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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2002-01-30 12:39:40   read : 1972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에베소서 4 : 25-32 2001년 3월 11일


    엡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어느 시골에서 한 아이가 주위 사람들에게 늘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처녀 때 낳은 사생아였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일까? 수근거립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도 왕따가 되어 너무 외롭고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아이가 12살 되었을 때 마을에 있는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오셨습니다. 그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스럽다는 소문이 나자 그 아이는 설교를 듣고 싶어서 여러 번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주일 아침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예배 시간이 시작된 뒤에 들어가서 조용히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한번 두 번 들으면서 그 말씀이 사랑으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주일만 되면 발걸음이 교회로 끌립니다. 점점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늦게 가서 뒷자리에 앉았다가 예배 끝나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과는 달리 예배를 마치고 조금 늦게 어른들 사이에 숨어 예배당을 빠져 나오는데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애야 넌 누구니? 네 아버지는 어느 분이시지? " 돌아보니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기를 바라보시는 목사님이셨습니다. 목사님이 입을 열어 말씀합니다. " 아 네 얼굴을 보니 네가 누굴 닮았는지 알 것 같구나 네 아버지는 하나님이시지? "
    이 목사님의 한마디의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 없이 살아온 한과 그로 인하여 얼룩진 상처가 말끔히 씻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그는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미국의 테네시 주에서 두 번이나 주지사로 당선되었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회와 교회를 위해 아름다운 삶의 본을 남긴 벤 후퍼라는 사람입니다.
    후에 그는 이렇게 간증을 하였습니다.
    " 주일 예배 후 목사님이 제게 하신 그 한마디가 저의 인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
    사람을 살리는 한 마디의 말이 한 사람의 생애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은 새싹같이 싱싱하게 자라야 할 인격에 아픔과 좌절을 주는 정죄의 말, 파괴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 때 마다 그는 외로웠고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사람, 가슴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합니다.
    한마디의 말이 한 사람의 생애를 바꾸어 놓습니다.

    한 인간이 경험하고 있는 그 현실의 배후에는 말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말이 사람을 잡습니다. 아니 말이 환경이 되어 버립니다. 말이 현실을 빚어냅니다. 그래서 어떤 언어학자는 " 사람은 곧 말이다. " 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히브리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말은 대단한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히브리 말로 말을 '다바르' 라고 하는데 이 '다바르' 라고 할 때의 그 말이 곧 행동입니다.
    ' 내가 너를 축복한다 ' 하면 그렇게 말한 축복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내가 너를 사랑한다 ' 하면 그 사랑이 지금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 내가 너를 저주한다. ' 그러면 그 저주가 그대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이 곧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말이 곧 그 사람의 환경입니다. 말이 곧 그 사람이 지금 경험하는 현실입니다.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

    공동체를 살리는 말

    그러므로 우리가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말이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이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연약한 성도들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증거 함으로 생명을 살리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이 복음화 되어 있다면 교회는 영적인 능력과 권세가 충만한 교회가 됩니다. 사랑이 가득한 교회가 되고 은혜가 강물처럼 흐르는 교회가 되고, 행복이 넘치는 교회가 됩니다.
    그런데 가끔 성도들이 하는 말들이 복음화 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고 왜곡되어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교회 안에 많은 갈등과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다 우리의 입술이 진실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영적인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부합니다.
    "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 (엡 4 : 25)
    공동체가 아름답고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버릴 것이 있고 적극적으로 취할 것이 있습니다. 버릴 것은 거짓된 말입니다. 그리고 취할 것은 참되고 진실한 말입니다.
    우리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서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이 진실하지 못하고 참되지 못하면 옆에 있는 지체의 마음이 상합니다. 관계가 깨집니다. 공동체의 금이 갑니다. 그럴 때 누가 가장 좋아하겠습니까? 사단이 가장 좋아합니다. 사단은 바로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그 틈을 이용해서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참소하고 이간하고, 분리하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입술이 복음화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어가 복음화 되어야 합니다. 말이 진실해야 합니다. 참된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조적 언어생활의 비결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참된 것을 말할 수 있을까? 그거 강조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다짐하고 결심만 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입술의 말은 언어 이전의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말씀합니다.
    "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 (잠언 23 : 7) 또 마태복음에서도 말씀합니다. "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마 15 :18) 말의 근원지를 추적해 가면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말은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요, 현실입니다.

    말씀에 마음의 뿌리를 두라.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마음을 점령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내 인격과 삶이 달라집니다. 사단이 마음을 점령하면 사단의 도구가 되고, 사단의 영성을 갖게 되어 속이고, 정죄하고, 비교하고, 비난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점령하면 성령의 전이되어 사랑하게 되고, 섬기게 되고, 격려하고, 축복하고, 감사하고, 이해하고 관용하고 인내합니다.

