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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2001-12-28 21:05:21   read : 1187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히4:14-16

    옛날에는 형무소라고 했고 지금은 교도소라고 하는데 교도소에 있는 분들은 머리가 얼마
    나 좋고, 좋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아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먼저 들어간 감옥에
    있는 분들이 늦게 오는 분들을 신고를 받으면서 '너 뭐하다 왔냐? 어디서 뭔 짓 했느냐?' 전
    부 신고하게 한대요. 그래서 신고식도 받고 애도 먹이고 그러는데 그 안에 있는 분들이 변
    호사가 다 나오고 판사 검사가 다 나와가지고 '야, 너는 3년 6개월이다' 그러면요 정확하게
    들어맞는대요. 그 안에 있는 분들이 다 변호사예요. 판사예요. 그것만 아는 것이 아니래요.
    경제 너무 잘 알고 정치 너무 잘 알고 세계가 돌아가는 것 모두 너무너무 잘 안다라는 거예
    요. 우리가 정치하면 정치의 족보까지, 그 사람이 과거에 뭐 하고 어느 계열이고 서열이고
    어떻게 되는 것 빤하게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다 알면서 한 가지 모르는 것 있어요. 자기가 죄인이라는 걸 모르는 거예요.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죄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고 어떻게 재수
    가 없어서 나보다 더 큰놈도 괜찮게 사는데 난 어쩌다 운이 나빠서 실수 해 가지고 이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죄라는 생각을 아직도 못하는 거예요.
    다 알면 뭐합니까? 감옥에서 모든 것, 밖의 것을 다 알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품안에서 죄인임을 알고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맞이하지 않고 주님 밖
    에서 알면 무엇을 안다라는 것입니까? 성경에 가장 큰 은혜도 받고 쓰임도 받고 축복을 받
    은 다윗은 하나님 앞에 그토록 은혜 받은 그 축복이 어디서 왔느냐, 내가 죄인이다는 것입
    니다. 죄 때문에 많이도 울고 죄 때문에 고민도 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추하고 더러
    운 것이 내 죄라는 것을 알면서 다윗은 하나님에게 사랑 받고 쓰임 받고 축복을 받은 것입
    니다. 남의 죄는 아무리 알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아야 하나님과 나와의 만
    남이 열리고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죄를 지으면 불만이 많아져요.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안은 어두워지고 안은 답답해
    지고 안은 불이 꺼집니다. 안에 고통이 옵니다. 이 안을 지옥으로 만들려면, 내 마음, 내 가
    슴을 지옥으로 만들려면 죄 지으십시오. 죄인의 얼굴은 환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죄인의 마
    음은 캄캄한 지옥입니다. 왜 이렇게 답답하고 불만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죄인은 항상
    어디에 더 좋은 것이 있는가 해서 자꾸 자리를 옮기고요 직장 옮기고요 어디 나라 이민가면
    어디는 좋다는데, 좋다는데... 좋은 것이 없습니다. 주님 계신 곳 천국입니다.
    둘째, 죄를 지으면 마음이 또 강퍅해 져요. 사람의 마음이 강퍅해져요. 히브리서 3장 13절
    에는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죄를 지으면 아주 성격이 사나워져요. 우리 나라
    가 죄가 많은 것 같아요. 어린아이들까지 그렇습니다.
    가정에 남편을 진단하는 방법을 한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서로 사랑할 때 얼마나
    좋은 소리를 합니까? 너무너무 좋은 말만 해요. 괴테의 시를 하다못해 소월의 시를, 얼마나
    아름다움을, 얼마나 꿈을 이야기하고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물에다가 돌 던지고, 둘이 좋아
    가지고. 그러나 죄가 있으면 이게 없어져요. 그래서 첫째, 입이 거칠어져요. 분명히 들으십시
    오. 입에서 말로 남편이 욕하기 시작하면 벌써 뒷조사 해보세요. 강퍅한 거 아닙니다. 틀림
    없이 그 죄 아니면 다른 죄라도 분명히 있어요. 죄가 우리를 강퍅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막 손찌검한다, 폭력한다, 때린다 하잖아요? 그것은 이미 죄가 인격까지 그 몸
    까지 지체까지 잡고 있다라는 증거입니다. 손 올라가요? 그건 제 손이 아니라 죄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뒷조사 잘해봐야되요. 강퍅해 집니다. 성경에 사울왕 보세요. 죄를 지으
    니까 얼마나 강퍅해져요? 바로 보세요. 얼마나 바로가 강퍅해져요? 헤롯 보세요. 얼마나 강
    퍅해져요? 부인도 죽이고 헤롯은 아들 다 죽이잖아요. 강퍅해 지는 거예요. 지위가 높아도
    부유해도 많이 배워도 강퍅해져요. 죄가 우리를 강퍅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사나
    워져요. 오늘 이 시대의 문제점이 너무너무 사람들이 사나워졌어요.
