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피곤할 때 2002-01-29 13:03:50 read : 1557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 : 119: 81~88
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82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83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 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 하니이다
84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리이까
85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86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87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88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
인생에서 다루기 힘든 주제 중의 하나가 고난일 것입니다.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 그것이 곧 우리 삶 속에 있는 고난일 것입니다. 누구라서 고난을 좋아하겠습니까? 누구라서 고난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고난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고난은 다루기 힘든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각 지역, 사람, 나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2주간 중앙 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즈스탄이라는 두 나라를 여행하면서 우리와는 조금 다른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당하는 첫 번째 고난은 가난이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60년대에 당했던 고난이지요. 우리가 의사들을 데리고 의료 선교를 떠났습니다.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진료했어요. 그 가운데 제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많은 어린이들의 귀에서 고름이 줄줄 흐르는 중이염을 앓는 것이었어요. 약 1,2주간만 약을 먹으면 나을 것을 3,4년을 방치해 두었어요. 아마도 고막이 다 녹아 내렸을 겁니다. 그들은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했어요. 가끔 대단한 수술을 요하는 질병을 가진 애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1,2주 동안 약만 먹으면 될 것을 수년씩 고통받고 있었어요. 돈 몇 푼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고난이었어요.
또 다른 그들의 고난은 사회 구조적인 고난이었어요. 우리도 어느 정도 당하고 있지만 그런 나라에 비하면 많이 개선된 것 같아요. 세계를 여행해 보면 알겠지만, 공산주의가 다스렸던 나라에서 가장 발달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뇌물입니다. 제가 그 나라에서 받은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이 나라는 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안 되는 것도 하나도 없구나!" 현지 선교사가 어떻게 며칠만에 이 나라의 특징을 그렇게 잘 아느냐고 놀랐어요.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아무리 정당한 법 절차를 밟아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뇌물만 주면 안될 것도 다 되는 겁니다. 공항에서부터 뇌물을 요구합니다. 나갈 때는 괜찮았는데 들어올 때, 두 사람이 세금을 물었다고 합디다. 그냥 세금이 아니라 뇌물을 얘기하는 겁니다. 돈을 주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나라입니다.
몇몇 선교사가 저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을 저에게 얘기했어요. 사업을 하는데, 여기는 바다가 없어서 차로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떼어 와야 하는데, 국경수비대를 지나려면 반드시 서너 명에게 뇌물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뇌물을 주지 않고 정상적으로 한번 해보세요"하고 말했더니 "목사님, 소용없습니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물건을 빼앗고 장사를 못하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사를 하면 4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답니다. 그런데 뇌물을 4%만 내면 세금이 다 면제된다는 겁니다. 세금을 다 내고는 도저히 사업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해 왔어요.
대학생들은 "목사님, 학점을 따기 위해서는 교수님들에게 돈을 내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고 했더니, 서민들이 한 달에 100불이 있어야 살아가는데, 대학교수의 봉급이 15불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교수들이 시험을 볼 때, 학생들에게 아예 돈을 가지고 오라고 한답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열심히 공부해도 소용없어요. 돈을 갖다 주지 않으면 학점을 주지 않으니 졸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얘길 듣고 그들과 같이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일반 세상 사람들은 뇌물을 주고 해 나가지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들은 고난받고 있었어요. 정말 생계의 위협을 받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저에게 찾아와 상담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타협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 '러시아 침례교파'가 있습니다. 러시아 침례교회가 공산국가가 다스렸던 모든 중앙아시아에 퍼져 있어요. 공산 치하에서도 그들은 굴복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그들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설교합니다. "사업을 하지 마라!" 사업을 하게 되면 뇌물을 주고 부정을 저지르게 되니까 아예 처음부터 그것을 막아 버립니다. 대학에서 뇌물을 달라고 하면 대학에 입학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주 강하게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 교파는 살아남았습니다.
