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국 가 족 2002-01-06 18:28:06 read : 1242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1. 1. 28. 에베소서 5 : 21 - 33
I. 가장 아름다운 그림 : 가정
어느 유명한 화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겠다고 길을 떠났습니다. 공원길에서 몇몇 젊은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입니까?” “미인이죠.” “아름다운 여인이죠.” 그래서 아름다운 여인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과는 퍽 거리가 있었습니다. 패전군인들이 비틀거리며 길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무엇입니까?” “평화죠.” 황금물결 넘실대는 농촌의 풍경을 그려보았습니다. 역시 석연치 않았습니다. 고민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두 폭의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첫째는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어린애기의 그림이었고, 두 번째는 일터에서 돌아와 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 부지런히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그림이었습니다. 결론인 즉 행복한 가정만큼 아름다운 그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은 아버지의 왕국입니다. 어머니의 세계입니다. 자녀들의 낙원입니다. 건물의 크고 작음, 가구의 많고 적음의 차원이 아니죠.
오늘 본문 바로 앞 주제가 에베소서 5장 15-20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지혜있는 삶을 사십시오.” “성령충만한 삶을 사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이어져 갑니다. 그러면 지혜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성령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지혜있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번다. 공부를 잘한다. 장사를 잘하고 사업을 잘한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기적을 행한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홀로 많이 기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만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할 줄 알며 복된 교회를 만들어 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가정은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입니다. 밖에 나가면 높은 사람, 귀한 사람, 대통령 장관 대접을 받는 사람도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인사하고 낮아집니다.
제가 아는 사장님 한분은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어린 손자의 말이 됩니다. 손자녀석은 할아버지를 엎어놓고 등, 허리에 걸터앉아 이랴 낄낄낄 하고 할아버지를 타고 온 방을 돌아다닙니다. 이게 가정입니다.
또한 밖에 나가서는 아주 낮은 자리에서 어려운 일을 하다가도 집에 들어오면 황제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은 인류의 안식처입니다. 가정은 험한세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이 편히 쉬는 안식처입니다. 서로 섬겨주고 인정해 주는 가정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서로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고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고 행복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가정이 있다는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옛날 어느 농가에 명절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온가족이 둘러앉아 인절미를 만드는데 인절미 떡을 만들다 말고 젊은 색시가 고물을 묻혀서 사랑하는 남편 입에다 쏙 넣어주고 쏙 넣어 줍니다. 저만큼 시아버님이 바라보고 있는데 군침이 흘러 갑니다. 체면 때문에 그것 나 하나 먹자 소리하지 못하고 먼 산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습니다. 때마침 시어머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아버님 드렸냐? 아니 다 만들어서 드릴려구요. 그래 인절미를 한사발 담고 김치 국물을 곁들여서 아버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볼이 미어터지도록 몇개 잡수시더니 아들 쪽을 향하여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이놈아 너만 색시있냐? 나도 색시있다.” 행복이라고 하는게 큰 것에서 오는 것 아닙니다. 행복도 불행도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집니다.
