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부모님이 용돈이나 과자를 주시면 그 돈으로 당장 무엇을 사먹거나 그 과자를
먹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나중에 대비하여 착실하게 아껴두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당장 사먹는 아이가 늘 아껴두는 아이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하든지 과자를 좀 나누어 먹자고 부탁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실 살아가면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써버릴 것이냐 미래를 위해 아껴둘 것이냐 하
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딜레마에 빠뜨리는 문제입니다. 미래는 불확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미래를 믿지 않고 현재를 위해서 삽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를 대비합니다. 왜냐
하면 지금 조금만 참으면 좀더 윤택한 미래가 오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반드시 미래의 약속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는 미래가 불확
실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확실한 미래가 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오늘 모든 것을 다 누리거나 오늘 모든 것을 다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에 많은 즐거움을 포기하면서 미래에 하나님께서 주실 축복을 기대합니다. 이것이 그리
스도인의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은 태어날 때부
터 외모나 성격이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자라가면서 더 심해졌습니다.
형 에서는 성격이 굉장히 남성적이었고 현재 지향적이었습니다. 반면에 동생 야곱은 성격이
대단히 안정적이었고 미래 지향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두 사람의 생각이나 인생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팥죽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이 두 사건은 두 사람 모두에게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
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가룟 유다나 가인의 모습을 봅니다.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생각합니다.
가룟 유다가 그 역할을 맡은 것이지요, 카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싶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으려고 작정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런 악한 역을 맡게 된 것입니다.
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혹시 우리도 자
꾸 에서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첫째, 부모의 사랑방식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리면 자녀가 문제가 있다면 부모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이 그
렇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둘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25절을 보면 에서는 몸이 붉었습니다. 그리고 피부가 대단합니다. 바깥에
서 활동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니 사냥꾼이 된 것입니다. 직업이 사냥꾼!!!
반면 야곱은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늘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특기는 요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이 요리사!!!
즉 에서와 야곱을 다른 말로 이야기를 한다면 사냥꾼과 요리사이야기입니다.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적이 없지만 군에서 사격을 할 때면 숨을 멈추고 쏩니다. 잠
깐 다른 생각을 하면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민한 것이지요,
반면 요리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한 집사님과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자
집사님이 요리를 잘하시는 것이십니다. 부럽습니다. 방법을 여쭈어 보았더니 비법은 양념을
어떻게 넣을까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해보니 맛있다는 것이죠.
이런 남자 둘 사냥꾼! 요리사! 한집에서 살았습니다. 정반대입니다. 부모도 반대입니다.
아버지는 에서! 어머니는 야곱! 입니다. 어떻게 보면 콩가루집안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부모님의 성격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삭은 착하고 조용한 사람입니다. 착하게 지냈기 때문에 손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활달
한 성격인 에서가 마음에 들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리브가는 확실한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
다. 그러니 자기의 고향 밧단 아람에서 이삭을 찾아 왔습니다. 확실한 여장부 성격입니다.
28절을 보면 음식을 잘 만들었던 야곱은 반대 성격이지만 당연히 어머니의 마음에 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떠합니까? 형제가 몇 십 년을 헤어지게 만들게 됩니다. 서로 원수처럼
지냅니다. 부모의 잘못된 사랑이 이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상담을 해보면 가장 큰 상처는 부
모에게 받습니다. 그런데 편중된 사랑을 당해본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부모의 잘못된 사랑을 조심하십시오, 형제들의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나중에 야곱도 요셉을 편애해서 형제들에게 죽게 만들지 않습니까? 무서운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공부 못하던 아이가 마음먹고 영어를 공부하려고 합니
다. 아빠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빠! 성문 기본 영어 좀 퇴근길에 사다 주세요!" 아빠! 입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갑자기 머리에 전기 불이 반짝입니다. "내 어찌 아들이 공부하는데 기본
영어 뿐이겠느냐, 핵심영어, 종합영어, webster 영영사전 잔뜩 사다 주어야지!"
어떻습니까? 아이가 질리죠! 그리고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그렇게 잘해 주었는데 부모의 은혜를 모
르는 불효 막심한 자식!" 이라고 하는 것이죠, 아들은 기본영어만 사달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문제가 생기는 줄 아십니까? 사랑 받을 만한 사람만을 사랑하는데 문제가 있습
니다. 이삭이나 리브가의 사랑은 본인을 위한 사랑입니다.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사실 아빠들이 딸들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으려고 애교를 부리는 줄 아십니까?