    셋째로, 죄는 우리를 불안하게 해요. 밤이 무섭고요 날마다 날마다 어디서 잠을 자도 자는
    것이 불안하고 먹어도 먹는 것이 불안하고 항상 마음에 평안이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는 보
    혈로 씻음 받은 자에게는 어디에서도 평안이 오는데 죄는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죄는 우
    리를 실패하게 해요. 안돼요. 동서남북이 가로막혀요. 중국말로는 죄(罪)가 넉 사 밑에 아닐
    비자예요. 동서남북이 안된다는, 다 안돼요. 이리가도 안되고 저리가도 안되고 다 안돼요.
    여러분 회개할 것을 두고 어디를 가겠다는 겁니까? 부채를 두고 하나님 앞에 부채를 짊어
    지고 어디를 가겠다는 겁니까? 그래서 성경은 죄의 짐을 벗으라는 거예요. 회개하고 주님께
    맡기라는 거예요. 이 세상에 내 죄짐을 져주실 이가 어디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
    을 사랑하셔서 죄짐 지어주시겠다고 하는데 왜 맡기지 아니하냔 말이예요. 언제까지 죄인으
    로 살겠습니까?
    죄는 감각을 둔하게 합니다. 그래서 죄인일 수록 죄를 지을 수록 얼굴이 뻔뻔해지고 가슴
    이 뻔뻔해지고 양심이 마비가 되고 우리의 신앙양심이 전부다 마비가 되는 거예요. 죄는 지
    으면 지을수록 죄는 머리를 들게 만들어요. 그래서 나쁜 거예요.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당시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특별히 써보
    내신 계시의 말씀이었습니다. 히브리서를 받아본 독자들은 당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유대 사회로부터 완전히 추방당한 것은 물
    론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핍박 속에서 몸부림을 쳐야만 했습니다. 생업도 다 박탈당했기 때
    문에 자연히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 밑바닥 생활을 피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던
    것입니다. 단지 예수 믿는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조소와 멸시를 받았습니
    다. 그것도 잠깐 1,2년 정도만 지속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몇 년 동안이나 더 그
    런 생활을 해야 되는지, 이 어두운 터널이 언제쯤 끝나게 될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절망
    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수를 저버리고 옛날 유대 사
    회로 다시 돌아가는 배교의 일들이 계속 이어졌던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믿어서 어떻게 인
    생을 살 수 있을까? 더 이상 나는 못 견디겠다.' 그래서 예수를 부인하면서 백기를 들고 옛
    날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히브리서를 보면 그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이 간혹
    나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3장 12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4
    장 1절에도 상당히 무서운 경고가 나옵니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
    해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를 써 보내신 것입니다.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잘못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해결책을 응답으
    로 주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핍박 을 하루아침에 다 잠재운다든지 그들의 가
    난을 풍요로운 생활로 바꾸어 주신다든지 하는 식의 해답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해
    답을 주시기 전에 오히려 하나님은 먼저 그들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가 너희에게 큰 대제사장이 되신다. 그러므로 그분을 바라보라.' 그분을 바라보면 모든 해
    답과 모든 은혜가 다 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실을 말씀하는 내용이 4장 14절부터 16절
    에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큰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4장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대제사장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구약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제사장이나 대제사
    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은혜들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중간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이 제사장과 제사장들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의 역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와 같은 위치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 있
    는 대제사장과 다르십니다. 구약에 있는 대제사장은 불완전한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대제사장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이 완전하다는 의미를 우리 성경에서는 '크
    다'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예수님은 완전한 대제사장입니까?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
    은 참 사람이십니다. 우리는 그 신비의 진리를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히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
    나라에 대한 모든 신비한 축복에 대해 예수님이 모르시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예
    수님이 하나님 자신이나 하늘 나라의 축복에 대해 잘 몰라서 우리를 돕는데 있어 실수하실
    확률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가 없으시면서도 인생이 당하는 모든 연약함과 고통을 친
    히 맛보셨습니다. 15절 중간에 나오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이
    바로 그 의미입니다. 본인이 직접 사람이 되셨고,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존재인
    가를 너무나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인간의 연약함도 알고 계시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