II. 나는 교회를 믿는다
오늘 본문 교회의 유비를 통해 가정을 설명하고 가정의 유비를 통해 교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믿는 가정에서 부부관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예수님과 교회의 신비를 통하여 설명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늘 본문을 문자적으로 접근해 보면 이 주장이 옳은 것처럼 여겨집니다. 또 어떤 이는 반대로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가장 기본관계인 부부관계를 통해서 설명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에베소서가 “교회론”을 주제로 이어진 책이라고 한다면 아마 이 후자가 옳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시간에는 교회생활에서 가족의식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가 큰 날개 - 대그룹 안에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축제의 예배를 경험합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선포되는 설교를 듣게 됩니다. 한 주간동안 흩어져있던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 소그룹에서 모였던 작은공동체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우리 모두 한소망의 한 몸임을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됨을 천국가족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날개 - 소그룹 안에서는 내재적인 하나님 친밀하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가족공동체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천국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이 땅에 많은 크고 작은 집단공동체들이 있지만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공동체는 가정과 교회밖에 없습니다. 현대건설 - 하나님이 만드셨습니까? 삼성전자 - 하나님이 만드셨겠습니까? 심지어 하나님은 학교도 국가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교회를 만드셨고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옆구리가 터지고 갈비뼈가 뽑혀져 나오고 피가 흐른 다음에야 가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이 찔려지고 물과 피가 쏟아진 다음에야 이 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는 행복의 비밀을 가정 안에 숨겨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부유한 자리에서 아무리 높은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가정에 숨겨놓은 행복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면 아직까지 행복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철이 덜 들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과 축복의 비밀을 교회 안에 숨겨 두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비밀이 크도다.” “이 신비가 크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경가 바클레이라는 사람은 평생 성경을 연구하고 교회를 섬기며 살아오셨던 사람입니다. 말년에 썼던 그의 책 가운데 한 구절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는 교회를 믿는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때로 교회가 부패하고 허물과 모순 투성이로 보일 수 있으나 우리의 구원과 희망이 실현되는 곳은 오직 교회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0세기가 우리에게 남겨놓은 몇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인구가 폭발되었습니다. 비인간과현상, 인간의 도구화 현상이 세계도처에서 일어났습니다. 지구를 40번 폭파하고 능히 남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무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환경을 파괴시켰습니다. 앞으로 100년동안 인류가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환경으로 돌이킬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공동체가 파괴되어졌습니다.
21세기 문이 열려지면서 얼마만큼 우리가 자연환경을 파괴된 환경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파괴된 공동체를 어디서 얼마만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과제를 안고 새세기의 문을 열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의 우리는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믿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생활을 할 때 거기에 희망이 있고 꿈이 있습니다. 인류가 잃어버린 행복의 환상을 우리는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III.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
오늘 본문 25절 - 27절에 보면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 하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25절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유일한 애인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만큼 교회를 끔찍이 사랑하셨습니다.
26절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나 자녀를 예쁘게 다듬기 위해 목욕을 시키고 마사지를 시키고 가능하다면 성형수술까지 시키는 한 남자의 애틋한 사랑이 본문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씻는다. 깨끗하게 한다. 거룩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늘 새롭게 씻어야 할 만큼 흠이 많다는 얘기죠. 깨끗하게 하지 않고서는 언제나 때묻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거룩하지 못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눈물로 닦으십니다. 피 흘려 보혈로 거룩하게 하십니다. 말씀으로 깨끗하게 다듬어 가십니다.
27절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망이요 꿈입니다. 우리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 - 하늘의 영광스런 임금으로 우리 앞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하늘 혼인잔치의 신랑으로 오실텐데 그 앞에 단장하고 선 예쁜 신부가 있습니다. 그 신부가 누구입니까? 교회입니다. 성도들입니다. 하늘의 권세를 다 한 몸에 짊어지시고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시는 그 날, 나와 여러분은 주님 앞에 신부로 서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긍지가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신분의 고상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배짱을 가지고 당당하게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단장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그분의 파트너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 하나 하나를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초라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신랑되신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교회는 그분의 유일한 사랑이요 꿈이요 자랑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믿음에 비로 서면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를 많이 사랑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혼인식장에서 신부를 비판하지 않듯이 교회를 함부로 대하거나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왜요? 교회는 예수님의 순결한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IV. 함께 가꾸어 가는 공동체
