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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의 형체를 가진 사람
    2002-01-14 17:36:17   read : 1387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빌립보서 2:5-8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하고 그 은혜가 오묘한 것을 늘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왜 그렇게 위대하신지, '위대하신 주님, 주님을 생각만 해도 너무 감격할 뿐입니다.' 이런 고백을 늘 하게 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종의 형체를 가지고 오셨다는 사실이 너무 신비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종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한없는 위로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불행하게 살다 죽는 사람들이 종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사람 대접 받지 못하고 동물처럼 취급받으며 하나의 도구처럼 여겨졌던 존재가 바로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종의 형체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곧 그가 종의 신분을 가지고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종이 된다는 것, 이것은 인간으로 말하자면 가장 절망적인 사건입니다.
    종은 자기의 권리가 없습니다. 살 권리도 없고 죽을 권리도 없습니다. 주인이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 하면 사는 사람들이 종입니다.
    종은 자기의 주장이나 뜻이 없습니다.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고 주인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자기의 뜻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습니다.
    종은 자기의 소유가 없습니다. 자기 생명도 주인의 것이요, 자기 재능도 주인의 것이요, 모든 공로도 주님의 것입니다. 종은 자기 재산이 없습니다. 자녀를 낳아도 주인의 소유가 됩니다.
    종은 주인을 위해서 존재할 뿐입니다. 그는 살아도 주인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인을 위해서 죽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종의 신분으로 태어나 살다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이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종이 되는 조건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침략자에게 끌려가 노예가 되면 일생을 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영국이나 미국에서 노예로 삼고 저들을 동물처럼 도구화 한 것은 노예 매매상들이 아프리카 지역을 침략하여 포로로 끌어다가 노예로 팔았기 때문입니다.
    또 너무 가난해서 빚을 갚지 못해 종으로 팔려갔기에 평생 좋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결국 그 빚을 갚지 못해서 종이 되고 또 종의 자녀로 태어났기에 평생 종의 신분을 면치 못하고 종으로 살다 죽습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가장 한이 어린 탄식과 억울함으로 일생을 살아간 사람들이 바로 종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종의 삶은 불행이요, 저주요, 인류의 죄악의 산물입니다. 이런 노예 제도는 영원히 청산해야 할 것이요, 인류 역사에 다시 있어서는 안될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을 자원해서 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종은 억지로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자원해서 종이 되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5-7절)
    예수님은 스스로 종이 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과 그 존귀함을 포기하고 스스로 종이 되고자 사람으로 나셨습니다. 하늘을 버리고 사람으로 오셔서 종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분상으로 종이 될 수 없음에도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종이 되셨을까요? 그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하나님의 종이 먼저 되신 것입니다.
    종은 주인의 말에 절대 순종하고 주인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종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했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이것이 주님이 종이 되는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버릴 때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땅에 이루기 위하여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는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종의 모든 사는 목적이 주인을 위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스러운 신분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다는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여호수아, 예레미야가 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종은 하나님께 예속되고 소속되었다는 의미에서 종이지 예수님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한다는 의미의 종은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의 종의 개념은 바로 그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하여 스스로 종으로 자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는 사람들, 이는 분명히 사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는 목적이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인생관을 가질 때 바로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 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 복종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가장 철저한 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려고 종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유일한 목적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39),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요 8:42).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주인되신 하나님 어비즈이 뜻에 순종하는 종의 모습이었습니다.
    종은 주인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자기 자신이 종의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면 그의 종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스런 신분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면에서는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뜻을 부정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간절히 드린 기도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는 기도를 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위대하게 만드는 최상의 길이 있다면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한국교회 농촌 성자로 존경받는 이준묵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이 결혼한 첫날 밤에 신부와 함께 로마서 14장 7-8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 말씀을 읽고 엉엉 울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려는 서원을 하신 것입니다. 그는 이 말씀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서 종의 형체를 가졌는데 종이 되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천한 종이 된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종이 되었습니다. 천한 종은 사람에 의해서 강제로 된 종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원해서 하나님의 종이 된 사람은 영광스러운 종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인격을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그 인격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도구입니다. 일하는 노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인격적 종이었습니다.

    둘째, 위대한 인격은 섬김으로 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은 섬기는 종으로 살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섬기려고 종이 되셨습니다.
    사람은 섬김을 받으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섬김의 차원이 달랐습니다. 섬김의 높이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심정을 가지고 사람을 섬겼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을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길이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이것은 그 인격이 하나님의 속성을 지닌 섬김입니다.
    사람을 섬기되 한결같이 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할 때는 섬기는 자로 살다가 부자가 되면 교만해집니다. 집사 때는 섬기는 자로 봉사하다가 나중에는 변하는 사람 많습니다. 이것은 섬김이 아닙니다. 비위 맞추는 노동일 뿐입니다. 섬김은 하늘이 준 것입니다.
    섬김은 그 넓이가 제한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4)라고 했습니다.
