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사람 2002-01-21 09:52:26 read : 1650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고린도전서 2:14-16) 2002. 1.13낮
집을 살 때나 혹은 셋방을 구할 때 우리의 기준이 있습니다. 집의 방향이 어떤지, 냉난방 시설은 어떤지, 가격은 적당한지, 그리고 직장과의 거리는 어떻고 교회와의 거리는 어떤지, 또 학군은 어떠하며 아이들의 학교 생활은 편리한지, 그 주위에 술집이나 좋지 않은 환경들은 없는지를 살핍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맞으면 집을 사기도 하고 세를 얻어 들어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도 그 물건을 어느 회사에서 만들었는지, 가격은 어떠한지, 또 사용하기에 좋은 것인지를 살핍니다. 자동차를 살 때든, 옷 한 벌을 살 때든, 구두 한 켤레를 살 때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사지 않습니다. 기준에 맞아야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기준에 따라 판단을 합니다.
사원을 채용하는 데도 그 회사의 기준이 있습니다. 건강한지, 긍정적인지, 인맥은 어떻고 인간 관계는 어떤지, 성품은 좋은지, 실력은 있는지, 그 기준에 맞아야 사원으로 채용합니다.
교회까지도 그렇습니다. 교회 직원을 채용할 때 참으로 귀한 사람인지, 성품이 어떤지, 건강한지, 실력이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건강 진단서를 받는 교회도 많습니다.
어느 회사에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직원을 채용했답니다.
입사 지원자들에게 ○월 ○○일에 인터뷰를 하니 회사에 다 모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지원자들이 왔습니다. 회사에서는 그들을 큰 홀에서 기다리게 해 놓고는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안내 방송도 광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원자들을 마냥 기다리게 했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냐?"
"아니, 아무런 광고도 방송도 없이 사람을 이렇게 마냥 기다리게 해?"
"이 회사는 기본이 안 되었구만. 아니, 사람을 뭘로 보고 이러는 거야?"
"맞아,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어?"
거의 모두 이렇게 웅성웅성하며 불평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무슨 사정이 있겠지."하며 회사 입장에서 생각하며 느긋이 기다렸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방송으로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인터뷰가 다 끝났습니다. 집으로 편안히 돌아가십시오. 채용된 분은 개인별로 통지해 드리겠습니다."
무슨 인터뷰를 했겠습니까?
벽에 비밀 카메라를 장치해 놓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거지를 다 녹화한 것입니다. 불평한 사람, 그저 그런 사람, 인내하는 사람 등 모든 사람의 행동을 녹화한 것입니다. 누가 채용되었겠습니까?
인내하며 느긋이 기다린 사람들이 채용되었습니다.
어쨌든 그 기준에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기준은 우리 주님께서 판단하시는 기준입니다.
우리 주님의 기준은 회사의 기준과 다릅니다. 집을 사고 사지 않고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창조주, 심판주, 구원의 주이신 우리 주님의 기준은 무섭습니다. 그 기준은 엄청납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 교민들을 보면,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있는 교민과 그것이 없는 교민은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은 날개가 달린 것과 같습니다. 영주권, 시민권이 없이 불법으로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 여행 가서 불법으로 거기에 눌러 앉아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하게 사는지 모릅니다. 언제 잡혀갈지,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니 피가 마르는 생활을 합니다.
오래 전에 제가 미국에 갈 때 초등학교 여학생 한 명을 데리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는 분인데 먼저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 다음에 아이의 어머니가 가고, 그 아이는 저와 함께 갔습니다. 저를 아는 한 분이 "목사님, 미국 가시는 길에 좀 데려다 주세요."라고 해서 데리고 갔는데, 얼마나 발랄하고 깜찍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아버지가 합법적으로 이민을 간 것이 아니라 여행 비자로 가서 그냥 눌러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불법 이주를 했으니 우리 나라로 하자면 주민등록 번호도 받지 못하여 사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사업을 했는데, 사기를 당했습니다. 또 가슴이 덜컹덜컹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그만 암에 걸려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재산은 다 탕진되고 남편은 세상을 떠나니 사장 부인이었던 그 아이의 어머니가 식당에 나가서 시간제로 일하여 생계를 꾸려 나갔습니다. 제가 그 집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발랄하고 깜찍하던 아이가 풀이 팍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백 불을 주면서 위로해 주고 때때로 장학금도 조금씩 주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외국인이 미국에 살 때는 시민권자냐, 불법 체류자냐에 따라 엄청난 차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주님께서 하시는 차별의 기준입니다.
