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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인의 감사
    2002-01-30 13:47:08   read : 1959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다니엘 6 : 5-10 ( 2001년 7월 8일 )


    단 6: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단 6:6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단 6: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단 6:8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단 6:9 이에 다리오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어느 뜨거운 여름날 한 농부가 호도 나무 밑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호박 넝쿨에 매어 달린 큼직한 한 개의 호박을 보았습니다. 농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도 참. 왜 저렇게 무거운 호박이 약한 넝쿨에 매어 달리게 하셨담? 넝쿨은 약하고 호박은 무거우니 땅에 닿을 듯이 매어 달려 있지 않아?"
    그러면서 농부는 또 머리 위 호도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더욱 하나님이 불공평해 보였습니다. 그 크고 튼튼한 호도 나무 가지들에 겨우 작은 호도들이 매어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참 쯧쯧" 하면서 그만 호도 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 때 "딱"하고 호도 하나가 떨어지면서 농부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깜짝 놀랜 농부는 벌떡 일어나서 아픈 머리를 만지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했답니다.
    "아이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 큰 호박이 이 나무에 매어 달려 있었다면 나는 정말 큰일날 뻔했습니다. 하나님 저 호박 넝쿨에 큰 호박을 매어 다신 일은 참 잘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이 호도 나무에 작은 열매들을 매다신 일도 정말 감사합니다."

    화단 구석에 장미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미는 얼마나 불평이 많았는지 눈만 뜨면 불평을 털어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장미는 밤이면 춥고 어두워서 화단에 못 있겠으니 거실로 옮겨 달라고 주인을 졸랐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화분에 옮겨서 거실에 두었습니다. 얼마 후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여기는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니 창가에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창가에 옮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장미는 창가에는 고양이가 지나다녀서 싫다며 방안 꽃병에 꽂아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다시 장미를 화분에서 꽃병으로 옮겨 방안에 두었습니다.
    며칠 뒤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햇살이 있는 바깥 화단으로 옮겨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장미는 이미 뿌리가 잘려 시들어버렸고 주인은 장미를 뽑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이 왜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만족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맛좋은 음식을 먹어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할까요?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빨리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 데 있다"고 영국의 윌리엄 로우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행복을 누립니다.
    또 빌헬름 웰러 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단지 불평을 하느냐 아니면 감사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합니다.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 힘든 일과........ 환경은 비슷합니다만 감옥에서는 하루하루가 대개 불평으로 가득하고, 수도원은 감사로 하루가 지납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지적합니다.
    반면에 어거스틴은 "인간에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할 것이지만, 자기더러 한 가지만 더 말하라고 한다면 서슴치 않고『감사』를 말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인간과 짐승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짐승은 자극을 받으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인간은 응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반응을 영어로 'reaction'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응답은 'response' 라고 합니다. 이 reaction과 response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동물은 다만 반응으로 삽니다. 사물에 대한 즉각적인 반사작용을 나타내고 삽니다. 춥다, 덥다, 배고프다, 아프다, 이것은 반사이며 하나의 반응입니다. 어떤 밖으로부터 오는 즉각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응답이란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고 또 마음에 새기고 그 다음에 자기 것으로 이것에 대해서 인격적으로 응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에 우리 지역에서는 이런 동물적인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웃집 부부가 밤마다 잠을 자지 못하도록 싸운다고 화가나서 이웃집 부부를 죽인다고 한 것이 다른 집 부부를 죽였습니다, 공중전화를 이용하려다가 사소한 시비로 싸우던 사람을 말리는 사람에게 흉기를 휘들러 사람을 죽이고, 보험설계사를 해고했다고 해서 보험회사 지점장을 살해하고, 빛을 갚지 않는다고 윗 동서부부를 죽였습니다. 사람이지만 어찌 저들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은 있었지만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고, 그리고 결단하여 응답하는 것이 없습니다. 점점 사람이 동물화, 물질화, 비인간화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사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수준 높은 응답입니다. 아프면 원망하고 나으면 감사하고, 또 아프면 원망하고, 이것은 단순한 반응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려울 때 깊이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오히려 일이 잘될 때 또 한 번 생각하고 겸손합니다. 또 한번 생각하고 회개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응답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단순한 반응이냐 응답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

