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많이 부르는 찬송 가운데 405장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영어 제목은 'Amazing Grace'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찬송입니
다. 이 찬송가의 가사를 지은 분은 존 뉴턴 목사(J. Newton 1725∼1807)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노예선의 선장을 하며 거칠게 살다가 회개를 하고 목사가 되었
는데 찬송가 가사를 많이 지었습니다. 찬송가 405장은 뉴턴 목사의 신앙고백이
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에 405장외에 56장(지난 이레 동안에 예수
인도했으니), 81장(귀하신 주님의 이름은 참 아름다워라), 245장(시온성과 같은
교회)이 뉴턴 목사가 지은 찬송가들입니다.
뉴턴 목사가 병들어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한 젊은 목사님이 병원에 찾
아가서 문병을 하였습니다. 이 젊은 목사님이 "우리는 하나님의 포도원의 훌륭
한 일꾼을 잃게 되었습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 때 뉴턴 목사는 이렇게 말
했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먼저 가지만 목사님도 곧 내가 있는 천국에 올 것입
니다. 목사님이 천국에 오시면 틀림없이 나를 찾을 텐데 찾기 쉽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 옆에 함께
달렸다가 구원받은 강도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틀림없이 그 강도 밑에 있을
것입니다." 대단히 겸손한 이야기이지요. "내가 그 강도 밑에 있을 것입니다"하
는 것은 '나는 그 강도보다도 못한 존재입니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뉴턴 목사는 천국에서 정말 그 강도 밑에 있게 되었을까요? 아닐 것입
니다. 아주 좋은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 주님의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상급이 클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뉴턴이 천국에 오면 이 자리를
주리라'하고 좋은 자리를 마련했다가 그 겸손을 보시고 더 좋은 자리를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이 꼭 가져야 할 신앙의 덕 가운데 하나가 겸손입니다. '그 성도가 얼마
나 겸손한가?'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성숙한 성도인가?' 하는 것과 비례합니
다.
겸손하지 못한 성도는 아직 덜 여물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는 벼와 같습니
다.
겸손은 모든 덕의 뿌리요, 어머니요, 기초입니다.
성도는 왜 겸손해야합니까?
하나님이 겸손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미가서 6장8절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
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문서예언운동을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은 아모스이고 그 다음이
호세아, 그 다음이 이사야 이렇게 말합니다. 미가서 6장 8절은 아모스의 정의,
호세아의 사랑, 이사야의 믿음을 요약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과 행하는 것을 원합니다.
성도는 왜 겸손해야합니까?
예수님께서 겸손의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
라"고 마태복음 11장29절과 3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들어오셨습니다. 마태복
음 21장5절은 예수님이 겸손한 분이기 때문에 나귀를 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
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도 예수님의 겸손을 보여주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2장5절에서 8절까지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
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
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겸손을 배
우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왜 겸손해야합니까?
성경이 겸손할 것을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2절과 3절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2절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12절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8절은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
며 겸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5절과 6절은 특별히 젊은 사람들에게 겸손을 권합니다. "젊은 자
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
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성도는 왜 겸손해야합니까?
성경의 인물들이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성경 인물들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가 겸손입니다. 그들은 큰 일을 하고서
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두고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였습니다(요1:27)
바울과 같은 대사도도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
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
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 15:10)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왜 겸손해야합니까?
신앙의 위인들이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캐리(W. Carey 1761∼1834)라는 분이 있습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
고 불리는 분입니다. 이 분은 가난하여 구두 수선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
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부지런히 언어들을 공부했습니다. 인도에 선교사로 가
서 처음에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선교를 하다가 캘커타 포트윌리암 국립대학 고
전언어학 교수가 되어 가르치면서 선교를 했습니다. 성경을 인도의 설흔다섯 가
지 방언으로 번역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캐리를 시기하는 사람이 망신을 주기 위해서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큰 소리
로 "캐리씨, 당신은 구두 만드는 사람이었다면서요?"라고 물었습니다. 캐리는
겸손하게 "저는 구두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라고 대답
했습니다.
윌리엄 캐리가 나이 많아 인도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가장 가까운 이웃
에게 부탁한 것은 "내가 죽거든 나에 대해 말하지 말고 나를 일꾼으로 삼아주
신 주님께 대해 말하시오", 이 말이었습니다.
월드컵에 중국인들 십만 명 안팎이 한국에 온다고 해서 중국선교에 대한 관심
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중국에서 교회에 대한 소식이 많이 흘러나오고 있는
데 종교인들도 공산당 당원이 될 수 있다는 밝은 소식도 있고, 지하교회 교인
몇 명을 사형에 처했다는 어두운 소식도 있습니다.
중국에 복음을 전한 초기 선교사 가운데 밀레(W. Milne 1785∼1822)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선교사를 지원했을 때 선교본부에서는 "밀레씨, 당신의 이모
저모를 조사해보니 당신은 선교사의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이 중국에 가겠다면
선교사의 심부름꾼으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대단히 모욕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밀레는 겸손하게 "그것도 좋습니다"라고 하고서 중국으로 갔
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참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첫 번째 중국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손과 함께 신구약 성서 전부를 중국
말로 번역했습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에는 겸손이 "남을 높이고 제 몸을 낮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동양도덕도 겸양지덕(謙讓之德)이라고 해서 겸손한 태도로 사양하는 것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겸손은 이런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깊은
뜻, 근본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겸손, 나가서 하나님께 겸손을 말합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겸손은 무엇입니까?