잘해주는 이유는 도리어 아이들을 통해서 사랑받기 위한 마음이 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데도 이기적인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분들을 만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우리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만났을 때가 언제입니까? 로마서 5장을 보십시오,
그것은 연약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죄인이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평생 예수님 주위에는 사람들이 꺼리는 세리, 창기, 정신이상자들, 귀신들린 사람
들, 그리고 장애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
니다. 그러므로 편애는 사랑이 아닙니다. 무기입니다. 가정을 파괴시키는 것임을 아시길 바
랍니다.
둘째, 에서 스스로도 올바른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심리학에서 부모에게 편애를 받고 자란 자녀는 먹는 문제에 많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에서도 먹는 문제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판단을 잘못했습니다.
본문 29-32절을 보면 에서는 들에서 돌아와 허기가 심했습니다. 그때 야곱이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가장 절실한 식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육의 갈망은 늘 구체적이고
실제적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아합 왕이 라봇의 포도
원을 보고 그 소유욕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도 한 예입니다. 다윗이 그 많은 여인들에도
불구하고 밧세바를 취한 것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욕심은 사실 두렵기 조차합니다.
요사이 인터넷 동문회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모임을 갖습니다.
좋은 의도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성적인 타락이 너무나 쉽기 때문입니다. 구체
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입니다.
한번 판단 잘못으로 평생을 후회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에서는 그 육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망한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히브리서 12장 16절에 보면 에서의 어리석은 행위의 망령됨을 지적합니다. "음행하는 자
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
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한 그
릇 식물과 장자의 명분을 맞바꾼 어리석은 거래 때문입니다.
장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권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우습게 본 것입니다.
이것을 망령된 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정신차리셔야 합니다. 혹시 자꾸 에서가 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자들은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배를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치 장자의 명분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배를 우습게 생각하고 늦고 빠지게 된다는 것은 자꾸 에서의 마음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왜요? 예배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을 쑤어도 장자의 명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렇게 집요하게 야곱은 장자권을 얻으려고 했을까요? 아버지의 특권은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자녀를 축복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현대 아버지의 비극은 무엇
입니까? 아들을 축복하는 것을 포기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학교에 가
고 직장에 가는 아들을 축복해 주고, 군대에 가고 결혼하는 아들을 축복해 주는 것이 아버
지의 특권입니다.
아들의 특권은 무엇입니까?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자녀들의 문제는 아버지의 축복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
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출을 합니다. 아버지의 축복은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살 수 있다
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장자는 하나님의 축복권을 받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제사권이
있었습니다. 또한 메시야가 장자의 계보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속이는 자이지만
성경에서 힐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명분을 탐냈던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장 욕심
보다 하나님의 복을 탐냈습니다. 꿈을 가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2001년에는 무엇을 추구하며 사셨습니까?
혹시 에서처럼 죽 한 그릇만 쫓으며 살아오셨습니까? 죽 한 그릇에 목숨을 거는 자이십니
까?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잠 한번 더 자고 공부 한자 더하고 돈을 벌기를 원하십니까?
그래서 자꾸 어느 사이에 나도 모르게 에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중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요한 곳에는 가지 않고 덜 중요한 곳에는 자주 갑니다. 필
요한 것은 안사고 안사도 되는 것은 열심히 삽니다. 안 만나도 되는 사람을 그렇게 열심히
시간내서 만납니다. 이것이 에서의 실수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하나님을 제한합니
다. 진짜로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말년이 외로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대단한 기적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되
었습니까? 또 물질의 떡을 먹으러 몰려 왔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정말 실망하셨을 것입니
다.
영적인 추구를 하지 않는 백성들에게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
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느니라" 이것이 분명한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왕의 진미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사자 굴을
선택했습니다. 이들은 그 순간의 판단을 정확하게 한 것입니다. 육신적인 쾌락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택한 것입니다. 이 순간적인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영적인 것을 추구해서만 되지 않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목적
과 방법이 일치해야 합니다. 야곱이 영적인 욕심을 갖은 것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목적은 좋
았지만 방법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왜 야곱이 가족들과 떨어져 살 수 밖에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까? 오히려 장자권을 얻은 후 고난의 길을 갔을까요? 방법의 문제입니다. 야곱은
형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기의 목적을 이룬 것입니다. 야곱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요?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편 75편6-7절에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
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우리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실 틈이 없이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
님이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3년의 공생애를 위해 30년을 기다려 오신 것입니다.