제가 심도 있게 상담을 하며, 두세 시간을 그 주제로 얘기했습니다. 그 문제를 두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당한 고난이라면, 이 고난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손을 붙들고 기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모양과 형편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고난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 고난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는 고난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이 본문을 통해 자신이 당한 고난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먼저, 그는 그가 당한 고난이 얼마나 컸던지, 자신의 인생이 막다른 골목에 있다고 간증합니다. 돌파구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해결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의 고난
그는 먼저 마음의 고난을 얘기합니다. 81절과 82절을 보세요.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그의 마음이 극도로 피곤해 있다고 간증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아니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마음이 피곤해 있다고 얘기합니다. 82절에서, 주의 말씀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알지만 성경책을 펴도 도저히 그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너무나 피곤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주의 말씀을 대할 수도 없었고, 구원받은 감격을 마음속에서 끌어낼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고난으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봉착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85절.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86절.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87절.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수많은 사회적인 시스템과 수많은 악한 사람들이, 이 시편기자를 모함하고 멸망시키기 위해 웅덩이를 팠다고 얘기합니다. 세상의 모든 악한 방법을 동원해서 그를 핍박하고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같은 방법으로 대항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서, 어떻게 똑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시편기자의 피곤함이었어요. "아버지 하나님! 저들이 나에게 온갖 부정과 뇌물을 요구하고, 핍박을 가하여 제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 마음이 제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고 하니 제 마음이 너무 피곤하여 구원의 기쁨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도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육체의 고난
이 시편기자가 당한 고난을 이해하십니까? 그의 고난은 마음의 피곤뿐만이 아닙니다. 육체 또한 고난을 받았다고 얘기합니다. 83절을 보세요.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 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 하니이다
'연기 중의 가죽병'의 말씀이 올바로 해석된 지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문화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이 말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성경이 쓰여진 3000년 전의 이스라엘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대에는 유리병이나 도자기가 없었어요. 대부분이 사막이어서 도자기 만들 진흙이 없었어요. 그래서 물을 담는 그릇은 주로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짐승을 잡아서 가죽에서 살을 다 발라내고, 다리부분은 꼭 묶고, 목 부분에 물을 부으면 항아리가 되는 겁니다. 그곳에 물을 보관하고, 사막을 다닐 때 그 물을 마시는 장면을 영화에서 보았을 겁니다.
이 가죽 물병을 쓰지 않고 부엌에 매달아 놓으면, 부엌에서 불을 매일 떼니까 연기가 가득하고 그을음이 찹니다. 그래서 이 가죽병 안에도 연기가 가득 찹니다. 그 상태로 1,2년 동안 방치하면 가죽병은 연기에 완전히 절여버려서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어요. 물을 넣었다가 마시려고 하면 그 연기냄새가 심해서 물을 마실 수가 없어요. 이 시편기자는 자기의 몸이 연기에 절인 가죽병과 같이 되었다고 육체의 고난을 얘기합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마음에 스트레스가 생기면 우리 몸의 모든 면역체계가 다 파괴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극도로 피곤하면 몸에 어떤 반응이 나타납니까? 소화가 안되고 잠이 오지 않게 됩니다. 몸에 여러 가지 이상이 생기는 겁니다. 어떤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면 그것을 막아야 하는데, 그런 방어 능력이 떨어져 버리는 겁니다. 내 마음이 너무 피곤하여 소화는 안되고 피부는 거칠어지고 머리카락은 다 빠져 버립니다. 몸이 다 삭아져서 연기 중의 가죽병같이, 시편기자의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고 간증합니다.
영적인 고난
시편기자의 고난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이 상해 버릴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이 상해버렸다고 간증합니다. 82절과 84절을 보세요.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리이까
고난이 얼마나 컸던지 마음이 피곤하고 몸만 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시편기자는 고백합니다. 자신의 고난을 털어놓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제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저는 선을 행하고 저 사람들은 악을 행하는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왜 저들을 심판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의 영혼에 고난이 찾아왔다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단 시편기자만의 질문이겠습니까? 우리 역시 이런 질문을 얼마나 많이 던졌던가요?