    종은 한 주인의 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종의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섬김의 범위가 제한을 받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병든 자나 건강한 자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똑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부자는 잘 치료하고 가난한 자는 아무렇게나 치료한다면 이것은 의사가 아닙니다. 돈버는 사람입니다. 의사의 섬김은 인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집 사람이 미국에서 넘어져가지고 병원에 입원해서 뉴욕에서 하루 종일 있었는데 제가 놀란 것이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돈이 있느냐 묻는 사람도 없고 어디에 사느냐 묻는 사람도 없고 무조건 입원시켜서 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료가 다 끝난 후에야 주소를 적으면서 치료비는 나중에 종합적으로 청구서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미국의 기독교의 정신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환자가 왔을 때 신분을 묻지 않고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의사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섬김의 깊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묻히면서까지 섬기셨습니다. 자신을 무덤에 매장하면서까지 섬기셨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섬김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섬김의 깊이는 진실입니다. 섬김의 깊이는 자기 죽음에서, 진실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섬길 때 이것이 바로 진실한 섬김인데 예수님은 그러한 인격적 섬김을 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옛날에 잡혀온 종들은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지만 눈가림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사도 바울이 종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6-7)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 자신을 위선자로 만드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을 섬길 때 하는척 하고 돌아서서 딴 소리 하면 자기를 위선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일하고 자기 자신이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들이 결혼하고 분가해 달라고 해서 아들 며느리를 분가해 주었습니다. 아들 며느리가 분가해서 살다가 아기를 낳게 되었는데 부부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까 아기를 길러가면서 직장생활 하기가 너무 힘들고 또 보모를 들이니까 월급이 그리 다 나가버리고 해서 생각한 끝에 싫다고 나갔던 시댁으로 어머니 모신다고 생각하는 척 하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공휴일 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아기를 맡기고 밖으로 나들이를 가다보니까 카드를 안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카드를 가지러 다시 집으로 왔는데 마침 며느리가 통화를 하는데 그 통화 소리가 밖으로 들려왔습니다. "얘, 시어머니 싫다고 나가더니 어떻게 시댁에 들어와 사니?" "내가 시댁에 온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 애기 보모로 부려먹으로 온거야" "월급은 주니?" "공짜지?" "오늘은 뭐하니?" "나 오늘 낮잠 자려고 시어머니 나들이 가시라고 했지 지금 좋다고 나갔다." "너 팔자 좋다."
    이 소리를 듣고 시어머니가 '저들이 나에게 대하는 중심이 저렇다면 내가 비참한 존재가 아닌가' 하고 스스로 절망하면서 다시 카드 달라는 말도 못한채 돌아가면서 눈물을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눈가림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가정에서 남편을 섬기는 아내도 진실해야 됩니다. 직장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불평하면서 돌아서면 앉아서 딴 소리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교회에서 섬기는 봉사도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진실하게 할 때 자기 인격에 대한 존엄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말로는 딴 소리 하고 몸으로 하면 자기 인격에 대한 위선자를 자기가 만들기 때문에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말할 때 스스로 자기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성 안토니라는 기독교 최초의 수사가 있습니다. 안토니는 사막에서 수도하고 금식하므로 그 시대에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사막에서 수도하는데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안토니, 너는 저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는 구두장이 보다 완전치 못하노라" 이 소리를 듣고 안토니는 즉시 이 구두장이를 찾아갔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위해 기도하고 그리고 노동을 시작하고 하루 종일 밥벌이를 합니다. 그리고 나는 거짓생활을 피하여 약속을 지킵니다. 그리고 내 처자와 같이 지낼 시간도 없습니다."
    라티머 주교는 이 구두장이의 봉사는 성 안토니 보다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신앙을 위해 순교한 사람도 존경스럽지만 성도들이 남몰래 가정에서, 직장에서 진실하게 봉사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자원해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하늘이 보낸 천사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파송한 천사로 살아야 합니다.
    섬김이란 일을 하는 차원을 넘어선 인격의 실현입니다. 교만한 자는 섬김을 받으려 하고 겸손한 자는 섬기려 합니다. 섬기는 종은 사람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하늘의 사람이 됩니다.

    셋째, 섬기는 종이 되므로 자신을 위대하게 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9-10절)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4)
    인간에게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 높은 자가 되고, 존경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 크냐고 경쟁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행진하는데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7)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영광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큰 자요, 종이 되는 것이 으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만 배울 수 있는 교훈으로 세상을 바꾸어 놓은 가치관이요, 인생관입니다. 별세의 가치관입니다. 이런 가치관은 자기를 부정하고 죽여서 얻는 것이요, 새로운 세상을 사는 가치관입니다.
    하와이 모로카섬이 있습니다. 다미엔 신부는 나환자 수용소에 선교사로 들어갔습니다. 다미엔 신부는 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며 소망과 위로를 주려고 노력하였으나 환자들은 감동이 없었고 오히려 다미엔 신부를 비난했습니다. "너같은 건강한 자에게나 하나님의 사랑이 lT는 것이요 우리같은 저주받은 인생에게는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고, 내세도 없다.
