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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여 행복하라
    2002-01-14 17:46:10   read : 1820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한계시록 21:1-2





    세계 역사를 보는 역사적 사관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윤회적인 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돌고 돈다는 원형적 사관입니다. 마르크스의 유물론 사관은 정-반-합의 부정과 지양의 과정을 거쳐서 역사가 발전한다고 말합니다. 삼각형의 사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사관은 창조적 사관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창조가 있고 종말이 있으며,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직선의 사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흥할 때가 있으면 망할 때가 있습니다. 한 해가 시작이 되었으면 또 한해를 보내는 송년이 있습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사도들이 보았던 종말 사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베드로는 두려운 종말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8-10)
    사도 바울은 소망의 종말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3-14)
    주님께서 역사의 종말에 재림하시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없는 자들같이 슬퍼하지 말고 소망중에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라는 종말적 소망을 얘기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종말을 사랑의 은혜로 봅니다. 주님의 재림이나 이 세계의 종말을 보는 것이 아니고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양 예수를 신랑으로 맞이하는 그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1절). 여기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전 세상이 아니고 새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2절)
    여기 새 하늘과 새 땅은 성결한 하나님의 새로운 처소, 곧 교회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공간적인 성전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님의 성전으로 된 신부의 교회, 그래서 오시는 신랑을 맞이하는 세계로 설명해놓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종말을 두렵게 얘기했다고 한다면 바울은 부활이라는 소망으로 얘기했고 사도 요한은 사랑의 심정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천국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새로운 세계, 천국은 공간적인 세계가 아니고 사랑의 세계인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해가 저물어갈 때 평가를 하고 결산을 합니다. 성공지향적인 사람들은 '금년에 내가 얼마나 성공했느냐 출세했느냐 얼마나 돈을 벌었느냐 얼마나 사업을 확장했느냐' 여기에 총 집중합니다. 인격 지향의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1년동안 성숙했으며, 얼마나 배웠으며, 얼마나 인격적으로 성결해졌는가' 이것을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지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다음 소수의 사람이 인격 지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소수의 사람들은 '내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느냐'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지극히 적은 소수입니다.
    저는 가시적인 평가를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예수를 믿고 행복했느냐 이 결산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결산을 주님의 요구에서 우리는 세 가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인격적으로 얼마나 나를 닮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세 가지 형이 있습니다. 첫째, 주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서 예수님을 배우고, 닮고, 본받는 관계입니다. 둘째, 주님의 사도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배운 것을 실천하고 세상에 나가 주님을 위해 일하는 관계입니다. 셋째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제자들이 3년동안 주님의 뒤를 따를 때는 예수님께서 친히 저들에게 삶의 본을 보이시고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고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사도로 파송하면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천국에서 제자를 맞이하는 것도 아니고, 사도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신부를 맞이합니다.
    우리가 제자가 될 때에는 주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릅니다. 사도가 될 때에는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신부가 될 때는 '당신'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을 많이 닮으면 영광스러운 제자가 되고, 충성스러운 종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고 업적을 남기면 창조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상급을 받습니다. 그런데 신부의 단계는 '인격이 얼마나 성숙했느냐, 땅에서 얼마나 충성했느냐'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 주님!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면서 아무것도 없이 주님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내가 부족한데' 하면서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 막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계신 그 나라를 향해서 찾아가는 신부의 모습입니다.
    이런 면에서 목회사역의 3단계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인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사역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는 교인들이 날마다 배우고 훈련받아서 순종적이고 교회가 질서가 잘 잡혀 있습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세계 선교사업에 중점을 두고 사역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은 교인들을 훈련시키는 스타일도 아니고, 사업을 많이 하는 스타일도 아닙니다. 저는 훈련이나 사업에는 약하지만 한가지는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행복한 신부되는 교회를 지향하고 날마다 교인들과 함께 행복을 노래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냉정히 생각하면 우리가 1년동안 돈 많이 벌었어도 내 것 아닙니다. 내가 다 쓰지 못하니까요. 또 인격적으로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볼 때는 죄인이지 천사는 안됩니다. 그런데 내가 학력이 없어도, 한 일이 없어도, 가진 것이 없어도 한가지는 할 수 있는데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주님을 닮아서 주님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헌신하고 목숨 바쳐도 주님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주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주님을 만족시키고 나도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못생긴 부인을 만났어도 잘 사는 사람이 있고 예쁜 미인을 만났어도 못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학력이나, 돈이나, 가문 때문이 아니고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서 나에게 질하시는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너 나 많이 닮았냐?" "아무리 봐도 닮은 것 없습니다. 노력은 했는데 이 정도입니다." "너 나를 위해서 얼마나 충성했냐?" "예 우리교회 집사만큼은 못바쳤지만 그래도 최선은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는 주님이 나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한마디 "주님, 내가 주님을 좋아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할 때 주님께서 "좋다. 같이 살자"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1장에서 그 허물 많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한마디를 묻습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질문이면서 마지막 천국에서 우리에게 향한 질문일 것입니다.
