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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의 헌신
    2002-01-30 12:42:56   read : 1808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한복음 12 : 1-8 (2001년 3월 25일)

    요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요 12: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
    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 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요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요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 12: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요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일본의 전국시대 때의 사람으로 ' 도꾸가와 이에야스'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오다이' 라는 여인은 참으로 훌륭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적인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성주, 저 성주에게 팔려가기 사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인질로 잡혀가서 '오다 노부나가' 라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 때 그 어머니는 몰래 '오다 노부나가' 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 내 아들을 살려달라 " 고 사정을 합니다. 아들의 생사를 좌우 할 '오다 노부나가' 는 " 내가 당신의 아들을 살려준다면 그 대가로 나에게 무엇을 바치겠느냐? " 라고 묻습니다. 그 때 그 어머니는 " 가장 값진 것을 드리겠다. " 고 하였습니다. " 내 아들을 살려주는 데 가장 값진 것으로 드려야 지요. 내 아들을 살려만 준다면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서 줄려고 하는 가장 값진 것, 그것은 황금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인질로 보낸 그 어머니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 내가 바칠 것은 이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당신도 어머니가 있습니다. 내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어머니의 눈물을 바칩니다." 라고 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도꾸가와 이예야스' 를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김현승씨의 '눈물' 이라는 시 가운데 보면 " 흠도 티도 없는 가장 귀한 것으로 님이 바치라 하오면 나의 눈물을 드리겠다." 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라도, 아무리 더러운 사람이라도 흠도 티도 없는, 내 가슴속에 순수하게 숨어 있는 눈물은 주님이 받으 실 수 있는 너무도 고귀한 액체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아주 아름다운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에게 너무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던 마리아로부터 아주 고귀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이 추억만은 회자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정도로 주님에게 있어서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의 사건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주님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을 섬기고, 베풀고, 담당하고, 치유하고, 다 내어주는 사역만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지순한 한 여인의 사랑을 받습니다.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한 향유를 사랑과 눈물을 담아서 바치는 그 거룩한 사랑을 받습니다. 이 장면이 그래서 주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공관복음에 다 나오는 장면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오늘 본문의 사건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향유를 부으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겨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 때문에 그의 누이들 , 마르다와 마리와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은 감격과 감동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흥분과 충격의 여파가 채 가라 않기도 전에 나사로를 살리신 그 주님이 또 자기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귀빈 중에 귀빈을 맞이한 세 남매는 잔치를 배설하느라 갑자기 분주해집니다. 역시 행동파인 마르다는 열심히 오락가락하면서 잔치를 준비하고, 모든 일을 주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서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그녀가 그 때까지 무엇을 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갑자기 뛰어나오더니 예수님 발 앞에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옥합을 깨뜨려서 붓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붓고 그 발을 머리털로 씻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손님이 오면 극진한 대접으로 반드시 그 손님의 발을 씻어주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하인에게 발 씻기를 명령하는데 가끔 하인들이 심기가 불편할 때는 " 주인님 오늘만은 발 씻는 것을 면제해주십시오. " 라고 거절할 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실 남의 발씻는 것, 그렇게 유쾌한 일이 못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랑하는 남편의 발을 정성 들여서 씻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 우리가 등은 쉽게 밉니다. 그런데 발을 씻어본 경험이 있습니까? 아내의 발을 씻어본 경험이 있습니까? 별로 없을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이 발을 씻는 것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이라도 너무 모욕감을 가질 때는 거절할 수 있었고 그 때는 다른 하인이 씻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 ,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예수님의 발은 어떤 발입니까? 자기 집에 오셔서 생명의 말씀을 주셨을 때 바로 그 발 앞에 있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슬프고 아팠던 오라비가 죽었을 때 , 슬픔을 가눌 수 없어 그 발아래 자기 삶 전체를 엎어놓고 무릎 꿇었던 발입니다. 그 발이 자기를 구속하기 위해서 팔레스틴의 모든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 집에 왔습니다. 그 거룩하신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면류관처럼 소중히 여기는 머리를 풀어서 그 발을 정성껏 닦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여자들은 머리털을 마치 면류관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긴 머리는 언제나 여인의 정조와 정결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게 길러 긴 머리를 자랑스럽게 간수하는 터인데 바로 그 긴 머리를 풀어서 예수님의 발을 씻겼다는 것은 존경에 대한 최고의 표현이고, 사랑에 대한 최고의 고백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마리아의 집에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 저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의 발 위에 붓고 머리를 풀어서 그 머리로 걸레를 삼아 주님의 발을 씻겨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고 조롱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리아는 오직 예수님만을 생각하고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사랑이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자기 보다 상대방을 높이는 겸손이 있어야 하고요. 둘째는 자기 희생입니다. 자기 희생이 없이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자기 소멸입니다. 사랑하는 동안에는 나라는 것은 없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40대에 가서야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연애하느라고 바쁘고 , 결혼하면 아들 딸 낳아 키우느라 바빴다가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 들어가고 남편은 사회에서 자리잡은 후에 그 때에 가서야 비로소 없어진 나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 나는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공부를 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자문자답하는 것입니다. 소외 인생의 사추기로서 위기가 왔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가 없었던 그 시절이 정상입니다. 이제야 정신이 들어서 자아를 찾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만큼 사랑이 식었다는 증거일 뿐 정상이 아닙니다. 자기가 소멸되고서도 소멸된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살던 그 때가 사랑하고 희생하던 정상적인란 말입니다. 자식을 극진히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자신을 위한 일이 있습니까?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한은 자신을 위한 바람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대상만 남을 뿐입니다.

