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등한히 여김 2002-02-04 13:38:31 read : 1868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히2:1 ~ 4 // 2002. 1. 20
1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 하셨느니라
이 땅에 살면서 중요한 것이 많습니다만, 그 중에서 건강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명예와 부귀, 지위, 모든 것이 다 소용없습니다. 얼마 전에 병원에 입원해 계신 한 집사님을 방문했습니다. 그 분은 돈도 많고 건강하게 살아왔어요. 그런데 50대 중반쯤에 완전히 건강을 잃어 버렸어요. 그 후 평생을 병상에서 지내야 하는 불행한 분이셨는데, 제 손을 잡고 이렇게 이야기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목사님, 건강만 있으면 평생을 감사하며 살 것 같아요. 그 동안 건강한 것, 감사하지 못한 게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몰라요. 제가 건강만 되찾을 수 있다면 파출부를 한들 어떻습니까? 즐겁고 행복하며 감사하게 살 것 같아요."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질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특히 중요한 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병은 수백 가지가 넘습니다. 그것이 우리 주위에 병원이 이렇게 많은 까닭이겠지요. 병 가운데는 중요한 병이 있고, 그렇지 않은 병이 있어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모든 행복을 앗아갈 중요한 병이 있어요. 저는 몰랐는데, 발에 생기는 무좀도 병이더군요. 발에 생긴 무좀 때문에 피부과 의사를 찾아갔어요. 간단하게 약만 바르면 될 줄 알았는데 3개월이나 약을 먹으라는 겁니다. 제가 약을 안 먹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3개월이나 약을 먹으면 위장 다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병은 조금 불편해도 약 안 먹고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근경색, 뇌경색, 중풍 등이 왔다고 해보세요. 그냥 지나칠 수 없죠.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병입니다.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병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되고, 예방해야 되고, 병을 초기에 발견해서 고쳐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도 반드시 피해야 할 병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저는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영적 건강을 위해 피해야 할 몇 가지 질병에 대해서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다섯 가지 질병을 차례로 강해할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다섯 가지 질병을 택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히브리서에는 다섯 가지 경고문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경고문을 깨닫지 못하면 히브리서를 올바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 다섯 가지 경고문은 따로따로 노는 것이 아니고 히브리서 문맥 가운데 나옵니다. 오늘은 2장 1절부터 4절의 경고문을 공부합니다만, 사실은 1장 전체를 다루지 않고는 이 경고문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건강을 해치는 중대한 질병 다섯 가지! 우리가 이 질병에서만 헤어날 수 있다면 저와 여러분의 영혼은 건강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다섯 가지 질병을 다루는 동안 혹시 우리 안에 그런 병이 찾아왔다면, 조기발견 하셔서 다 고치시고 건강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1)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병
굉장히 특이한 병명이지요. 이 세상에 병명이란 것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병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어요. 어떤 병은 발견한 사람 이름을 따서 병명을 붙이기도 합니다.
병은 원래 있었는데, 사려 깊은 의사들이 진찰하고 관찰하다가 그 병을 발견하는 겁니다.
오늘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병은 누가 발견했을까요? 박정근 목사, 바로 제가 발견한 겁니다. 제가 목사님들에게 히브리서를 강해하다가 이 다섯 가지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질병이 찾아올 수 있고, 이 병에 걸렸을 때 우리의 영적 건강을 잃을 수 있음을 알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을 연구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 병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병이 어떤 병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가? 본문에서 간단하고 직접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3절을 보세요.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1절에서는 이 말씀을 반대말로 설명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삼가 한다'라는 단어를 연구해 보니 '주의를 기울이다' 즉 영어로는 'Pay attention to'입니다. '관심을 가지다, 주의를 집중하다' 라는 뜻입니다. 미국에서 선생님 혹은 연단에 올라간 사람이 많이 쓰는 말입니다. "저에게 주의를 집중해 주시겠습니까? (May I have you attention please!)" Attention(주의)입니다. 여기서는 삼간다고 번역했지만, 사실은 주의를 집중시키는 겁니다.