우리 주님의 기준은 딱 두 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육적인 사람이냐, 영적인 사람이야 하는 것입니다.
육적인 사람은 천국에 입성하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천국 문에서 모든 사람을 판가름하는데, 영적인 사람만 천국에 입성하게 하시고 육적인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것은 아무도 회피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도, 대법원장도, 대학 총장도, 병원장도, 그 누구도 주님의 이 판단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복음을 증거하러 호주에 가게 되는데, 호주에 가면 입국 관리를 만납니다. 입국 관리가 입국을 허락하면 저는 호주에 갈 수 있고 허락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전에 우리 한국의 한 대학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미국에서 거절당해 다시 돌아왔습니다. 몸에 매독, 성병이 있어서 미국에서 유학할 수 없다고 거절당해 공항에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입국 관리를 피해 미국으로 들어가는 길도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입국 관리가 허락을 하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밀입국을 한다고 합니다. 자동차 밑에 달라붙어서 가기도 하고, 사람이 의자 모양으로 앉아서 그 위에 비닐을 덮어씌운 다음에 숨구멍을 내고 가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그렇게 가도 대부분 걸리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미국으로 가려고 한답니다. 호주에 가려는 사람들도 많은데, 호주에는 밀항선을 타고 갈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 요직에 계시는 분 중에 한 분은 대학교에 다닐 때 학생 운동을 하다가 퇴학 처분을 당하고 공안 당국의 삼엄한 경계를 받게 되자 밀항선을 타고 호주로 갔습니다. 거기서 정치학 공부를 했는데, 지금 우리 나라 정계의 요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호주는 입국 관리를 피해서 들어가는 길이 어렵기는 해도 있을 수 있지만, 천국에는 밀항선이 없습니다. 밀입국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입국 허가는 주님만이 하십니다. 주님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문이 하나이듯이 천국은 문이 하나인데 예수님께서 그 문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모든 사람은 그 앞에서 판단을 받는데 영적인 사람만 들어가고, 육적인 사람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어느 부잣집의 귀한 아들이 예수님를 믿으면서도 긴가 민가 했는데,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이웃 마을의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동시에 천국으로 갔는데, 한 사람은 환영을 받으며 천국으로 들어가고, 또 한 사람은 천국 문이 열리니 그 가슴에 새까만 죄가 드러났습니다. 그러니 "내 죄! 내 죄!"하고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다가 지옥 불에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너무 무서워 떨다가 깨어났습니다.
너무 이상한 꿈이라 날이 밝자마자 이웃 마을에 가 보았더니 정말로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성실하고 귀한 크리스천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말썽을 피우는 아주 못된 교인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깨닫고 귀한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
오늘 여러분이 주님 앞에 서면 주님께서 "어서 오라."하고 환영하시겠습니까? "돌아가라."하시겠습니까?
우리 주님께 입장 허가를 받는, "너는 영적인 사람이야."하고 우리 주님의 기준에 인정받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잠깐이면 그 날이 옵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습니다.
"인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그 길이 멀어 보이지만, 인생을 끝내고 나올 때, 죽을 때는 너무 짧은 것이 인생이다."
여러분 중에, 우리 여청년들이나 새댁들 중에 '내 피부는 어쩌면 이렇게 곱나? 화장발도 잘 받고 참 곱다. 이 싱싱한 내 피부!'하는 분들이 계실지 몰라도 그것이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제가 우리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제 눈에 딱 들어오는 달 덩어리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설교하다가도 그분이 눈에 들어오면 훤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달은 달인데 구름 낀 달처럼 희미합니다.