    미국의 존스 홉킨즈 대학에 켈리라고 하는 교수는 강의시간에 들어올 때마다 장미꽃을 늘 가슴에 꽂고 와서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루종일 강의를 해도 장미꽃은 시들지 아니하고 항상 싱싱했습니다. 보통 장미꽃은 빨리 시들어버리는데도 하루 종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도 신기해서 학생들이 물었습니다. " 교수님, 어떻게 해서 장미꽃이 시들지 않고 그대로 아름답게 피어 있습니까? " 그 교수님이 위에 입은 겉옷을 살짝 들어올리자 거기에 주머니가 하나 있었는데 그 속에 물이 담긴 조그마한 병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하루 종일 수분이 공급되니까 장미꽃이 늘 웃으며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 주님이 계시면 그 마음에서부터 우리의 생활이 아름답고, 우리의 언어가 아름답고 우리의 겉 사람도 외모도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 : 16절에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도들의 심령속에 가득하게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심령에 채워지면 즐겁습니다. 기쁨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찬양이 나옵니다. 감사를 합니다. 형제를 섬기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죄악에 얼마나 우리의 심령과 영육이 시들어 버립니까? 이 세상에 죄악의 뙤약볕에 우리 영혼이 얼마나 빨리 연약해져갑니까?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쉽게 넘어집니까? 불의와 정욕과 음란한 이 세상의 것들로 인하여 끊임없이 넘어지고 잠들고 낙엽이 되어 가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우리 주님을 모시고 내 마음에 주의 성령을 모시고 주의 도우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늘 향기를 날리는 꽃과 같은 삶을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줄을 믿습니다.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내 생명이 참 사랑의 향기로 간 데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

    주님은 샤론의 꽃입니다. 내 마음에 피어나야 합니다. 주님이 내 마음을 다스리도록 주님에게 드리십시오. 거기에서 우리의 생활이 변하고 언어가 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참된 입술이 되기 위해서 공동체적 영성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에 대한 말씀을 하다가 갑자기 선한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28절 말씀을 보시면
    "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

    선한 목적
    "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고 선한 일을 하라. " 일하는 목적이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저 나의 안녕과 부귀를 위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선교를 위해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몸된 교회를 위해서, 구제를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제 손으로 수고하고 선한 일을 합니다. 일하는 동기와 목적이 확실하고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삶, 섬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어디하나 절망적인 말, ' 아이 죽겠네, 못 살겠네, 어림도 없네, 또 안 된다, 할 수 없다, 너는 안돼' 등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까? 절대로 파괴적인 말을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믿음의 말을 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말을 합니다. ' 넌 할 수 있어, 그렇게 하면 잘하는 거야! 넌 우리 교회의 소망이고 자랑이야! 우리 교회에서 당신은 꼭 필요한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이야! '
    선한 목적을 가진 사람은 항상 덕을 세우는 언어생활을 합니다. 29절입니다.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나다나엘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까? " 그런데 그런 나다나엘을 향해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 그에게서 간사한 것이 없도다."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은 나다나엘을 오히려 칭찬했습니다. 그를 믿음의 눈으로 보았고 말로서 그를 세워주었습니다. 그 말씀에 감동을 받은 나다나엘이 주님 앞에 엎드려 고백합니다. " 주님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
    덕을 세우는 이 한마디의 말이 나다나엘로 하여금 평생을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제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하는 삶, 다른 사람을 존중히 여기고 배려하려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어떠하든지 상대방을 세워주는 말을 합니다. 상대방을 기대하고 축복하고 기다립니다. 성숙한 부모는 그의 자녀들을 사랑을 품고 기도하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조금만 잘해도 칭찬해주고, 좀 잘 못했을 때는 격려해주면서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그러는 동안 정말 자녀들이 기대하는 대로, 격려하고 기도하는 대로 자라갑니다.

    나보다는 남을 더 배려한다면, 나 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할 여유를 가지고 산다면 우리들이 언어 생활은 보다 더 창조적이고,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며 피차에 덕을 세우는언어가 될 것입니다.

    긍휼한 마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공동체를 세우는 언어 생활을 하려면 타인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속에서 창조적인 언어생활을 하게 되며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가게 됩니다.
    32절에 말씀하십니다.
    "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서로 불쌍히 여기며 그랬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공감하듯이 예수님의 본성은 긍휼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통 중에 있는 자를 특별히 긍휼히 여기십니다. 병든 자, 장애우, 세상에서 버림받고 천대받는 죄인들, 사고 당한 자, 이런 자들을 얼마나 불쌍히 여기시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는 고통 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슴에는 긍휼의 정으로 가득합니다. 긍휼은 그의 처지와 형편 속에 동참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사람의 입장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느껴보고 그 사람과 똑같은 형편에 처해보는 구체적인 사랑이 긍휼입니다.