즉, 구원을 등한히 한다는 것은 주의를 집중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관심입니까? 1절의 '모든 들은 것'을 말합니다. 이 모든 들은 것은 1장에 기록되어 있어요. 1장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1장 2절)"
하나님이 무엇인가 하실 말씀이 있어서 선지자를 보내고, 기적을 통해 나타내셨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셨는데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자, 이 모든 날 마지막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 오셨습니다. 제2위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겁니다. 그 분이 누구인지 여덟 가지로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와서 전해 주신 그 소식, 그 말씀, 그 메시지, 다른 말로 하면 복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그것을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원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지 않는 것을 성경은 영혼의 심각한 질병이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주의하십시오! 복음을 모른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날마다 나와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습니다. 복음을 너무나 잘 압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명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겁니다. 복음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땅의 삶과 나의 건강, 사업과 그 무엇이 복음보다 위에 있고 복음은 뒷전에 있는 것을 가리켜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질병이라고 하나님은 진단하시는 것입니다.
■ 증 세
병에 걸리게 되면 증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라리아에 걸리면 고열이 납니다. 식중독에 걸리면 배가 아픕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병에 걸려도 증세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증세가 복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1) 복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덕과 철학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설교를 할 때도 농담과 세상 상식을 얘기하면 아주 좋아하다가, 십자가 얘기를 하면 표정이 달라집니다. 반대로 관심을 끄는 사람도 있어요. 십자가 복음의 '복음' 소리만 들어도 우리 마음에 감동이 넘쳐야 할 줄 믿습니다. 만약 우리들 가운데 '십자가 설교'하는 것을 불편해 하며, 복음 전하기를 싫어하는 증세가 있다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질병에 나도 모르게 걸린 겁니다.
2) 다른 사람의 영혼에 무관심하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봅시다. 영안 교회에 어떤 사람이 옵니다. 그 사람을 관찰하기를, 직업이 무엇인가? 어떤 차를 타고 왔는가? 재산이 얼마이며, 몇 평 짜리 아파트에 사는가? 새가족이 오면 그런 것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그 영혼이 구원받았는가? 저 사람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는가? 저 사람이 오늘 죽는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병에 걸리게 되면 사람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어집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면 하나의 사회단체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저는 때로 거물(?)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 교회에 오셔서 십일조를 한 달에 2백만 원씩 했어요. 그러나 그 사람이 우리 교회를 떠났답니다. 재정부에서 알려줘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사람이 헌금을 많이 하니까 옮긴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직접 와서 데려갔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6개월이 되도록 심방 한번 안 갔으니 떠나갈 만 했겠지요. 저도 여러분이 내는 헌금을 다 보고, 그 사람의 재산 상태를 조사하면서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존재하는 이유, 목회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영혼에 대한 관심인 줄 믿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 형제와 부모, 주위 사람의 영혼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여러분은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겁니다.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병에 나도 모르게 걸린 것입니다.
3) 현실에 집착하게 된다
관심이 늘 땅의 것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할까 해서 모이면 생식에 관해, 물과 비타민에 관해 얘기합니다. 이런 얘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만 얘기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감격을 나누고, 일주일 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승리하신 간증을 나누어야 하는데, 만나면 물질 얘기하고 관심이 늘 사업에 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승진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 무엇을 드리면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갈 것인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의 관심이 땅에 있을 때, 이것은 내가 질병에 걸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아보지 않겠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복음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주위 사람의 영혼에 대해 무관심하지는 않습니까? 땅의 일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오늘 조기발견 하시기 바랍니다.