    마리아는 지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오직 사랑하는 예수님만 보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기쁘시게 하고자하는 열망을 가지고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향유를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아 드렸더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마리아가 부어드린 이 나드는 원래 티벳과 인도 접경에 있는 히말리야의 높은 고산지에서 나오는 향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귀하고 값이 비싸기 때문에 다른 원료와 석어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순전한 나드 한 근이라고 하였습니다. 석지 않은 진짜 향유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가룟 유다가 돈으로 계산해보니까 300 데나리온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일년동안 먹지 않고 쓰지 않고 번 돈만큼의 값이 나가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평가와 비난
    이렇게 귀한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마리아의 행위를 보면서 비난을 합니다. 4절과 5절입니다. "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

    아니 그렇게 비싼 것을 저렇게 허비하다니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정의를 내세우고 있으나 유다는 돈에 욕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

    여러분! 말이 논리적으로 맞다고 그 말이 다 진실한 말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이 틀림이 없다고 그 말이 진리를 담은 말씀이 아닐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말이 맞느냐 안 맞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속에 진실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고, 그 말하는 사람의 동기가 선하냐 악하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선을 가장하고, 정의를 내세워서 주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비난하며 동시에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비극
    불행 중에 불행한 것은 그가 3년 동안 주님과 함께 하고 있으면서도 주님을 그리스도로, 생의 주인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유다는 주님을 따라다녔고 주님께서 맡겨준 일, 돈 세는 일을 잘 했지만 오직 그 일에만 몰두하고 충성하느라 그 일에 묻혀서 일한 나머지 정말 알아야 되는 우리 주님을 몰랐습니다. 주님이 누구이시고, 왜 오셨고, 주님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디에 관심이 있는가를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 오직 돈과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헌신할 때 잘못하면 우리가 맡겨진 일 때문에, 그 일만이 최고라고 주장함으로 주님이 누구이시고, 그분이 왜 오셨고, 왜 죽으셨고, 왜 우리를 구원해서 교회로 삼아주셨는지 주님의 관심과 주님의 의도와 주님의 간절한 갈망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배 후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합니다. 모임도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 가운데서 꼭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주인 되는 것과 나의 구주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봉사와 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때로는 잘못되고 실수할 수도 있어요. 그것은 괜찮아요. 그러나 내 중심에 주님이 계시지 않고 교회는 왔는데 주님을 예배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거나, 주님의 간절한 소원과 갈망을 잃어버리고 있다면 그것은 큰일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비극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으면서도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돈 세는 것만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기쁘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하고, 돈에 웃고 돈에 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물과 사람을 돈으로 봅니다. 이거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모릅니다. 만사를 돈으로 봅니다. 그래서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때도 은 삼십을 받고 팔아먹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봉사, 사역, 헌신, 수고는 오직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며 영화롭게 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님의 간절한 소원과 관심을 이루어드리는데 있음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교회에 덕이 되고 조화가 되도록,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주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어드리는 한 방법으로서 충성스럽게 일을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만 중요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일도 중요합니다. 그 모든 일이 합력해서 결국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3년 이상 살았지만 돈 세는 일에 푹 빠져서 그 이상을 보지 못했고, 주님을 알지 못했고, 모든 것을 돈으로만 보았습니다.

