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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에서 본 목회사역
    2002-03-11 23:48:29   read : 2465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박동현 교수(장신대/구약학)

    < 들어가는 말 >
    여러분, "목회"라는 낱말이나 개념이 오늘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낯익은 것이지만 그 낱말 자체로는 구약성경에 나타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가 "구약에서 본 목회 사역"의 문제를 다루려 할 때 우리는 먼저 "목회"라는 말을 우리가 어떤 뜻으로 쓰고 있는지 하는 것부터 똑똑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낱말 뜻에서부터 시작해 보십시다. "목회"란 본디 순우리말에는 없던 것이 개신교가 들어와 퍼져 나가면서 생겨나 개신교 안에서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는 "칠 목(牧)"과 "모일 회(會)"의 두 한자가 한데 어우러져 된 말이어서 "모임을 치는 것"이란 뜻을 지닙니다. 곧, 사람이 양, 염소, 소, 말 같은 짐승을 먹이고 기르듯이 교회의 지도자된 사람이 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기독교 신앙의 정신을 따라 잘 돌보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약에서 목회에 관한 가르침을 어떻게 찾아 볼 수 있느냐에 대해 목회 일선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각자 나름대로 이런저런 본문을 밑바탕으로 설교도 하시고 가르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체계를 잡아 다룬 글들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지금으로부터 스물한 해 전에 고 김정준 교수께서 재일 기독교 한인 교회 모임에서 나흘에 걸쳐 한 강연의 원고를 한데 묶어 "제2이사야의 牧會神學 - 在日교포敎會 牧會에 대한 聖書的 理解"라는 제목 아래 내어 놓은 것 밖에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이 글은 같은 지은이의 책, 구약신학의 이해, 서울: 한신대학출판부, 1973년, 291-377쪽에 실려 있습니다). 아마도 목회에 대한 가르침은 아무래도 신약성경에서 찾기가 쉽다는 것이 일반의 생각이어서 그랬던가 봅니다.

    이러한 사정은 서양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동안 구약성경 가운데 예레미야서에 마음을 두고 예레미야서에 관해 연구한 책이나 글을 제가 할 수 있는대로는 모조리 뒤져 보았지만 목회의 문제와 관련하여 예레미야서를 연구한 글은 단 두 편의 짧은 글 밖에 찾을 수가 없었는데 그것도 스위스의 한 구약학자가 1955년과 1964년에 내어놓은 글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나 서양에서 구약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목회에 대해 결코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이렇듯 목회의 문제를 구약성경을 가지고서 본격적으로 다룬 적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서양 학자들하고 이야기해 본대로는 구약성경에서 목회의 문제를 과연 학문적으로 다룰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시간 오늘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은 "목회"에 대해서 구약성경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반드시 있을 것으로 바라면서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지난 십여년에 걸쳐 "과연 목회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면서 구약성경을 읽을 때 제게 부딪쳐 왔던 바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주제를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아래에서 말씀드리려는 것은 제가 지난 1991년 12월 13일 포항제일교회 창립86주년 기념 행사의 하나로 열린 "제4회 교회 성장과 갱신세미나"에서 한 강연과 지난 1992년 1월 14일 경주에서 열린 "제1회 장신대동문 부부 겨울수련회"에서 비교적 길게 한 강연의 내용을 간추려 한데 묶은 것입니다. 첫번째 강연의 제목은 "바른 목회자, 바른 교회 - 에스겔 34장을 중심으로 -"였고, 두번째 강연의 제목은 "예언과 목회 - 예레미야를 중심으로 -"였습니다. 내용적으로 앞의 것은 목회의 개인성을 다루었고 뒤의 것은 목회의 공동체성을 다룬 것이어서 이 둘은 짝을 이룬다 하겠습니다. 이 두 글은 이제 박동현, 예언과 목회 1, 목회연구도서 시리즈 6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11-82쪽에 들어 있습니다.

