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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무엇을 세상에 줄 것인가
    2002-01-29 13:13:42   read : 1601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도행전 3 :1~10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현대 사회는 도시화 사회입니다.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듭니다. 그 중 한가지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시에 살면 편리한 것이 많습니다. 병원을 예로 들어 봅시다. 제가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아프면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지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병원이 한 군데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병원 시설이 가축병원 시설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의사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치료를 해 주셨습니다. 어쩌면 그분은 의사 자격증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어릴 때 다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바위와 바위 사이가 꽤 멀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건너뛸 수 없었는데, "너는 다리가 길어서 할 수 있다!" 는 말을 믿고 뛰었습니다. 그런데 깨어보니 병원이었습니다. 마취도 하지 않고 머리를 다섯 바늘 정도 꿰매는데, 너무 아파서 기절했다가 깬 것입니다. 부산만 해도 병원이 수백 개가 넘습니다. 요즘은 단순히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지 않고, 골라서 찾아갑니다. 좋은 병원을 찾을 수 있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진단과 처방을 잘 하는 병원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것을 잘 하는 병원이 드문 겁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졸병이 밤에 배가 아프다고 해서 의무실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나 군의관은 이미 퇴근한 후였습니다. 그래서 남아있던 위생병이 대충 배를 눌러보더니 한 대 툭 치면서 "별일 아니야! 식중독이야!" 라고 하면서 진통제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몇 대를 놓았는데도 계속 아프다는 겁니다. 드디어 아침이 되어 군의관이 진찰을 했는데, 이미 맹장이 다 터진 상태였습니다. 그 졸병이 병원에 실려 갔는데 목숨만 겨우 건졌습니다. 돌팔이가 진단을 잘못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단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진단을 했다고 해서 다 완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교인 중에 김두열 선생님이 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간암 초기니까 복개수술을 하지 않고 방사선으로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부산에서 꽤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의 딸이 삼성병원에 취직을 해서 그 병원으로 가서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간암 조직은 그대로 있고 간 옆에 있는 멀쩡한 조직에 방사선을 쏘아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수술을 받았습니다. 만약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진단과 치료는 병원에서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가? 병원과 아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행전 3장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이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 사건은 교회가 이 땅에 생긴 이후, 처음 이루어진 치유 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교회를 이 땅에 만드시고 나서 처음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을까요? 우연이 일어난 일일까요? 누가복음을 비롯한 여러 복음서에서 사도들은 수많은 기적을 행했고, 여러 가지 병들을 고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뽑아서 사도행전 3장에 기록해 주셨다는 겁니다. 특별히 이 사건을 기록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 가지 메시지 중에서 한 가지를 든다면, 교회는 영적 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이라는 겁니다. 왜 우리는 교회로 모여드는가? 치료받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왜 영안 교회 이름으로 매주일 이곳에 모여서 봉사하며 헌금을 드리는가? 왜 하나님은 이곳에 영안 교회를 세우셨는가? 세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교회의 목적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에 필요한 치유사역을 담당하는 올바른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본문은 그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영안 교회,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치유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교회 역할을 올바로 할 수 있겠습니까?



    1. 문제를 올바로 보아야 한다.