암도 그렇습니다. 조기발견만 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들어온, 깨닫지 못하는 영혼의 무서운 질병이 싹트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 말씀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 결 과
병에는 증세가 있고, 반드시 병의 결과가 있습니다. 심각한 눈병에 걸리면 시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범일 교회 김용대 선교사님 얘기입니다. 손톱 위에 자꾸 점이 생겼어요. 그런데 무시해 버렸어요. 몇 달 후, 손가락이 자꾸 이상한 것 같아서 검진을 받았더니, 무슨 암이래요. 그래서 손가락 전체를 다 절단했어요. 병이란, 항상 결과가 따르는 겁니다.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병에도 결과가 따른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1절)
'흘러 떠내려가다'란 단어를 연구해보니 '파라로멘'이란 단어입니다. 성경이 쓰여질 당시에는 세 가지 의미로 이 단어를 썼어요. ㉠ '배가 정처 없이 물결을 따라 떠내려간다'는 뜻입니다. ㉡ '중요한 반지 같은 것이 손가락에서 빠져나간다'는 뜻입니다. ㉢ '항아리가 깨져서 물이 다 새나가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떤 결과가 있는가? 우리의 인생이 방향을 잃고 방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교회에 매일 나와 예배를 드리고, 집사 직분을 가지고 교회에서 충성한다고 해도 구원들 등한히 여기게 되면 -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복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땅에만 관심을 가져서 내 영혼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질병에 걸리게 되면 - 내 인생은 방황할 수밖에 없고, 훗날 인생을 결산할 때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후회하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반지를 잃어버리듯, 물이 다 빠져 나오듯이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세요? 구원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모든 것이 어디에 이어져 있습니까? 바로 구원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과 구원을 등한히 여길 때,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은 모래 위에 쌓은 집과 같이 언젠가 흘러 떠내려가 버린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이 질병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왜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안 되는지 성경은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3절, 4절을 보세요.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3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 하셨느니라(4절)
왜 구원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야 할까요? 이 구원은 주께서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도덕적인 교훈과 살아가는 것은 다른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지만, 구원에 관한 것만큼은 예수님을 통해 직접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이 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1장 1절부터 봅시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만유의 후사이며, 이 땅을 지으신 창조주시며,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시며, 본체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죄를 정결케 하신 자이며,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으신 분입니다. 바로 이 분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셨기 때문에, 이 분이 구원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셨기 때문에, 구원에 대해 우리의 주의를 집중해야 되고, 평생 살아있는 동안 구원에 우리의 관심을 모아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열두 사도에게 그 말씀을 부탁하셨어요. 그리고 열두 사도들이 그 말씀을 전할 때 표적과 기사와 성령의 은사가 일어난 것을 다 체험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성령님을 왜 보내셨는가? 구원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절과 3절 상반절에 놀라운 결론이 나타나 있습니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복음과 율법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셨는데, 성경에 왜 천사가 주었다고 합니까? 그 이유는 율법을 받을 때 시내산에 천사가 나타났어요. 천사를 통해서 준 율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었어요. 구약에 보면 안식을 범한 자와 간음한 자와 거짓말한 자는 돌로 쳐죽였어요. 천사들이 준 율법이 이렇게 공변된 보응을 받았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준 복음을 등한히 여긴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섭겠는가? 우리는 떠내려갈 수밖에 없다 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영안 성도 여러분!
구원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회복시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스스로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구원을 어떻게 생각해 오셨습니까? 십자가 복음을 깊이 알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습니까? 이 땅의 부귀보다 십자가를 더 사랑하십니까?
저는 어느 날 이런 답답함을 느꼈어요. 이게 내가 소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어요. 할아버님이 목사님이었어요. 중학교 때 예수님을 영접했던 것 같아요. 신학교에 들어가면 복음의 열정이 나를 사로잡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옛날의 신학교는 4년제인데, 수준 높은 농담이 있었어요. 1학년 때는 목사가 되어서 들어옵니다. 열정도 있고 거룩합니다. 2학년 때는 전도사가 됩니다. 3학년 때는 집사가 되고, 4학년 졸업반이 되면 평신도가 되어서 나간답니다. 신학교육도 잘못 받으니까, 은혜를 충만케 하기보다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더라고요.
목회 하다가 어느 순간 내 안에 십자가의 은혜가 목마름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요. 십자가 단어가 들어간 책은 다 사서 읽었어요. 몇 권이고 읽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 꿇었어요. "아버지 하나님, 제가 다른 소원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깊이 깨닫게 해 주시고, 십자가의 감동이 내 생을 적시게 해 주세요. 십자가의 은혜가 강같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며 책을 읽고, 기도하며 책을 읽는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런 축복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찬송을 하는데 제 마음에 감격이 넘쳐흘러요. 그날 이후부터 '십자가 설교'를 할 때는 그냥 하지 못합니다. 내가 너무 펄펄 뛰면 안되니까 절제해야지 하고 오늘도 결심하고 왔어요. 어젯밤에 잠을 못 잤어요. 마루바닥에 꿇어앉아 기도했어요. "아버지 하나님, 제가 이 설교를 하기 전에 십자가의 복음이 나를 한번 점령하기를 원합니다!" 밤새 기도했어요.
여러분, 십자가를 깨달으셨습니까? 구원의 감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질병에 걸릴 때에 우리는 흘러 떠내려가는 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질병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그 해결책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 해 결
1) 구원을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임종을 맞게 되었어요. 미 육군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병원에 몰렸어요. 의사가 가족과 대통령에게 알려줬어요. "대통령 각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가족에게 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모든 사람을 다 나가라는 겁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불러주기를 원했어요. 바로 빌리 그레함 목사입니다. 그 방에 급히 찾아온 빌리 그레함 목사와 대통령 둘뿐이었어요. "각하,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평생을 그리스도인으로 교회에 출석하며 살아온 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어요. "빌리, 나를 좀 도와주시오. 이제 곧 이 땅을 떠날텐데 임종을 맞고 보니 하나님을 만날 확신이 없소! 지금 숨을 거둔다면 천국에 갈 확신이 없소! 이 아이젠하워의 마지막 부탁이오."
