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비 의 만 남 2002-01-14 17:27:16 read : 1331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창세기 2:23-25
사람의 일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만남에 있습니다. 좋은 만남이 있고 나쁜 만남이 있습니다. 만나서 좋은 관계는 서로를 유익하게 하고 돕는 관계요, 나쁜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서로의 인격에 멍들게 하고, 많은 손해를 남기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일생의 과정에서 어떤 때는 나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또 내가 손해났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때는 그것이 나에게 큰 축복을 가져오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인 우리의 만남에 대한 결과는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유보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익한 것인지 나에게 손해가 된 것인지는 마지막 결산을 해야 합니다.
그때 그때 하는 단기 결산이 있고 마지막에 하는 종말적 결산이 있는데 우리는 이 모든 만남의 최종적인 결산을 뭘로 할 것이냐? 사업하는 사람은 돈으로 결산합니다. 이익이 남으면 좋은 관계가 있었다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좋은 성적을 얻고 거기에서 많은 학문의 지식을 얻게 될 때 좋은 선생을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유산이나, 인격적인 교훈이나, 도움을 입었을 때 좋은 부모를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교의 관계도 짧고 부모의 관계도 짧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가장 길게 살아가는 관계가 부부의 관계입니다.
일생에서 반세기 이상의 세월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부부인데 이 만남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할까 자식을 남겨주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은혜인가 아니면 서로 사랑하면서 산 것이 최종적으로 남아야 할 은혜인가
이런 여러 가지 면에서 부부의 관계에 대한 최종적인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창조에 대한 비밀을 창세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세상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기사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 1절의 선언입니다. 엿새동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 창조에 대해서 성경은 남녀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는 하나의 신비한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가정을 창조하십니다. 이것은 남녀의 창조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가정에 대한 창조입니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는데 여기 여자는 남녀의 여자가 아니고 가정에서 아담에 대한 여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남자(vya)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hV;a)라 칭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니고 남자에게서 나온 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신비
왜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들면서 이렇게 살게 하셨느냐? 그것은 곧 사랑의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가정은 뭐하는 곳이냐?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친히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사랑의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가? 일로 만날 수 없습니다. 자연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랑의 관계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친구를 만나면 친구의 우정이 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면 사제간의 정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만나면 모성애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부부의 사랑으로 표현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할 때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아가페적 사랑은 희생적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희생적 사랑을 부모의 사랑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낳을 때 자기 몸의 살과 피를 담아서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사랑을 부부의 사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 고백을 통해서 만나는 사랑을 부부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하나님을 아는 사랑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부모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은 자기 몸을 희생하므로 나타낸 사랑인데 이 사랑의 실천, 이 사랑을 보이는 곳이 가정입니다.
부모를 통해서 아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크고 더 진한 사랑이 부부를 통해서 아는 사랑인데 부부를 통해서 아는 사랑을 성경은 아가페적 사랑으로 표현해 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보'라고 자처했던 양주동 박사님이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서울의 기독교 계통 어느 여학교 학생을 열렬히 짝사랑하였습니다. 시적인 문장력으로 실력을 다해서 연애편지를 여러 번 썼습니다. 여학생의 마음을 후려잡을 만큼 좋은 문장을 골라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회답은 없었습니다. 기숙사에 호랑이같은 사감 선생님이 있어서 연애편지가 날아들어오는 족족 읽어보고 그 여학생한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양주동은 묘안을 궁리했습니다. '미션스쿨이니 성경구절이라면 그 무서운 사감 선생님도 본인한테 전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경 구절에다 내 마음을 담아 보내면 될 것 아닌가' 그래서 그가 써보낸 성경 말씀은 요한일서 4장 7-8절과 로마서 12장 9절, 그리고 요한일서 4장 28절, 마가복음 10장 7-9절 등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일 4:18), 그리고 마침낸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막 10:7-9) 하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그 여학생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남자면 좋다.' 그래서 둘이 결혼했습니다.
서로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두 남녀가 에로스의 사랑으로 사다리를 놓고 필리아의 사랑으로 다리를 놓아서 올라갑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그 사랑이 깊어갑니다. 그래서 마지막 종착점은 아가페의 사다리로 하늘을 닿아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는 것입니다.
부부가 계속 전진해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에로스의 사랑으로 출발해서 필리아의 사랑으로 성숙해 가면서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에로스의 정을 추구하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정이 떨어집니다. 이것은 다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성서가 말하는 진정한 하늘이 만나게 하는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정이 듭니다. 얼굴에 주름이 깊어가면 깊어가는대로 '사랑이 깊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더 깊은 사랑을 느끼는 분들은 하나님께 가는 사람이고 세월이 갈수록 정이 떨어지는 사람은 땅으로, 세상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시기 바랍니다.
의로운 신비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4절)
"사람이 부모를 떠나..."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이전 세계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선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만남을 보면 아담이 에덴동산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어느날 그를 깊이 잠들게 하시고 잠에서 깨어날 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합니다. 그 새로운 세계가 사랑할 여자 하와입니다. 아담은 새로운 존재를 보는 것입니다. 가정은 새로운 존재를 보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회사에 가서 사장 앞에서 자기를 세울 수 있습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 앞에서 자기를 세울 수 있습니다. 친구 앞에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남편 앞에서 자기 존재가 새로워진 것만이 진실입니다. 목사 앞에서는 모릅니다. 선생님 앞에서도 모릅니다. 밖에서는 모릅니다. 자기 아내 앞에 서있는 남편, 진실입니다. 그대로입니다. 자기 남편 앞에서의 아내 그대로입니다. 자기가 변화되고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가정에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자기가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남편 앞에서 얘기해 보십시오.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당신을 만난 이후에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남편 된 사람도 "내가 옛날에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당신을 만나고서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소. 내가 옛날에는 강팍하고 거친 사람이었는데 당신을 만난 이후에는 내가 온유한 양같이 되었소."라고 말하고 또 아내된 사람도 "나는 과거에 게으르고 이런 사람이었는데 당신을 만난 이후에는 이런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 얘기하십시오.