잠깐 만에 우리는 종착역에 서게 되고, 주님의 판단을 받게 됩니다.
그때 후회하지 않기를, 그때 주님께 거절당해 돌아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때 모두 주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사람인지 육적인 사람인지를 어떻게 압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육적인 사람은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난 그대로, 자연인 그대로의 사람입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The man without the Holy Spirit.) 이 바로 육의 사람입니다.
영의 사람(The Spiritual man)은 성령이 있는 사람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랍비께서는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그런 표적이나 이적이 있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의 목마른 심정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야,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한다. 사람이 두 번 나지 않으면(born again) 하늘 나라를 보지 못한다."
"랍비여, 이렇게 늙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난단 말입니까?"
"니고데모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두 번 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리고 결론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아버지와 어머니 육신의 사이에 난 사람은 육신의 사람이요 성령으로 난 사람은 영의 사람이니 이것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이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 직원이 결혼해서 예쁜 아기를 낳았는데 이름을 '주은'이라고 지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라는 뜻입니다. 제가 아기 엄마에게 "참 신비롭지 않아요?"했더니, "예, 신비로워요."라고 했습니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아기가 나옵니다.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또 그 아기가 크는 것도 얼마나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또 어떻게 꼭 아빠 엄마를 닮는지, 씨 도둑질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신비로운 것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라도 성령으로 나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장로님이라도 성령 받지 못했으면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그런 목사님 그런 장로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처음 교회에 오신 분이라도 성령을 받으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사람인지 육의 사람인지를 어떻게 압니까?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공기의 이동으로 일어난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지만, 바람이 지나가면 표가 납니다. 나뭇가지가 흔들립니다.
성령은 영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지지도 못하지만, 성령은 불같이 생수같이 바람같이 역사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은 압니다. 자신이 아는 것입니다. 점 귀신이 들어가도 자신이 압니다.
우리 예수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무는 그 열매로 압니다. 대추가 열리면 대추나무요, 밤이 열리면 밤나무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목사님들입니다. 제사장의 아들은 자동으로 제사장이 되는데, 그들에게는 음란 마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봉사하는 여자들과 음란을 행했습니다. 이름은 제사장, 목사님인데 세상 사람도 하지 못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천사의 탈을 쓴 이리인 것입니다. 보기에는 목사님이고 전도사님이라도 그 내용이 마귀인 사람은 그 열매를 보면 압니다.
우선 그 열매가 무엇입니까?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니 미련하게 보고, 깨닫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세상을 자기 관심에 따라 삽니다. 컴퓨터, 비디오, 영화, 텔레비전을 보는데는 시간과 모든 것을 사용하면서 성령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장 46절 말씀에 의하면 날마다 성전에 나아가게 됩니다. 할렐루야!
성령 받은 사람은 매일 교회에 가고 싶습니다. 매일 교회에 가서 찬미하고 싶고, 예배 드리고 싶고, 성도들과 사귀고 싶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셔서 왕이 되었지만 영적인 사람이 아니니 예배를 드리지 않다가 망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인 다윗 왕은 자기의 모든 즐거움이 교회에 있고, 성도들과의 사귐이 최고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16편 3절을 보십시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육적인 사람은 세상 친구, 판사, 변호사, 사장 등 이름 있는 사람을 사귀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교인들과 사귀는데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사귀는데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 사귐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할렐루야!
시편 122편 1절에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성령의 사람은 교회에 가는 것이 기쁩니다. 예배 드리는 것이 기쁩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사람은 교회 가는 것이 귀찮습니다. 아버지가 장로님이고 어머니가 권사님이니 마지못해 교회에 나오고 아내의 잔소리 때문에 국제 평화를 위해 따라나오기는 해도 예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대단히 죄송하지만, 육적인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는 성경입니다. 성령께서는 시간만 나면 성경을 읽게 합니다. 설교를 듣게 합니다. 할렐루야!