    한해를 마지막 보내면서 주님께서 모든 성도에게 한 마디 질문이 계시다면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일 것입니다. 이 질문에 모두 아멘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계속해서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짝사랑으로 일관되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무궁한 사랑을 베푸시는데 하나님 혼자 짝사랑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반역하고, 도망가고, 탕자처럼 멀리 멀리 가지만 하나님은 뒤쫓아 가면서 계속 사랑합니다. 그래서 결국 십자가 상에서 짝사랑의 극치를 이룹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짝사랑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해준다고 해서 자녀들이 그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랑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사랑하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어렸을 때입니다. 어렸을 때는 "엄마, 엄마 없이는 못살아" 하면서 엄마한테서 잠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엄마를 떨어지기 싫어서 치마폭을 붙잡고 잠시 시장에 가는 것도 못참아 울어대는 아이는 그게 사랑의 표현입니다.
    주님은 우리 없이는 못살겠다고 하늘을 버리고 땅에 왔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했는데 누구 하나 주님을 향해서 '나 주님 없이는 못삽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돈 없이는 못살아요. 명예 없이는 못살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주님 없이는 못살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주님은 천국에서 외로워하십니다.
    천국은 예수님 닮아서 가는 곳도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러 가는 곳도 아니요 예수님과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 가는 곳입니다. 천국은 신랑과 신부가 만나 서로 사랑하는 곳입니다. 영생이라는 말은 '영원히 산다'는 막연한 추상적인 말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영원입니다. 미운 사람과는 잠시도 함께 있고 싶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은 오래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좋고, 편하고, 귀합니다. 그래서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과 동시에 함께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주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비밀입니다.
    주님의 제자의 단계에서 사도의 단계로 그리고 주님의 신부의 단계로,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내가 살아간다면 이것은 지극한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때 일대일의 관계가 됩니다. '당신 없으면 나도 없고 나 없으면 당신도 없다.' 이것이 한 몸의 관계입니다. 주님이 그것을 원하십니다.
    생명의 원리로 볼 때 주님은 머리고 우리는 몸이라고 말합니다. 몸은 머리로서 생명을 유지합니다. 머리가 잘리면 몸도 죽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우리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따로 있으면 주님도 없고 나도 없습니다.
    우리 몸이 살기 위해서는 밥이 들어가야 됩니다. 코에 숨이 들어가야 됩니다. 신경이 위에서부터 통해야 됩니다. 통하지 않으면 식물인간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한마디가 있다면 "주님은 나의 생명이십니다.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고 있습니다." 이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향한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입을 열면 길에서나 가정에서나 "주님 없이는 못삽니다." 이 고백을 해야 합니다.
    한 집사님이 주님을 너무 사랑해서 길을 걸을 때도 눈물이 나오고 화장대 앞에서 화장할 때도 눈물이 나오니까 "주님,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했는데 눈물로 자국이 생기니 이제 눈물을 거두어주시고 주님을 향해서 웃을 수 있는 여종이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주에 제가 "웃으며 살자."라는 설교를 하니까 이 여종이 큰 은혜를 받고 "주님, 어쩌면 주께서는 이 여종을 사랑하셔서 우리 귀한 목사님을 세우셔서 때마다 일마다 이 종을 감동하시나이까" 하고 감격해 했다는 내용을 저에게 카드로 보내주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20대는 꿈을 그리며 신나게 살고, 30대가 넘으면 환멸을 느끼며 살고, 40대가 넘으면 살아봤자 별 것 없다 체념하며 살고, 50대는 서로 필요해서 살고, 60대가 넘으면 그저 살아준 것이 고마워서 산다"
    결국 산다는 것은 늙으면 마음 하나로 삽니다. 젊어서는 학력도 필요하고, 인물도 필요하고, 매력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결국 남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 하나입니다. 이 마음 하나가 결국 남는 것입니다.
    제가 성탄 때 우리집 사람에게 카드를 쓴 내용입니다.

    내가 당신을 만나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소.
    처음 얼굴을 만났으나 그것은 참 만남이 아니었으니
    오랜 세월이 흐르고서야 마음을 준다는 것은
    나를 주고 당신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소.