    기회를 주시는 예수님
    가룟 유다의 이 같은 행위에 대해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8절입니다.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유다의 마음속에 사악한 욕심이 있는 것을 아셨지만 주님은 그것을 들추어내지 않고 덮어주면서 말합니다.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 유다가 도적인지 압니다. 그의 마음속에 욕심이 가득한지 압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들추어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내가 알고 있는 저 사람의 사악한 의도가 무엇인지 훤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고 인내하기란 쉽지 않음을 아실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그가 무슨 음흉한 흉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참고 들추어내지 않는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유다가 가난한자를 빙자해서 마리아의 행위를 비난한 것이 가난한자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한 말인 줄을 우리 주님은 알았지만 그러나 들추어내지 않습니다. 그냥 넘어가 주었습니다. ' 그래 가난한자는 항상 있단다. '
    왜 그렇습니까? 들추어낸다고 해서 고쳐지지 않고, 해결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높은 인격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를 들추어내고 캐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가 회개하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까지 기다릴 뿐입니다. 예수님도 들추어내지 않았는데 우리가 들추어낸다고 해결이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마음속을 알았지만 그래도 주님이 그를 심판해버리지 않고 참고 기회를 줍니다. "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 ' 바꾸어 말하면 지금이 나를 섬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금 나와 관계를 회복할 기회이다. ' 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유다는 이 기회를 잡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그런 유다에게 사단이 예수 팔 생각을 집어넣었다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마귀에게 완전히 점령당해 버렸고 음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먹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회를 잃지 않는 다는 것이 이처럼 소중합니다. 그런데 기회는 항상 오지 않습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주님 앞에 돌아오셔야 합니다. 돌아오면 축복입니다. 돌아오십시오. 주님 앞에 돌아오십시오. 기회가 지나가지 전에 돌아오십시오.

    주님의 장사를 예비한 마리아
    마리아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이런 숭고한 헌신과 사랑을 경험하시면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처럼 그녀의 숭고한 사랑과 헌신이 곧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골고다에서 달리실 때 베다니 마리아는 거기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살았을 때 이미 그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그 때는 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 비밀을 알았을까요?
    그 비결은 우리 주님의 발 앞에 있는 시간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예배하는 시간 때문입니다.마리아는 언제나 예수님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과 소원에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분주하게 부엌에서 일을 할 때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의 눈은 예수님의 눈동자에 부딪혀 있습니다. 그의 귀는 예수님의 입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의 심장은 주님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그 뜨거운 사랑을 받으려고 몸 전체로 나갔습니다. 이 여인은 우리 주님을 중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주님의 관심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이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관심에 집중에 있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 자는 예수님의 관심을 압니다. 예수님의 비전을 알고 예수님의 말씀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흘러버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관원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당하다가 십자가에 죽으리라. 계속해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 모세가 광야에서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 하리라. " 고 하시면서 주께서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를 미리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신 보니까 ' 투명 인간처럼 물위를 걸어가시고, 보리떡 다섯 개로 수천 명을 먹이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는데 죽을 수 있습니까? 당신은 안 죽습니다. 당신은 메시야요. 이스라엘을 해방할 구원자입니다. 그 때 나는 당신의 좌 우편에 앉게 될 것입니다. ' 제자들은 끝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도무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에 대한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깊이 깊이 예배하고 경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믿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을 깊이 깊이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이 가시고자하는 길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랑은 관심이고 시간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그 분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그분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짧습니다. 한 시간 예배가 금방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안에 주님의 갈망과 간절한 기대와 관심이 얼마나 뜨겁게 약동하고 있습니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젖어드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신앙이 점점 형식적으로 되어 버립니다. 나도 모르게 사무적이고, 형식적이고, 의무적이고, 율법적인 신앙 인이 되어버립니다. 이것같이 무서운 독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첫 사랑의 감격의 만남입니다.
    또 한가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야 하고 깊어져야 합니다. 묵상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을 읽을 때까지, 음성이 들릴 때까지 그 발 앞에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었고 깊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믿었기에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의 날을 미리 알고 주님의 장사를 예비하게 된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한가지 마리아를 통해서 받는 교훈이 있습니다. 사랑은 기회를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인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주님께서 곧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깜짝 놀란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향해서 " 나사로야 일언나라. " 할 때 나사로가 일어났거든요. 그 발 앞에 있을 때 보여준 사랑의 메씨지, 온 인류를 대속 하기 위하여 죽으시기로 작정한 어린양이신 예수님, 그분의 장례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유월절 어린양 대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영광의 장례식을 생각하면서 향유를 부어 드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지 않습니다. 구원받을 기회가 항상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헌신 할 수 있는 기회가 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주님 앞에 회개할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서가 하나님의 축복을 경홀히 여기다가 축복 권을 빼앗긴 후에 후회하여 회개할 기회를 찾았지만 회개할 수 없었습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평생 살면서 자기 아내에게 수고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어느 날 병들어서 죽었습니다. 그는 시체를 붙들고 " 여보 5분만 눈을 떠다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이 말을 하고 싶다구요. " 울부짖었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주님의 장례를 예비 할 수 있는 축복을 받게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많은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으로 구체적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을 행동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 그럤으면 좋았을 것을 " 하고 끝냅니다.

    마리아의 헌신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메씨지는 무엇입니까? 사랑은 관심이요, 사랑은 옥합을 깨뜨리는 것이요, 사랑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요? 아닙니다. 지금입니다. 내일은 기회가 없습니다. 지금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주님에게 항상 기억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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