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중에 있을 때 2002-01-28 12:29:03 read : 1275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 94:16-19> 2002년 1월 27일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하시나이다) <시편 94편 16절-19절>
1. 모든 사람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실패 속에서 자기를 보게 됩니다.
실패 그 자체는 쓴 잔이지만, 실패는 또 다른 시작의 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는 줄 압니다.
모든 성공 뒤에는 고통스러웠던 실패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기 바랍니다.
그들은 다른 말로 하면 수 없이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실패를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람들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발명품들도 실패의 연속에서 얻은 열매들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수 없이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오늘의 우리가 편리하게 쓰는 전구를 발명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실패 중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육신의 건강에 실패한 사람,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 실패한 사람,
모아 놓은 재물에 실패한 사람,
가정에 실패한 사람, 친구에 실패한 사람,
사랑에 실패한 사람, 모두가 실패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면, 사람들은 작은 실패 중에서 더 큰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실패 중에 낙심(落心)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실패의 자리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낙심은 금물입니다.
왜냐하면, 낙심할 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패 중에 체념(諦念)도 금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고통 중에 있을 때 더욱 새롭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의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홍해 앞에서 저들은 실망했었습니다.
광야에서 저들은 불평하면서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 앞에서 자기들은 메뚜기 새끼들 같다고 낙심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곤 하였습니다.
오늘도 실패의 자리에서 낙심하거나 체념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불평하고 낙심할 때 사탄은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여러분 서커스단의 코끼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코끼리의 힘은 대단합니다.
전봇대 같은 통나무도 코로 쉽게 들어올리고,
뿌리 깊은 나무도 통채로 뽑아 끌고 갑니다.
그런데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조그마한 말뚝에 매여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런 모습이 되었을까요? 처음에는 무지막지한 쇠사슬과 말뚝에 묶어 놓는다고 합니다. 코끼리는 계속 사슬을 당겨 보다가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되는데, 그때부터는 아무런 작은 줄이라도 다리에 걸쳐놓기만 하면 체념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실패의 사슬에 얽어매어 체념하면 현실을 극복해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라면, 인생의 홍해 앞에서도, 광야 길에서도 체념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돈을 믿고 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오늘도 돈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 돈 때문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실패할 때, 돈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도 돈 때문에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2. 신앙의 사람들은 실패한 과거를 오랫동안 기억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에게는 과거는 지나갔습니다.
지난 날의 실패와 허물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3:25절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4:22절에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 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과거의 실패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실패를 주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죄의 세력이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고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실패의 멍에를 메우려는 사탄의 세력은 항상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시련이 올 때 영락없이 과거를 들추어냅니다.
"너는 실패자야!",
"너는 죄를 범한 자야!",
"너는 구제불능의 죄인이 아니냐!",
이렇게 계속 우리들을 죄의 사슬에 묶어두려고 합니다.
타락한 성품의 인간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을 항상 회상시키면서 과거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은즉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In Christ)에 있은 즉... 이라는 말에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모두 죄인이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는 즉, 새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니, 얼굴이 달라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변하여 새롭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날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마음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감화감동 하심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날마다 주님 안에 머물도록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해갑니다. 그것이 <말씀> 안에 거하게 하는 삶입니다.
3. 그러기에 실패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실패 중에 있을 때 원한(怨恨)을 품기 쉽습니다.
또 사람들은 실패 중에 있을 때 공격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싸움을 하고, 그래서 폭력을 씁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실패를 보상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 순간의 감정일 뿐, 그 감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또 실패 중에 있을 때 사람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도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누가 날 도와줄 사람이 없을까?'라고 사람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편 기자는 다음 순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 하였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란 말입니다.
실패 중에 있을 때 나를 도울 자가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인심(人心)입니다.
성공 중에 있을 때는 내 주변에 친구도 있고 사람들도 많이 따르지만, 실패 중에 있을 때는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습니다.
베데스다 못 가에 진을 치고 있었던 사람들을 보기 바랍니다.
38년 동안 자리에 누워 있었던 사람에게 주님이 가까이 가서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주여!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나이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실입니다. 내가 실패하였을 때 도와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 중에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입니다.
영적인 거성(巨星)인 모세도 실패 중에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생활은 한마디로 실패 중에 있었던 기간입니다.
그 광야생활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를 의지하여 위대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실패 중에 있을 때 다윗은 나단 선지의 책망을 듣고 눈물로 통회자복 하고 하나님께 의지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다윗을 들어 성군(聖君)이 되게 하였습니다.
실패 중에 있을 때, 히스기아 왕은 벽을 향하여 눈물로 간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었습니다.
요셉의 일생은 어쩌면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그 어려운 실패의 고통스러움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이렇게 실패 중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실패는 고통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과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향한 마음으로 그를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같은 사람들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중동 걸프(Gulf)전의 영웅이요, 현재 미국 국무장관인 <콜린 파월>의 기록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파월은 1937년 4월 5일 미국 뉴욕의 할렘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 <루터 파월>과 어머니 <아리스>는 중남미 {자마이카}에서 이민 온 흑인이었습니다.
그들은 힘겨운 이민 생활 속에서도 오직 신앙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콜린>은 집 가까이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부모를 따라 '성 마라렛 회중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을 때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세레 받으시는 장면을 들어 콜린에게 "너는 하나님께서 택한 자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는 자"라고 말하면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후 콜린은 언제나 자신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어떠한 역경을 당해도, 어떠한 힘든 일을 만나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이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ROTC로서 군 장교로 입대 후 한국과 독일에서 근무한 후 베드남 전에 참전하여 부상까지 입었습니다. 그러나 걸프전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여 승리함으로 대통령의 신임을 돈독히 받았습니다. 한때는 미국의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실로 요셉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흑인이었던 그가 이같이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사랑하는 자"라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자긍심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도와준다는 믿음으로 모든 시련을 이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결코 우리의 절망이 아닙니다.
실패 중에서 도리어 하나님을 의지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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