    이 말을 들은 다미엔은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로 하여금 문둥병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저들의 심령을 주님께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얼마 후에 다미엔의 눈썹이 빠지고 손과 발이 문둥병으로 육체가 병들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미엔은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아 나를 보라 나의 얼굴, 나의 손, 나의 온 몸을 보라 나의 육체는 날로 후패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영혼을 보라 공중의 구름 속에 푸르고 맑은 하늘이 있는 것처럼 내 육체는 비록 썩고 있으나 영혼이 있다. 형제들아 나를 따라 예수를 믿자."
    그 후부터 저들은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다미엔 신부는 자기를 비어 예쑤님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자기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수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넷째, 섬기는 자는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종이 되게 하므로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영광스런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섬기는 생활은 자신을 행복하게 합니다. 섬기는 종의 생활은 보람을 얻고 삶을 위대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은 빈곤해지고 불평과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섬김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고 화목이 있습니다.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섬기고 간 사람들입니다. 돈만 아는 사람은 부요하여질 수는 있으나 남의 존경이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월급이 없습니다. 아내는 월급을 받지 않습니다. 월급을 받지 않고 섬깁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월급을 받는 가정부는 행복이 없습니다.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는 진실을 담아 섬기기 때문에 하늘이 파송한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월급이 없고 인격을 담아 섬기기 때문에 하늘이 파송한 천사로써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천국은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보람된 일을 하는 곳입니다. 보람은 남을 섬기는 수고의 대가로 얻어지는 정신적 보상입니다. 공허는 자기 안일과 죄의 정욕을 위해 치른 삶의 낭비에서 생기는 마음의 부채입니다.
    보람은 섬기는데서 오는 정신적 만족감입니다. 공허는 자기 안일을 위한 삶의 죄책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섬김으로 보람을 얻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직장에 가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거기에 진실을 담아 섬기는 삶으로 최선을 다할 때 월급은 거저 오는 것이고 정신적 삶의 만족감을 얻는 보람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자기 존재를 어떤 경우에도 성실한 존재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보람은 인격이 가산된 고귀한 가치요, 인내와 사랑과 희생을 치루고 얻은 결실입니다. 가장 고상한 일은 섬기고 보상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새신자를 양육하는 순장님은 월급이 없습니다. 생명을 기르는 보람, 이것은 하늘이 주는 행복입니다.
    유명한 소련의 솔제니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강제수용소에서 남의 죽그릇이나 핥는 사람들, 일하기 싫어서 꾀병으로 의무실에 드러눕는 사람들은 먼저 죽는다."
    옛날 어머니나 할머니들은 다 허리가 굽었습니다. 섬기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오래 사는 것은 그 이유가 딱 하나입니다. 섬김의 정신에서 살아온 정신력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아가면서 천국이 어디에 있나? 이렇게 묻는다면 섬기는 자들이 천국을 끌어안고 있는 것입니다. 땅을 섬기고 있는 것이 하늘입니다. 땅을 둘러싼 하늘이 비를 내립니다. 바람을 불어줍니다. 이슬을 내립니다. 햇빛을 비춰줍니다. 땅이 하늘을 섬기는 것 아닙니다. 하늘이 땅을 섬기는 것입니다. 자기 인격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비입니다.
    평생동안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면서 살다 간 성녀 테레사 수녀가 있습니다. 그녀는 한평생 평화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저는 인도에 가서 테레사 수녀가 엎드린 자리에 엎드려보고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으면서 "성녀 테레사와 같은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제자가 하루는 성녀 테레사에게 묻습니다. "테레사 수녀님 인도의 부자들, 귀빈들이 와서 수녀님을 만나는데 수녀님은 키도 작고 옷도 초라한 것에 대하여 어떤 불평이나 시기가 나지 않습니까" 그때 어린 아이를 만지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을 섬기기 위해서 허리를 구부리고 사는 사람은 위를 쳐다볼 겨를이 없다."
    공연히 위를 쳐다보다가 불평하고 불만합니다. 쳐다봐도 하늘을 보면 될 것을 자기보다 조금 잘 사는 사람을 보면서 불평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하늘을 버리시고 땅에 종으로 오신 예수님, 철저하게 사람의 종이 되되 하나님의 인격을 담아 섬기는 하늘이 보낸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섬기기 위해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으로 저들을 살려주는 섬김은 노동이 아닙니다.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을 살려주기 위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내가 섬김으로 직장이 살고, 남편이 살고, 자녀가 살고, 교회가 산다면 그것은 섬김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일하고 자기도 만족이 없고 남도 만족할 수 없다면 그것은 노예의 노동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종의 형체를 가지고 와서 우리를 섬기신 그 위대한 섬김, 주님의 마음을 담아, 종의 마음을 담아 섬김의 위대한 사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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