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사랑 2002-03-04 12:15:08 read : 2003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고전13:1-7 // 2002.2.24
지식의 영역은 끝없이 넓어져 가고 있습니다. 태양계 밖의 우주 구석구석을 탐구하고자
하는 노력도 계속 되고 있고, 또 미립자보다 더 작은 것을 알아내고, 그 효용성을 생활에
이용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자기에 대한 지식은 없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나는 나의 것이
다'고 하는 어리석은 지식을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남녀간의 볼 수 있고, 또 사랑은 세상 사람들의 중요한 노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싸우고 사랑 때문에 미워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절대
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었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노을이 지는
멋진 강변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의 오염과 더불어 사랑 또한 변질되어 가고 있음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인 것 같
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성경적인 진리에 비추어서 오늘 내가 바
른 사랑을 하고 있는가를 진단하며 정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의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이유를 나약함에 두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마
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했다"하는 편리한 말로 간단히 대변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렇지가 않습니다. 좀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실천 못한 이유는 참 사랑의 뜻을 몰랐기 때문
입니다. 진정 사랑의 신비와 사랑의 행복, 사랑의 능력과 그 영광을 알았다면 사랑을 할 수
있음은 물론 그 사랑을 끝까지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랑은 가
장 비참한 인생 밑바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 어떤 사람의 집념과
희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땅 위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의 그 오묘함과 그
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의 그 깊은 뜻을 알고 더 알도록 계속 배우며 기도하
는 마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성자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평생토록 매일 아침 고린도전서 13장을 무릎을
꿇고 한 번씩 읽었다고 합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도하는 마
음으로 읽고 그리고 하루를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말씀대로 살
기 위해 애쓰는 가운데 그는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에게 있어서 남녀간의 사랑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람은 이성을 생각하게 되
면서 비로소 자신의 껍질을 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성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가슴이 아파
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성간의 사랑은 소유하고 싶고 독점하고 싶은 사랑인데 처음부터 독
점하게 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혼자 마음 아파하고 혼자 속상해 하면서 자기 외의
어떤 한 존재를 진정으로 의미 있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이성간의 사랑은 상대방을 완전
히 소유할 때까지 굉장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아
주 소중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는 이해 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만나지게 됩니다. 그 중에서 노아의 시대
입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저 수많은 인간들을 물로 심판하셨을까? 그 이유를 창세기 6장 3
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나님의 신, 성령입니다. 성령이 떠나가 버린 존재,
즉, 사랑이 없는 존재, 그것은 바로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것들은
어차피 살아있어 생리적으로는 생명을 부지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벌써 죽어져 있
는 송장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물로 집단 장례식을 치른 것뿐입니다. 여러분,
출애굽기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는지 모세를 통해서 홍해
를 육지처럼 건너게 했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 불러내서 하나님은 언약을 맺었습니다. '내
가 너희를 언약 백성으로 삼겠다.' 하나님은 아낌없이 그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그 사랑을 받은 자들처럼 하나님께 드리기도 하
고, 사랑을 줄줄을 몰랐습니다. '배 고픕니다. 밥 주세요.' 그래서 만나를 주었습니다. '입맛
떨어졌습니다. 고기 주세요.' 메추라기 주었습니다. '먹고 나니 목마릅니다.' 그래서 생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한번도 주님을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주
세요. 주세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는 존재, 너희들은 저 가나안에 가서 젖과
꿀을 빨고, 먹을 자격이 없노라.' 그리하여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모
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야말로 받는 공동체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
습을 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광야교회가 파기시킨 계약을 재
계약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랑의 씨앗을 뿌린 것입니다. 예
수는 사랑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모두가 사랑의 씨
앗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생 했다고 하는 말은 사랑의 씨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고로 중생한 자는 내가 사랑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뿌려준 그 씨
앗으로 그 능력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계약을 하셨는데 그 계약은 성만찬입니다. 12지파 대
리로 12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떡과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떡은 사랑을 실천할 그
도구입니다. 포도주는 생명, 즉 하나님과 하나되는 바로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러한 공동체, 새로운 공동체를 불러모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져서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재했는데, 성령 받
은 자들의 삶의 모습은 사도행전 4장 32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것이라 하는 자가 하나도
없더라.' 하나님의 영, 사랑의 영, 사랑의 씨앗을 받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들의
정신 의식구조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될 점은 '제 재물은 조금이라도'하는 이 말씀
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 나의 시간, 나의 육체, 그리고 내 소유는 다 하