영적인 대학생은 자신이 학생이라도 대학의 중요한 과목의 교수님 강의보다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더 귀히 여깁니다. 그러나 육적인 학생은 목사님이 설교하시면 리모트컨트롤을 꺼버립니다. 교회에 와도 '뭐 들을 것이 있나?'하며 리모트컨트롤을 꺼버립니다. 설교를 듣지 않습니다. 대학 교수님의 강의는 들어도 목사님의 설교는 듣지 않습니다. 아예 귀를 막아버립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대학 교수님의 강의도 귀하게 듣지만 그보다 말씀을 더 귀히 여깁니다.!
영적인 사람은 세상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귀한 사람이 목사님이라 알고 있습니다.
록펠러나 록펠러의 어머니 같은 영적인 사람들은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을 가장 중요한 사람, VIP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사람은 목사님을 시시하게, 교회를 시시하게 여깁니다.
왜입니까? 육적인 사람은 영의 일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영의 일이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의 일은 깨닫지도 못합니다.
육적인 사람은 TV 연속극은 빠뜨리지 않고 봅니다. 비디오를 빌려다가 눈이 빨갛도록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로 눈이 빨갛도록 보지 않습니다. 하루에 성경을 열 장, 스무 장씩 읽지 않습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감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한 주간 살면서 한 번도 성경을 펴지 않는다면 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육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한 주간 살면서 TV 앞에는 스무 시간 열 시간 있으면서 성경은 한 번도 열지 않는다면 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보시면 얼마나 화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멸시하고 싶으시겠습니까?
영적인 사람은 시간만 나면 기도하고 싶고, 기도하고 싶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일어날 때도 잠잘 때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육적인 사람은 교회 일을 할 때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이용합니다.
마가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화를 내십니다. 하나님의 딸 안나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혼자 되어 84년 간 과부로 한 많은 생을 살았지만 누가복음 2장 37절을 보면 주야로 금식하며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녹을 받으며 사는 대제사장들이 기도하지 않고 오히려 돈에 눈이 어두워 밖에서 가지고 오는 제물은 불합격시키고 그들과 연합한 사람들에게 산 것만 합격시켜서 성전을 장사터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파는 비둘기로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로부터 얼마씩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썩은 종교 지도자들, 육적인 사람들입니다. 육적인 사람들이니 기도도 하지 않고 교회를 통해 돈만 벌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께서 화가 나신 것입니다. 화가 나신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그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뒤엎어 버리시고, 돈 바꾸는 자의 테이블을 뒤엎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했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구나. 내 아버지의 집은 기도의 집인데 기도의 집으로 만들지 않고 장사꾼의 터로 만드는구나."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 교회를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의자를 제가 뒤엎어 버릴 것입니다. 혹 그런 일이 있어도 '우리 목사님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인 줄 알았는데, 깡패 기질이 있네.'하고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상과 의자를 뒤엎으셨습니다.
따라 합시다.
"우리 목사님이 주님을 쏙 닮으셨네."
제가 아내와 십몇 년 전에 부산의 선배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어느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 입구에 들어서니, '쿵자작작 쿵자작 쿵자작작 쿵자작 쿵작'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교회가 마치 나이트 클럽 같았습니다. 이상하고 얄궂다는 생각을 하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따라가 보니, 세상에, 교회 여전도회원들이 에어로빅을 하고 있었습니다. 에어로빅을 하는 것이 큰 죄는 아니지만, 교육관 한 모퉁이도 아닌 본당 밑에서 그렇게 에어로빅을 하는 것을 보니 제 마음이 상했습니다. 제가 선배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지하에서 에어로빅을 하고 있던데요?"
"아이고, 그것 마음에 안 드는데, 장로님 부인들이 원하니 장로님들이 지하 홀을 에어로빅 홀로 쓰자고 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목사님 한 분뿐이고 모든 장로님들이 다 원해서 할 수 없이 에어로빅 홀로 쓰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교회에 대해 이런 말, 저런 말이 들리더니 교회가 피폐해지고, 결국 그 목사님이 교회를 떠나가셨습니다.