    어떤 분이 사랑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나보다 높은 분에게 하는 사랑으로 위하는 사랑이 있는데 이것을 존경이라고 하는데 부모님을 존경하거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와 같은 위치에서 동등하게 대하는 사랑으로 ' 필리아 ' 라고도 하는데 우정적 사랑입니다.
    셋째는 나보다 못한 사람, 즉 나보다 어리고 어려운 사람에게 대한 사랑입니다. 이것을 긍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청교도 설교자 토마스 왓슨은 이렇게 정의합니다.
    " 사랑이 애인을 방문하는 것과 같다면 긍휼은 상대방의 필요 때문에 방문하는 의사와도 같습니다. "
    우리의 공동체가 보다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는 길은 피차에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의 약점을 내가 담당할 때 교회는 아름답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회가 됩니다.

    인종 차별이 심할 때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백인이 정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때 지나가던 아메리칸 인디언 한 사람이 마침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그의 곁으로 찾아와 " 제게 물 한 그릇 줄 수 있겠습니까? " 하고 청했더니 " 없어 " 하면서 거절합니다. " 그러면 당신이 마시는 맥주라도 한잔 좀 주시지요. " 하니까 " 인디언 놈 한데 못 줘 " 그랬답니다.
    그래서 인디언은 맥없이 떠나갔습니다.
    바로 몇일 후에 그 백인이 사냥개를 가지고 사냥을 하로 나갔다가 사냥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길도 잃어버려 조난 당한 채 헤메다가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쓰러졌습니다. 깊은 산중에 쓰러져 있는 그를 이 아메리칸 인디언이 발견하고 자기 집에 데려다 주고 간호를 해주고 죽을 써 주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까 자기가 물을 거절했던 인디언 추장이었습니다. 기가 막히고 깜짝 놀라니까 그 때 인디언이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이 " 당신이 나에게 한 것처럼 내가 당신에게 했다면 당신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
    성경은 이것을 긍휼이라고 말합니다.
    보복을 해야 하지만 하지 않는 역동적인 사랑 이것이 긍휼입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순원들을 보시고, 지체들을 바라보십시오. 특별히 교회학교 아이들과 청소년들, 청년들을 보십시오. 서툴고 실수하고 버릇이 없을 지라도 그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귀하게 보입니다. 한없이 그를 축복하고 싶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긍휼의 마음을 품음으로 축복의 언어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용서
    또 한가지 긍휼의 마음과 함께 꼭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은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용서가 있기 전에 나와 너 사이에는 반드시 막힘 담이 있습니다. 이 담이 있는데 어떻게 축복의 말이 흘러 들어갈 수 있습니까? 담이 허물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용서라고 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용서가 잘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 이처럼 내게 손해를 입히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자존심을 망가트리고, 심적, 경제적 고통과 손해를 입힌 그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인가? ' 용서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용서할 수 없는 한계적인 나를 발견할 때가 없으셨습니까?
    그런고로 어떤 의미에서 용서는 내가 하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용서가 되어지는 은혜의 체험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셔야 용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 스타트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얻을 수 없으며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죄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가 죄를 회개했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용서받았다는 것만큼 우리가 남을 용서할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없다. "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용서를 하려고 하는데 용서가 안됩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혹시 내가 죄를 깊이 회개하는 체험이 없기 때문은 아닌지요? 주님 앞에 다가가 주님이 베푼 은혜를 묵상하십시오.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임을 알 때 비로소 형제를 용서하게 됩니다.

    "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잔 니이더 와 토마스 톰슨은 그들이 함께 저술한 ' 손상된 관계의 회복 ' 이라는 책에서 용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 용서는 열쇠를 돌려 문을 열어 죄수를 자유롭게 걸어나가게 하는 것이다. "
    " 용서는 큰 글씨로 아무 빛도 없다 " 라고 쓰는 것이다.
    " 용서는 법정에서 망치를 두드리며 무죄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
    " 용서는 너무나 높게 멀리 활을 쏘아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
    " 용서는 온갖 쓰레기와 잡동사니를 끌어 모아 밖에 버려 집을 깨끗하게 하고 청결하게 하 는 것이다. "
    " 용서는 정죄 받은 죄인에게 완전 사면을 부여하는 것이다. "
    " 용서는 씨름하고 있는 적수에 대한 목 조르기를 풀어주는 것이다. "
    " 용서는 낙서가 적힌 벽을 지워 새 벽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너무 나 중심으로 살아왔고 언제나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이제 시선을 돌려서 옆에 있는 지체들, 순원들을 사랑하는 마음, 섬기는 마음으로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 용서를 비는 마음, 용서를 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존귀한 지체들입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언어가 바꾸어져야 하겠습니다. 축복의 언어, 칭찬과 격려의 언어로 공동체를 아름답고 건강하게 세워 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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