그때 빌리 그레함 목사는 그 짧은 시간에 간단한 복음을 그에게 전했습니다. "각하, 이 세상에 착한 행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가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수십 년 간 살면서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생 나쁜 일 하지 않고 좋은 일만 했다고 해도 착한 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부족한 사람이에요. 바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이 죄인의 상태를 너무나 하나님께서 잘 아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시고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그 분의 죽으심은 바로 당신을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대통령 각하, 안심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히 받으십시오! 그냥 받으시면 됩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눈을 감고 묵상과 기도를 한 것 같았어요. 빌리의 얘기를 듣고 얼굴이 환해지더니 "빌리, 고맙소! 이젠 준비가 됐어!" 하면서 기쁘게 떠났습니다.
여러분, 구원이 무엇입니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추상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할 것도 없어요. 구원이란 마지막 순간에 있는 겁니다. 최후 승리입니다. 죽음도 이기는 최후의 승리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평생 교회에 나와 충성하고도 마지막 순간에 구원 얻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도 규모가 점점 커져서 1년에 많은 장례가 있습니다. 그 분들을 떠나보내며 언젠가 저와 여러분의 차례가 될 것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떠나야 합니다. 평생 이 땅에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날이 온다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 품에 안길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형벌에 안길 것인가! 그 순간을 생각한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무슨 대수입니까? 건강하든, 다리 한쪽이 없든, 전세방에 살든, 60평 아파트에 살든. 중요한 것은 죽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인 줄 믿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재미있는 얘기를 했어요. 자기가 천국과 지옥을 다 가보았는데, 비율로 봐서 착한 일과 악한 일을 한 사람이 비슷하게 와 있더랍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달았어요. 지옥에는 악한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구나! 지옥에 누가 가느냐 하면 다 떠내려온 사람들이 왔더라는 겁니다. 지옥 가고 싶으세요?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등한히 여기시면 됩니다. 무시해 버리시면 됩니다.
미국에 '페리'라는 탐험대가 있었어요. 남극에서 북쪽에 갈 목표를 정해놓고 계속해서 얼음을 사흘간 등반했어요. 북쪽에 다 왔다고 "야호!"하고 깃발을 꽂았는데, 인공위성에서 찍어보니까 한참 남쪽으로 와 있었어요. 알고 봤더니 한반도 땅덩어리만한 얼음이 떠내려간 겁니다. 이 얼음이 남쪽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는데, 자기들은 북쪽으로 간답시고 계속 등반한 겁니다. 그리고 최고 끝에 가서 "야! 북쪽이다!"
지옥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죽어라고 선행을 하고, 자기 생각대로 교회를 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자들이 다 떠내려가서 지옥에 간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오늘 이 아침에 심각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구원 받으셨습니까? 물으셔야 합니다. 오늘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천국으로 부르신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 질문해 보십시오. 구원 받으셔야 합니다.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마세요. 교회에 왜 나오는가, 목사가 왜 존재하는가,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가! 구원받기 위해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구원에서 자라가야 한다
구원은 언제 받을까요? 어떤 분은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지만, 저는 잘 모릅니다. 어느 날 복음을 듣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더라고요. 분명한 것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은 즉시 이루어질까요? 몇 년만에 이루어질까요? 즉시에 이루어집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 후반부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어요. '이루라'는 단어가 현재 진행형입니다. 계속해서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양쪽에 두 강도가 같이 달려 죽었어요. 한 강도는 끝까지 자기 죄를 뉘우치지 않고 예수님에게 비난을 퍼부었어요.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면 너도 구원하고 나도 구원해 봐라!" 하고 비웃었어요. 또 다른 강도는 그 강도를 책망하며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받을 벌을 받거니와 그 분이 무슨 죄가 있느냐!"하면서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옵소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
그 강도가 교회에 나가고, 헌금하고, 착한 일 했나요? 아닙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믿는 그 순간, 우리는 구원받는 줄 믿습니다.
