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4월 29일 (화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목사를 막아라, 텅빈본당 /목사 연금 1,600억으로 '돈 장사'한 집사 구속/ 캄보디아 박율 목사 체포 충격               최태민 구국선교단 참여 목사들 / 십일조 하지 말라는 목사 /한우갈비’외치는 기감목사들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서울광장서 개막 /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무죄               선교사들 위한 안식관 두 곳/ '노트북이 뭐라고' 소송 총동원한 사랑의교회               언더우드 후손 28명 우리 고향은 South Korea/ 군종장교 범죄               박수홍,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 예의/ 죽음의 질(Well dying) 중요               목사님이 운영하는 중고자동차 매매센터               예장통합 ‘제2의 세습방지법안’ 총회 통과/ 예수님처럼 교회도 하늘에서 내려와야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적극 반대 /목회자의 고백 7가지 실수               총회장 2명을 배출한 여인의 힘! /복음화율 10% 안 되는데 주일학교만 1천 명              

  홈     이삼규     강문호.     고신일     곽선희.     김광일.     김기석.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성광.     김성수     김은호     김정호.     김홍도.     류영모.     명설교     박봉수.     오주철.     옥한흠     유기성     이동원     이성희.     이양덕.     이영무     이윤재     이재철.박영선     이정익     조봉희.     조용기.     주준태     지용수     피영민     하용조     한경직.     홍정길.임영수     해외목사님     관     괄사치유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한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사건별설교(구약)     사건별설교(신약)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샘플설교
  오래된 설교(왕)
  카드,핸드폰결제

설교내용검색

네이버.다음.구글


시작페이지 설정


호산나 자동차


교회인쇄주보디자인


밀알.현수막.주보


제주2박3일210.000원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남학매일성경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베리타스칼럼
  • 강남신앙간증
  • 아멘넷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강문호목사
  • 고신일목사
  • 김기석목사
  • 김대동목사
  • 김명혁목사
  • 김성광목사
  • 김승욱목사
  • 김형준목사
  • 김흥규목사
  • 명성훈목사
  • 박광철목사
  • 박건목사
  • 소강석목사
  • 이동원목사
  • 이성희목사
  • 이한규목사
  • 정근두목사
  • 정태기목사
  • 조태환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교단 사이트

    말씀,QT

    사전.지도사이트

    성화,주보그림자료

    성경연구공부자료

    성경신학 자료

    Home

    짐짓 죄를 짓는 병
    2002-03-11 11:02:43   read : 2532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히 10: 26-39 // 2002. 2. 10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우리가 잘 쓰는 심리학 용어 가운데 '빈 둥지 경험'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이럴 때 씁니다. 부모들이 아이를 다 키워 대학에 가게 됩니다. 대학에 합격했으므로 신이 나서 같이 입학식을 하고 기숙사 방도 둘러보며 인계해 줍니다. 그 때까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아이가 쓰던 방문을 열 때 그 부모의 마음이 허전합니다. 이를 가리켜 '빈 둥지 경험'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이 뒷바라지만 하던 어머니들은 몇 날 며칠을 남편 몰래 울기도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상담을 받곤 합니다. 그래서 이런 용어가 생겼습니다. 시집간 딸의 빈방을 들여다보는 부모의 심정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뭔가 허전함을 느끼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일까요?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또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 이유를 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는데 이런 설명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잃어버린 섭섭함보다 그 동안 수많은 고비를 지나온 것에 대한 애환 때문에 허전함을 느낀다." 라고요. 사실, 아이를 하나 낳아서 대학에 보내고 성인이 될 때까지의 그 애환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지요. 숱한 고비들을 다 넘겨서 그 아이를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백일과 돌만 해도 그렇습니다. 요즘은 예방주사와 약, 의료기관이 잘 발달되어서 아이들이 죽지 않고 잘 자라지만, 옛날에는 태어나서 백일까지 아이가 생존하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일 동안 살면 너무 기뻐서 백일잔치를 했어요. 또한 돌까지 살면 이 아이가 이젠 어른이 될 때까지 살수 있겠구나 하는 기념으로 돌잔치를 했습니다. 백일해, 홍역, 수두 등 이런 병으로 인해서 아기들은 종종 목숨을 잃곤 했습니다. 이것은 한 아이가 태어나서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고비들을 넘긴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영적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거듭나기까지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튼튼하게 성장해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군이 되기까지 - 는 수많은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나기 위해서 반드시 피해야 할 몇 가지 질병이 있는데, 우리는 히브리서를 통해서 그 질병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미 세 가지 질병을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로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병, 두 번째로 마음을 강퍅케 하는 병, 세 번째로 미성숙의 병, 네 번째로 오늘 설교할 짐짓 죄를 범하는 병입니다. 이 병은 조금 어려운 병이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리가 피해야 할 중요한 병입니다. 짐짓 죄를 짓는 병!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데 가장 심각한 병이 있다면 오늘 공부할 짐짓 죄를 짓는 병일 것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우리의 신앙은 자라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병에 대해 잘 알아야 하기에 먼저 진단을 해 보겠습니다. 짐짓 죄란 과연 무엇인가? 이 말씀을 확연하게 깨닫기 위해 구약의 몇 구절을 보고자 합니다. 민수기 15장 22절부터 31절까지입니다.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한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못하되 곧 여호와가 모세로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여호와가 명한 날부터 이후 너희의 대대에 지키지 못하여 회중이 부지중에 그릇 범죄하였거든 온 회중은 수송아지 하나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고 규례대로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라.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면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니 이는 그릇 범죄함이며 또 그 그릇 범죄함을 인하여 예물 곧 화제와 속죄제를 여호와께 드렸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도 사함을 얻을 것은 온 백성이 그릇 범죄하였음이니라 만일 한 사람이 그릇 범죄하거든 일년 된 암염소로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그릇 범죄한 사람이 그릇하여 여호와 앞에 얻은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지니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라 이스라엘 자손 중 본토 소생이든지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든지 무릇 그릇 범죄한 자에게 대한 법이 동일하거니와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