교회가 그토록 고귀한 공동체라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뒷짐지고 구경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주님이 또 씻어 주실텐데 아무렇게나 살고 흙탕물에서 놀아도 좋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신랑을 기쁘게 하려면 늘 자기를 가꾸어야 합니다. 천국가족의 전통을 세워가기 위해 각자 자기 역할을 잘 알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장은 부부가 된 날이 아니라 부부가 되기로 시작하는 날입니다. 완성의 날이 아니라 출발의 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만 있으면 저절로 부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젊은이들은 결혼만 하면 저절로 부부가 되는 줄로 압니다. 아니요. 부부가 되기로 첫 출발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부부란 마주 보고 누우면 한 몸이 되지만 등 맞대고 돌아누우면 지구를 한바퀴 돈 다음에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게 부부입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부부관계는 깨어집니다. 부부관계는 값비싼 댓가를 지불해 가며 행복을 심어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천국가족, 교회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예배에 겨우 참여하고 헌금만 한다고 천국가족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는 요술이나 마술이 아닙니다. 어느날 우연한 기회에 요술적으로 마술적으로 우리 가정이 행복해 지더라 이런 것은 세상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당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힘쓰고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다. 이런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예술입니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오랜 세월동안 노력하고 애를 써서 각고의 노력끝에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듯이 우리가 힘쓰고 애쓰며 노력할 때에 아름다운 천국가족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가족은 자기를 가꾸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나 자신을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격이 훌륭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 자신을 훌륭한 인격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이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가기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 자신을 훌륭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가는 길 외에는 어떤 길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에서 성숙한 공동체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 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여러분의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랑의 은사를 누리고 사랑의 분량을 키워가는 길 외에 어떤 길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늘 가꾸고 채찍질하지 않으면 금방 추악해 지는게 인간입니다. 금방 녹슬어 버리고 곰팡이가 쓸게끔 되어있는 것입니다. 가꾸지 않는 가정은 광야와 같이 메말라만 갑니다.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아픔을 주고 받게끔 되어 있습니다. 독을 뿌리게 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가정은 꽃의 향기와 같아서 멀리 있어도 향기로운 냄새로 주의 사람들을 풍요롭게 합니다.
우리 청년부 내에도 교회 내에도 많은 소그룹과 목장, 소공동체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서로를 격려해 주고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해 주고 서로 세워가고 아픔을 나눌 때에 그 공동체는 아름다운 천국동산으로 가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이 무엇입니까?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아픔도 함께 나누고 행복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슬픔도 함께 나누고 기쁨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국가족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집에 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슬픈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내 남편이 생각 안나고 옆집 남편이 생각나면 문제 있는 집 아니겠습니까? 우리 집에 기쁘고 행복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아내가 생각이 안나고 옛날 애인이 생각납니다. 문제 있는 남자 아니겠습니까?
지난 연휴동안에 우리교회 성도들이 이곳저곳에서 소그룹으로 모여서 눈썰매장에도 가고 또 집집마다 모여서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부모자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아버지가 세상사에 어려워할 때에 그 아픔에 동참하는 것이 자식입니다. 사랑스런 내 자녀들이 외로워할 때에 그 외로움을 나눌 수 있어야 부모가 아니겠습니까? 이게 가족 아니겠습니까? 함께 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부부가 오랜시간 함께 하다 보면 닮는다 그래요. 생긴 것도 닮고 말하는 것도 닮고 인격도 향기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부부가 너무 오랫동안 헤어져 있으면 남남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 목사님 가운데 가정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이 계신데 이분은 결혼하자마자 1년 2년내에 얼마나 많이 싸웠던지 다른 사람이 평생 싸우는 것보다 몇 십배는 많이 싸웠다는 겁니다. 하루에 두번 세번 싸우지 않으면 절대로 잠을 잘 수가 없더랍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으로 회복되어지고 오히려 상처난 가정을 어루만지는 가정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방송에 나와서 어떤 분이 물었어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해 졌습니까?” 물었더니 이분이 껄껄 웃으면서 “우리는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다른 이불을 펴지 않았습니다. 신나게 싸움한 밤일수록 신나게 붙어서 잤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가정이 회복되어지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남편의 고백입니다. 아내와 함께 시간을 같이 가질 수가 없더라지요. 그래서 어느날 저녁 식탁을 물려내고 가족이 함께 TV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혼자서 설겆이를 하더랍니다. 아이들이 없어 뒤에 가서 한번 꼭 껴안아 주었더니 아내가 좋아하더래요. 이왕 아내에게 인심쓰는 김에 설겆이를 같이 하자. 그래서 설겆이를 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리더라지요.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설겆이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는 그 시간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신혼여행 때보다도 더 즐거웠다는 고백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함께 할 시간을 부비고 살 시간을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하는 시간을 우리가 갖지 못하면 어느새 우리가 멀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스웨터를 한번 짜 보는 것입니다. 짜면서 남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 사 주는 것은 쉽지요. 그러나 직접 스웨터를 짜면 그동안 애정이 쌓입니다. 기도가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아낙들은 남편을 위해서 뭔가 만들어 줘야 되겠는데 돈은 부족하지요. 그래서 몇 년 머리를 기릅니다. 그리고 머리를 잘라서 남편의 옷가지를 준비하곤 했습니다. 이런 깜짝 놀랄만한 사건들이 우리관계를 성숙시켜 가는 것입니다.