    이제 나는 당신이 없으면 세상은 없소.
    당신이 없으면 천국도 없고 아무것도 없소.
    나는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당신을 보고 있소.
    나는 집에 올 때마다 당신을 찾아오는 것이오.
    당신이 없으면 이방 저방 찾아다니면서 당신을 부르오.
    이 세상에 당신 살아있으므로 나도 살고 있는 것이오.
    이 마음, 이 눈물, 이 은혜를
    담아 당신 가슴에 고스란히 드리리이다.

    세월이 흘러서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산다는 것은 결국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만 남은 것이고, 그리고 사랑할 때만 세상이 새로운 것이고, 사랑하는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다.'
    요한 사도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얘기합니다. 새 하늘이 어디에 있습니까 새 땅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향해서 내 마음을 열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 온 세상이 새 하늘이고 새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하늘과 땅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땅이 없으면 하늘이 없습니다. 하늘이 없으면 땅도 없습니다. 이와같이 머리와 몸이 갈라지면 둘 다 죽어버리는 것처럼 주님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나 없으면 주님도 없는 것입니다.
    바닷가 한 마을에 사랑하는 남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둘은 친구였고 날마다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되자 남자는 청혼을 하려고 여자의 집을 찾아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여자가 "누구세요?"라고 묻자 남자는 자신있게 "나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되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너무나 차가왔습니다. "이 방은 너무 좁아서 둘이 함께 있을 수 없으니 돌아가 줘"
    남자는 처음엔 장난이겠지 하고 다시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밤이 새도록 방문은 열리지 않았고 여자의 대답도 한결같았습니다. 남자는 절망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던 그녀에게서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남자는 여자를 잊기 위해 날마다 고기를 잡으러 먼 곳으로 다니곤 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남자의 머리가 희끗해질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하던 남자는 갑자기 꽃을 한아름 안고서 여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여자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자는 방문을 힘차게 두드렸습니다. 그녀가 전과 같이 "누구세요?"라고 물어오자 남자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바로 너야!" 그때 그녀의 방문은 거짓말처럼 열렸고 비로소 그녀는 그를 배우자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세상과 나는 간데 없고 '주님만이 나의 전부다. 나의 생명, 나의 전부, 나의 행복이신 님이시여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것이 되기 바랍니다.
    제가 신학교 다니던 시절 인물이 후덕하고 세련미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도 그 여학생을 좋아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단성사에 가서 같이 영화를 보고 찻집에 앉아 차를 마시는데 그 여학생이 저한테 "이선생 같은 분과 같이 살면 든든할거에요." 그래요. 그 말이 상당히 깊은 내용을 담은 프로포즈였는데 그때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그 여학생은 졸업을 하고 신학교 선배와 결혼을 해서 사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공부는 잘했는데 목회가 안되니까 남편 따라 계속 이사를 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 분이 사모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수기로 써서 월간지에 실었는데 너무 감동적입니다.

    남편은 하늘이라 말하고 아내는 땅이라 말하는데
    그는 비 한방울 내리지 못하는 원망스런 하늘이었고
    땅은 메마르고 땅바닥이 갈라졌으나
    사정을 모르는 무심한 하늘이었다.
    아내의 마음은 가뭄에 메마른 땅처럼
    갈기갈기 찢겨졌고 터졌노라
    그러나 그는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하늘이었으나
    나는 그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으니 나는 새 하늘로부터
    단비를 받았기에 내 심령은 사막이 되지 않고 젖과 꿀이
    흐르는 새 땅이 되어 살아왔노라.
    남편이라고 사랑의 비 한방울 내리지 못했고 친절한 이슬 한방울 주지 못하여 심령 바닥이 갈기갈기 찢겨졌지만 하늘같은 예수님의 사랑이 자신의 마음을 적셔주셨기에 그 황폐한 심령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되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저는 이 수기를 읽으면서 옛날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흘렀습니다. 지난날 나의 모습을 회상해보면서 나도 비 한방울 내리지 못하는 원망스런 하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내 아내를 향해서 하늘의 이슬을 내려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 아내의 생일을 모릅니다. 결혼기념일도 모릅니다. 그리고 변변한 옷 한 벌 제대로 사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내가 그런 나를 한번도 원망하지 않고 살아준 것은 하늘로부터 받는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사는 어떤 남편이 하늘처럼 비를 내리고 이슬을 내려서 아내의 심령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내들이 그리스도가 주시는 하늘의 단비를 받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심령으로 만들어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미친 듯이 솟아올라도 3년이면 설레는 기간이 끝난다고 어느 작가가 쓴 것을 보면서 '맞다 미쳐도 3년이지 영원히 미친 사랑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그렇게 미친 듯이 우리를 사랑해주는 분이 우리의 주님 아니십니까 그런 사랑을 우리도 주님께 보낸다면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인간의 최대의 과제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 하나 만나면 세상을 살 맛이 나고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사랑은 아름다움을 보는 것,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
    새로운 세계는 자기가 죽은 이후에 보는 세계
    그러므로 사랑을 얻는 것은 재창조요, 천국을 사는 것이다.