"오! 하나님, 언제나 제 건강을 회복시키시렵니까?"
"오! 하나님, 언제나 제 남편을 돌이키시렵니까?"
"언제까지 제 자식의 탈선을 지켜보아야 합니까?"
"언제까지 이 부채와 씨름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직장에서 핍박받아야 합니까?" 언제까지!!!
이것은 바로 우리 삶 가운데 있는 고난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난 앞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이 고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본문 말씀을 토대로 몇 가지를 나누기 원합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을 과연 어떻게 지나갈 수 있는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피곤하여질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중요한 주제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여시고, 하나님의 방법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1. 인생의 고난을 예상하라
어떤 그리스도인은 생각하기를, 자신은 절대 인생의 막다른 길에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래서 이 잘못된 생각 때문에 고난 앞에서 무릎을 꿇는 그리스도인들이 많고 어려움이 닥치면 방황합니다. 그들의 등식은 '믿음 = 형통'입니다. 왜 고난 당하는가에 대해 믿음이 없기 때문에 고난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좋으면 고난이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새벽기도회에 잘 참석하고,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기도생활을 많이 하면, 눈물과 질병과 고난이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신앙이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어요. 여러분의 마음도 들여다보세요. 믿는 사람들끼리도 고난받는 사람들을 보면 곧잘 손가락질합니다.
"저 사람, 고난 당하는 것 보니까 신앙 생활에 문제가 있나 봐!" "교통 사고 난 것 봐!" "병에 걸린 것 봐!" "사업이 망하잖아, 하나님이 치시는가 봐!"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난을 당합니까? 성경에는 믿음 좋은 사람도 고난 당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믿음이 없고 약한 사람이 고난 당했나요?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기자는 믿음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가 쓴 시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성경책에 기록되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도 이런 고난을 당했다고 저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고난은 믿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믿음 좋은 사람에게도 고난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깨달은 존 번연은 '천로역정'을 썼던 것입니다. 존 번연은 천로역정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나요? 믿음생활은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가는 안락한 생활이 아닙니다. 믿음은 등산입니다. 등산가가 정상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골짜기와 언덕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정상에 도달합니다. 저는 등산의 묘미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에 올라섰을 때, 누구도 보지 못하는 환한 경치를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정상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키르키즈 선교여행 때 함께 갔던 선교팀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선교팀이 모두 떠나고 나서 셀 리더 모임과 선교사 총회에 참석하기까지 하루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서용산 선교사님과 '이스쿨' 호수에 가 보았어요.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 세계 제일의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이스쿨! 이곳은 해발 1500미터의 산 위에 호수가 있습니다. 그 호수의 넓이가 강원도 넓이만 합니다. 더욱 아름다운 장관은 그 호수 주위를 둘러싼 산들의 높이가 모두 수천 미터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어요. 더운 여름에도 그 산들 위에는 항상 눈이 덮여 있고, 그 눈이 녹아내려 호수는 항상 적당한 수심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물은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합니다.
서용산 선교사에게 산에 올라가자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높은 곳을 올라가느냐고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던 끝에, 호텔에서 가이드를 물색해서 말을 타고 올라가기로 했어요. 결국 가이드 두 명과 말을 타고 올라갔어요. 그런데 세 시간을 올라가다가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제1고지를 점령하고 난 이후에, 적어도 3일 정도는 말을 타고 가야 정상에 도달할 것 같았습니다. 그 산이 얼마나 높은 지 모릅니다. 그런데 1고지만 올라가도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거기에서 내려다보는 이스쿨,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엔 말을 타고 갔으니 편하게 올라갔을 것 같지만 결코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 4시간 이상 말을 탔는데, 그곳에 갔던 모든 사람들은 그 이튿날이 되자 걸음을 제대로 못 걸었어요. 이스쿨로 가는 길이 너무 가파르니까 말도 몹시 힘들어했으니 말을 탄 사람은 오죽 했겠습니까.