    가. 개인을 돌보는 목회 (에스겔 34장)

    에스겔 34장은 요한복음 10장에 비길만큼 잘 알려진 "목자의 장(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장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나라들에 심판을 선포하는 말들의 모음에서 (1장-32장) 앞으로 있을 구원에 대한 말들의 모음(33-48장)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놓인 장입니다. 그리하여 에스겔 34장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하나님을 거스리다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사로잡혀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깨우치며 새로운 앞날을 약속하는 흐름 가운데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에스겔 34장은 크게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거짓 목자들을 꾸짖으시고 (1-6절), 그들을 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7-10절). 이어 하나님 몸소 목자 노릇하시려 함을 말씀하시고 (11-16절) 나쁜 양들을 심판하시겠다 하십니다 (17-22절). 다음으로 하나님은 이상적인 목자 다윗을 세우시겠다 하고 (23-24절) 마지막으로는 평화의 계약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25-31절).

    이같은 짜임새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듯이 에스겔 34장이 말하는 양과 목자는 본디 유다 백성과 정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 백성과 하나님 백성을 잘 돌볼 책임을 맡은 사람에 관한 말씀이기에 오늘 기독교인들과 교역자들에 관한 말씀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이런 전제 아래 에스겔 34장에서 목회 사역에 관한 가르침을 함께 찾아 보기로 하십시다.

    ㈀ 목회는 평신도들을 먹이는 일입니다(1-3, 5-8절)

    1-3절과 5-8절에서 하나님은 자기만 먹이고 양들은 먹이지 않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호되게 꾸짖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목회란 평신도를 먹이는 것이지 교역자 자신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는 너무나도 마땅한 사실을 깨닫습니다.달리 말씀드리면 양이 목자를 위해 있지 아니하고 목자가 양을 위해 있듯이 평신도가 목회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평신도를 위해 있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본문은 목자가 양을 먹이지 않고 자기 자신만 먹이다 보면 양을 잡아먹는 이리가 되어 더 이상 목자일 수 없음을 알려 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목자가 없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8절).

    오늘날 목회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 평신도를 돌보기 보다는 자신을 먹이는 일에 더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 없지 아니합니다. 이들은 목회자의 직책을 통해서 사람을 부리는 힘과 지위를 누리고자 합니다. 서양의 어느 실천신학자는 신학 지망 동기 가운데 하나로 마음 속 깊이 매우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어 때로는 본인들도 깨닫지 못하는 권력지향성과 지배욕을 들고 있습니다.

    ㈁ 목회는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끊임없는 관심으로 보살피는 것입니다 (4, 11-16절)

    4절과 11-16절은 목자가 양을 먹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낱낱이 보기를 들고 있습니다. 목자가 양을 먹인다는 것은 양에게 그냥 먹이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양이 약해지면 강하게 하고 병들면 고쳐주고 다치면 싸매어 주고 쫓기면 돌아오게 하고 길을 잃으면 찾아 오고 성하면 그 성한 것이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참 목자이신 하나님께서도 바로 이처럼 양들을 돌보신다고 합니다.

    이는 목자가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형편을 잘 살펴 각 형편에 알맞도록 보살핌을 뜻합니다. 이처럼 목회란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대해 하나님의 마음으로 쉴새없이 배려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시 다음 두 가지 면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목회의 상대는 사람입니다. 평신도는 결코 목회자의 목회대상물이나 목회수단일 수가 없습니다.

    둘째, 목회는 개별적이어야 합니다. 그 어떤 목회 이론이 신자들을 돌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본디 사람은 제마다 다르기에 목회자는 개개인의 형편에 맞게 늘 새로운 식으로 그를 돌보도록 힘써야 합니다. 목회자가 할 일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힘써 할 일은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일입니다.

    이 점에서 큰 교회가 지니는 여러가지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교인수가 많은 교회의 목회자가 과연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목회자가 교인을 수로 헤아리기 시작하면 교인을 사람으로 보기가 힘들어집니다.