    "우문우답(愚問愚答)"이라는 말을 가끔 사용합니다. 질문이 어리석으면 올바른 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질문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올바른 대답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앉은뱅이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앉은뱅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십니까?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의사였기 때문에 여기에 등장하는 환자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앉은뱅이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기로 합시다. 먼저 누가는 2절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그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병에 걸려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사고나 실수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면서도 성경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죄인이냐고 물으면 죄인이라고 대답은 합니다. 그러나 좀더 얘기를 하며 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과거에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래 인간은 선한 것이 없으며, 태어나면서부터 타락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내게 두 마음이 있노니, 한 마음은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요, 또 한 마음은 내 안에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도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한탄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무인도에 데려다 놓으면 죄를 안 지을 것 같습니까? 죄를 짓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문제가 무엇인가? 내 영혼의 문제가 무엇인가? 이 세상의 영적 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죄의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두 번째 앉은뱅이의 문제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앉은뱅이를 치료하겠다고 나서겠습니까? 오늘날 의학으로도 고치기 어려운데, 그 당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체념 속에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부모를 원망하며, 두 발로 걷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저주하고 한탄하며 절망 속에 빠져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이런 절망감이 있음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때로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마음먹습니다. 저도 수많은 각오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 실패에 실패를 거듭합니다. "역시 나는 안 돼!"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포기해 버리고 체념해 버립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버리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숨어서 죄짓는 사람이 나 혼잔가? 인간이란 원래 다 그런 거지 뭐... 그래도 내가 저 옆집 사람보다는 조금 나은데, 뭐. 다 부정하는데 그래도 나는 가끔 헌금하잖아!"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체념과 절망감 속에 사로잡히다가 그 문제를 정상으로 보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이 앉은뱅이가 그랬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자기 인생의 심각한 문제인 일어서는 문제를 다 잊어버리고 다른 것에 집중합니다. 그는 성전 미문에서 날마다 구걸했다고 얘기합니다. 그에게는 앉은뱅이가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어릴 적부터 그렇게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비정상이 그에게는 정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만, 그에게 있어서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출입이 많은 그 미문,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했는데, 하루 두 번은 있는 곳에서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되지만, 나머지 한번은 반드시 성전에 나와 기도해야 했는데 그 시각이 '제 구 시'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전 앞을 왕래했을까요? 그들을 바라보며 이 앉은뱅이는 자신의 문제를 다 잊어버린 채, 오직 하나에만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돈입니다. 생각해보면 그의 수입이 꽤 되었을 것이라 봅니다. 사람들이 예배드리러 갈 때는 마음이 경건해 집니다. 그 성전 미문 앞에 거지가 진을 치고 앉았으니,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적선을 해 주었을 것입니다. 아마 수입이 좋은 날은 돈을 세며 앉은뱅이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40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의 진정한 문제는 자신의 문제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문제가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세상의 문제 아닙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마음의 병, 영혼의 질병을 방치한 채로 하루하루 쾌락을 위해 살아갑니다. 매일 벌어들이는 돈을 바라보며, 어느새 자신의 심각한 영혼의 질병을 잊어버리며 사는 겁니다. 아파트가 조금 넓어지는 것, 차가 조금 좋아지는 것, 직장이 조금 나아지는 것을 바라보며, 영혼의 심각한 질병을 잊어버리고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앉은뱅이의 진정한 문제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당신의 문제는 아닙니까?

    톨스토이는 어느 날 자신과 세상의 이런 모습을 발견하고,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 놀라운 비유를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산을 지나다가 갑자기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놀라서 줄행랑을 치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낭떠러지입니다. 죽었구나 싶었는데 거기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재빨리 뛰어서 소나무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아래로 내려다보니 약 4~5미터 될 듯이 보여, 뛰어내리면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자에게 "나 잡아봐라!" 하고 뛰어내리려고 보니, 그 밑에는 독사가 우글거리는 것입니다.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지금 매달려 있는 소나무를 생쥐 떼가 와서 갉아먹고 있습니다. 이 생쥐들이 소나무 밑동을 다 갉아먹게 되면 꼼짝없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생쥐들이 갉고 있는 옆을 보니 벌집이 있는데, 그 안에 꿀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 위기의 순간에 벌꿀을 찍어먹으며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러시아의 대 철학자 톨스토이가 우리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기 위해서 지은 글입니다.

