이 있지만 인생은 연습게임이 없습니다. 시행착오가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요행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뿌린대로 거두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II. 부자와 지옥

    오늘 아침 우리는 인생의 종착역에서 서서 절망적인 후회와 영원한 탄식으로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다가 저 지옥에 간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 땅에 살아갈 때에 자색옷과 베옷을 입고 호의호식하며 살았습니다. 여기 자색옷이란 그 당시 시가로 계산해 보면 노동자들이 하루에 품삯을 3만날 동안 모아야 겨우 살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왕족이나 입을 수 있는 옷이었습니다. 고운 베옷이라고 기록된 이 옷은 금으로 옷을 쌀 만큼 대단히 비싼 옷이었습니다. 재벌이 아니면 입을 수 없는 옷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라 이름하는 거지는 부자집 대문간에 가마니를 깔고 개들의 헌데를 핥아주는 위로 속에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부자가 음식을 먹을 때 빵 껍질을 뜯어서 자기 손을 문질러서 때를 벗긴 다음에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걸 주워먹고 살았다는 겁니다. 때가 되자 부자도 죽었고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인생의 종말이 저들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천사의 손에 받들려 낙원에 갔고 부자는 음부의 고통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누가 돈만 있으면 모든 인생이 O.K.라고 했습니까? 이 땅에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누가 얘기했습니까? 부자의 영화가 어디로 갔으며 부자의 재물이 무슨 소용이며 그가 누렸던 쾌락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더란 얘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전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인생을 말하기를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얼마나 실감나는 진리의 말씀입니까?

    역사는 이 말씀이 분명한 진리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시대에 영화와 권세를 자랑하던 사람들은 지금 이 땅에서 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의 무덤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옛날 저들을 깨우치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살아 움직이며 역사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역사가 심판대에 설 것입니다.

    본문의 부자는 얼마나 후회하고 탄식했을까요?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제 다섯 형제가 거기 있습니다. 나사로가 가서 그들에게 경고하여 고통받는 곳에 그들은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경고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다섯 형제들에게.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형제들은 심판을 받게 될 다섯 형제일 수 있습니다. 나에게 경고하고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 경고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 천당과 지옥은 성경이 가르치는 엄숙한 주제입니다. 이 비유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이 하나님 곁에 계실 때에, 하늘에 계실 때에 하늘의 광경들을 보신 분이요 하늘을 만드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지옥의 비참함을 친히 보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옥과 천당이라는 주제는 현대에서 사라진 설교 제목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연극이나 코메디에서나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고, 문학작품이나 등장하는 주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천당과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할 수 없는 어려운 영적 현실 가운데 오늘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다니는 학생에게 학교선생이 천국이 어디 있고 지옥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말합니다. “내가 가는 길로 끝에 가면 천국이 있고, 선생님이 가시는 길로 끝에 가면 지옥이 있습니다.”

    어느 군목이 전쟁에 나가기 직전에 병사들을 앞에 놓고 어쩌면 이 시간이 마지막일는지 모른다는 심각한 생각으로 천국과 지옥에 관해서 설교하였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 있던 대위가 “여보시요 군목님. 그러면 나 처럼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불고기가 되겠네요.” 비웃었습니다.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대위님! 그 문제에 관해서 그렇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위님이 직접 체험하시게 될 테니까요.”

    D.L. 무디 선생은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할때 마다 항상 눈물이 가득 고였더랍니다. 최후의 추수 때를 모르고 어리석게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생각할 때 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옥에 갈 영혼들을 생각하고 울었던 무디의 눈물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단테 신곡 지옥편에 보면 지옥 입구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 있답니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들이여, 이제부터 모든 희망을 버려라!”

    예수님은 이 지옥의 고통을 표현하실 때마다 그 고통이 너무 극심하여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III. 지옥에 간 이유?

    왜? 이 부자가 지옥에 갔습니까.