    이처럼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에 마음을 쓰는 목회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리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 목회는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하기에 목회자는 늘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서 삼가야 합니다(10, 23-24절)

    앞서 알아본대로 양을 먹이지 않는 목자는 더 이상 목자일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목자의 직에서 물러나게 하십니다 (10절). 여기서 우리는 목자의 직책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확인합니다. 목회의 직책은 사람의 어떤 자질과 능력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누구에게 맡겨주셨기에 그저 받는 직책입니다.

    이처럼 목회의 직책이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 할 때 목회자는 목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법도대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맡은 평신도들은 목회자의 양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 목회란 하나님이 하시는 목회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11-16, 23-24절)

    하나님 백성의 참 목자는 본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에 목자로 세운 사람들이 제 구실을 못하니 하나님 몸소 목자 노릇 하시겠다고 11-1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어 23-24절에서는 하나님 마음에 드는 새 목자, 다윗 같은 목자를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압니다.

    이리하여 오늘날의 목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양들의 관리인으로 그리스도의 목자직에 참여하는 직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 백성된 그리스도인들을 먹이시고 지키시고 보살피시고 이끄시는 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탁을 받아 함께 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 나쁜 평신도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는 목회 (17-22절)

    17-22절에서 하나님은 양들 가운데 못된 양들을 꾸짖으시고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목회에서도 좋지 못한 평신도들이 있어 목회하는 것이 어려워질 때가 있을 때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 목회는 신도들이 복된 삶을 누리도록 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3-31절)

    에스겔 34장의 마지막 아홉절은 이상적인 새 목자가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아 양된 이스라엘 백성을 잘 보살필 때 그 초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 줍니다. 자유와 안전과 평화와 넉넉한 수획이 그것입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알리어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오늘 목회가 나아가야 할 바가 어떠한 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부흥 발전이 목회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풍성한 삶을 누리는 공동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이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 - 이것이 목회가 지향해야 할 바입니다.

    에스겔서 34장에서 찾아 본 목회에 대한 가르침은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목회자가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회란 그것이 다일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오늘처럼 개인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와 긴밀히 얽혀 있는 시대에서 목회가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에 대한 것으로 남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이제 우리는 목회의 공동체성에 대한 가르침을 구약성경에서 찾아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리하려고 할 때 성경의 어떤 다른 책보다도 하나님의 일꾼된 사람의 입장에서 씌어진 단락이 많은 예레미야서를 밑바탕으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나. 공동체를 돌보는 목회 (예레미야의 경우)
    ㈀ 목회는 "내 백성의 상처"를 고치는 일입니다(6장13-14절)

    6장13-14절 바로 앞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 백성의 나라 유다에 대해 무섭게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런 다음 이 단락에서 그는 그 까닭으로 온 국민이 제마다 자신의 이득을 좇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이렇게 된 것은 종교지도자들이 거짓으로 평강을 외친 것을 듭니다. 이러한 이기적인 물질주의와 거짓된 안정 신앙이 하나님 백성이 망하도록 한 무서운 병임을 예레미야는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도 종교지도자들은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보고 제대로 고치려 하지 않는다고 탄식합니다. 여기서 상처로 옮겨진 히브리 말의 뿌리는 무엇이 부수어졌다, 망가졌다, 깨졌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 보면 여기서 말하는 상처란 어떤 한 사람의 몸이 부숴지고 망가지고 깨져서 생긴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내 백성의 상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곧, 예레미야는 지금 유다 백성 전체를 한 몸을 가진 한 인격체로 보면서 그것이 부서지고 망가지고 깨져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관계가 어그러졌음을 뜻하는 동시에 그 결과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망해가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구성원끼리도 그 사이가 서로 나누어지고 갈라져 공동체성이 사라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리하여 예레미야는 "내 백성의 상처"를 고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오늘의 목회도 이런 관점에서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목회에는 "내 백성의 상처"를 고치는 일도 들어갑니다. 앞서 에스겔 34장에서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백성을 돌보는 것이 목회라 할 때 이 백성을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돌보는 일은 그가 속한 하나님 백성 전체를 잘 돌보는 일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목회는 공동체의 상처를 고치는 목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상처를 고쳐야 할 "내 백성"은 우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뜻합니다. 이럴 때 교회란 지역교회를 넘어서서 전체로서 하나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한반도의 목회자들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부서지고 망가지고 깨어진 것을 고치기 위해 얼마나 힘써 왔던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아울러 구약의 하나님 백성이 일단은 신앙의 공동체이지만 또한 지역적이고 혈연적인 공동체성도 띤다고 할 때, 오늘 이 나라와 이 겨레와 이 세계의 문제를 두고 고민하며 그 상처를 고치고자 애쓰는 일도 목회에 들어간다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내 백성의 상처"를 고치는 것이 목회라 할 때 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 "내 백성의 상처"를 고치는 길

