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wrote:
> 염치없어도 좋다
>
> 삼하 6;20-23
> 염치없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나 이마를 찡그리게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염치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것이 염치가 없다는 표현입니다.
> 지난 번에 어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한다면서 피아노를 한 대 사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자기 집에서 쓰는 피아노부터 바치고 다른 것을 부탁하라고 말했더니 자기 것은 자기가 쓰고 피아노 한 대 사달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염치가 없어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었습니다
> 우리 교회가 수양관을 짓고 내 모든 경제가 마비되고 카드가 다 꽉 차있을 때였습니다. 정말 오도가도 못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한 분이 내게 오더니 자기가 기도원을 지었는 데 성물 500만원 상당을 하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나는 내 코가 석자나 빠져 있고 우리도 수양관을 짓고 성물을 채워야 할 때라고 완곡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면 그쳐야 하는 데 갈보리 선교교회 수준에서 성물하나 안 해 준다고 그렇게 씹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지금 생각하여도 염치없는 원장이었습니다.
>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염치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대가 그래서 그런지 염치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염치없는 행동을 하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염치없는 행동을 하며 당당해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 신약의 중심은 예수님이고 구약의 중심은 법궤입니다. 신약의 중보자는 예수님이고, 구약의 중보자는 법궤였습니다. 신약시대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고 구약시대에는 법궤 앞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만났습니다.
> 구약의 역사는 법궤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법궤를 만들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마다 언제나 법궤가 앞장 섰습니다. 광야에서 41번 진을 쳤습니다. 그리고 실로에 42번 째 마지막 진을 쳤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아브라함부터 마리아까지 42대를 걸쳐서 오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 실로에 법궤가 있을 때 블레셋의 침범이 빈번한 데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리고 성을 돌 때 법궤를 앞장 세우고 전진하였더니 난공불락의 성이 무너지고 승리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가지고 나가 전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법궤를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법궤 때문에 오히려 많은 피해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하나님의 법궤를 보관하기란 부담스러워서 법궤를 도로 이스라엘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 법궤는 아비나답 집에 보관되었습니다. 사울왕은 믿음이 없던 왕이라 법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울 뒤를 이어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성전을 짓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래서 3만명을 동원시켜서 법궤를 운반하게 하였습니다
> 그 때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날라 오는 것이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정신없이 춤을 추었는 지 옷이 벗겨지는 것도 몰랐습니다. 어느 정도로 몸을 들어 내었는 지 성경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내 미갈이 다윗이 춤추는 것을 창밖으로 내다 보니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20) 옷이 벗겨진 것도 몰랐습니다. 다윗은 분명히 염치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염치없이 벗은 몸으로 춤을 추며 즐거워 하였습니다. 그 때 미갈이 염치없는 행동을 한다고 다윗을 꾸짖자 다윗 왕은 이렇게 염치없는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21-22)
> 이같이 다윗은 염치없는 행동을 하고 염치없는 행동을 지적하자 더 염치없는 행동이라도 할 것이라고 염치없는 말을 하였습니다. 염치없어도 좋습니다. 아무 때나 염치가 없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다윗을 보면 다음과 같은 때에 염치가 없어도 좋습니다.
>
> 1.내가 잘 되게 하기 위하여는 염치없어도 좋습니다.
> 부모의 자식을 향한 가장 큰 기대가 무엇입니까? 자녀가 잘 되는 것보다 더 큰 기대는 없습니다.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 한 분 한 분이 잘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자녀의 가장 큰 효도는 자기가 잘 되는 것입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가장 충성하는 길은 한 분 한 분이 잘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 다윗이 왜 그렇게 염치없는 행동을 하였을 가요? 다윗은 법궤를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운반하고 늘 법궤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지 그 분을 따라가고 싶어 하였습니다.
>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이 하셔야 잘 될 수 있습니다.