    엇인가도 알고 계시고, 그들에게 당장 하나님께서 내려 주셔야 될 은혜가 어떤 것인가도 정
    확하게 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우리를 실망시킬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도 완전히 아십니다. 사람도 완전히 아십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알고 완
    벽하게 우리를 위해서 축복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은 완전한 대제사장
    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아무리 핍박이 심해도 이길 수 있고 아무리 가난 때문에 고생해도 날마다 기뻐하고 감사하
    면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할 때, 실망할 때, 연약해서 몸부림 칠
    때,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여 고독 속에서 헤맬 때 위로를 받고, 평안을 유지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완전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보고 믿고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꼭 실천해야 됩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 되심을 철저하게 믿어야 합니다. 14절 끝에서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 무엇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철저하게 믿고 붙들
    어야 비로소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굳게 잡으라'는 말은 헬라어로 '크라테오(krateo)'입니다. 무엇인가를 잡을 때 손에 힘을 주
    지 않습니까? 특별히 남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될 소중한 것을 손에 쥐었을 때는 어느 때보
    다도 힘을 더 강하게 줍니다. 이렇듯 꽉 잡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대제
    사장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꽉 붙들고 놓지 아니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철저하게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대제사장 되신다. 그분은 오늘도 나와 함께 계신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나의 대제사장 되심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믿고 고백하고 꼭 붙들면
    그 생각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 믿음이 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통제하
    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3장 1절의 말씀과 같이 깊이 예수를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누구든지 생각에 몰입하려면 절대 흔들리지
    아니하는, 내 마음을 온통 빼앗길 수 있는 어떤 내용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 내용을
    가질 때 그것 때문에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대제사장이 되신다. 그
    분은 절대 나를 실망시키지 아니하시는 완전한 대제사장이시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면 그
    예수님이 나의 모든 사상과 감정을 지배하면서 나를 장악하실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놀라운
    위로와 평안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4장 15절이 해답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요즘 사용하는 쉬운 말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우리 대제사
    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시요.' 동정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연약
    한 것을 다 아십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
    합니다. 더욱이 완전하신 주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연약, 그 자체입니다. 얼마나 연약함이
    많은지 모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불쌍하다는 생각이 안들 수가 없는 것입
    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께서 이렇게 동정을 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동정한다는 것은 언
    뜻 생각하면 쉬운 것 같아도 사실 어려운 것입니다. 왜 어렵습니까?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형편을 먼저 이해한 후해야 동정이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해를 하려면 내가 그 사람이 신고 있는 신발을 함께 신어야 됩니다. 즉 그 사람의
    처지를 내가 비슷하게나마 경험할 때에야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될 때 동정
    심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습니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겪는 모든 연약함과 고통을 맛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만큼 가난 때문에 고통 당
    한 일이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힘들어하는 형제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 만큼 가난해 보셨습니까? 예수님은 아침을 굶으면서 하루를 시작해야 될
    때가 왕왕 있었습니다. 예수님 만큼 슬픔을 가슴에 안고 괴로워한 경험이 있습니까? 그는
    죄가 없는 분이기 때문에 똑같은 슬픔이라도 그가 느끼는 강도는 우리보다도 몇 천배, 몇
    만배 더 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슬픔을 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워하
    는 모습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만큼 공포로 인해 밤새도록 씨름해 본 일이 있
    습니까? 십자가의 공포를 여러분이 체험해 봤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
    는 모든 연약함을 다 경험하시면서 그 연약함으로 인한 고통도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2장
    18절을 보십시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
    라.'
    우리 가운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 분이 있습니까?
