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세 의 마 음 2002-01-14 17:32:23 read : 1439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빌립보서 2:5-11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게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장 사람됨의 소중함은 그 인물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나의 사람됨과 인격은 그 마음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천사인 것은 천사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악마인 것은 악마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형상이 없으면서도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형상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의 마음으로 담아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닮고 사는 최고의 영광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닮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육체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체로 사는 사람은 먹고 마시고 입고 사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머리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를 추구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하늘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고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결국 사람의 마음입니다. 인생을 살다 우리 인생이 끝나는 날 내가 이 땅에 남길 것이 무엇입니까? 내 인물이 남습니까? 내가 죽은 후에 비석을 세워놓는 것이 남는 것입니까 내 육체는 썩어서 이미 흙이 되었는데... 결국 인간의 삶에 마지막 남는 것은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으로 담아 살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다시 말하면 그 마음에 따라서 사람됨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선하면 선한 사람이요, 마음이 악하면 악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밖에 보지 못합니다. 중심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우리는 종종 외모의 아름다움을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모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일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외모를 잘 보이기 위해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외모를 갖추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수십 년 제 얼굴에 불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나'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서 제 얼굴에 만족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아름답다고 하는데 내가 불만하고 있다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자기 얼굴을 보면 그 얼굴의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저는 가끔 부흥회에 나가서 설교하면 제 얼굴이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을 봅니다. 제가 봐도 부흥회 할 때는 제 얼굴이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부흥회를 끝내고 났더니 한 청년이 위 아래로 훑어보면서 "야, 별 것 없다." 그래요. 강단에 서 있을 때는 미남으로 봤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별 것 없다는 것입니다. 그 청년이 잘 봤습니다. 가까이 보면 별 것 없습니다. 강단에 섰을 때에는 최고의 미남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설교하는 시간은 예수님의 마음을 담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때문에 그 얼굴에서 창조의 최고의 형상의 모습을 띠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하니까 예수님의 형상이 내게 들어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주야로 원수만 생각합니다. 주야로 억울한 것만 생각합니다. 나쁜 것만 생각합니다. 그 얼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에 담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이 마음으로 이어지면 온 세상이 다 아름답습니다. "목사님,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요. 목사님을 쳐다만 봐도 은혜가 되요."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내게 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은혜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마음이 마음으로 통해 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람인데 부부간에도 마음과 마음이 이르면 눈물이 납니다.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이 다릅니다.
효자가 누구입니까? 효자는 마음이 부모님과 통한 사람입니다. 불효자나 효자나 부모님을 닮습니다. 불효자나 효자나 족보에 아버지의 아들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같은 성씨로 오릅니다. 그뿐입니까? 불효자나 효자나 재산 상속을 같이 받습니다. 그런데 불효자는 한가지를 못받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못받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받으면 효자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복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사도 바울의 마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남겨줍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그는 감옥에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기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별장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느 한가한 책상 위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로마의 감방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가운데 가난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원망을 오늘로 그치십시오. 남처럼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다고 탄식합니까? 그것도 그치십시오. 남들처럼 좋은 집에 살지 못하고 전셋집으로 빙빙 돌면서 서울 변두리로 밀려간다고 탄식하십니까? 그것도 그치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러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 마음에 하늘의 신비를 담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일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분이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이 성육화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이 세상에 사람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놓은 책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면 글자만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놓은 인간입니다. 손을 들어도 하나님의 마음이 올라갑니다. 예수님의 눈물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액체가 되어 떨어지는 것입니다. 입을 열면 하나님의 마음이 언어로 화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주님의 그 한 마음이 내게 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 주님의 마음이 어디에서 나타났습니까?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어떻게 내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보다 더 높은 단계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주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기 위해서 별세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이 내 죽음이며, 예수의 부활이 내 생명이다.' 예수와 연합할 때 그 마음이 내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위대한 인격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그때부터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위대한 사람은 공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위가 높아졌다고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위는 높은데 동물처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외모는 멀쩡한데 속에는 악마가 들어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옷은 근사하게 입었는데 그 속은 짐승처럼 악성이 우글거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 마음에 예수의 마음을 품으면 그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어떤 옷을 입었든지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민족의 지도자 김구 선생이 서민의 아들로 태어나과거에 급제해서 출세하려고 여러 번 시험을 쳤으나 번번이 낙방을 했습니다. 당시 이조말에는 전부 매관매직하던 시대라 돈이 있어야 합격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번번이 낙방을 합니다. 계속되는 낙방으로 실망하고 좌절해 있는 김구를 보고 그 아버지가 한마디를 합니다. "얘야, 너는 과거에 급제할 팔자가 아니니 관상을 봐서 먹고 사는 관상쟁이나 되어라" 하고 책을 한 권 줍니다.
이 말을 듣고 김구 선생이 관상책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남의 관상을 봐주기 전에 내 관상을 먼저 봐야지' 하고 그 책에 따라서 자기 관상을 보니까 일생동안 가난할 상이요, 살인자의 상이요, 풍파가 많을 상이요, 비명에 갈 상이요, 감옥에 들어갈 상이었습니다. 자기 관상이 불행한 것을 보면서 '이렇게 안좋은 관상을 가지고 누구 관상을 봐주겠나' 하고 책을 던졌다가 마지막 한 장을 보았습니다. 거기 이런 말이 써 있었습니다. "관상은 불여신상이요 신상은 불여심상이라"(관상은 신상만 못하고 신상은 심상만 못하다) 사람의 심상이 좋으면 다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그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비록 관상은 이렇게 불행한 사람으로 되어 있지만 마음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의롭게 살고 바르게 살아 내가 사람답게 살아야지'
그런데 그가 청년시절에 주일학교 여선생과 결혼해서 예수의 마음을 품으니 하늘이 그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마음을 품고 민족을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니 역사에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혹시 이 가운데 관상이 좋지 못하다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마음에 큰 상을 담으십시오.