    1.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부자는 그만하면 착한 사람입니다. 발치에 걸리적 거리는 이 불쌍한 사람을 발로 걷어 찬 적도 없고 그를 끌어낸 적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변을 할 만도 압니다. "내가 그에게 무슨 일을 했단 말입니까?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지옥에서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까?" 주님의 대답은 바로 그것이다. "네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들이 청소년 시절에 재미있게 보았던 로베레 장군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독일 나치에 저항하는 저항군들의 이야기지요. 몇몇 저항군들이 붙들려서 사형장에서 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끌려온 한 젊은이가 고래 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저항한 적이 없습니다. 독립군이 아닙니다. 나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죽어야 합니까? 그때 저항군 한 사람이 얘기합니다. 그래서 네가 먼저 죽어야 하느니라. 전쟁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졌다. 민족은 커다란 위기에 빠져있으며 우리의 많은 선배들이 초개와 같이 생명을 버리며 민족을 살려내기 위해서 죽어갔다. 그런데 너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네가 죽어야 하느니라.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무관심 속에서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흥미 있는 사실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도 사람들이 간간이 지옥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지옥이란 단어를 완전히 떠나지 못할까요? 성령의 경고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누가 감옥이 없기를 제일 바라겠는가? 그것은 거기에 가야 할 사람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지옥이 없기를 제일 바랍니까? 지옥에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2.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자가 지옥에 간 제일 중요한 이유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0절을 보면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 하리이다." 부자는 자기가 회개하지 않아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회개했더라면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마틴 루터는 “내가 천국에 도착하는 그 날, 사는 천국문에서 하나의 현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현판에는 「오직 회개한 자」라고 쓰여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까? 인생의 종착점을 알고 살아가십니까? 이 세상에 크게 성공자가 되지 못해도 내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을 준비하고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습니까? 여러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함 받고 살아가십니까? 용서의 문제를 확신하고 살아가십니까?

    3. 말뿐이기 때문에

    본문의 부자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입술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주여 주여"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향락을 위해서 때로 기도도 했습니다. 내 필요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불렀고 이 땅의 분복을 위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요 하나님도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어떤 요술 주머니 같은 것으로 믿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4. 생명책에 그 이름이 누락되었기 때문에

    또 한 원인은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퍽 흥미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불쌍한 거지 이름이 무엇입니까? 나사로입니다. 그러면 부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혹시 부자의 이름을 아시는 분 계십니까? 부자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요? 구원받지 못한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이름은 천국에서 기억조차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살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부자를 기억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 이름을 존경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가 죽었을 때는 호상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의 죽음을 애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아무도 나사로를 기억해 주지 않았습니다. 헌데를 핥는 개 한 마리 외에는. 그러나 하나님 앞에 도착하고 보니 나사로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져 있었고 부자의 이름은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지 못했습니다(계20:15).

    여러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나라에 기록되어져 있습니까?

    IV. 지옥 보내지 말자

    이 땅에 사는 최고의 사랑이 있다면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최고의 효도가 있다면 부모님에게 구원을 대접해 드리는 일입니다. 최고의 우정이 있다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일입니다. 최고의 유산이 있다면 믿음을 물려주는 일입니다.

    탄광촌에 사는 한 초등학생의 작문 중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신다. 나는 공부를 못하니까 광부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난 어차피 광부니까 열심히 일해야 되겠지만 너는 커서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죽어도 광부는 되지 말라」 하셨다.

    막장 인생을 사는 한 아버지의 피맺힌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40도가 넘는 깊은 갱속에서 시커먼 연탄가루, 돌가루를 마시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괴로움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의 바램이 있다면 내 자식 만큼은 이 고생하지 않고 살아 주기를! 막장 인생이 되지 않아 주기를!