자기 존재에 대한 변화, 새 존재를 고백하는 현장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가정생활 하는 곳이 아니고 신앙생활 하는 곳입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는 말이 하와에게 선언될 때 하와에게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데리고 와서 "네 몸에서 나온 여자다"라고 말할 때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담의 최초의 믿음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와를 보고서야 믿음이 생깁니다. 하와도 아담을 보고서야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라는 말이 없는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생활은 신앙생활입니다.
가정에서 살 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고 남녀생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녀가 만나서 마지못해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남녀생활 하는 것이고, 부부로 살고 있으면 부부생활이고, "이는 분명히 하늘이 보낸 나의 남편" 하면서 믿음으로 보고 있으면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5)고 했습니다. 이미 이들은 신앙생활의 깊이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의 만남은 신비의 만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몸의 신비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4절)
부부의 관계는 한 몸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세 가지 관계로 만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주로 모십니다. 그래서 나는 주의 종이 됩니다. 종은 일합니다. 거기에서 삯을 받습니다. 칭찬을 받고 상을 받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관계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예레미야가 모두 하나님을 향해서 종이라고 했습니다. 이 관계보다 더 나은 관계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십니다. 아버지 자녀가 되면 생명을 받고, 보호를 받으며 상속을 받고, 도움을 입습니다. 이것은 도움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관계가 있는데 이것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행복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뜰에서 만나는 하나님, 성소에서 만나는 하나님, 지성소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가정으로 말하자면 마당에 서 있는 사람은 종입니다. 거실에 앉아있는 사람은 자녀입니다. 안방에는 있는 사람은 신랑과 신부입니다. 여기는 신비의 세계입니다. 안방은 행복의 세계입니다. 한 몸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뜰에서 믿는 하나님, 거실에서 믿는 하나님, 안방에서 믿는 하나님이 있는데 안방에 들어간 성도는 하나님과 내가 한 몸을 이룹니다. 이것이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명령을 거역하면 벌을 받습니다. 아들은 보호를 받습니다. 보호를 못받을 때는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부모의 보호를 입을 때만 자녀입니다. 그런데 부부는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만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고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는 관계, 이 관계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을 나의 임이라고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주여' 하다가, '아버지' 하다가, '임이시여' 하다가 내가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경지에 갈 때, 그때 그 하나님은 나의 전부가 됩니다. 이런 하나님을 만날 때만 행복한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종과 자녀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향해서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행복하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주께 이 몸을 드려서 주님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부부가 안방에 들어가서 벌거벗을 때는 신비의 경지에 이르는데 둘이 한 몸을 이룰 때 이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남편을 행복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내 아내를 행복하게 할까' 이 경지에 가야 안방에 들어간 것입니다.
자기 위주로 살면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아내를 행복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남편을 행복하게 할까' 이것이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진정한 주님을 만날 때 바로 천국의 한 세계를 신비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의 하나님으로, 행복의 하나님으로, 신비의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은혜의 하나님으로 만나야 되는데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도움 받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하나님은 함께 사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관계며, 한 몸의 관계입니다. 부부는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폴란드의 귀족 출신인 캐서린은 스웨덴의 왕자 존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권력다툼에 휘말리면서 그의 형 에릭에 의해 평생토록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존은 에릭이 국왕으로 있는 동안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습니다. 남편이 이같은 일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인 캐서린은 급히 스톡홀름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나아가 간청했습니다. "폐하, 저를 남편이 있는 감옥에서 함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습니다. "캐서린, 그대의 남편은 평생동안 햇빛을 볼 수 없소. 그것을 알고 간청하는 것이오?" 캐서린이 말했습니다. "폐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무죄이건 유죄이건 그는 저희 변함없는 남편입니다."
왕을 측은하다는 눈빛으로 캐서린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캐서린, 그대의 남편이 감옥으로 보내진 순간부터 그대는 그와의 서약에서 이미 풀려났으니 이제 그대는 더 이상 그의 아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러자 캐서린은 손가락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들고서 말했습니다. "폐하, 부디 이 반지에 새겨져 있는 글을 읽어 주십시오."
거기에는 '오직 죽음으로만'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결국 왕은 그녀를 설득시키지 못하고 감옥에 보냈습니다. 캐서린은 17년동안을 그녀의 남편과 함께 힘든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국왕 에릭이 죽은 후 햇빛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직 죽음만이 이들 부부를 갈라놓을 수 있을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이들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부부의 한 몸 되는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전진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와 한 몸 되어 사는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들어가서도 찬송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예수와 함께 감옥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옥에 들어가도 예수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내가 가난하게 될 때 내가 가난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이며, 내가 죽을 때는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예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며, 내가 멀리 추방당할 때는 나 혼자 추방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몸의 신비입니다. 함께 살고 함께 죽는 이 부부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를 우리의 한 몸의 경지로 모시는 신앙을 가졌다면 낙심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삶이 있으니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리고 새로운 존재에 대한 삶을 나누며 함께 사는 영생의 신비를 누리는 이 은혜, 이 은혜를 갖게 될 때는 "예수가 내게 계시니 가난해도 좋네, 예수가 내게 계시니 멸시받아도 좋네." 고백하면서 살게 됩니다. 이 은혜의 승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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