부인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이 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당회에서 결정된 것을 부인에게 절대로 말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한 장로님은 그 날로 장로님 사표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당회해서 결정한 것을 집에 가서 말했을 때 부인이 "아이고, 이 양반아, 그렇게 하면 어찌 해요? 이렇게 해야지요."라고 해 보십시오. 그러면 장로님이 다음 날 교회에 와서 "목사님, 당회 다시 합시다."라고 할 것입니다.
장로님이 바로 서야 교회가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장로님이 바로 서려면 장로님 부인이 바로 서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몇 만 평 대지를 주시면 큰 교육관과 사회 봉사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거기에 에어로빅 홀도 만들고, 수영장도 만들고, 탁구장과 테니스장도 만들고, 학생들의 독서실도 만들고, 골프 연습장도 만들고, 볼링장도 만들고, 여러분이 교회에서 모든 생활을 다 하실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교회의 중심은 기도하는 집, 영적인 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적이면 육적으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육적인 사람은 고깃덩어리와 같으니, 본능대로 사니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십니다. 신령한 사람이 바로 영적인 사람, 성령의 사람인데, 신령한 사람은 왜 모든 것을 판단합니까?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본문 16절)
여러분, 주님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주님께 누가 가르치겠습니까? 서울대학의 교수가,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가 예수님을 가르치겠습니까? 그 귀한 주님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성령은 주님의 영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성령께서는 주님을 아시고 하나님을 아시는데, 그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니 우리를 하나님께 맞추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 받는 아내들을 보십시오. 남편을 잘 압니다. 남편을 보면 남편의 기분을 척 알아서 남편의 기분에 맞추어 줍니다. 남편의 마음을 읽어서 남편이 좋아하는 대로 합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여자들을 보십시오. 남편을 모릅니다. 남자의 기분을 모릅니다. 남편의 욕구, 남편의 기대를 도무지 몰라서 남편이 싫어하는 음식을 만들고 남편이 싫어하는 짓을 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으려면 남편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을 아십니다. 우리는 모르는데 성령께서는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배 드리게 하시고, 성경 읽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전도하게 하십니다.
"전도합시다."해도 육적인 사람의 귀에는 그 말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육적인 사람은 '전도는 나와 상관없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 금년에 제가 몇 사람을 전도해야 될 텐데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깨닫습니다.
우주를 깨닫습니다. 태양을 보아도, 달을 보아도, 별을 보아도 척척 깨닫습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십니다.
자기를 깨닫습니다. 남편을 보아도 '복종하고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남편, 내게 예수님 같은 내 남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내를 보아도 '사랑하고 아끼라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아내, 괴롭히지 말라고 주신 내 아내, 품에 안아 주라고 주신 내 아내.'라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아들을 보아도 딸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사람은 남편을 돈 벌어주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만 생각합니다. 아내를 밥 해주고, 잠자리 같이 하고, 아이들을 키워 주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아들딸을 부부 생활하다가 생긴 아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제가 탄 엘리베이터에 어떤 아저씨와 한 남자 고등학생이 함께 탔습니다.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아저씨의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니, "예."하고 아주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그 학생이 "아빠, 다녀오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래."라는 말도 하지 않고, 아들을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한참 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갔습니다.
참 못난 아버지입니다. 아들을 어찌 그렇게 쓸쓸하게 합니까?
한 부인은 연년생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얼마나 개구쟁이입니까? 정리해 놓으면 흩뜨려 놓고, 정리하면 흩뜨려 놓지 않습니까?
"아이고 저 원수 같은 것들! 호랑이가 와서 물어 가면 좋겠네. 호랑이가 와서 저 두 놈을 물어 가면 좋겠네."
그런데 두 아들이 여덟 살, 아홉 살 때 같이 병들어 한 날에 죽었습니다. 한 무덤에 두 아들을 묻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육적인 어머니입니다. 부부 생활하다가 그냥 생긴 아들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아들딸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은 다릅니다.
