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기도 2001-12-28 21:04:28 read : 1197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왕하 20:1-11
세계 어느 나라이든 낙서 문화는 있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별납니다. 여행을
하다가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자기의 이름을 남깁니다.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마는 화장실에
가면 여러 가지가 낙서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여자 화장실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낙서가
토론의 장으로 변해 가는 곳도 있습니다.
공중 화장실에 가보면 변기 앞에 여러 가지의 글들이 쓰여져 있는 것을 봅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라고 쓰여 있
었습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 수명이 짧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남자가 여자보다 덜 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여자는 최소한 한
달에 다섯 번은 우는데, 남자들은 한 번밖에 안 울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서 웃으면 몸에서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와서 건강에 좋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물은 어떨까요?
미국의 보건과학센터에서는 웃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는 것도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는 것도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내서 눈물을 흘리고 우는 것이 건강
에 좋다고 합니다. 우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에 우리의 신체에 긍정적인 영
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희 나라의 장례의 3일장은 눈물의 치료를 위한 지
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껏 울고 헤어질 준비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슬픔을 잘 처리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상외의 일들이 많이 일
어나기 때문에 요사이 미국에서 잘 나가는 직업 중에 하나가 'grief counselor', 슬픔 상담원
이라고 하지요, 총기 난동사건 천재 지변으로 인해 화를 입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씀 드리자면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분들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땀도 흘려
야 됩니다. 눈물도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 상처가 심하면 눈물을 안 흘립
니다. 그리고 창피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기억 나십니까? 어떻게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눈물로 받으신 것 아닙니까?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 지는 얼마나 되
었습니까? 그러므로 눈물은 영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저희 나라의 민족성과 영
성을 볼 때 더욱 그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캐나다 터론토 빈야드 교회를 가면(이단시비가 있지만) 거룩한 웃음이라는 은사를 경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은혜를 받고 나면 마구 웃는 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 목사님
들은 은혜를 잘 경험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울어야 은혜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
문입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 126편 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
으로 거두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어느 교회 안내판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실렸습니다. "무릎이 떨리 때는 무릎을 꿇으십
시오" 참 좋은 충고입니다. 기도로 염려를 하나님께 아뢰면 두려움은 진정되고 새로운 용기
가 생길 것입니다.
오늘 저희는 한 왕을 만나려고 합니다. 눈물을 통해 하나님을 다시 만나 살게된 왕입니다.
남 유다의 13대 왕인 히스기야입니다. 선왕 중에 선왕입니다. 우상을 파괴하고 성전을 수축
하고 기도하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게다가 적군 18만 5천명 적군을 격퇴시키
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한 일을 하다가 그만 질병이 찾아온 것입니다.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
다. 그것도 나이 39살입니다. 이것이 배경입니다. 잘나가던 왕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다가올 때 심리학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대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화를 냅니다. 그러고 타협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애원도 합니다. 그리고
자포자기도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좀 다릅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이사야가 분명하게 말합니다. 집을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죽게 될
것이라는 최후 통첩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자기의 잘못도 모릅니다.
그런데 죽게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다
고 이사야 선지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겨우 39세입니다.
나의 죽음이 내일 찾아오게 된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생각하며 준비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이것은 가정만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다 어느 땐가 죽음
이 찾아 들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마지막에 무엇을 택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
다. 그가 택한 방법은 하나님 앞에 꿇는 것입니다. 그러니 해결고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요사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계십니까?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15절에서 사도 야고보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
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힘드십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를 쉬지 마십시오, 기도밖에 없습니다.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새벽을 통해서, 밤중에, 금식하면서 기도하실 때 그곳에서 해결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영국 의학협회가 주최한 연설에서 한 유명한 의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발견한 가장 좋은 약은 기도입니다. 마음에 고통에 대해 일생 동안 마음
을 쏟아온 한 사람으로서 불면증이나 우울증과 같은 심적 고통을 없애기 위한 예방 조치 가
운데 단순한 기도의 습관이 의심할 여지없이 으뜸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기도는 인
간에게 알려진 어느 치료제보다도 더 인간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영혼을 강하게 합니다." 기
도는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좋은 처방이 될 수 있으며, 이것들보다 훨씬 중요한 다른 유익
을 줍니다. 기도는 영적 승리를 위한 강력한 무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를 합니까?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왕하 20:2)
낯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벽
만 바라보고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일도 하지 않았
습니다. 그저 성전 쪽의 벽을 바라보고 기도만 했습니다.
