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義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
참된 신앙이란 무엇을 하든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을 의미하며 진정한 보상도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웃과 관계에서 구제와 하나님과 관계에서 기도와 자신과 관계에서 금식을 통하여 이 원리를 적용해 주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구제할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사람에게 보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착한 일을 하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기도에 대하여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기도로써 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느냐 못 믿느냐 하는 것은 그가 오랜 신앙생활을 했느냐? 안 했느냐? 그에게 기적과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그가 환상을 보았느냐? 안 보았느냐?, 그가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은 외적인 모습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적인데서 찾아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기도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그것을 통하여 영적인 자양분을 공급받습니다. 기도가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공기나 물이나 태양의 공급이 없어 그대로 말라죽어 버리는 식물처럼 말라죽어 버릴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보다는 기도하고 있는 우리들 자신이나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예수님은 위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 잘못된 신앙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두 그룹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외식하는 바리새인들 기도요,
둘째는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의 기도입니다.
1, 바리새인들처럼 하지 맙시다
5절 "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원래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행3: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행10: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행10:30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바리새인들도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를 했고 그리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러 가는 도중에도 큰 길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에게보다는 옆에서 보는 사람들을 의식하여서 기도했습니다 즉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거룩하게 보이고, 위대하게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예수님은 눅18:10-13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사실 기도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보면 그것은 마치 중노동과 같이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눅 22: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왕상 18: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일곱 번씩이나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적 형식의 탈을 쓴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기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한 봉사요 헌신입니까?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그 봉사를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의 칭찬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겉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찬양했든, 어떤 모습으로 기도했든 우리 안에 품은 생각이 무엇인가를 보고 계십니다.
욥 34:21"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시11: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신 그것이 우리들의 진정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으로 나타난 모습만을 보고 평가해서 안됩니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 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우리는 우리가 거룩하게 기도하면서도 죄를 지을 수 있고, 성경을 가르치고 선을 행하며 구제와 봉사를 하면서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행한 이 모든 선한 행위에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의식했다면 그것은 위선이요, 교만일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자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이요, 자기 신앙에 자기가 도취되었던 사람들이요, 자기 이상으로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 없다고 자만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이 회당 어귀에서 기도하거나 큰 거리에 서서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했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이방인처럼 하지 맙시다
7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重言復言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여기서 이방인이란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사실 그들은 과학이나 철학, 혹은 자기 자신을 신뢰합니다 때로는 돈과 권력과 성(性섹)이 그들의 우상일 수도 있고 雜귀신들이과 자연신 등이 우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우상들에게 하는 기도는 의미 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되 뇌입니다. 거기에는 기도하는 내용이나 기도의 대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도하고 있는 자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불교에서 염불하는 것과 카톨릭에서 반복하여 외우는 기도문 도 비슷한 속성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도 그와 비슷한 위험성 있는 기도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외우는 주기도문입니다. 잘못 사용하면 주님이 가르쳐주신 그 귀한 기도문을 이방인들의 중언부언하는 기도수준으로 전락시키게 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특별히 이방인들의 중언부언의 기도는 기도의 내용인 質보다는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가의 量이 중요합니다.
이방인들은 무슨 기도이던 시간을 많이 끌고 많은 양의 기도를 하면 그들이 섬기는 신이 들으신다 고 생각합니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갈멜산 위의 대결에서 보듯이 바알신을 섬기는 선지자들의 기도를 보십시오
왕상18:26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깐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지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아침부터 낮까지 낮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동안 많은 량의 기도를 했으나 내용이 없는 기도였습니다
참된 기도에 있어서 기도한다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기도하며 누구에게 기도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기도는 한마디를 해도 하나님과 관계 있는 생명력 있는 대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을 많이 해야 들으시는 분도 아니고 화려한 언어로 인하여 감동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그 기도에 진실이 담겨져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할 말을 잃고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마음속으로 진실을 고백하는 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훌륭한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과의 진실한 대화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골방기도입니다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자세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하는 기도입니다 이 말은 반드시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의식하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기도나 자기의 기도를 자랑하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골방에 들어간다는 뜻은 나와 하나님만이 있는 것을 뜻합니다.
즉 짝 기도, 공중 대표기도, 통성기도, 산기도 등 무슨 기도를 하든지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만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입니다.
또 골방에 들어갈 때 문을 닫으라고 하신 것은 사람들이 골방에 들어가 기도를 하면서도 자기가 골방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러한 유혹을 끊어 버리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적인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간사한 마음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할 것은 기도는 자기의 영적 과시가 될 수 없으며 자기 신앙의 하나의 훈장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즉 자기가 며칠간 금식기도 했다는 것을, 산기도 했다는 것을, 철야기도 했다는 것을 스스로 무엇을 이룬 것같이 자신에게 설득시키지 마십시오. 그 기도는 이미 그 자체로 그 시간에 끝난 것입니다.
8절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이것은 기도에 대한 결론입니다
산상설교 5-7장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너희는 천국 백성으로서 세상 사람과는 다르고 종교 전문가들과도 다르다. 그러므로 너희는 저희를 본받지 말라." 그렇습니다. 무엇이 달라야 변화를 줍니다. 기도에 있어서도 달라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바리새인들과 같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는 안됩니다
둘째/이방인들과 같이 내용 없는 기도를 반복적으로 重言復言해서도 안됩니다
셋째/진실된 기도는 골방에서 문을 닫고 해야합니다
즉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하는 기도요 사람을 의식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넷째/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합니다
8절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이것은 기도하는 자의 확신입니다 ,
마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약4:2-3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바로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참된 기도를 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구하면 주시는 분이 아니라 구하기 전에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단순하게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그 이상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은밀한 중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짧게 기도해도 응답하시고, 길게 기도해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를 잘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하는 데 있습니다. 혹 서투르더라도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기도는 하나님과의 생명 적인 관계요, 살아 있는 교제요, 사랑의 대화이기 때문에 기도 속에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과 치료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향하는 믿음이 불처럼 일어나는 역사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이웃을 향하여 사랑과 용서의 손을 펴게 되고, 기도할 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권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기도를 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저희를 본받지 말라"는 말은 곧 예수님만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되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는 기도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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