> 사무엘하 6장에서 다윗은 법궤를 나르는 데 염치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7장으로 들어서면서 일이 너무나 잘 풀리는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삼하7;1)
>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는 승리가 있습니다. 왕궁에 평안이 있습니다.모든 일이 잘 되어 가고 있습니다. 법궤를 자기 궁 옆에 모시고 부터 복된 사건만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법궤는 늘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고 하나님의 임재만 있으면 모든 것이 잘 풀려 나갈 줄믿습니다.
> 내가 잘 되기 위하여는 좀 염치없어도 됩니다.
> 지난 주일 일부 예배를 마치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데 어떤 목사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주일에 찾아 오는 목사님이란 목회지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목소리도 너무나 작아서 나는 잘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52살인데 2년전 직장암 수술을 하고 너무나 기운이 없어서 목회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모가 경부암에 걸려서 또 작년에 수술을 하였습니다. 자녀 둘은 학교 다니기를 포기하였다면서 대예배에 찬송한 곡 부르게 하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좀 도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예배에는 안 된다고 완강이 거절하여도 꼭 좀 찬양한번 부르게 하여달라고 염치없이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한 편 생각하니까 너무나 불쌍하였습니다, 염치없이 매달리는 데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오후 예배에 불러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 2시 예배에 <잠시 세상에 살면서> 찬송을 한 곡 불렀습니다. 나는 찬송 한 곡에 그렇게 은혜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막 눈물이 흘렀습니다.
> "만일 내가 저 지경이 되었다면....."
> 울면서 우리 교인들을 내려다 보니 모두 울고 있었습니다. 헌금을 하였습니다. 516,000원이 나왔습니다. 다 드렸습니다. 자기는 찬송 한 곡 부르고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아 본 적은 처음이라면서 또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게 살짝 말했습니다.
> "목사님! 나 이렇게 하여서라도 살면서 기어코 고침 받아 하나님의 일 많이 하다가 하나님 품에 갈거예요"
> 나는 그의 손목을 꼭 잡고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격려하여 주었습니다. 일을 잘 되게 하는 데에는 염치없이 행동하여도 좋습니다. 다윗이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입니다.
> 하나님은 잘 되게 하여 보려고 염치없이 매달리는 사람을 축복하셨습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 양 편에 강도 두 명이 같이 나란히 매달렸습니다. 아주 극악한 강도로 알려졌습니다. 예수님도 저렇게 나쁜 강도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그 때 한 강도는 예수님을 욕하고 저주하였습니다. 당신이 메시야만 우리를 살려 보라는 조롱이었습니다.
>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23;39)
> 그러나 다른 강도가 그를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라고 말하며 꾸짖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라고 염치없는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염치없는 말을 듣고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되려고 염치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괜찮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역역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어느 부흥회에서 생긴 일입니다. 통성기도시간이었습니다. 수 백명이 열심히 기도하는 데 한 사람이 유별나게 일어나서 교회가 떠나가도록 주책스럽게 염치불구하고 소리를 지르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강사님이 그 남자에게 왜 그렇게 남의 기도까지 방해하면서 염치없이 기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형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 "생각하여 보세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기도하는 데 하나님은 일일이 다 응답하시겠어요. 유별나게 하나님의 눈에 띄는 사람 기도를 들으실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 보시라고 일어나서 제일 크게 소리를 질른 것입니다"
> 잘 하려고 염치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
> 2.사람들을 잘 되게 하기 위하여는 염치없어도 좋습니다.
> 처음에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오려다가 웃사가 죽는 사건이 벌어지자 법궤 날라 오기를 포기하였습니다.
>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삼하6;9)라고 한 말을 보면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3개월 후 그 법궤를 보관하였던 오벧에돔이 큰 복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 신하가 실망과 좌절로 낙망하고 있는 다윗에게 가서 법궤로 인하여 오벧에돔이 큰 복을 받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법궤가 복의 근원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날라 오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용기를 얻은 다윗은 기뻐하면서 법궤를 날라오게 되었습니다(삼하6;12)
> 그 동안 법궤의 역사는 복의 역사였습니다. 법궤가 가는 곳에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법궤가 가는 곳에는 승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통하여 온 백성에게 복이 임하게 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습니다.