회사 일을 할 때도 육적인 사람은 '내가 이렇게 죽도록 일해서 한 달에 80만 원을 받는구나. 100만 원을 받는구나. 120만 원을 받는구나. 500만 원을 받는구나. 나 때문에 회사가 5억의 수입을 올렸는데, 나는 일 년에 겨우 5천만 원이라니….'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나를 이 회사에 심어 주셨으니 일을 바로 해야지. 내가 우리 회사를 살려야지. 내가 회사의 기둥이 되어야지.'하며 사장님이 보나 안 보나 열심히 합니다. '내가 바로 일해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겠지.'하며 돈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 교회에 좋은 일이 네 가지 있었습니다. 네 가지를 다 이야기하려면 시간이 많이 가니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 집사님 한 분이 큰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일을 잘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사정상 라인을 50%로 줄이게 되어 사원의 반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1월 10일까지 자진 사퇴하는 사람에게는 2년 간의 봉급을 더하여 주지만, 그 후에 해고당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자진 사퇴를 하지 않았다가 해고를 당하면 더 어렵게 되니 모든 사원들이 얼마나 고민이 되었겠습니까?
우리 집사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할까요?"
회사에서 나오면 할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있긴 있는데 미래가 없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저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제가 장로회 수련회에 가서도 그 집사님이 생각나서 말씀을 전하기 전에 '주여, 어떻게 해야 됩니까? 집사님이 10일에 사표를 냈을 텐데 무슨 사업을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기도했습니다.
장로회 수련회를 마치고 내려와서 집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집사님이 10일에 사표를 써서 제출했답니다. 그런데 회사 책임자가 "다른 사람의 사표는 받아도 당신의 사표는 받을 수 없어요. 당신은 우리와 함께 일을 해야 돼요. 같이 일합시다."라고 하더랍니다.
우리 집사님이 회사의 요셉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것은 우리 집사님이 영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의 제일 큰 문제는 죽음인데, 영적인 사람은 죽음을 벌써 초월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암에 걸리든지, 교통 사고로 죽게 되면 '나는 죽게 되었다. 나는 끝났다.'라고 하지만, 영적인 사람은 암으로 죽어가도 교통 사고로 죽어가도 '이제 나의 참 생활이 시작되는구나.'하며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영광 중에 나아가리」하고 찬송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빌립보서 1장 23절, 24절에 바울이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내 욕망(desire)은, 내 소망은 육신을 떠나 죽어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지만, 내가 육신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이 교회를 위해 유익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에게는 죽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교회 때문에 오래 살기를 바랐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사람은 '나는 이제 주님 품에 안기게 되는구나.'하고 죽음을 이해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제가 중요한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이 이해되시는 분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조심할 것은 성령 받은 사람에게도 본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욕구를 따라 살면 귀하게 되는데, 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면 부끄럽게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 재 충만을 받으며 성령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성령의 불을 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도대체 허튼 소리, 귀찮은 소리로 들린 분은 죄송하지만, 지옥 갈 사람입니다. 구원이 없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백억 원을 주어도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교회에 들어오신 것은 벌써 구원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이 그냥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주세요. 약속한 성령을 주세요."하며 전혀 기도에 힘쓸 때 오순절 다락방에 불 같은 성령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찾으면(seek) 만날(find)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부 사이에 아기가 나는 것도 비밀한 일이지만, 성령을 받는 일은 더 비밀한 일입니다. 그런데 구하면 비밀한 일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육적인 사람으로 오셨어도 돌아가실 때는 영적인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그냥 돌아가지 마시고 기도해서 성령을 받아 영적인 사람으로 돌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성령의 불이 임해서 우리가 새로워지고, 뜨거워지고, 우리 몸의 병이 다 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처음 오신 분도 성령의 사람이 되는 축복을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일 낮 예배 시간이지만, 오순절 다락방의 120명 성도들처럼 우리 함께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성령의 재충만을 위해서, 오늘 처음 오신 분이나 육적인 분은 성령 체험을 위해서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 반드시 성령으로, 불로, 생수로 역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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