    하나님은 민수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 종류의 범죄를 이야기합니다. 우리 모두가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우리가 짓는 죄 가운데는 그릇 범하는 죄와 짐짓 범하는 죄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또 그릇 범하는 죄는 사함을 얻을 수 있지만, 짐짓 범하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릇 범하는 죄를 먼저 알아봅시다. 이 죄는 내가 약하여 짓는 죄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살고 싶은데 어쩌다 보니까 부지불식간에 지은 죄, 이것은 의도적인 범죄가 아닙니다. 죄를 짓기 싫었지만 내가 너무나 약해서 어쩔 수 없이 지은 죄입니다. 우리가 그릇 범죄할 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용서를 구할 때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짐짓 죄를 범할 때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 용서함을 얻기가 불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짐짓 범하는 죄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가 알기 쉬운 단어로 이야기하면 고의적인 죄, 의도적인 죄, 죄 짓기로 작정하고 지은 죄입니다. 한순간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죄 지을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 그 죄를 짓지 말라고 타이르십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순간 화를 내다가도, 한순간 유혹이 느껴 죄를 짓다가도 성령께서 내게 찔러주시면 그 죄를 중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짐짓 죄는 그런 죄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이것은 죄라고 가르쳐 주시는 성령의 음성이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그 음성을 무시해버리고 계획적이며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는 겁니다. 구체적이고 철저히 계획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이런 짐짓 죄를 범해서 하나님 앞에 끊쳐진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그의 동생 아벨이 같이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데 가인은 그러지 않았어요. 그것을 본 가인의 마음에 분노가 생기고 무언가 계획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의도적인 계획, 잘못된 짐짓 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가인을 말리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가인아, 네가 성냄은 어쩜이뇨? 네 안색이 변함은 어쩜이냐?"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선을 행치 못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지 못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하나님께서 히브리어로 '엎드린다'라는 단어를 사자와 같은 맹수가 자기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풀숲이나 바위 뒤에 웅크리고 엎드려 있는 모습을 비유로 사용하셨습니다. 가인은 사냥꾼이기 때문에 이것을 너무나 잘 알았을 겁니다. 죄의 소원이 네게 있으면, 선으로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죄가 네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충고하십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미 하나님께서는 질투로 말미암아 아벨을 죽여야겠다는 가인의 마음속을 읽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찾아오셔서 경고를 발하십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가인아, 네 마음속에 그러한 죄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이해한다. 시기로 말미암아 네 동생을 미워하고 한순간 저를 죽여야겠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겠구나. 그러나!" "죄의 소원은 네게 있지만 너는 그 죄의 소원을 다스리거라!" 그러나 하나님의 그 긍휼을 가인은 무시해버리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켜 나갑니다. 어느 날 동생에게 들에 나가자고 얘기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벨이 들로 따라나가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짐짓 죄라고 얘기합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일순간에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계획을 했습니다. 한 장소를 정했고, 마음속에 오랫동안 동생을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어요. 그것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친히 찾아오셔서 깨우쳐 주셨어요. 너는 그 마음을 버리라고 권면하셨어요. 그런데 가인은 그 모든 하나님의 음성을 거역해버리고 자기가 의도한 대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의적인 죄,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죄입니다.
    본문 26절을 읽어봅시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우리가'에는 히브리 저자가 포함됩니다. 이는 우리도 포함될 가능성을 얘기하는 겁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라고 했어요. 여기서 '지식'이란 단어가 특별한 단어입니다. 헬라어에는 지식이란 단어가 두 개 있는데 '거노시스(일반적인 지식)'와 '에티거노시스(구체적인 지식)'입니다. 여기에서는 후자인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다더라!" 하는 이 정도의 지식이 아닙니다. 내가 복음을 확연히 들었어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죄를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간 사실을 내가 받았어요. 이러이러한 죄를 지으면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그 교훈을 받아들였어요. 그러나 그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을 내가 아무리 구체적으로 받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진리를 받은 후에도 짐짓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기자는 우리에게 경고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알고 있으나 계획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가 우리 가운데 있을 수 있다!