    사랑은 행복이요, 사랑은 하나님의 전부이다.

    한해를 끝내면서 우리가 보는 것은 옛 하늘이요 옛 땅이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의 심정을 가지고 그 사랑을 받으면서 주님이 나를 사랑하듯 나도 주님을 사랑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받기 위해서 한가지를 기억해야 됩니다.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더라" 주님을 위해서 아름답게 단장해야 합니다.
    여자들이 일생동안 하는 일이 뭡니까? 화장하는 일입니다. 남편은 돈 벌고 여자는 화장을 합니다. 물로 얼굴을 씻고, 화장대 앞에서 자기 얼굴을 보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예쁘게 하고, 예쁜 옷 입고,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이 여자의 일생입니다. 그런데 여자가 화장하는 순간 진실이 있고 거짓이 있습니다. 진실은 아름답게 화장할 때 사랑하는 임을 생각하면서 화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은 화장하면서 다른 남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옛 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그때 그가 프로포즈 할 때 그리 갔어야 되는데...' 여자는 화장하는 순간에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화장할 때만 행복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단장에 대해서 계속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으로 우리 마음의 얼굴을 보게 합니다. 십계명을 볼 때 내가 선한지 악한지, 내 얼굴이 부끄러운 얼굴인지 떳떳한 얼굴인지 내 마음의 얼굴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율법 앞에서는 죄만 드러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를 흘리셔서 나의 죄를 씻어줍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그런데 이것으로도 다 만족하지 못하니까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맛사지를 해서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어갑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으로만 아름다운 신부가 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내 마음을 아름답게, 내 몸을 순결하게, 내 외모를 아름답게 해서 주님을 맞이해야 됩니다.
    저는 어린시절 우리 어머님께서 새 옷을 입히시고 한 말씀을 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한 집에 사셨던 우리 어머님은 목화밭이 없으니까 부잣집에서 목화를 다 따가고 익지 않은 열매를 남겨 놓으면 그것을 따가지고 방망이로 깨서 나온 것을 다시 손으로 틀고 기계로 틀어서 옷을 만드셨습니다. 옷을 만들어서 물감으로 물을 들여서는 저에게 입히시고 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아들 인물나네"
    저는 세월이 흘러 목회하면서 우리 주님으로부터 '인물나네' 하는 무언의 소리를 듣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신부 삼아 흠과, 점과, 티없이 씻어주시고,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으로 입혀주시고, 나를 아름답게 단장해서 부끄럽지 않은 신부로 만들어 주십니다. 부자 신랑이 가난한 숯 장사 딸을 사랑하게 되면 자기 돈 가져다가 예단이나, 혼수나, 예물을 친정에서 해 온 것처럼 해서 보냅니다. 그리고 신부도 아름답게 단장해서 데리고 옵니다.
    이와같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과, 몸과, 외모를 아름답게 단장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어 천국으로 데려가십니다. 이때 우리의 고백은 "주님은 나의 생명이시옵니다. 주님은 나의 전부이옵니다. 주님은 나의 행복이옵니다." 이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주님께서 "오! 나의 신부여 내가 그대 때문에 행복하노라"라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저는 가끔 혼자 길을 걸어가면서 "주님, 이 종을 신부 삼아 행복하소서" 할 때 순간 최고의 행복의 절정에 이르는 것을 체험합니다.
    성공을 얘기할 것 없습니다. 지성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을 만나는 행복을 얻으시고 그 행복을 얻어 가정으로, 직장으로, 사회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사랑의 눈을 뜨고 보십시오. 고마워서 눈물이 날 때까지, 장모님이 계십니까 품에 안으시고 눈물이 날 때까지 안아보십시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품에 안고 시어머니에게서 남편이 나왔음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동을 받으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영광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이 종이 여러분에게 지성이 없음을 늘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능력이 없는 것을 늘 마음아파합니다. 그러나 이 종에게 있는 것 한가지는 주님을 향한 눈물, 감격, 웃음입니다. 수십년 교회를 위해서 충성한 분들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못하는 이 종인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눈물을 담아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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