    행복동산이 어떻고, 전도폭발이 어떻고, 왜? 우리는 이 몸부림을 하는 것입니까? 나 혼자 예수 믿기도 벅찬데 말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지옥 보내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불에 타 죽는 사람들을 살려내 보자고 몸부림을 하는데 나 혼자만 무관심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 구경만 하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잠든 영혼들이 계십니까? 깨어나십시오. 영혼의 깊은 잠을 즐기시는 분이 계십니까? 깨어나십시오. 지옥에서 영혼을 건져내는 사역에 힘을 모읍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도대체 이 비유는 누구를 대상으로 말씀한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은 본문 전후의 문맥상으로 보아 바리새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에 16장 14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했고 이 땅의 일들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만을 위해서 계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이웃을 향하여 손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누가 바리새인이며 누가 부자이겠습니까? 내가 부자입니다. 시간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내어놓을 수 없는 사람, 물질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내어놓을 수 없는 사람, 복음을 이웃을 향하여 내밀 수 없는 사람 - 그가 부자입니다.

    이 부자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나를 위해 쓸 돈은 있었지만 하나님을 위해 쓸 돈이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는 늘 풍부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늘 인색하기만 했습니다. 나를 위해 쓸 재능도 있고 나를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을 위해 쓸 재능도 은사도 기도의 여력도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는 몸부림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을 위한 열망도 몸부림도 없습니다. 그가 부자입니다. 네가 부자일 수 있다!

    V. 인생의 마지막 추수를 아는 사람

    인생의 마지막 추수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1. 믿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인생의 종착점을 알고 살아갑니다. 언젠가 나도 죽는다. 너도 죽는다.

    어제 아침에 새벽 예배 때에 이 본문을 한 번 두 번 세 번 여러 번 교우들과 함께 읽어 내려가는 데에 문득 토씨 하나가 내 중심을 강타하고 들어왔습니다. 본문을 읽어 내려가는 데에 문득 부자도 죽었다. ‘도’라는 단어 하나가 내 영혼을 찔렀습니다. 부자도, 류영모 너도 죽는다. 그렇구나. 나도 죽는구나.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하나님 앞에 가서 나는 어떻게 인정을 받을까? 하나님 앞에 쌓아놓은 곡식이 있는가?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이 나를 알아 주실까? 문득 복음을 한 사람이라도 더 전해야 되겠다. 가슴에 불이 번져오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저희 집 딸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 세발 자전거를 타다가 언덕에서 굴러 머리가 쭉 찢어졌습니다. 병원에가 꿰매는데 아이가 겁에 질려 자지러질 듯 웁니다. 그때 아이 엄마가 아이를 안고 아이보다 더 큰 눈물을 흘리며 쩔쩔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게 어미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복음을 아는 마음입니다. 믿음을 아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2. 사랑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인생을 영원히 후회 없이 산 사람은 사랑하며 산 사람입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나사로에게 왜 이부자리 하나 나눠줄 수 없었을까?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쩔쩔매고 있는 불쌍한 나사로에게 밥 한 그릇을 줄 수 없었을까?

    제가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습니다만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제 가슴을 아프게 하는 얘기 하나가 있습니다. 결혼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아내도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때 였습니다. 토큰이 없어서 제대로 버스를 탈 수 없는 가난한 신학생 시절이지요. 가끔은 쌀독을 뒤지는데 쌀 한 되박이 없어서 밥을 먹지 못할 때도 가끔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도 간밤에 먹었던 찬밥 한 그릇을 먹고 학교를 향하여 문을 나서는데 우리 집 대문에 거지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김치하고 밥! 깜짝 놀라서 쳐다보는데 한번 더 나를 붙잡더니 김치하고 밥! 외쳤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그런데 찬밥 한 그릇, 김치 한 그릇이 제대로 없었습니다. 학교는 지금 지각하게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밥 한 그릇 주겠지. 모른척하고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한 10분이나 달려가다 아니다. 옆집에서 밥을 얻어서라도 줘야 겠다.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어느 골목에 계실까?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 다니며 할아버지를 찾아보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안 계셨습니다.

    사랑에도 기회가 있고 밥 한 그릇에도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실패는 사랑의 실패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업과 돈벌기에는 바쁜데 자식과 아내를 사랑할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무엇 때문에 사업합니까?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데 쓸 수 없는 돈이라면 그것이 저주요, 사람 사랑할 수 없는 직업이라면 직업은 불행입니다. 사랑하며 살 수 없는 인생이라면 사는 것이 고통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업과 명예와 성공은 악입니다.