    ■ 원 인

    그렇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할 때 이런 병에 걸리게 될까요? 이 무서운 병, 가인이 걸렸던 병, 용서받을 수 없는 이 엄청난 죄악을 어떠한 경우에 지을 수 있는가? 29절은 그 원인을 세 가지로 정확하게 얘기해 주십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왜 의도적인 죄를 짓게 되는가? 왜 짐짓 죄를 짓게 되는가? 성경은 그 이유로 믿음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구원받았으나 우리의 믿음의 태도에 문제가 생길 때 이런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겁니다.

    1.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을 때

    여기에 나타난 단어가 너무나 엄하고 아주 심각한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와 나를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이 하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언제든지 우리가 임하는 태도일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이 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발 아래 둔다는 뜻입니다. 발로 짓밟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삶의 우선 순위와 주권을 하나님께 양도하지 않고 항상 내 유익에 둔다는 겁니다. 언제나 나의 유익이 우선이고 내가 주인인 겁니다. 내 마음의 보좌 위에 예수 그리스도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앉아 있는 겁니다. 내 생의 주인은 나요, 내 돈의 주인도 나요, 내 시간의 주인도 나입니다. 굉장히 헌신하고 믿음생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벗겨보면 마음의 보좌에는 내가 올라가 있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밟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내 발 밑에 두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 때 짐짓 죄를 짓는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겁니다.

    2.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할 때

    언약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을 흘린 이유를 단 하나로 말한다면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감리교 신학 교수가 놀라운 말을 했다가 잘렸어요.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돼지가 흘린피, 이것이 다를 게 뭐냐?"라고 말했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신학교 교수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때 온 감리교회와 한국교회들이 분노해서 그 교수를 잘랐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삶 속에서 입으로 그렇게 고백하지 않아서 그렇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삶의 태도는 없을까요?

    우리가 죄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겁니다. 예수님은 바로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우리는 죄에 대해서 민감해야 합니다. 내 죄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하나님께서 보좌 위에서 "네 죄를 용서해 주마!"하시며 팔짱끼고 말씀하실 수 없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서 보배 피를 흘렸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고귀하게 여긴다면 죄에 대해 민감해야 할 줄 믿습니다.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보혈과 돼지의 피가 다른 게 뭐냐고 하면 우리는 팔을 걷어 붙이고 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생활을 들여다보면 죄에 대해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배시간에 찬양하고, 헌금 드리고, 누가 봐도 훌륭한 집사입니다. 그러나 돌아가면 죄를 짓습니다. 아무 거리낌없이 죄를 짓습니다. 죄에 대해 민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짐짓 죄를 짓는 병의 지름길입니다.