    본문에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 들어갈 때 억울하게 붙잡혀 가게 된 포로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 노예 생활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우리들이 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다니엘은 이 노예 생활가운데서도 신실하고 성실하게 믿음으로 살아서 마침내 그는 왕에 의해 기용되고 높이 등용되어 이제 메대, 파사 나라의 총리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메대 왕 다리오 왕은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하여 도지사 같은 방백 120명을 두고 그 위에 또 그들을 다스리는 총리 3명을 두고 자기는 그 위에 앉아서 정치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 중에 다니엘이 더 출중하고 지혜롭기 때문에 다시 더 올려서 다니엘로 하여금 온 백성을 다스리게 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방백들이 그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마침내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어찌하든지 다니엘을 완전히 잡아 없애려고 하는 계획을 하게 됩니다. 그들이 가만히 보니까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어김없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거든요. 그것을 알고 전국에 있는 방백들과 총리들이 모여서 이제부터 30일 동안 왕 외에 어떤 대상에게나 신에게 무엇을 구하는 자는 사자 굴에 넣기로 한 법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왕에게 가지고 와서 요구합니다. 왕이 가만히 들어보니까 자기를 더욱더 충성하게 하는 것이거든요. 거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실 방백들이 왕에게 충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였습니다. 왕은 그 내막을 모르고 그들이 요구한 법령을 허락하고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파사 전역에 배포하도록 하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포기하면 살 수 있으나 믿음을 지키면 사자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태도를 보십시오. 그 큰 위기가 왔어도, 죽음이 닥쳐왔어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 신앙인의 감사가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절대적 감사

    10절 말씀을 보시면 다니엘은 “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 ” 도 감사했습니다.
    죽어서 사자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줄 알고도 다니엘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감사의 표본을 보여줍니다. 신앙인의 감사는 절대적 감사여야 합니다. 소유의 다소에 따라서 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고통의 유무에 따라서 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다니엘에게 죽음이 왜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왜 슬프지 않겠습니까? 그 고통과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감사요, 성숙한 감사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때문에 감사하는 그런 감사가 아닙니다. 가끔 방송에서 소말리아나 방글라데시의 나라를 보여줍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굶주려 죽는 나라들, 그 나라를 보면서 하는 말이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감사해야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감사는 얄팍한 감사요, 이기적인 감사입니다. 상대적인 감사입니다. 우리도 저렇게 가난하게 되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 때가서는 원망하고 불평하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사람들을 보면 불의한 사람으로 잘 되는 사람, 악하고도 잘 사는 사람, 갖은 못된 짓을 하고도 출세하는 사람, 오래 사는 사람, 여러 가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시편에 “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고하였지 않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상대적 감사란 즉각적으로 어느 시간에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사람보고 감사했으면 사람보고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있다고 감사했으면 없다고 원망할 것입니다. 병 나았다고 감사했으면 다시 아프다고 원망할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되었다고 감사하였으면, 이제 그 사업이 실패한다면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업이 잘못되어도 정부를 욕하고, 가뭄이 계속되어도 정부를 원망하고 또 장마가 계속되어도 원망하고, 이 원망의 마음이 가슴속에 항상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 원망의 마음 깊은 곳에 이기적인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잘된 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을 몰라요. 고맙게 여길 줄을 몰라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본다든가 하면 머리에 붉은 띠 매고 데모하러 달려갑니다. 자신의 책임을 전혀 묻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 다 감사의 체질이 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적 감사, 절대 은혜, 절대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어떤 상황에서 감사를 하였습니까?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열매가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직선적 관계 속에서 나온 감사