    그 생각은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을 가장 잘 알아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완전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죄를 짓고 고통 속에서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이해하고 여러분을 동정하시는 분이
    딱 한 분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꼭 붙드십시오. 능력이 따라가지 못해 실패하고
    경쟁에서 뒤져서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될 지 몰라 막막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
    시는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시고 여러분을 도우려고 하시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완전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꼭 붙드십
    시오. 그러면 우리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4장
    16절은 얼마나 은혜스러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이런 말씀은 외우면서 늘 마음에 두고 묵상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 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
    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의 보좌입니다. 심판의 보좌가 아닙니다. 하나님
    의 은혜를 잔뜩 쌓아 놓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기만 하면 주시겠다고 준비한 보좌
    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은혜를 쌓아 놓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디모데전서
    1장 14절에 있는 말씀대로 항상 넘칩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하나님의 은혜는 넘칩니다. 넘치는 것을 더 초월해
    서 풍성해지는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하나님께서 쌓아 놓으신 곳이 은혜의 보좌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은혜를 빼면 남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은혜를 거두어 가면 우리는 시체입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
    는 문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허겁지겁 포도원에 들어가 한 시간 일하고 하루 일한 사람들처
    럼 일당을 받아 나온 품꾼과 비슷합니다. 몇 시간을 일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얼마
    나 일을 많이 했는지도 상관없습니다. 일등이냐, 꼴찌냐 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잘 생겼나, 못 생겼나 하는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주인이 기분이 좋아서, 너무너무 사랑스
    러워서 무조건 주시는 시혜가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은혜를 받고 지금까지 살아왔습
    니다. 이런 은혜를 하나님이 주시려고 은혜의 보좌를 마련해 놓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은 그곳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보좌를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나아간다'는 동사의 시제는 현재입니다. 계속적
    인 행동을 뜻합니다. 계속적으로 우리는 그 보좌를 향해 나아가면 됩니다. 그럼 '나아간다'의
    뜻은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
    라보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아감의 종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은혜의 보좌는 어디 있습니까?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곳에 은혜의 보좌가
    있습니다. 어디에 은혜의 보좌가 있습니까? 홀로 조용히 앉아 기도하는 밀실에 있습니다. 어
    디에 은혜의 보좌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기 위해서 모인 거룩한
    성도들의 자리에, 이 예배 시간에 은혜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은혜의 보좌도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완전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마
    음을 여는 그곳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풍성한 은혜가 쌓여 있는 보좌가 있습니다. 그 보좌
    로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 빚진 사람처럼, 혹은 겁먹은 사람처럼 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
    면서 나아갈 때는 당당하고 담대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당당하게 나가라고 하십니다. 우
    리가 잘나서 당당합니까? 누가 계시기 때문에 당당합니까? 완전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
    철저하게 내 편이 되셔서 나를 도와주시려는 예수님이 그 자리에 계시고 그 분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고개를 들고 떳떳하게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설혹 죄를 범해 가슴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통회하고 자복하는 심정을 가지고 당당하게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예수님, 제가 이런
    일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주님이 두 말 하지 않고 용서하시고 놀라운
    사죄의 은총을 허락 해 주십니다. 담대하게 들어가십시오.
    이렇게 들어가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제가 볼 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내가 항상 받을 수 있는 은혜, 이것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하나님, 제 믿음이 너무
    약합니다. 믿음을 주시옵소서'라고 구할 때 하나님께서 믿음을 키워 주신다든지, '하나님, 대
    학입시를 봤습니다. 꼭 합격시켜 주십시오.'라며 열심히 기도했을 때 합격하게 해주셨다든지,
    이와 같이 당장 급하기 때문에 주님 앞에 달라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기다리는 기도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을 일컬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고 말할 수 있
    습니다. 이런 은혜는 우리를 매우 기쁘게 합니다. 받으면 받은 대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이런 응답을 참 좋아합니다. 기도했는데 며칠이 안 되어 응답이 떨어지면 얼
    마나 신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런 식으로만 대우해 주시면 이 세상을 천국으
    로 살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 식대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식대로
    은혜를 주시는 것이란 하나님만의 방법을 가지고, 하나님만의 때를 가지고 응답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하나님'하고 부르고, '예수님, 예수님 주십시오.'라고 애걸
    복걸해도 하나님의 방식에 맞지 아니하면 주시지 않습니다. 자기가 생각하시는 때가 아니면
    절대 허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과 때를 따
    라서 주시는 은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위대한 인물들을 한번 보
    십시오. 그들이 급하게 하나님께 달라고 구할 때 즉시 응답하시는 경우가 많은가, 가만히 두
    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때를 맞추어서 주시는 때가 더 많은가 한번 조사해 보십
    시오. 어느 것이 더 많습니까? 후자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시는 것을 자주
    봅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응답하시는 은혜가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
    라고 하면, 그것은 가끔 우리에게 몹시 큰 갈등과 고통을 안겨 줍니다. '하나님, 지금 당장
    필요한데 왜 가만히 계십니까?' 한 달을 기도해도 일년을 기도해도 하나님은 가만히 입 다
    물고 계시는 것 같이 느껴질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믿음이 마구 흔들리기도 합니다.