    한 부흥사가 죄의 심각성과 무게에 대해 강조한 설교를 했어요. 부흥회 후에 한 청년이 찾아왔어요. "목사님의 설교 중에 언급한 죄의 무게를 도저히 이해 못하겠어요. 죄의 무게가 몇 킬로나 나갑니까?" 하고 물었어요. 부흥강사가 대답하기를 "시체 위에 200킬로를 올려놓는다고 그 시체가 무게를 느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어요. 이 청년이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뜻을 알 것 같았어요. 내가 왜 죄에 민감하지 못한 줄 아십니까? 내 영이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지가 마비되어 버린 사람에게 몇 백 킬로의 짐을 올려놓아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죄에 대해 민감하지 못할 때 나도 모르게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3.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할 때

    이 말은 하나님의 영의 자극, 설득과 이끄심을 무관심하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서 성령님의 탄식 소리를 한번 들어보셨나요? 저는 들어보았어요. 어느 날 제가 어떤사람과의 관계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고민할 때 성령님의 한숨 소리를 듣게 되었어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잘못할 때, 불순종할 때 우리 마음속에서 탄식하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기도하지 못할 때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탄식하시고 근심하시며 대신 간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나를 지도하시고 이끄십니다. 그 성령님의 음성을 내가 자꾸만 거역하는 것, 무관심 하는 것, 성령님의 근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의 성령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 결 과

    그렇다면 이 병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한 가지 확연한 결과를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27절, 30절, 31절을 봅시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짐짓 짓는 죄를 범하게 될 때, 우리 앞에 확실한 것은 심판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을 사는 세대에 한 가지 잘못이 있다면 하나님을 너무 은혜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손에 빠져드는 것보다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빠져드는 것이 더 무서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실 때 그 하나님의 손에 빠져드는 무서움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초두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막 탄생했을 때 한 집사 부부가 죄를 범했어요. 우리가 볼 때 별로 큰 죄 같지 않습니다. 헌금하다가 죽었어요.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마치 한국에 IMF가 오듯이 그때 가난한 사람이 많이 생겼어요. 목회자와 사도들이 교회 앞에 이런 광고를 한 것 같습니다.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여러분 중에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재산을 좀 팔아서 교회에 헌금을 하시면 구호헌금으로 쓰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했어요.
    그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모의를 했어요. 2억짜리 아파트가 있었어요. 그것을 2억에 팔아서 1억을 하나님 앞에 바칩니다. 그리고 아파트 한 채 값을 다 드린 것처럼 교회 앞에 광고를 했어요. 그때 베드로가 그 헌금을 가져온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헌금이 다냐?" "예"라고 대답합니다. 다시 베드로가 말씀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속였느냐!" 이 일로 아나니아가 죽습니다. 그를 장사하고 나왔는데, 그 아내가 동일한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 여인도 죽이십니다.

    무엇을 가르치기 위함일까요? 하나님의 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이 죄가 왜 심각합니까? 이 죄가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의 교회는 무너져 버리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짐짓 짓는 죄를 지으며 예배를 드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교회에 와서는 아름답게 예배를 드립니다. 거룩한 찬양을 하고 봉사를 합니다. 그러나 돌아가서는 그 마음속에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죄를 마음에 품고 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밟는 것이요,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요,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이 죄에서 돌이켜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정죄를 선포하기 위함이 아니요, 병을 고치기 위함입니다. 돌이키라는 겁니다.



    ■ 처 방

    1. 전날에 받은 은혜를 깊이 생각하라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32절)