첫째, 신앙적인 겸손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한 고백 없이는 진정한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늘 처음 말씀 드린 찬송가 405장의 가사가 겸손의 아주 좋은 본보기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을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겸손과 관련된 명언들 가운데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은 성 어거스틴이 한 말입니다.
한 청년이 어거스틴을 찾아와 "선생님,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물었는데 그 태도가 매우 교만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첫째, 겸손해야하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청년은 "그러면 둘째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둘째도 겸손일세"라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셋째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셋째도 겸손이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 이 말은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라는
뜻도 들어 있지만 '자네가 죄인이라는 사실부터 고백하게. 그래야 구원받을 수
있네'라는 뜻이 강합니다.
성경에는 겸손이라는 단어가 설흔 번 이상 나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강한 말
씀이 오늘 본문 가운데 29절 뒷부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
하시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십니다. 그가 처해 있는 어
려움 가운데에서도 구원하시고 그의 영혼도 구원하십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겸손하지 못하
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나 죄 없소!' 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겸손은 무엇입니까?
둘째,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할 수 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7장은 유명한 마른 뼈 골짜기의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
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
게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물었습니다.
이 때 에스겔은 "네, 제가 한 번 해 보지요" 하고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으로 이 마른 뼈들이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보고 "니느웨에 가서 외치라"고 했을 때 요나는 도망을 갔습
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나라의 수도에 가서 전도하기가 싫었고 무엇보다도 '내
가 어떻게 그 악독한 성에 가서 전도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싫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니 가겠습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하
실 수 있을 줄로 믿고 가겠습니다" 하면서 겸손하게 갔으면 고기 뱃속에 들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숫자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숫자로부터 자유로운 목
회를 합시다」라는 책도 있습니다. 사실 숫자 중심의 목회, 성장지상주의의 목
회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늘 1,200만을 자랑하다가 요즘은 바람
빠져 가는 풍선처럼 되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숫자로부터, 출석통계, 헌금통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목회
자는 없습니다. 아마 한 사람도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교회처럼 큰
그릇을 마련하면서 채워야 하는 정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배 시작할 때 저 뒤에서 입례(入禮)를 준비하면서 '성도들이 얼마나 나왔나?'
살핍니다. 적게 나온 날은 견디기 어렵지요. 그러나 그럴 때 주님께 더욱 간절
하게 매달리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주님, 나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할 수 있습니다. 주여 채워주옵소서. 넘치게 하옵소서' 이 기도가 쌓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꾸준히 응답해 주고 있지만 언제인가는 폭발적으로 응답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유럽의 어느 교회에서 교회당을 설계하는데 믿음이 좋고 유능한 설계사에게 설
계를 의뢰했습니다. 설계사가 설계를 해 왔는데 다른 것은 다 좋았는데 출입구
가 매우 낮았습니다. 머리를 숙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낮게 설계했
습니다. 교회에서 설계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설계사는 "교회에 들어올
때는 겸손하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일부러 문을 낮게
설계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 설계를 채택했다고 합니다.
저희 교회는 출입구가 머리를 숙여야 할 정도로 낮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여
러분 교회에 들어오실 때 마음의 머리를 숙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숙이고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올해 우리 나라는 선거를 하게 됩니다. 지방의회 선거, 국회의원 일부 보선, 무
엇보다도 대통령 선거, 지도자들을 선출하게 됩니다. 겸손한 사람들이 지도자로
선출되어야합니다. 국민들 앞에 겸손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
들이 선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도력은 사실, 겸손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겸손한 지
도자는 종국에 는 자기가 높여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권위와 겸손은 서로 공존
합니다. 지도자가 더욱 겸손해질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큰 지도력과 권위를 부
여해 주십니다.
이 시대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합니다. 이 시대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면 이 시
대의 발달된 과학문명과 편리한 생활조건들은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이 시대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면 그것들은 재앙이 될 것입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건강문제에 대해서도 겸손한 사람이 장
수합니다. '나 건강해! 건강에 자신 있어!' 하는 사람은 일찍 세상을 떠나는 일
이 많습니다. 어디 몸에 약한 부분이 있어서 늘 조심하고 삼가는 분이 오래 삽
니다. 이것을 일병장수(一病長壽)라고 하지요.
성경은 겸손한 사람이 받는 복을 여러 가지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시편 10편17절은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22편26절은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47편6절은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붙드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49편6절은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
습니다.
잠언 3장34절은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11장2절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13장33절은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22장4절은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29장23절은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9장19절은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를 말미암아 기쁨이 더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7장15절은 하나님은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고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겸손하여 이런 축복들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가대원 임명식을 가졌는데 성가대원들, 겸손한 대원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더 크게 사용하시고 찬양을 통해 더 큰 영광을 받으실 것
입니다. 목양교회는 찬양에 강한 교회로 알려져 있는데 더 강한 교회가 될 것입
니다.
성도 여러분, 2002년 겸손하게 보내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부른 찬송가
347장의 가사 1절을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 주사 잘 감당하게
하소서"
2002년이 겸손히 주를 해를 섬기는 해가 되기 바랍니다.
사람 앞에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더욱 귀하
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고 부족한 제가 되기를 겸손의 모범을 보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