    마귀는 때를 놓치지 않고 와서 '믿어도 소용없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다 쓸데없는 짓
    이다.'라며 계속 속삭여 댑니다. 이런 상황에 있으면 갈등이 일어나고 고통이 따라옵니다. 엄
    청난 인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도 많이 경험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많이 경험하셔야 됩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수님 앞
    에 기도할 때, 처음에는 내 식대로 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소식이 없으면 이제
    누구 식대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 식대로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시간에 도무지 안 주시는군요. 그럼 이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대로 주
    십시오. 인내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기도가 끊어지지 않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라면서 계
    속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면 어느 때 인가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응답
    을 하실 것입니다. 그 응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더 엄청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응답이었을 때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이것은 나를 위해서 최선의 선물이다.'라고 믿어
    야 됩니다. 그렇게 믿고 고백하고 감사할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수준까지 가야 합니다. 어린애처럼 날마다 엄마 치마 자락을 붙들고
    흔들어서 결국 무엇인가 얻어야 엄마에게서 떨어지는 애들처럼 살면 안됩니다. 처음에는 어
    린애처럼 하나님 옷자락을 잡고 흔들며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도무
    지 대꾸를 안 하시면 그때부터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언제입니까? 하나
    님이 원하시는 때에 주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면 내 마음에 들든지 안 들든지 감사하
    고 하나님 앞에 경배하겠습니다.' 이런 수준까지 가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두려움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오랫동안 기도하지만
    응답이 없는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앞날에 대한 불안이 있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에게는 대제사장, 완전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도 은혜의 보좌에 계십니다.
    그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최선의 것을, 가장 최선의 때에
    맞추어서 주시려고 자기 앞에 담대히 나아 오라고 초청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 분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항상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우
    리는 절대 실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몰라줄 지 모르지만 우리는 절대 고독
    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보기에 화려하지 아니할 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늘에서 별과 같이 빛
    나는 영광스러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항상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죄 짓는 것 얼마나 사
    모합니까? 술을 얼마나 사모합니까? 죄짓는 삶 10분의 1만 드리면 은혜 안받을 사람이 없
    습니다. 술 먹는 거는 8차까지 있다고 하잖아요. 교회야 뭐 한번 예배만 드리면 됩니다. 술
    먹는 돈 10분의 1만 하나님께 드리고, 죄짓는 것 10분의 1만 줄여도 하나님 앞에 큰 은혜
    받습니다. 죄짓는 데 바치는 시간 10분의 1만 내도 하나님 앞에 못 받는 은혜가 없습니다.
    이제 은혜의 길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은혜를 사모해야 됩니
    다. 나쁜 것을 사모하던 마음은 끝나고 주님을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거룩한 일을 사모
    하는 복된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주일날 드리는 예배는 전부다 은혜에 초점이 맞추
    어져 있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가 은혜주신 날에 은혜주신 주님께 나아와 우리 하나님의 은
    혜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며 그 은혜에 감사하여 찬송부르고 기도하는 것이 예배입니
    다. 그래서 예배, 은혜라는 것 빼버리면 출발부터 마지막까지 아무 것도 없어집니다.
    은혜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은혜의 샘이 마르거나 은혜에서 떠나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은혜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혜 주실 이 때에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
    다. 모든 것은 때입니다. 때를 놓치면 안됩니다. 공부할 때 있습니다. 사랑할 때 있습니다.
    사랑도 때입니다.
    가장 좋은 때를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어요. 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은혜의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늘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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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문에 집중하라
    대표선수 교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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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 성장의 방해물을 제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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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면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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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의 기도
    하늘에 열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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