사람이 병들면 용하다는 의사는 다 만나보고, 약이라는 약은 다 먹어보고, 또 좋다는 것은
이것저것 다 해보게 마련입니다. 아마 히스기야 왕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앞에 기도만 했습니다. 사
람들을 물리치고, 물질을 물리치고, 환경을 물리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자꾸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꾸 사람을 통해 들으
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나와 하나님이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벽면의 신앙! 욕심을
버리는 세상의 생각을 벗어나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요,
얼마 전 이야기인데 어떤 스님이 굴속에 들어가 1000일 기도를 했습니다. 대단하지요, 그
런데 마지막 기도하는 날 나와 보니 방송사 등 신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것입니다. 그때
스님이 "내가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갔기 때문에 나올 때도 아무도 없을 때 나올 것이라" 그
리고 다시 들어갔답니다. 저희 교회 한밤중에 기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희 교회 교인이
면 좋겠는데 다른 교회 교인들이 저희 교회에 오셔서 기도하십니다. 아마 저희 교회교인들
도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마는 이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실 이것이 기도의
자세입니다. 은밀하게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한다고 다 응답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성경 말씀을 보
니까 기도할 때 소리내서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민 14:1).
조용히 기도하시는 분들은 조는 분들입니다. 소리내서 하는 기도를 택해 보십시오,
감사와 찬송과 믿음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고(삼상 7:8), 온 밤을 세워서 밤새도록 기도해
야 합니다(삼상 15:11).
맥반석 사우나는 밤새도록 하면서 철야는 못합니다. 야구 경기, 축구 경기, TV 보라면 밤
새도록 보면서도 철야 기도는 못합니다. 도박하라면 하고, 세상 일 하라면 밤새도록 하면서
도 하나님 앞에 철야는 못합니다. 낚시하라면 밤새도록 쪼그리고 앉아서 낚시는 하면서도
기도하라면 기도는 못합니다. 심야 영화는 밤새도록 보면서 기도는 못합니다. 참 문제입니
다.
또한 전심으로, 힘써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시 119:145). 여러분, 기도에도 정도
의 차이가 있습니다. 열심 없는 기도, 끝까지 매달리지 않는 기도, 간절한 소원이 없는 기도,
그런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합니다. 기도도 열정이 있고, 내용이 있어야 응답을 받습니다.
여러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낯을 벽으로 향하고, 만사를 제쳐
놓고, 병 고침 받기 위해서, 응답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매달려야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믿는 둥 마는 둥, 하는 둥 마는 둥, 적당히 해 가지고
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낯을 벽으로 향하고,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를 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그 무엇보다 통곡하며 기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
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왕하 20:3)
히스기야 왕은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성전을 깨끗이 하고, 절기를 지키게 하는 등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대구에 서현 교회에 정류만 장로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한 의사였는데 죽을병이
걸려서 살 가망성이 없었는데 기도하기를
"한번 만 살려주시면 큰 예배당을 지어 바치겠습니다"하고 서원기도를 하고 온 교인들도
그를 위해 밤을 새워가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동양 최대의 성전을 화강암으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상한 병이 유
행해서 약을 지어주면 신기하게 낫곤 했습니다. 다 른 병원이나 약방에서는 절대로 낫질 않
는데 이 정규만 장로님한테 지어먹으면 꼭 낳습니다. 그래서 그 약방문 앞에는 장사진을 이
루었고 매일 돈을 가마니로 긁어 담아 다가 성전을 지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려니까
그런 방법으로 물질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전에 황해도 재령에 정찬유 장로란 분이 있었습니다. 사업도 잘해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
다. 그래서 큰 양옥집을 지으려고 설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날밤 잠을 자는 데 꿈에 하
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집은 양철지붕으로 있는데 네 집만 잘 지으려고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이튿날
집을 지으려든 것을 중단하고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서 봉헌하고 자기 집을 지었습니
다. 그 후손들도 복을 받아 남한에 서 큰 사업가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도 좋은 일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 그래도 하나님 앞에 충성했습니다. 봉사했습니다. 헌신했습니다. 물질 드렸습
니다.' 그러나 평소에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한 게 없는 사람은 기도를 못합니다. 기도도 할
체면이 있어야 할 게 아닙니까? 잘한 게 있어야 할 게 아닙니까? 그저 생각나는 건 죄 밖
에 없습니다. 불순종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려움 당할 때 기도하기 참 힘듭니다. 친
해져야 하는데 친해지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문제점은 무엇인줄 아십니까?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시면 그때 가서 하
겠다 라는 것입니다. 돈주시면 하겠다. 건강주시면 하겠다. 문제만 해결되면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양심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히스기야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자격이 있었습니다. 통곡하고 기도했습니다. 부르짖고
기도했습니다. 왕의 체면도 버리고 높은 신분도 접어두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회개하면
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나는 잘 믿으
려고 믿었는데,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습니까?' 하고 원망하고 불평한 것이 아니라, ‘하나
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소서.’하고 기도했
습니다. 책임을 하나님 앞에 전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과 부족과 연약함을 깨달아 하
나님 앞에 구원과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사야 38장 14절 말씀에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하는 모습이 아주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하
나님을) 앙망하나이다."