V. 암세포(쓴뿌리)를 제거하라
세상 살아 가다보면 건강한 공동체, 아름다운 공동체에도 지꺼기가 끼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찌거기들을 제거하는 법을 우리가 배우지 아니하면 금방 우리 가정공동체는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천국가족 그물은 찢겨지고 마는 것입니다.
* 혼자 놀지 말아라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우리 모두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우리는 혼자 존재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신앙생활은 절대 혼자 유지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면 그 날로 우리 신앙은 살아남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모닥불과 같습니다. 작은 모닥불이라도 하나 둘 셋 넷 모이다 보면 나는 너를 뎁혀 줍니다. 너는 나에게 불을 나누어 줍니다. 내 불은 네 불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불이 행복의 불이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둘씩 뿔뿔히 흩어져 가기 시작하면 이 불들은 하나씩 둘씩 꺼져가고 마는 것입니다. 혼자 놀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몸은 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세포들이 서로가 서로를 돕습니다. 세포 가운데 병이 들면 다른 세포들이 일제히 달려가서 그 세포를 도와줍니다. 영양분을 나눠줍니다. 그런데 암세포는 혼자 노는 세포입니다. 다른 세포들이 열심히 함께 놀 때 혼자노는 세포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못된 이 암세포는 세력을 확장해 갑니다. 그래서 결국은 종양을 만드는 것입니다. 악성종양, 암세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죠. 암세포는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고 영양을 빼앗아서 혼자 날름날름 삼킵니다. 그리고 결국 생명을 앗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노는 세포는 위험합니다. 성도들과 더불어서 소그룹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상처를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고 용납받으며 서로 세워주는 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믿음생활에 모여서 사랑 나누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위험한 세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 쓴뿌리
윌라드 F. 할리(Willard F. Harley Jr)가 쓴 책 가운데 “러브 바스터스(Love Busters)”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행복을 고기잡는 그물에 비유했습니다. 어리석은 어부는 그물을 잡아서 고기를 잡습니다. 고기를 잡고 나면 고기만 골라서 바구니에 담을 줄만 알았지 그물에 낀 찌꺼기를 걷어낼 줄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그물을 던집니다. 고기만 주워챙깁니다. 거기에 또 다른 그물과 그물의 찌거기들이 고이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두번 열번 스무번 반복하는 사이에 이 찌거기들이 그물을 찢어 놓습니다. 고기를 잡을 수 없는 망가진 그물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부부간에도 살아가다 보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너에게 아픔이 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이 찌거기들을 거둬낼 줄 아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면 한번의 상처는 열번의 상처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상처는 반드시 큰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침내 가족이라는 그물이 찢겨집니다. 행복이라는 그물이 찢겨집니다.
천국가족 - 교회공동체의 그물이 찢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어부는 고기를 잡을 뿐만 아니고 그 찌꺼기를 걷어낼 줄 압니다. 하나가 쌓이기 전에 둘이 쌓이기 전에 그물에 찌꺼기들을 걷어낼 줄 안다고 하는 것이죠.
우리 모두에게는 어릴 때 있었던 작은 상처 하나가 쓴뿌리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쓴뿌리를 우리가 지혜롭게 발견해 내지 못하면 쓴뿌리를 지혜롭게 제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결혼생활 속에서 많은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실망을 줍니다. 남편의 가슴을 난도질합니다. 자녀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쓴뿌리들을 거두어 내는 지혜를 배울 줄 알아야 됩니다.