    원종수 권사의 간증집에 보면 “주님 위해 쓸 수 없는 기술은 저주다. 주님을 위해 쓸 수 없는 돈은 저주다. 주님을 위해 쓸 수 없는 건강은 저주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소유가 사랑하기 위해 있어야 합니다. 물질이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요 높은 위치는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은총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며 사랑해야 합니다. 인생 최대의 실패는 사랑하지 못하고 산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잃고라도 사랑을 얻었다면 이는 성공적인 인생입니다.

    3. 소망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소망의 씨를 뿌리고 살아야 한단 말입니다. 부자는 이 땅에 생명을 걸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내 양식은 하늘에 있는 신령한 양식이다. 이 땅에 하룻밤 다리 뻗고 잘 집이 없지만 내게는 영원한 집이 있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품어주지 않았지만 나를 품어줄 하나님이 내 집에 계신다. 소망 하나로 살아갔습니다.

    바이런의 시 가운데 “폭풍이 지나간 들판에도 꽃이 있다. 지진이 난 땅에도 샘이 있다. 초토속에서도 풀은 돋아난다. 우리는 어떤 슬픔의 순간에도 쓰러지지 않고 사랑과 생명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오늘도 우리는 꿈을 꾸며 기도하고 오늘도 감사한다.”는 시가 있습니다.

    4. 감사의 씨를 뿌리며 살아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라고 한다면 감사는 항상 있을 것인데. 감사는 마치 공으로 벽을 치는 것과도 같아서 감사하면 반드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가장 지구상에 불쌍한 나라는 방글라데시라고 배웠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동전 한푼,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서 다리를 자르고, 팔을 잘라서 아이들을 밖에 내어놓는 다는 겁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동전 하나씩 던져 준다는 거지요. 그런 보고를 듣고 신학교 다니던 정성균이라는 신학생이 광나루 언덕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 나는 방글라데시에 재물이 되겠습니다. 그렇게도 매일밤 매일밤 방글라데시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더니 결국은 방글라데시에 선교사 되었습니다. 모슬렘 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팔 다리가 부러지기를 여러 번, 풍토병에 걸려서 가족들이 죽기도 하고 물이 맞지 않아서 이빨이 다 빠져 이빨이 하나도 남지를 않았습니다. 그가 결국은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방글라데시에 묻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간증집에 보면 “그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성경의 “감사”라는 말을 번역할 어떤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감사하지 못한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요, 감사를 모르는 민족은 저주받은 민족이더라.

    우리가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유창한 영어를 하지 못해도 Thank you. Excuse me. 이 말만하면 무식하다는 얘길 안 듣습니다. 여행하는데 별로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Thank you) 실례합니다.(Excuse me)" 이 말만하면 괜찮은 사람 대접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Thank you - 이 말 하기가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지 모릅니다.

    카네기는 말하기를 “배은 망덕은 들풀과 같아서 가만히 두어도 자라나지만 감사는 장미와 같아서 계속 길러야 자라난다”고 말했습니다.

    불평 불만은 가만히 두어도 자란다. 원망과 불평은 아무교육이 없어도 저절로 자라나더라. 그래서 자주 뽑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감사는 가만히 두면 자라나지 않는다. 장미처럼 자꾸 물을 주어야 하고 가꿔야 한다.

    기억하십시다! 여러분 감사하는데도 기회가 있습니다. 전도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지옥의 불행이 무엇입니까? 기도가 중단된 것입니다. 기도가 차단된 것입니다. 부자가 아무리 기도해 보았지만 지옥의 기도는 응답되는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선교해 달라고 전도해 해달라고 몸부림을 해 보았지만 지옥에서는 선교가 불가능해 집니다.

    충성도 헌신도 기도도 선교도 전도도 이 땅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은 기회인 것입니다. 이 땅의 생명이 다하면 모든 기회가 다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주어진 분복들을 감사하며 살아가십시다.