여러분도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낮아져서 기도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눈물의 기도가 어찌 응답을 받지 못하겠습니까?
시편 34편 18절 말씀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
를 구원하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겉모양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때 첫인상이
좋고 외모가 잘 생긴 사람이 취직할 때나 법정에서 재판 받을 때 덕을 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우리의 속 중심
을 관심 깊게 보십니다. 우리의 중심이 진실한가 우리의 중심이 선한가를 유심히 살펴보십
니다. 얼굴이 못생기고 눈이 없거나 팔다리가 하나 없어도 중심이 진실하고 착하면 얼마든
지 하나님 앞에 미남미녀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그 용모와 신장은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키가 크고 인물이 잘난 사울 왕이 교만하고 불순종하여 버리신 다음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을 삼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새의 아들들이 얼마
나 준수하고 잘 생겼는지 사무엘도 다짜고짜 기름을 부으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다 아니라
고 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느라고 일곱 아들들 다 선보일 때 부모가 부르지도 않았다고
여덟째아들 막둥이였습니다. 몸에 양의 노린내가 나고 양 똥내가 나고 온몸에 먼지를 뒤집
어 쓴 채 들어 왔지만 그 중심이 여호와 보시기에 아름다웠기 때문에 기름 부어 왕을 삼으
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을 보시지 않고 속 중심을 유심히 보십니다. 우리의 속 중심이 진
실하고 착하고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지 없는지를 관심 깊게 살펴보십니다.
정말 내가 겸손하고 깨어져서, 낮아져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고 구원의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는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기도했던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하갈도 눈물로 통
곡하고 기도했으며, 한나도 통곡으로, 눈물로 기도해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민족
을 위해서 슬퍼하고 주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응답 받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인물들은 대개 그 어머니가 눈물로 기도해서 자식들을 훌륭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걱정, 근심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아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자식의 행로를 결정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28).
그러나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관심과 불신앙에 빠졌다가,
갑자기 어려움과 시련과 시험이 닥치면 방황하고 주저앉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제 36년의 압제하에 있던 이 민족에게 56년 전에 광복, 참자유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
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으로 오늘의 부흥을 허락하셨는데 요즘 우리들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경제가 엉망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릎
을 꿇는 것입니다. 먼저 믿은 저희들이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정신차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늦지 않았습니다. 눈물의 기도를 우리주님은 원하십니다.
우리의 잘못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물을 잃어버린 기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기도를 입체적으로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5절-6절을 보세요,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나님이요? 다 들으십니다. 기도를 들으세요, 말조심하십시오,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십시
오. "너를 낫게 하겠고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라" 하나님도 귀가 있으십니다. 말조심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불평하고 미워하는 것도 들으시고 기도하는 것도 들으십
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귀만 있으신 것이 아니라, 눈도 있으십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에게 '눈
물도 보았노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을 본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
께서 본 것입니다. 진짜구나! 나를 사랑하는구나! 은혜를 사모하고 있구나! 생각하신 것입니
다.
"내가 네 수한을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다시 수명을 연장해 주겠다는 말씀을 들은 히스
기야 왕은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믿지 못하고 징조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일어난 것이
그 유명한 일영표의 기적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확실성을 보여 주시기 위해 일
영표의 그림자가 뒤로 10도나 물러가 머물게 하셨던 것입니다. 즉 하늘의 태양을 뒤로 10도
나 물러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보시고 15년의 생
명을 연장시켜 주셨고 앗수르 왕의 군대 18만 5천명을 진멸시켜 주셨습니다.
기도의 행위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기도의 눈물과 기도의 땀을 귀중히 보시고 유심히
보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끊임없이 성장하려면 세 가지 습기가 있어야
합니다. 습기가 없으면 식물 이 말라죽고 모든 생물이 살수가 없는 것처럼 교회에도 습기가
늘 있어야 생명이 살고 교회가 성장합니다. 첫째는 기도의 눈물이요, 둘째는 수고의 땀이요,
셋째는 헌신의 피입니다. 피를 짜내는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교회는 성장할 수가 없고 생명
이 약동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요사이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보시기를 원하십니
다. 바로 내가 문제입니다. 내 죄를 용서하십시오, 라고 하는 신앙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
다.
히스기야 왕이 죽게 되었을 때에 눈물로 기도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고, 기도를 통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올바른 신앙과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