예! 제가 목회하면서 바뀌는 것은 기다림입니다. 제 성격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데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시지 않습니까? 하면서 일 저지르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꾸 야곱의 실수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기다림! 이것이 커다란 축복의 미학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셋째, 에서는 바쁜 것과 중요한 것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데이트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는데 오지 않습니다. 그냥 10분만 지나고 그냥 갑니
다. 아니면 끝까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대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하면 기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가치의 기준을 평가한다고 합니다.
내가 바쁘게 되었을 때 중요한 것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바쁜 것과 중요한 것을 구별하
는 것이 무척 필요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거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는 바가 지금 당
장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인내심은 조바심을 내지 않고 기다리는 능력입니다. 보통 사람들
은 어려운 일을 이겨낼 때 인내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을 때 더 큰 인
내심이 생깁니다.
칭송받은 물리학자 엘벌트 아인슈타인은 네 살까지 말을 못하고 일곱 살까지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베토벤은 음악 교사에게서 '작곡가가 될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아이디어가 없다는 이유로 신문사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톨스토이는 낙제생이었
습니다. 파스퇴르는 대학에서 화학 과목을 잘 못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블랙호크 전쟁에
사령관으로 참전했다가 졸병으로 퇴역 당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중학교 때 낙제생이었습
니다.
에서는 어떠했습니까? 그의 말을 들어보세요. 32절입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급하게 되었으니 중요한 것도 필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밥을 먹지 않아서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의 문제를 전부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그의 평생에 나타
났을 것입니다. 배고픔이 한두 번이었겠습니까? 중요한 것과 바쁜 것을 구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사자굴에 빠져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기도의 습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죽게 될지 모르는 급한 일이 있습
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어느 분야에서 인내심을 잃었습니까? 지금 하고 잇는 일을 포기하거나
'나는 졌다'고 말하려고 합니까? 여러분이 바른 일을 하고 있고, 이미 시작하였다면 인내심
을 가져야 합니다. 끈기를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리면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올해 분명히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물론 바쁜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배를 빠지고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나는 에서처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결혼식, 공부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적당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물론 바쁜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생
각해야 합니다.
에서는 급한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산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문
제가 생깁니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에 '이삭이 에서를 낳고' 해야 하는데 '야곱을 낳고' 라고 된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은 항상 급한 일만 하고 급하게 쫓겨다니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보다 더 중요한 선물은 없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선물과 현대라는 단어가 무엇입니
까? present 아닙니까?
결국 에서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내가 죽게 되었으니--" 라는 생각 때문입니
다. 한끼 못 먹는다고 죽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에서는 너무나도 급박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자권 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평생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에 잡혀 있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미래는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나에게 주
신 장자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습니다. 그만큼 위급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렇
습니다. 내게 가진 것이 많습니다. 정말 굶고 계십니까? 죽을 만큼 말입니까?
에서도 죽게 되었습니까?
정말 죽는다면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것이죠.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34절을 보면 그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이 더욱더 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실수할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살수는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실수를 통하여 절망의 늪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반복되는 실수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살수는 한번으로 족합니다. 실수하고 무너졌지만 예
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 새롭게 지음 받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런 거룩한 종들
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을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
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자꾸 에서가 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복을 우습게 버리지 마
십시오, 하나님도 우리를 우습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있는 영광은 들의 꽃과 같다는 것입니
다. 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운 꽃도 이틀만 지나면 시들어 버립니
다. 이 세상의 영광이 그렇습니다. 젊음이 그렇습니다. 마치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직장에서 좀더 인정받기 위해서 신앙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리고, 자기가 추구하는 어떤 목표를 위해 말씀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이름
은 가장 어리석은 자의 명단에 남게 될 것입니다.
자꾸 에서가 되고 있습니까? 이제 내 안에 사랑을 잘못 준 부모님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사랑을 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전적
으로 구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눈앞에 육적인 갈망으로 인해 영적인 것을 놓치면 안됩니
다. 그리고 바쁜 것과 중요한 것은 분명히 구별하며 에서보다 야곱과 같은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