    VI. 모든 게 감사다

    꽃동네 한 사제는 얘기했습니다. “얻어먹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깡통을 주어도 깡통을 손에 들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서 밥 한 술 얻어 올 수 없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밥을 비벼줘도 제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거지요. 밥을 먹었는데 제 배설기관으로 배설할 수 없는 사람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이해인 시인의 시

    급한 순간에 버스를 놓쳐 안타까울 땐 즉시 다음 버스가 있음을 기뻐한다.
    몸이 아파 괴로울 땐 건강의 고마움을 절감하며 기뻐한다.
    글이 써지지 않아 답답할 땐 내 능력의 한계를 깨치게 됨을 기뻐한다.
    다른 이에게 내 실수가 드러나 부끄러울 땐 겸손을 실습할 기회임을 기뻐한다.
    오해 받아서 슬플 땐 인내할 수 있는 기회임을 기뻐한다.
    이 모든 일들이 신앙안에서는 더욱 가능한 것임을 기뻐하고 감사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버스를 놓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음 기회를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연약할 때 약한 자를 더욱더 강하게 쓰시는 하나님이 내게 계시기 때문에 나는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겁니다. 내 인생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하나님 당신만을 의지합니다. 주님을 붙들 수 있음에 우리는 감사한 것입니다. 내 실수가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덮어주시는 주님 내게 계시니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눈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서 물어보십시오. 내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나는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손발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서 물어보십시오. 내 다리로 걸을 수 있고 내 손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나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가서 물어 보십시오. 내가 내 입술로 내 혀로 말하며 살 수 있으면 어떤 고통도 나는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손발이 없습니까? 혀가 없습니까? 눈이 없습니까? 내게는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왜 감사할 수 없더란 말입니까?

    한 맹인 음악가의 노래

    아내가 꿈에 나타날 때도 소리만 듣지 얼굴이 없습니다.
    내게 있는 것은 소리뿐입니다.
    사람들이 봄을 얘기하지만 내겐 봄이 없습니다.
    느껴지는 봄이 있건만 나는 초록색을 모릅니다.
    아내와 내 아이들의 얼굴이 보고 싶은데
    아이들이 재롱부리며 웃는 얼굴을 나는 본 일이 없습니다.
    태양과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을 나는 모릅니다.
    이 모든 것 한 번만 보고 다시 눈을 감는다 해도 나는 한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게 감사요 은혜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인생 오늘 십자가 밑에 묻어 두십시다. 감사하기로 결단하십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분복을 헤아려 이웃을 더듬어 나눌 사람들을 찾아보기로 결단하십시다.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영혼의 열매를 거두는 결실의 계절에,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내 가족, 내 주변의 사람들을 더듬어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는 기회로 가져 보십시다.

    주일학교에서 몹시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교회만 갖다 오면 엄마 예수 믿어요. 아빠 예수 구원 받아야 해요. 아빠는 그때마다 나는 바빠서, 나는 바빠서. 그런데 이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시골 여행을 갖다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이의 시신을 땅에 묻고 유품을 정리하는데 일기장을 들여야 보니 이런 글귀가 문득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빠를 구원해 주세요. 우리 아빠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하면 나는 죽어도 좋아요. 내가 죽어 아빠가 예수를 믿을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죽을 수도 있어요. 이 아이를 내가 죽였구나. 예수가 무엇이란 말인가? 구원이 무엇이란 말인가? 일기장을 가슴에 끌어안고 흐느껴 울고 또 흐느껴 울다가 예배당으로 터덜터덜 들어옵니다. 이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가 바로 C.C.C.의 부총재입니다. 평생을 젊은이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데에 그의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리에서 모두 다 일어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성령님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요청하고 있습니까? 오늘이 여러분의 인생에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내어 놓으라 말씀하십니까? 여러분이 한 영혼이라고 구원해야 한다고 하면 그가 누구입니까? 오늘이 여러분의 인생에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천국문에 들어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가장 절박한 영적인 문제를 가슴에 안고 다같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 가지길 원합니다. 다 함께 입을 열어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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