VI. 천국가족엔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 천국가족을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기중심 사랑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사랑 말이예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깊은 갈증, 목마름이 있다고 합니다. ① 말하기입니다. 진실된 말을 할 수 있는 대상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찾지 못해서 저마다 갈급해 하고 있습니다. ② 접촉의 열망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닿는 접촉과 느낌, 순수한 사랑의 접촉을 찾지 못해서 괴로워합니다. 이 땅의 거짓된 키스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키스는 많지 못합니다. ③ 사랑에 열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을 다 바쳐 사랑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을 발견해 보고 싶어합니다. 사랑? 너무나 흔한 말이지만 진실한 사랑,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사랑에 갈급 해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그토록 목말라하는 소공동체를 오늘 교회가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부 안에서도 우리교회 구석구석에서 두루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내 이름을 알아주고 너의 이름을 내가 알고 너의 기도의 제목을 내가 알고 나의 아픔을 네가 아는 그래서 마음놓고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작은 소그룹이 필요합니다. 내 상처를 마음놓고 드러내고도 내가 드러낸 상처 때문에 다시 내게 돌아오지 않을 때에 그 상처는 치유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리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유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진실한 천국가족을 만들어 갈 때에 거기에 믿음이 성숙되어지고 우리 신앙생활의 행복이 그 자리에서 꽃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돈들이지 않고도 가장 값비싼 선물을 할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언어의 선물입니다. 말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낼 수도 있습니다. 싱싱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게 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잔소리, 비판하는 말, 평가하는 말, 조롱하는 말, 무관심한 말, 이런 말들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입니다. 그러나 격려하는 말, 용기를 주는 말, 희망과 꿈을 주는 말, 잠자는 영성을 깨우는 말, 소망을 주는 말은 죽어가는 사람을 회복시킬 수가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이란 작가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진실한 칭찬을 한번 들을 수 있다고 하면 한 달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결혼 정보회사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30대 미혼남녀들이 4월 1일 만우절날 정말 듣고 싶은 거짓말이 어떤 거짓말인가? 조사해 보았습니다. “너만을 사랑해.” “우리 결혼하자.” “세상에서 네가 가장 예뻐.” “너는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남자야.”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그런말 듣고 싶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말이란 이런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천국가족엔 웃음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좋은 선물은 웃음을 주는 가정, 웃음을 주는 공동체입니다.
황수관 박사는 “웃음은 보약보다도 더 귀하다.” 그랬습니다. 이 분의 말씀을 빌리면 하루에 한번 서로 격려할 수 있고 하루에 한번 서로들 사랑을 고백할 수 있고, 하루에 한번 안아 주면 온 가족이 온 공동체가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교회생활에 웃음이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여러분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고 내가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믿음이 성숙해져 간 사람입니다.
맺는 예화
천국가족엔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 행동이 있습니다.
콜롬비아 바이블 칼리지 학장 - 로벗슨 맥퀼킨이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무리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 무리엘이 알차 하이머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맥퀼킨은 학장직을 사임했습니다. 아내 간호의 길에 나서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습니다. “후학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학교는 당신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 맥퀼킨 학장은 두 마디 말을 남기고 그 학교를 떠나갑니다. “① 지난 사십년동안 내 아내는 내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지난 사십년동안 내 아내는 나 하나만을 위해서 희생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나를 필요로 합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는 내가 아내를 위해서 희생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내 곁으로 돌아갑니다. ② 학장직이야 교수 일이야 내가 아니고서도 얼마든지 다른사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니 나보다 더 잘 감당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리엘의 남편은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될 수가 없습니다. 무리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천국가족, 참된 가족 - 거기에는 결단이 있습니다. 감정적인 우리 젊은들은 감정으로 느낌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단 결혼하고 나면 느낌과 감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단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리라.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며 사랑하리라. 내 부모 하나 내가 존경하고 섬겨주며 살리라. 나는 사랑하며 살리라. 사랑은 결단하는 것입니다. 믿음생활도 결단을 통하여 비약적으로 성장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가족에는 아름다운 행동과 아름다운 희생이 있습니다. 거기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들을 천국가족으로 만들어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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