    이 앉은뱅이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앉은뱅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의 실제 문제는 그의 영혼의 문제와 그 자신의 심각한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그저 사람들이 던져주는 그 돈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영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요? 나 자신뿐만 아니라 가정과 주위, 세상을 치료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먼저 문제를 올바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2.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문제에 대한 올바른 진단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치료도 중요합니다.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 앉은뱅이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2절에서 살펴봅시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사람들은 날마다 그를 어깨에 메어서 성전에 들여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쉽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가용을 태워서 매일 성전 문 앞에 데려다주고 끝나면 데려가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성전이 약간 높은 곳에 있었는데, 이웃 사람들이 1,2년도 아닌 40년 동안 매일 앉은뱅이를 메어다 놓았다고 얘기합니다. 참으로 좋은 이웃입니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비판합니다. 물론 그 비판 중에는 마땅히 수용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잘못 판단하는 것이 많습니다. 미국의 예를 들면, 미국 정부가 구호하는 것 외에,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단체의 96%가 기독교 기관입니다. 한국은 80% 정도가 기독교 기관입니다. 부산역에 가서 안내문을 한번 보세요. '노숙자 쉼터 안내문'이란 것이 있는데, "여러분, 제발 여기서 잠을 주무시지 마십시오. 이러이러한 곳에 찾아가면 여러분을 위해 음식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해 줍니다" 라는 문구를 적어두고, 9개 기관의 전화번호도 함께 적어 놓았습니다. 그 9개 기관 중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가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교회는 구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구호는 해야 하지만 교회가 구호단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학교를 세우고 교육에 관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육단체여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병을 고쳐야 하지만 의료기관은 아니요, 세상을 개혁해야 하지만 개혁단체는 아닙니다. 정의를 실현해야 하지만 정의실현단체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것은 많은 앉은뱅이를 성전 미문 앞에 데려다 놓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것만을 한다면 칭찬 들을지는 몰라도, 앉은뱅이처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성전 미문 앞에 앉은뱅이를 메어다 놓는 기관밖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이것을 위해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가 우리의 문제, 세상의 문제를 올바로 발견한 이후에,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도 베드로가 한 일 가운데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영적 관심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4절을 보세요.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오가고 있었습니다. 육교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들의 특징은 절대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본연의 수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와주는 사람도 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미안해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앉은뱅이는 다리만 쳐다보아도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발소리만 듣고 "아, 누가 오는구나!" 생각하고 "한 푼 줍쇼!" 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주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는데, 어떤 두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돈을 꺼내어 주려나 했더니 그냥 주목하여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쳐다보려고 하니까 "우리를 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라!" 이 말은 헬라원어로 보면 보통 문장이 아닙니다. 상당히 강한 어조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선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관심을 그 앉은뱅이 안에 불러일으키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냥 설교하지 않으시고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을 계속 반복하셨습니다. 이 말은 수많은 사람들이 귀로 듣기 때문에, 영적인 관심을 유발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성전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아주 가까이에 있었고, 수많은 예배자들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오직 한 푼의 돈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성전 안에 누가 있는지, 저들이 성전에 가서 무엇을 하는지, 거기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 앉은뱅이에게 먼저 영적인 관심을 일으킨 겁니다. "우리를 보라!"는 말을 통해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 관심이 없어서 멸망의 길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절망의 늪에 그대로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가까이에 있습니다. 아니, 그들 중에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속에 영적인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단순히 당신이 교회에 와 앉아 있기 때문에 영적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앉은뱅이도 성전 뜰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성가대를 하고, 교사를 하고, 집사 직분을 가지고, 교회를 오래 다녔고, 모태 신앙이기 때문에, 영적인 일에 관심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앉은뱅이도 그곳에 40년 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한가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40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전 미문 앞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너무나 자주 이 성전 미문 앞을 지나가시면서, 그 성전 안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아마 그는 예수님과 만난 적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 앉은뱅이를 고쳐주지 않았을까요? 그는 왜 고침 받지 못했을까요? 그는 하나님 가까이 있었고 예수님을 직접 만났지만,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그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목사인 제 눈으로 보기에도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진 자는 많지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와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제 영혼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당신의 거룩한 빛으로 제 영혼을 한번 비춰 주시옵소서! 제가 치료받기를 원합니다. 주여, 저를 고쳐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교회 안에 지극히 적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 앉은뱅이에게 영적인 관심을 일으키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베드로는 앉은뱅이의 손목을 잡아 일으킵니다. 그가 벌떡 일어나서 뛰어다니며 하나님을 찬양해서 사람들이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진정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건강, 직장, 집, 자가용, 돈, 이런 것들입니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이런 것들을 얘기합니다. 건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건강 얘기만 하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그것들이 우리에게 그렇게도 중요한 것일까요? 지금 당신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알기를 원한다면, 지난 한달 동안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무엇이었는지를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 앉은뱅이와 같이 한 푼 돈을 위해 기도하며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와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줄 믿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포드 자동차를 사서 운전을 하며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덕 중간에 가서 차가 갑자기 멈추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너무 황당해하며 뚜껑을 열어봤는데, 아는 것이 있어야지요. 이것저것 만져보고 눌러보아도 차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가 멈추었습니다. "당신 왜 그러시오?" "차가 고장났어요" "어디 한 번 봅시다" 하면서 둘러보더니, "저쪽에 있는 선을 여기다 한번 꽂아보시오" 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시동을 걸어보라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시동이 걸리는 것입니다. 차 주인이 놀라며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 뭐 하는 사람이요?" "내가 바로 헨리 포드요!" 그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니 무리없이 고칠 수 밖에 없지요.