나님의 것입니다.' 그는 주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모두 바치는 영적인 행위의
현현, 이를테면 실천으로서 35절 말씀에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더라. 그렇게 했습니
다. 성령 받은 자의 실제, 그것은 바로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누어주는 사람
들이 되더라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말씀에 보면, '제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무
슨 말입니까? 교인 중에 한 사람도 이러하지 않은 사람이 없이 똑같이 성령의 역사 안에 있
더라하는 뜻입니다. 결국 처음 잉태된 탄생된 교회는 완전한 교회였더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아담을 창조하시고, 범죄하기 전에 아담, 그는 죄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온전한 교회를 이 땅에 탄생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얼마가지 않아서
내 것은 내 것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들은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죽고 맙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본질 회복시키고 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의 은사 중에 더 좋은 은사, 사랑의 은사, 즉 성령의 열매를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 말씀에 보 면,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한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즉 믿음은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 교회는 신앙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우리
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자기 유익을 구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면서 혹시 사람들이 또 다른 도를 전하면서 자기 유익을 구하여 보수를 바란다 할까
해서 아예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처자식이 있으면, '저 바울이라는 사람이 또 다른 도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보수를 받아 자기 자녀와 아내를 먹여 살리는구나.' 생각할까 해서 아예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뿐만 아니라 낮에는 복음을 전파하고, 밤에는 텐트를 만들어서
파는데 수익을 얻어서 자비로 선교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순수해지고, 본질에서
어느 한 점도 기울어지지 아니하도록 만들어 가는 일에 최선을 다 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또 뿐만 아니라 '자기 유익을 구치 않는다'고 하는 반대말은 이기심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어려움을 보고 자신의 유익을 계산해 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어려움을 보고 자기가 돈 벌 것만 생각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돈을 벌려면 남이 어려울
때를 이용해서 자기 이익을 챙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어려
운 사람의 처지를 이용해서 자기 유익을 구하면 그 사람의 마음은 자꾸 돈으로 지배당하게
됩니다. 결국 나중에는 그 마음이 아주 잔인하게 됩니다. 이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천사
처럼 말을 해도 그것은 시끄러운 꽹과리에 울림밖에는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이기심
을 가지고,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주고, 우리를 사랑해 준다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기쁨도 줄 수 없으며, 그것은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도 줄 수 없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이기심으로 그가 신령한 능력을 받아서 초능력을 들어낸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은 계
시지 않는다.' 이기심으로 그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서 남에게 구제하고, 그리고 베풀
고, 그리고 사회 많은 유익한 여러 가지 봉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 2절 말씀에 보면,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
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그랬습니다. 여기 지식은 모든 만물에 통용되는 원칙을 아는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
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즉 이기심으로 그 모든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인류에게 유익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시대를 살면서 이 사랑이라고 하는 언어만큼 오염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또 변질되는 것
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은 모든 인류의 삶의 원천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변질을 가져오게 했던 것입니다. 요즘은 감성시대가 되어서 이 사랑, 말은 사랑사랑 하
면서 참 사랑답지 않게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를테면, 오늘 말씀에 보
면,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사랑의 시기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원형을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어느 때까지 참고, 그만 참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끝없이
참는 것입니다. 참되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참는 것입니다. 요즘 보면, 신혼여행을 간다고
하면서 결혼식을 끝내고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신혼여행 가방
을 풀지도 않고, 도로 들고 왔습니다.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싫어?" "싫어!" "헤어져"
이렇게 헤어지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오늘 시대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참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참 사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도 말하기를 '나는 사랑한다.' 이렇게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 오늘 말씀에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남녀간의 사
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기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랑한다고 하면서 질투하는 마음
이 생기지 않는 것은 그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은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투기심은 정상적일 때나 가능한 것이
지 병들어 죽어 가는데도 나만 생각해야 하면 병원의 의사가 남자 의사라고 병원에 보내지
도 않고 자기가 붙들고 있다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없으면 빨리 더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투기한다는 말은 이런 말
입니다. '내가 내 욕심을 챙기기 위해서 너를 소유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내 이웃을 나의 소유로 삼으면 그것은 투기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는
너의 종이 되고, 오히려 나는 너의 자유를 위해서 내가 부자유해 지겠다고 하는 것이 바로
투기치 아니한다는 말의 뜻입니다. 이를테면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내 형제의 자유