    여기서 '생각한다', '아나밈네스코' 이 단어는 그저 추억으로 이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배우고 지식으로 체험한 것들을 깊이 묵상하는 겁니다. 참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과거에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던 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짐짓 죄를 짓는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늘 과거에 예수님과 만났던 기억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전날을 깊이 생각했어요. 사도행전만 봐도,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간증을 세 번이나 합니다. 한 책을 쓰면서 또 하고 또 합니다. 왜냐하면 전날에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과거를 회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그 큰 은혜를 깊이 날마다 묵상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특별한 은혜가 각자에게 있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받으셨나요? 여러분의 다메섹은 어디십니까? 전날에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를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자꾸만 더 달라고 불평하기 전에, 옛날 어려웠던 시점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여러분을 축복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목회 하다가 마음이 힘들 때가 있어요. 그러면 과거의 한순간을 떠올릴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이전에 큰 은혜를 받았던 그 찬송을 조용히 혼자 부르고 있다 보면 마음의 낙심이나 다운되었던 것이 회복이 됩니다. 부흥이 일어납니다. 달라스 신학교에서 어린 아들과 집사람과 고생하며 공부했지만 강의 시간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뜨거웠으나 집에 돌아오면 설교할 데가 없으니까 집사람을 앉혀 놓고 그날 배운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었던 그 때, 비록 가난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던 그 때! 초기도 아닌 중기의 암에 걸린 집사람을 은혜로 살려주셔서 지금 저렇게 서 있게 하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감격의 은혜! 제 과거를 돌아보니 하나님이 입혀주신 큰 은혜의 자국이 있더라고요. 저는 때로 이런 것들을 묵상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서, 짐짓 짓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날에 받은 은혜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에 시험이 찾아오나요?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드나요? 그러면 과거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셨던 은혜를 묵상해 보세요. 주님을 만났던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과거 어느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셨나요? 여러분이 힘들고 괴로울 때 어떤 은혜를 내려 주셨나요? 과거 어느 설교 시간에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깊이 심어 주셨나요? 여러분의 자녀를 통해서, 배우자를 통해서, 건강을 통해서, 사업을 통해서 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것, 그것이 짐짓 죄를 짓는 병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34절에 보면 이들에게 몇 가지 축복이 있었어요. 고난을 잘 견디어 냅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었어요. 물질주의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했어요.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이 아름답던 은혜의 순간들을 묵상하라고 말씀합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의 상을 바라보라

    35, 36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땅의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이 땅에서 죄를 짓고 싶을 때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나를 괴롭히고, 어떤 유혹의 순간을 바라볼 때 인간인지라 그쪽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러나 이것을 막아내야 합니다. 인내로써 막아내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우리에게 이것을 이렇게 설명해 주었어요. "우리가 우리의 머리 위에 날아드는 모든 까치들을 다 물리칠 수는 없다. 그러나 까치가 우리의 머리에 집을 짓지 않게 할 수는 있다." 그렇습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겁니다. 어떤 죄를 짓고 싶은 생각이 내 마음에 들어올 때, 내가 그 죄를 계획하고 의도적으로 따라가기보다는 물리쳐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땅에서 재산 많이 모으고 장관했다고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상 주실까요? 아닙니다.그러나 이 땅에서 여러분이 행한 일 가운데 천국에서 상 받을 수 있는 확실한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짓 죄를 짓지 아니하고,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보좌에 모시고, 주를 따라 하루하루 내 삶을 깨끗하게 살아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반드시 상을 내리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세요. 담대하십시오. 직장에서 누가 여러분에게 죄 짓게 만듭니까? 'NO'라고 하십시오. 거절하셔야 합니다. 인내하셔야 합니다. 누가 여러분을 유혹합니까? 죄를 짓지 말고 물리치십시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상을 바라보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3. 믿음으로 살아가라

    37절에서 39절을 보세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짐짓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살지 마십시오. 내가 하고 싶다고 다 하고, 먹고 싶다고 다 먹고, 말하고 싶다고 다 말하고... 여러분, 이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소욕을 누르시고 저 천국의 상을 바라보시면서 오늘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십시다.
    우리는 침륜에 빠지기 위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왜 내가 예수를 믿었는가? 천국 가기 위해서!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그것은 반쪽 믿음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내 영혼은 구원받았어요. 그 다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또 하나의 목적은 이 남은 삶을 믿음으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죄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하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따라 살아갈 때에 이 심각한 병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아름다운 변화를 위하여
    신앙의 모델하우스
    편견을 극복하기 위하여
    축복의 전령
    참 구원에 따르는 변화의 모습
    거룩한 추적
    생명의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
    천국에서 환영받는 사람
    죄를 품은 거룩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사는 법
    문제의 언덕을 넘어
    마음의 종양-쓴뿌리
    짐짓 죄를 짓는 병
    미성숙의 병
    마음을 강퍅케 하는 병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개인정보취급방침 |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