    오늘 주님도 이와 똑같은 말씀을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내가 곧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길이요, 하나밖에 없는 진리요,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열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 인생을 올바로 점검할 수 있을까요? 해답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열쇠는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이셨는데, 바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 외에는 우리 인생의 진정한 문제를 해결할 자가 없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무엇을 주어야 합니까?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먼저 문제를 올바로 보아야 합니다. 나의 문제, 내 이웃의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올바른 해결을 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이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당신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소유하고 계십니까? 이 질문은 당신의 직분과 교회에 오래 다닌 것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소유한 적이 있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오늘날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가? 예수를 소유하지 않은 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저 종교생활을 할 뿐입니다. 멋있게 가서 예배드리고 서로 자화자찬합니다. "좀더 거룩해졌겠지!" "하나님이 날 용서해 주셨겠지!" "오늘도 가서 헌금했는데..." 교회 출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예수를 소유해야 된다고 얘기합니다. 어떻게 세상에 해결책을 줄 수 있습니까? 먼저 예수를 체험해야 합니다. 두 번째 예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끊임없이 가져야 합니다.



    3) 예수님과 교제의 시간을 끊임없이 가져야 한다.

    1절을 보십시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여기서 '구(9)시'는 오후 3시를 말합니다. 이 시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시간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동행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예수님이 붙잡히시기 전에 "내가 당신과 함께 죽는데 까지 따라가겠다"고 큰소리 쳐놓고, 막상 로마 군병이 오자, 예수님을 저주하여 부인하며 도망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는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는 그 성전에 올라갔다고 얘기합니다. 하루에 한번 빠짐없이,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그 시간에, 베드로는 성전에 가서 주님과 교제했고, "예수 충만"했던 것입니다.

    왜 우리의 가정이 변하지 않습니까? 왜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가 주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내가 예수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는 것이 예수님이고 내가 날마다 예수님과 동행하게 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보다 더 위대한 기적이 여러분 인생에 일어날 것이며, 가정과 주변에서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감람산 위에 올라가셔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우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이 너무너무 불쌍해서 울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려오셔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너희들이 기도를 좀 해야되겠다"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미 밭이 희어졌기 때문입니다. 추수할 일꾼은 누구입니까? 예수를 소유한 사람이요, 예수 충만한 사람인줄 믿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며 자신을 한번 돌아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가정을 한번 바라보지 않겠습니까? 아내와 남편, 자녀를 한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앉은뱅이들이 많습니다. 영적인 앉은뱅이들이 소망도 없이, 절망 가운데 자기의 문제를 잊어버리고, 그저 단 한 푼 돈과 명예 때문에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을 구원하겠습니까? 우리는 왜 여기에 부름 받았나요? 우리는 세상에 무엇을 주어야 합니까? 오늘 이 말씀을 마치며 한 형제가 부르는 찬송으로 제 설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 매일 스치는 사람들 "

    매일 스치는 사람들 내게 무얼 원하나 공허한 그 눈빛은 무엇으로 채우나

    모두 자기 고통과 두려움 가득 감춰진 울음소리 주님 들으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깨지고 상한 마음 주가 여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캄캄한 세상에서 빛으로 부름 받아 잃어버린 자들과 나누라고 하시네

    주의 사랑으로만 사랑할 수 있네 우리가 나눌 때에 들들 알겠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깨지고 상한 마음 주가 여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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