제가 이스쿨 호수를 보기 위해 시도했던 그 일을 통해 깨달은 것은, 그 장관을 보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천국과 시온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믿음 생활을 알고 체험하기 위해서는,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그 대가가 바로 고난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믿음 생활을 잘 하기 원한다면 내가 너희를 고난의 길로 인도하리니, 고난을 미리 예상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날마다 새벽 기도하고, 헌금하고 예배드리면서 자신에게 고난이 올 것을 예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고난이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고난은 찾아오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훈하십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야고보서 1장 2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헬라어에는 네 가지 가정법이 있는데 "내일 아침 비가 오거든...." 의 경우에 쓰는 가정법이 있고, "내일 아침해가 뜨거든...." 에 쓰는 가정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일이 닥쳐올 수도 있고, 다른 경우는 닥쳐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는 반드시 일어날 일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에서의 가정법은, "비가 오거든"의 가정법이 아니라, "내일 아침해가 뜨거든"에서 쓰인 가정법과 같은 것입니다. 즉, 고난은 반드시 찾아오는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반드시 고난 당할 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예상하시기 바랍니다.
이 진리를 몰라서 "지난주에 성가대하고 교사했는데 내게 고난이 찾아오다니!" 하고 실망하며 낙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삶을 청산하고 고난을 예상해 보십시오. 고난이 찾아올 때 "아, 하나님! 와야 할 고난이 왔군요! 이 고난을 통해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기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고난을 받아 들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안 주시면 되지, 왜 고난을 예상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 선하신 하나님이 질병과 사업의 어려움과 자녀의 탈선 등의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야고보서 1장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2-4절)
왜냐하면, 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되고, 우리가 온전하게 되는 데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성숙되도록 하기 위해서 고난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예일 대힉에서 오랫동안 교수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안락한 것을 깨닫고, 캐나다의 정신 지체 장애자들과 남은 평생을 보내다가 몇 년 전 우리의 곁을 떠나신 분입니다.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성숙시킨다는 것을 헨리 나우웬은 자신의 삶을 통해 증거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정말 더 가까이 가고 싶고, 깊은 신앙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수도원을 찾아가서, 나이 많은 수도사에게 가르침을 요구합니다. "수도사님, 제가 일주일간 이곳에 머물텐데, 그동안에 좋은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그러자, 그 수도사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다음날 아침에 몇 시까지 오라고 했어요. 헨리 나우웬은 아주 큰 기대감에 차 올라, 필기도구를 준비하고 그 수도사의 교훈의 내용을 적으려고 갔어요.
그런데 그 수도사는 말씀은 안 들려주고 그냥 따라오라는 겁니다. 그러더니 호미와 물뿌리개를 들려주면서 또 따라오라는 겁니다. 나우웬이 수도사를 따라간 곳은 사람들이 밟고 또 밟아서 딴딴해진 흙덩어리가 있는 곳이었어요. 수도사는 나우웬에게 그 딱딱해진 찰흙에 물을 주라고 했습니다. 찰흙이 딱딱해지면 아스팔트 이상입니다. 그래서 물을 주더라도 조금도 스며들지 않고 물이 다 흘러버립니다. 그런데, 이 수도사는 나우웬에게 한줌의 씨앗을 거기에다 뿌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우웬은 수도사가 시키는 대로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렇게 하자, 수도사는 "갑시다"하면서 앞장섭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인사한 후, 그 다음날 저녁에 또 만나자고 합니다. 