    ㉠ "내 백성의 상처"를 미리 보고 괴로와할 줄 알아야 합니다(4장19-22절, 10장19-22절, 8장18절-9장1절)

    4장19-22절에서 예언자는 온 나라를 휩쓰는 전쟁의 참화를 미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멸망이 코 앞에 닥쳤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백성을 바라보며 괴로와 합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유다가 망하기 전의 어지러운 상황에 비추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곧 망할 줄도 모르고 거짓으로 안전을 외치는 소리만 믿고 제 욕심만 차리고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예레미야는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이 눈앞에 닥쳐있는 것을 너무나도 생생히 느끼기에 마치 아이 낳으려고 진통하는 여인처럼 온 몸으로 그 괴로움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10장19-22절도 비슷한 내용을 보여 줍니다. 다만 이 본문에서는 앞으로 재난이 닥치면 어려움을 겪을 백성들이 자신들이 당하는 괴로움 때문에 울부짖을 것을 미리 생각하여 그 모습을 먼저 그리고 있는 점에서 4장19-22절과 다를 뿐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실제적으로 울부짖는 사람은 재난을 미리 내다보고 있는 예언자입니다. 백성들은 상처가 있어도 아픈 줄 모르는 답답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5장3절).

    그리하여 이제 예레미야는 홀로서라도 울부짖을 수 밖에 없습니다. 8장18절-9장1절이 그러한 예언자의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내 백성이 부서졌으므로 나도 부서졌다!"(8장21절 상반절) - 내 백성의 상처 때문에 내가 상처를 입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유다 사이가 어그러지고, 유다 사람끼리의 사이가 깨어져 산산조각 나고 나라도 땅도 망가졌으니 어찌 나 홀로 성하기를 바라랴? 하는 마음입니다. 나도 완전히 부서지고 망가지고 깨졌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의 목회도 이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상처 때문에 내가 상처를 입고 어쩔 줄 몰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백성의 상처"를 부여잡고 온 몸으로 울부짖을 수 있어야 합니다.



    ㉡ "내 백성"과 함께 고통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9장17-18절)

    9장17-18절은 매우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울어야 하는데도 울 줄 모르는 "내 백성"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와만 할 수 없었던 예레미야는 이제 억지로라도 이 백성을 울리고자, 곧 닥칠 재난이 나라와 겨레의 죽음을 뜻함을 알리고자, 초상집에 다니면서 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인들을 데리고 오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감각이 영 마비되어버린 "내 백성"을 깨우쳐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예레미야는 "우리"라는 말을 씁니다. 곡하는 여인들이 와서 "너희"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하여 애곡하게 하라고 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자고 합니다. 나는 이미 울고 있으니 "너희" 눈에서나 눈물이 나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도록 하자고 합니다.

    이같은 예언자의 "우리"는 앞서 본 8장21절이 표현하는 것처럼 "내 백성의 상처 때문에 상처입은" 예언자가 망해가는 백성과 하나됨을 얼마나 깊이 느끼고 있었는지를 잘 알게 해 줍니다.