예수님은 관상이 안좋았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예수님은 우리보다 못생겼습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못생긴 얼굴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모습을 우리에게 위로하기 위해서 보내셨던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 마음 때문입니다. 제가 인물 좋은 성도를 보고 감동을 받습니까? 많이 배운 지성인을 보고 감동받습니까? 마음씨 착한 성도를 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유학 가서 공부 잘하는 자식을 보고 감동을 받습니까? 공부를 못했어도 부모를 공경하면 '네가 사람이구나!' 하고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어 위대해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아름다워집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이 아름다워지면 얼굴도 아름다워집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깊이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새로워져야 되겠다. 외모는 날마다 낡아가고 있지만 마음은 하늘을 담아 주님을 품어 날마다 새로워져야 되겠다'
탈무드의 한 일화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세상에 파송하면서 아름다운 세 가지를 골라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왔습니다. 한 천사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꺽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을 때 그 꽃은 시들고 말라 추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또 한 천사는 어린 아이의 방긋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그 웃는 모습을 담아 하늘에 올라갔는데 그 아이가 늙었습니다. 그래서 그 웃는 모습도 추하게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천사는 병든 어린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하늘에 올라갔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 어머니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가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가져왔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어느 한 곳에만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하나님 대리자로 이 세상에 보냈는데 어머니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비밀은 외모가 아닙니다. 옷이 아닙니다. 집이 아닙니다. 지성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주님의 마음을 내 마음에 담는 것입니다.
저는 젊은 날에 목회하면서 그것을 몰랐습니다. 교인들을 책망하면 교인들이 더 좋아질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을 바르게 살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가 교인들을 책망하면 할수록 교인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처럼 바꾸어지는 것을 봤습니다. 무서운 말로 책망하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처럼 바꾸어지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세월이 흐르면서 '깨닫는 것은 책망으로 안된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도록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한가지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악한 본성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하나님 본심이 나옵니다. 진짜 금은 불속에 넣으면 넣을수록 금이 되어 나옵니다.
우리의 인간됨으로는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아담은 사탄의 선악과로 시험할 때 넘어갔습니다. 사탄이 아담을 시험할 때 아담이 먹을 것이 없었습니까? 에덴동산의 모든 과일을 먹도록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은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했을 때 사탄이 와서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할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배가 고픔에도 불구하고 떡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봅니다.
자기 마음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남편은 마음이 착해'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착했던 남편이 어느날 변해가지고 부인을 버리고 다른 여자한테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오직 믿을 이는 예수님 마음 밖에 없습니다. 남편을 사랑한다면 예수님 마음을 받도록 주 앞으로 인도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행복합니다.
내 마음 가지고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그때 내 마음에 하늘의 평안이 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이 평안은 주님의 마음이 주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그리스도인에게만이 마음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마음을 가질 때 이 세상은 온통 감사로 넘치게 됩니다. 하늘을 봐도 감사요, 땅을 봐도 감사요, 사람을 봐도 감사요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이 인간을 행복하게 합니다.
행복이 뭡니까?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불평이 어디에서 옵니까? 예수님의 마음이 없으면 매사에 불평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주님의 마음을 담으면 평안이 오고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예수님 마음을 품으면 그것이 바로 천국이 내게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이 세상을 승리하게 됩니다.
가장 아름다운 마음, 그것이 바로 천국인데 주님께서 주시는 천국, 이것은 바로 내 마음을 주님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한용운 스님의 「사랑하는 까닭」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이 마음이 누구의 마음입니까? 주님의 마음입니다.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모든 저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의 불행을 사랑했기 때문에 내 허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십자가 상에서 친히 내 허물과, 저주와, 불행과 인간의 모든 실패를 당신이 사랑하셔서 가져가십니다.
그래서 이 시는 우리의 주님을 향한 신앙고백이 되어야 할 시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
주님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 성공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실패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나의 미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눈물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
주님은 나의 죽음도 받으시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에 우리 교회 한 자매가 시어머니가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너무 너무 병 수발에 시달리니까 혼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시어머니 언제 돌아가시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약을 드릴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 약은 사약이지' 그런 생각도 하지만 너무 괴로우니까 짧은 인생 살면서 수많은 세월 이렇게 시달리며 살아야 하느냐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 설교를 듣는 순간 '아, 내가 악마의 마음을 품고 살았구나! 악마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지' 하고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집으로 가서 약을 들고 시어머니에게 들어갔습니다. 시어머니가 그 며느리의 얼굴을 보더니 "얘야, 네 얼굴이 옛날 얼굴이 아니구나!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니? 가까이 와봐 네 눈동자가 옛날 눈동자가 아니구나!" 하더랍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려고 눈이 열렸던가 봅니다. 며느리의 얼굴에서 아름다운 얼굴과 형상을 봤습니다. 지금까지는 하기 싫어서 억지로 하니까 그 얼굴에 아름다움이 없었는데 은혜받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쁜 마음으로 하니까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아름다운 얼굴과 눈동자를 보더니 시어머니 얼굴도 아름답게 변하면서 "오랫동안 네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미안하다. 잘 살아야지" 하고 그대로 가셨습니다.
그 며느리가 나에게 와서 간증한 개인적 고백이 그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그날 와서 말씀을 듣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슬퍼 탄식하는 괴로운 인생이 되었을텐데 마지막 한 순간이라도 주님의 마음을 품었기에 내 인생이 아름다워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주님의 마음을 품읍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이 마음을 품고 남편을 보십시오. 세상을 보십시오. 부모를 보십시오. 그리고 직장을 보십시오. 완전히 세상이 달라지는 은혜 가운데 사는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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