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 내가 부자유해지는 것을 자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내
가 부자유함을 받으면서 부자유를 질서 있게 스스로 감래하는 것을 예절이라 예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또한 오늘 말씀에는 진정한 사랑은 '이제 자랑치 아니한다' 그랬습니다. 여기서
자랑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자랑하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하는 자랑은 허풍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혈색이 좋다고
자랑하던 사람이, 의사가 피가 모자란다고 하니까 갑자기 빈혈 환자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
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갑자기 독사에게 물리면 입안에 병이 있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쉴새없이 떠들어대더니 갑자기 독을 입으로 뽑아야 한다고 하니까 모두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자랑치 않는다는 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사랑은 타인을 칭찬한다'하는
말이 됩니다. 타인을 칭찬한다고 하는 말은 타인을 절대적 존재로 보고, 타인의 장점과 타인
의 좋은 점과 타인이 타인 된 점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예수
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은 많은 바리새파 사람과 제사장과 서기관들을 칭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칭찬을 한 사람들은 귀신 들린 자, 또 창기들, 죄인들, 세리들이었습
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칭찬해야 될 사람들은 오히려 이 세상 사람들 누가 보아도 그들은
칭찬 받지 못할 자를 칭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눈은 사랑의 눈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 부족한 사람, 오히려 문제 있는 사람,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을 칭찬할 줄 아는 그런 눈을 가진 자가 바로 예수의 마음을 가진 자요, 예수의
노예입니다. 교회에서는 예수의 눈을 가진 자가 되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
수의 눈을 가지고, 서로 피차 보아야 서로 칭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피차
칭찬할 만한 마음의 성령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지 내가 만약 성령의 역사 안에 있지 못
하면, 칭찬하지 못하고 타인의 장점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말씀은 '사랑은 결코 교만하지 않다.' 그랬습니다. 여기서 교만이란 상대방 앞에서 자기
를 높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만이란, 자기 스스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이 교만한 삶
입니다. 여러분, 사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다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하는 그러한 욕구
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계시를 우리에게 주시므로 그 계시가 우리의 삶에 제약
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면, 겸손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 외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
겸손이 없이는 결코 참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만약 캄캄한 밤이 되어서 우리가
사는 지역 사회를 본다면, 붉은 십자가 꽃들로 불빛이 가득하게 비추는 이러한 지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표식은 그렇게 많습니다. 사랑의 표식은 그렇게 많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가장 박약하고, 빈약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어쩌면 오늘의 사
회, 수많은 인간들이 사랑을 달라고, 두 손을 하늘로 쳐들고, 깡마른 손을 들어서 하나님 앞
에 사랑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는 요구가 강렬한 시대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랑이 어떠합니까? 그가 잘되기를 위하여 내가 죽고, 그가 명예를 얻기 위
하여 내가 굴욕을 당하고, 그가 의롭게 되기 위하여 내가 죄인이 되고, 그가 사기 위하여 내
가 죽을 수 있다면 주님께서 친히 인정하시는 바 최고의 사랑을 이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십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었고 그의 굴욕
은 우리의 명에를 위한 것이었으니 여기에 아가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 은혜에 감격하여 그도 역시 아가페의 참 사랑으로 형제와 이웃을 사
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사회에게 가장 크게 해야할 분야가 무엇이라고 생각되십니까? 그것은 교
회라고 하는 떡, 여러분이 다 교회의 주의 몸된 분들입니다. 교회라고 하는 떡, 바로 주의
몸들이 진정한 본질, 사랑의 떡들이 되어서 찢기어져 세상 속에 나아가 사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급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적으로 상대방을 풍성하게 해 주는
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생각하지 않
고 상대방만 빨리 변하지 않는다고 화를 낼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이
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림을 가집시다. 그리고 그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계획을 가집
시다. 교회의 사명 중에 가장 큰 사명, 교회가 사회에다 가장 크게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양육 받아 사회 속으로
배출되고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드리고,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
고, 그리고 또한 말씀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이 사는 사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재
연치 못한다면, 우리는 실상 교회의 본질을 상실한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지금 사회는
교회에게 사랑을 달라고 합니다. 지금 사회는 교회에게 예수의 화신을 보내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교회입니다. 여러분들은 십자가의 표지아래서 성령의 인도하심 따
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이 지체가 사회 속에 나가서 예수의 사랑을 그
대로 나누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사회 자원을 많이 이용해서 교회도 집단 이기적 공동체가 되어 있다면,
교회는 이 땅에 스스로 폐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수지교회가 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들이 되어서 예수님께서 사마
리아와 유대와 그리고 온 땅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고자 하던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의 명령, 뜻을 따라서 우리가 사랑을 실천해 갈 때, 이것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시키고, 교회
가 교회다워지는 길입니다. 오늘 이 결단이 여러분에게 있을 때, 내가 정녕 하나님의 뜻,
사랑을 실천할 때에 하늘 창고가 나의 창고가 되고, 그리고 나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임재
의 좌소가 되어서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교회적 삶이 표출되어서 정녕 교회는 새싹의 소망
이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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