    이처럼 공동체의 상처를 고치려는 목회는 공동체와 함께 고통받을 줄 아는 목회입니다. 그 고통을 모르고 나는 의롭다고 자신을 내세우면서 공동체의 상처를 고칠 수는 없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부서져야 합니다 (23장9절)

    23장9절은 앞에서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부숴진"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이 구절은 예언자들에 대한 긴 단락인 23장9-40절의 첫머리로서 여기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온통 뒤흔들린 경험을 고백합니다.이토록 예언자를 부서뜨린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린 하나님 백성을 멸망시키시겠다는 뜻을 담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봅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공동체의 상처를 고치려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괴로움은 곧 하나님의 괴로움을 드러냅니다.이처럼 오늘도 목회자는 역사 한 가운데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그 전존재가 뒤흔들리는 경험을 해야 "내 백성의 상처"를 고치는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 깨닫지 못하는 백성을 깨우치려 해야 합니다(30장12-15절, 7장1-15절)

    30장12-15절에서 예언자는 고칠 길 없이 깊어진 상처가 생긴 까닭을 깨닫지 못하는 백성을 깨우치고자 애씁니다. 하나님을 거스려 그런 상처가 생겼다는 것, 그 상처를 고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심을 일깨우고자 합니다.또한 7장1-15절에 나오는 유명한 성전 설교에서 예레미야는 제 실속만 차리느라 이웃을 돌보지 않으면서도 성전에 와서 예배만 잘 드리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백성들을 일깨우고자 앴습니다. "내 백성의 상처"를 고치려는 목회는 그 상처가 왜 생겼는지를똑똑히 말하는 목회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제 욕심만 차리면서 예배를 만병통치의 약으로 생각하는 것이 큰 잘못임을 밝히 말할 줄 아는 목회입니다.



    ㉤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알려야 합니다(31장15-17절, 18-20절)

    31장15-17절에서 예레미야는 자식을 잃고 위로받을 길 없이 울부짖는 라헬의 모습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고 난 다음 그 백성들이 겪는 어려운 상황을 그린 다음, 아무 조건 없이 이들을 도우실 것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어 18-20절은 고난을 겪어서야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이 내리신 벌을 달게 받되 지금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간구하는 에브라임의 모습으로 망해버린 나라 북왕국 백성들의 상황을 그린 다음 에브라임을 여전히 뜨겁게 사랑하는 뜨거운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이 두 본문은 결국 사람으로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때일수록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살리시려는 뜻을 굳게 하고 계심을 깨우쳐 줍니다.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백성"으로 하여금 이런 하나님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예레미야는 내 백성의 상처를 고치려 한 것입니다.

    "내 백성의 상처"를 고치려는 목회는 상처를 고칠 수 있는 분은 오직 은혜로우신 하나님 뿐이심을 밝히 알리는 목회입니다.

    < 끝 맺는 말 >
    지금까지 우리는 에스겔 34장과 예레미야서의 여러 부분을 밑바탕으로 하여 하나님이 맡기신 하나님 백성을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잘 돌보는 것이 목회이고 그 일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살펴 보았습니다.그리할 때 우리는 일단 한반도의 남쪽에 사는 사람들을 주로 생각하였습다. 그렇지만 우리의 목회가 그것으로만 그칠 수 없습니다. 북쪽에 있는 동포들도 생각하여야 하고 나라 밖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첫머리에 소개한 고 김정준 목사님이 재일교포 교회 모임에서 하신 강연의 알맹이를 기억해 볼만 합니다. 제 나라를 떠나 남의 땅에서 갖은 괴로움을 겪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동포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주면서 온누리를 지으시고 다스려 나가시는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심을 널리 알리는 일이 또한 우리의 목회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이제 우리는 예언자적인 냉철한 머리와 목회자적인 뜨거운 가슴으로, 괴로움이 가득 찬 이 땅에서 정신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양들로 알고, 그들과 함께 괴로와하며, 그들을 깨우치며, 그들을 영으로 몸소 먹이셔서 그들이 복된 삶을 누리고 마침내 온누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기를 바라시는 그 뜻을 따라, 그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하나님과 함께 "내 백성의 상처"를 제대로 알고 고쳐나가는 목회를 할 수 있도록 굳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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