    하나님과 직선적인 관계 속에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보고 비교하고 내가 좀 앞서가거나 우위에 있어서 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환경을 보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직선적인 그런 관계, 직선적인 그 관계 속에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도 그렇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하루에 세 번씩 정한 시간에 꼬박 꼬박 나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다니엘의 모습 속에서 그가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직선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인격적으로, 개인적으로 마주 앉아서 생각을 해보십시오. 다른 사람, 지금 처한 환경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었건 나같이 부족한 사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원망하든지 나는 하나님 앞에 너무도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미우라 아야꼬 여사, 그녀의 반평생은 병주머니의 반평생이었습니다. 폐결핵, 척추카리에스, 띠 모양 습진, 파킨스병, 그리고 암 등 갖가지 질병 속에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 속에서 그는 위대한 작품들을 생산해 냈습니다. 이 여인이 고통 속에서 암송한 시가 하나 있는데 작자미상의 “ 아프지 않으면 ” 이라는 제목의 시였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뵈지 못할 성안이 있다.
    아아 ,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 없다.
    아픔이 있기 때문에 기도가 있었고, 노래가 있었고, 신앙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아픔 속에서 영광스런 작품들이 나왔고 그 작품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아야꼬 여사가 누워 있는 병실에는 다른 환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아야꼬 여사는 아픔 속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을까? ”
    그녀는 기도하는 가운데 “ 비록 나는 아프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기쁨을 보여 드려야겠다. ” 고 결심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그녀는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사가 오면 부드럽게 웃었고, 옆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녀는 주님의 절대적 은총을 알았기에 병주머니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 있을 때 절대적 은총과 축복을 압니다. 그래서 환경을 초월하는 절대적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다니엘은 의로운 고통을 영광으로 선택했습니다. 죄와 타협하며 비굴하게 살아가기보다는 차라리 깨끗하게 이대로 사자굴 속에 죽어 가는 것을 그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소유보다는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고, 더러운 이득보다는 영광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런 질적 가치를 지닌 삶을 살았습니다. 거기에서 그런 성숙한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출세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바르게 살았습니다. 이것을 감사합니다. 번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진실했습니다. 나는 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귀한 믿음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더 크게 여길 때 비로소 진실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영광을 소유보다 더 큰복으로, 성결을 장수보다 더 큰복으로 그리고 부귀와 영화보다는 차라리 의로운 죽음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감사한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얻는 것과 잃은 것은 항상 반복됩니다. 그러나 항상 얻은 것이 더 큰 것임을 아는 사람만이 감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 사람들의 폭격에 의해서 영국의 어느 마을이 아주 초토가 되었는데, 아주 좋은 저택하나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폐허가 된 땅에 서 있는 내외분에게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위로하느라고 이런 말, 저런 말로 위로를 합니다. “ 아주 다 잃어버렸군요. 아주 다 없어지고 말았군요.” 그 때에 남편은 아내를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 여보 다 잃어버렸다고 말하지 맙시다. 당신이 있고, 내가 있고, 건강이 있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은 지혜가 있고 믿음이 있고, 이 폐허에 다시 집을 지을 때는 더 새 집을 지을 수 있는 희망이 있지 않소? ”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소. “
    그렇습니다. 다 잃어버린 것 가운데서도 얻은 것이 있는 줄로 아는 사람, 더 크게 여기는 사람, 이 사람에게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2001년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지가 벌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경제적, 심리적, 정신적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있지 않습니까? 잃은 쪽보다는 얻은 쪽을 더 생각하십시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얻었고, 겸손함과 진실함을 얻었고, 하늘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하늘의 복을 얻었습니다.
    바울의 삶의 환경은 항상 고통의 터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실존은 항상 감사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 그는 외칩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로 기도하라. ” 그는 감옥에서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기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니 너무 너무 감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얻은 것,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 할 수 있는 덕일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체질화된 감사