성경은 또 한 가지의 구원을 얘기합니다. 구원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혼돈하여 신앙생활에 당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구원 속에 세 가지 측면의 구원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과거적, 현재적, 미래적 구원입니다.
미래적 구원은 천국에 갈 때 이루어지며, 종국적(終局的)인 구원이라고 합니다. 완성된 구원이라고도 합니다. 이 구원을 받는 날, 우리는 죄와 상관이 없어집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리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도 유혹이 찾아오면 마음이 흔들리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종국적인 구원을 얻었을 때는 죄를 보아도 죄 짓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과거적 구원을 신분적(身分的) 구원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내 신분이 바뀌는 겁니다. 임금이 지나가다가 다리 밑에 있는 거지를 데려다가 호적에 올렸어요. 제가 깡통 들고 다니는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호적에 올렸어요. 그 아이는 그 날부터 제 아들입니다. 거지는 그 날로 왕자가 되는 겁니다. 신분이 변해버린 겁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우리를 발견하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내 신분이 바뀌어 버리는 겁니다. 이것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현재적 구원을 과정적(過程的) 구원, 성화적(聖化的) 구원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라는 명령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하나님의 명령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구원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어 가야 합니다. 어떤 분은 분명히 구원받았어요. 제가 확인해 봐도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했어요. 그런데 신기한 게 부부관계가 안 변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원수이던 관계가 변함이 없습니다. 애들에게 물어봐도 우리 엄마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답니다. 이것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야 하듯 우리도 자라나야 할 줄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격이 변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구원받은 것을 신기한 영적인 그 어떤 것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인격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구원 안에서 자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너무나 기도도 유창하게 잘하고 봉사도 잘하는데, 직장과 가정에서 인정을 못 받습니다. 그 사람은 구원 안에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로 우리의 지(知)적인 것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인격은 지(知), 정(情), 의(義)로 구성되어 있어요. 지식과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삼관(三觀)개혁이라고 합니다.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바뀌어야 사람이 바뀐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내 가치관을 바꾸는 겁니다.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습니다. 돈을 좋아하던 사람이 예수 믿었다고 돈이 금방 싫어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치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땅에 것만 추구하는 가치관이 바뀌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감정이 바뀌어야 합니다. 어떤 것에서 기쁨을 느낍니까? 예수 믿고도 여전히 세상 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어요. 감정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 '어떻게 하면 하룻밤에 화끈하게 잘 놀아볼까' 그게 인생의 기쁨인 사람들! 구원 안에서 자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겁니다. 여러분의 감정이 경건하게 바뀌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찬양 한 곡 부르고 나면 마음에 기쁨이 솟아야 합니다.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하여 30분 기도했더니, 마음에 낙심이 다 사라져버리고 내 감정이 똑바로 돌아와야 됩니다. 이것이 감정 안에서 내 감정이 자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의지가 변해야 합니다. 이 땅을 살 동안 늘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충돌하게 되어 있어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해야 할 줄 믿습니다. 저는 야곱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히든 카드(hidden card)를 숨겨놓고 산 사람! 야곱은 평생 믿음으로 살았어요. 장자권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이 예언하셨다고 어머니께 들었어요. 그런데 그는 왜 막판에 거짓말 했을까요? 어느 날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형인 에서를 축복하겠다는 겁니다. 마음이 급해졌어요. 그래서 야곱이 꺼내든 것이 히든 카드입니다. 야곱만 그럴까요? 우리 가운데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평상시에는 믿음으로 잘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급박한 일만 닥치면 히든 카드를 뽑아드는 사람이 있어요. 바로 나의 잔꾀입니다. 의지를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지 않은 겁니다. 저와 여러분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에 굴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구원을 노래해야 한다.
구원을 감사해야 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감사제목을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의 내용이 자녀가 대학 입학했다, 건강과 사업이 좋아졌다 등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감격, 구원을 감사한 적이 있습니까? 한 신학자는 "우리가 구원에 대한 감사만 회복할 수 있다면, 어떤 환경에서든지 행복과 평안과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다."라고 얘기했어요.
예수님께서 "내 오른팔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잘라 버려라. 내 오른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눈을 뽑아 버려라"고 했습니다. 두 눈 가지고 지옥 가는 것 보다 한 눈 가지고 천국 가는 구원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깨닫고 나면 이 땅의 불행을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흘러 떠내려가게 합니다. 저 골짜기로! 구원받은 은혜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즉시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질병으로부터 회복하는 역사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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