이런 수도사의 행동에 "참 이상도 하다"며 나우웬은 의아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햇볕이 쨍쨍 내려 쬔 후, 오후가 되어 그곳에 가서 보니, 씨앗이 바짝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나우웬에게 보게 한 후, 그 수도사는 "갑시다" 하고 숙소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나우웬이 숙소로 돌아와서 자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갑자기 분통이 터졌어요. 이 수도사가 정말 유명하다고 해서 교훈을 받기 위해 찾아왔는데, 대단한 진리는 가르쳐 주지 않고, 쓸데없는 일만 시켜서, 속으로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날 수도사가 다시 만나자고 해서 '한번만 더 만나 주자'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호미와 물뿌리개와 커다란 망치를 들려주면서 따라오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전에 갔던 그 딱딱해진 찰흙덩이 앞에 앉아서 "이것을 깹시다" 하면서 그 덩어리를 깨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에 굳은살이 배기도록 둘이서 그것을 깼습니다. 그래서 그 딱딱하던 것을 고운 찰흙으로 만들었어요. 그런 다음 거기에 물을 주었어요. 그랬더니 그 찰흙이 물을 쫘악 빨아들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씨를 뿌렸어요. 그리고 나서 "떠나는 날 아침에 만납시다. 난 바쁩니다"하고 그 수도사는 말했습니다. 나우웬이 그곳을 떠나는 날 아침에 보니, 그곳에 작은 싹이 움트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그 수도사가 가르쳐준 교훈의 전부였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 교훈을 깨닫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영적 깨뜨림"이라는 유명한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가 묵상하는 가운데 그 수도사가 그에게 주려고 한 교훈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밭에서 풍성하게 열매 맺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 밭이 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를 보십시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돌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 한마디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반면, 어떤 사람은 10년,20년 동안 설교를 들어도 전혀 하나님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영이 깨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열매 맺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안에 있는 정욕이 깨어져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나의 강한 자아가 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깨어짐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는, 우리 마음이 깨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고난이라고 말씀합니다.
욥의 고난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10명의 자녀를 잃었고, 많은 재산을 다 잃었으며, 건강도 잃고 부인도 떠나갔습니다. 세상의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극한 고난을 당하고 나서,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
여러분, 고난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의미한 고난을 한가지도 허락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고난을 주실 때 한가지 목적은, 우리를 깨뜨리시기 위한 작업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우리 가운데 뿌려서, 주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풍성하게 열매 맺기 위해 우리의 마음 밭을 정리하시는 하나님의 작업, 그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깨뜨림 받지 않고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요셉은 죄도 짓지 않았는데 형제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가서 종살이했고, 자기가 짓지 않은 죄로 인해 감옥살이했어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고난을 통해 그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고난 당한 후, 창세기 45장에 보면 그가 얼마나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신학을 체험한 것입니다. 형들이 와서 두려워하며 울면서 회개합니다. "아우야! 내가 너를 판 것을 용서해라!" 그때 요셉이 울며 말합니다.
"형들이여, 나를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이곳에 보내었나이다!" 자기가 이 곳에 온 것이 형들의 악행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음을 깨달은 겁니다. 이런 깨뜨림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고난이 요셉을 변화시켰어요.