> 이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날라오고 그 법궤를 통하여 온 백성에게 복이 임할 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좋았습니다.그래서 염치불구하고 방탕한 사람처럼 춤을 추며 황홀경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 다른 사람을 복받게 하려는 데는 염치없는 행동을 하여도 괜찮습니다. 나는 어느 분 기도원에서 앞에 있는 누구 것인지 모르는 성경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앞장에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 나는 교회를 사랑하는 일이라면 최우선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 나는 다른 사람이 복받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겠습니다"
> 얼마나 아름다운 글입니까?
> 몇 년 전에 우리 기도원에 모 교단의 총회장이 공부하러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쉬는 시간에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리고 축복기도를 하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70세가 다 된 분이 다윗처럼 체면도 버리고 염치없이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놀라서 무릎을 꿇고 왜 이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분은 말했습니다.
> "강 목사! 내가 능력받아야 우리 교인들이 잘 살지"
> 이 말을 듣고 나는 정말 교단장이 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더욱 그 분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받게 하는 데에는 염치없이 매달리며 행동하는 다윗을 우리는 존경스럽게 바라보게 됩니다.
>
> 3.하나님이 잘 되게 하기 위하여는 염치없어도 좋습니다.
> 미갈이 왜 그렇게 왕으로서 염치없는 행동을 하느냐고 비웃었을 때 다윗이 대답하였습니다.
>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 사람들이야 무엇이라 말하고 비웃든지 하나님만 즐겁게 하여드리면 된다는 하나님 중심주의 믿음을 다윗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2;4)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한 데는 깊은 생각이 있었음이 곧 밝혀 졌습니다.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오고 바로 다윗은 이렇게 구슬프게 말했습니다.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삼하7;2)
그래서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는 깊은 계획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첫 번 일이 바로 법궤 운반이었습니다. 미갈은 그런 깊은 계획도 모르고 다윗을 비웃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여 드리려는 다윗의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려고 하는 데는 염치없이 일해도 좋습니다. 나는 지난 주간 전라도 전주 수양산 기도원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 왔습니다. 약 70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대성전을 짓고 첫 집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이 3년전에 원장님이 제 설교를 듣던 중 영감을 받아서 지은 성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격스러웠습니다. 3년 전에 내가 그 기도원에서 여호수아 18장을 본문으로 <그려가지고 내게 돌아오라>라는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5지파에게는 땅을 나누어 주었는 데 7지파에게 아직 땅 분배가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하기에 너무 지쳐서 전쟁하기를 싫어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는 7지파 대표들을 불러서 <그려가지고 돌아오면 그대로 이루어주리라>라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이 때 원장님은 너무나 기도원이 좁아서 수용이 불가능하여 지자 설교시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설교후 통성기도 시간에 "하나님! 설계비 1,500만원만 주시면 하나님께 큰 성전을 지어 드리겠습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는 이들에게 1,500만원을 부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IMF로 한창 어려운데 염치없는 부탁이었습니다. 그것도 될 때가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말이 부탁이지 사실은 반강제적인 요청이었습니다. 그래서 설계를 맡기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성전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름답게 이루어졌습니다. 어디에 가나 이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외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염치없이 행동하여도 좋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으려고 법궤를 나르면서 방탕한 자가 옷을 벗은 것처럼 벗겨지는 염치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염치없는 행동이라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염치없는 신앙생활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 염치없는 행동을 기뻐하실까요?
1.내가 잘 되기 위하여는 염치없어도 좋습니다.
2.이웃이 잘 되기 위하여는 염치없어도 좋습니다.
3.하나님이 잘 되기 위하여는 염치없어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삭개오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세무서장입니다. 나이도 지긋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뽕나무위로 올라가 있는 모습을 상상하여 보십시오. 염치없이 행동하였습니다. 자기가 잘 되기 위하여, 그리고 나중에는 재산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삭개오 하나가 잘 됨으로 이웃이 잘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크게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는 염치없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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