    또 한가지 다니엘의 감사는 체질화된 감사였습니다. 10절 말씀 가운데 보면 “ 전에 행하던 대로 ”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아오던 중, 죽음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죽음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으나 그의 감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왜요? 감사가 생활화되고, 체질화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일에도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언제든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삽니다. 그러기에 큰 일을 만났어도 하나님께 “ 전에 행하던 대로 ”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자가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맞이하면서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열 가지 감사한 것이 유명하지 않습니까? 아들을 순교자 삼은 것 감사하고, 고통스런 세상보다는 눈물이 없고 고통이 없는 천국에 먼저 가게된 것을 감사하고--
    어떻게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선택적 조건에 따른 반응이 아닙니다. 범사에 해야 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감사가 생활화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하는 성품으로의 중생이 필요합니다. 의식적으로 이 감사를 연습하고 훈련해서라도 우리의 심리적, 영적 체질을 감사의 체질로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얻었을 때나 잃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평안할 때나 시련가운데 있을 때나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힘써서 구하고 부르짖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왜 요? 감사함으로 기도는 비로소 응답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 할 것으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네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염려를 안고 기도합니다. 원망을 품고 기도합니다. 아닙니다. 염려를 맡기고, 운명을 맡기고, 미래를 맡기고 지금 여기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만이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아주머니의 간증입니다. 결혼을 해서 살림살이를 하며 살아가는데 남편이 예수를 믿지 않아요.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술주정뱅이입니다. 퇴근할 때면 여지없이 술에 취해서 들어옵니다. 술에 취해서 들어오니까 몸도 상하고 이래, 저래 아주머니의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남편이 돌아왔는데 잔뜩 술에 취해서 들어옵니다. 술 수발을 다 들어주고, 어지러워진 것을 다 치우고 잠자는 남편 옆에서 잠자리 기도를 하려 하는데 원망석인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 하나님 어쩌자고 저의 결혼 생활이 이지경이 되었습니까? 허구한 날 술주정뱅이 남편을 시중이나 들어야 하고, 다른 남편처럼 다정하게 살지는 못할지라도 매일 밤 이것이 뭡니까? ” 원망석인 기도를 하는데 지난 주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이 났습니다.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아뢰라. ” 이분이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남편에 대해서 감사가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 하나님 아무리 생각을 해도 감사 할 일은 없습니다 만은 좌우지간 감사합니다. ” “ 좌우지간 감사합니다.” 그랬대요. 그랬더니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면서 정말 감사할 생각을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십니까? “ 그래도 과부보다 낳지 않니? 저러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니? 또 생각이 나는데 “ 저렇게 비틀 비틀거리면서도 제집 찾아오는 것이 감사하고, 저렇게 술을 마셨는데도 건강한 것이 감사해, 특별히 감사한 것은 주일 날 교회 잘 갔다오라고 제집 지켜준 것이 감사하더랍니다.
    이래, 저래 감사하다보니까 얼굴빛이 환해 졌어요.
    남편이 눈을 떠서 보니까 희죽, 희죽 웃고 있지 않겠습니까?
    “ 왜 웃어 ”
    “ 감사 할 일이 하도 많아서요 ”
    “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
    “ 아니예요 들어보세요. 구체적으로 이래서 감사하고 저래서 감사하고, 감사한 일을 고백하며 말을 해줍니다.
    남편이 가만히 들어보며 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 걱정 마 예수 믿어 줄께 ”

    이분이 간증하면서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그렇게 많은 날 동안 원망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딱 한번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다니엘, 그는 지금 죽음이 앞에 있습니다. 그래도 그의 마음속에 원망이 없었습니다. 그의 모든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미래를 맡기고 오직 그는 전에 행하던 대로 감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자 굴에 집어넣어 졌으나 하나님이 그를 건져내고 그의 원수들을 하나님께서 오히려 심판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감사의 능력이요, 감사의 축복입니다.

    오늘 2001년도 상반기를 결산하고 하반기를 맞이하면서 다함께 맥추 감사절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절대적 은총과 축복을 기억하며 우리도 절대적 감사를 드리십시다. 끊임없이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다. 감사함으로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절대적 보장과 축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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