모세는 얼마나 혈기왕성한 사람이었습니까? 40년 동안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어요. 그러나 어느 날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하나님은 그에게 고난의 학교를 통과하도록 하십니다. 왕궁에서 광야로, 왕자에서 양치는 목동으로, 그 40년의 고난을 다 채우고 나서 하나님은 모세를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모세의 온유함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도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고난을 예상할 뿐만 아니라, 그 고난을 받아 들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고난을 극복하라
여러분 어떻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두 가지 기도를 합니다. 86절을 보십시오.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체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식입니다. 이런 태도는 고난을 극복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고난을 감해 주세요!" 이런 기도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 중국에서 온 선교사님이 저에게 북한을 탈출한 형제의 간증을 들려 주었습니다. 이 가족은 어떤 계기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5년 정도 신앙 생활을 했어요. 아버지, 어머니,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있는 가정이었어요. 그런데 공산당 당원에게 발각이 되었어요. 그 날도 여전히 저녁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공산당원이 급습해서 성경책을 빼앗고 그 가족 모두를 잡아갔습니다. 보통 잡혀가면 그 마을에서 사형 당하든지, 아니면 강제 수용소로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인 가장은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는 기쁘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아이들의 장래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 아이들만은 살려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며 파출소에 갇혀 있는데, 이들을 지키는 사람이 살짝 잠이 들어 있어서 감시가 약간 소홀한 틈을 타서 도망을 치는데, 그 사람이 계속해서 깊은 잠을 자더라는 겁니다. 산 속으로 도망을 갔는데 40여 일을 낮에는 풀숲에 숨어있고, 밤에는 별을 보며 헤매다가 네 식구가 압록강을 건너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그 간증을 듣는 시간에 어떤 사람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40일 동안 산 속에서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한마디로 대답을 했어요. "제가 40일 동안 배운 것은 기도였습니다! 제가 이전에 5년 동안 기도를 해 왔지만, 이번 40일 동안의 기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이지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 모릅니다" 파출소를 빠져 나오면서부터 약 7,8개의 초소를 지나며 붙잡힐 것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했을까요?
여러분, 혹시 고난 중에 계십니까? 기도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고난이 없으면 기도해도 우리의 마음이 간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우리의 기도는 간절해지는 겁니다.
제가 집사람을 굉장히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부모의 사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집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장인 어른을 잘 아시는 교수님이 저에게 "노 교수님이 얼마나 기도의 사람으로 변했는지 모릅니다" 하시면서, 기회만 있으면 장인 어른이 기도하더라는 겁니다. 이 친구 분이 장인 어른에게 "자네 몇 달간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가?" 하고 물었더니 "아버지 하나님, 제 딸 살려주세요!"라는 딱 한가지 기도만 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극복해야 합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을 때, 어떤 사람은 낙망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88절을 보십시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소성케 하소서" 이 말씀은 자신의 영(靈)을 부흥시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고난 속에서 시편기자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고난 속에서 제게 부흥을 가져다 주시옵소서. 저의 심령을 부흥시켜 주시옵소서!"
이것이 고난을 극복하는 자의 지혜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자이언트 팀에 유명한 투수가 있었습니다. 16년 전, 박찬호 선수만큼 유명한 데이브라는 투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는 갑자기 팔에 암 진단을 받았어요. 수술을 받고 3개월 후 다시 마운드에 서자, 수많은 팬들이 그가 다시 공을 던지자 환호의 박수를 쳤어요. 그런데 6회에 공을 던지다가 그는 쓰러집니다. 곧바로 병원에 실려가 암이 퍼졌음을 알고 팔을 절단합니다. 수술한 후, 어느 날 TV 쇼에 나와 1시간 동안 생방송을 했어요. 사회자가 묻습니다. "당신은 큰 고난을 당했는데 투수로서 팔을 잃은 후에 배운 교훈이나 느낌이 있습니까?" 데이브가 "예, 한가지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저의 우선 순위가 바뀐 것입니다. 그것이 제게 일어난 변화입니다" 라고 말한 후, 그는 "옛날에는 제 눈에 야구만 보였는데, 이제는 잠자리에 잠든 제 아이들이 보입니다. 팔이 있을 때는 들리지 않았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야구장에서 볼 수 없었던 많은 아름다운 세계를 저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간증을 합니다. "팔 한쪽을 잃고 이 세계를 본 것이 제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는 그에게 닥친 고난을 부흥의 기회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투수가 팔을 잃는 고통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부흥을 맛보았으며, 심령의 부흥을 맛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옛날에 보지 못했던 다른 모든 세계를 활짝 열어 보여 주실 때, 그는 비로소 그 세계를 본 것입니다. 가족의 소중함과 야구 외의 다른 아름다운 세계를 보았다고 간증했습니다. 이것이 고난 극복의 자세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고난 속에 계실 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부흥을 가져다 주십시오!"하고 기도하십시오. 이 말씀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는 영안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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