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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2002-03-02 09:41:14   read : 1519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조지 바나 그룹의 최근 여론 조사에 의하면 성인 중 90% 이상이 예배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응답했고, 그들은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예배 경험을 가지려고 애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중 삼분지 일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삼분지 일은 가끔, 나머지 삼분지 일은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배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지 않으며 다만 예배 중에 하나님께 초점을 두려고 애쓰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나님은 공중 예배가 단조로운 고역이 되는 것을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다. 예배 시간은 예배자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양하고, 우리가 이땅에서 그분의 팔과 다리가 되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서로 모여 예배를 드리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만일 우리의 모임이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인식한다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예배의 최고의 목적임을 알게 될 것이다.


    공중 예배에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다.




    1. 하나님을 섬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어떤 사람을 섬긴다는 말은 “시중들고, 돌보고, 대기하고, 양육하고 섬긴다”는 말이다. 예배 시간은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이는 고급 식당에서 손님의 시중을 들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웨이터(또는 웨이트리스)를 생각하면 된다.

    손님이 자리를 잡은 후 웨이터는 “마실 것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오늘의 특별 메뉴입니다” 등 등. 손님이 준비된 적합한 시간에 웨이터는 다시 나타나서 손님의 주문을 받는다.

    주문 받는 시기와 음식 나오는 시기가 적절해야 한다. 마실 것과 전채가 끝나고 주식이 나오면 웨이터는 모든 것이 주문한 대로 되었는지를 다시 점검한다.

    예배 드리는 신자는 웨이터의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가, 어떤 음식—예배 프로그램--을 원하시는가, 그분을 어떤 방식으로 기쁘시게 해드릴까를 생각해야 한다. “주님, 어떻게 섬길까요?”가 예배자의 최대의 관심이 되어야 한다.

    주님을 찬양하고 추구하는 것이 예배의 주요 목적이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2.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함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신비로운 것도 아니고 마술적인 것도 아니다. 주문을 외우거나 심리학이 말하는 것같이 바른 생각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믿음의 행위이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 11:6).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가야 한다. 우리는 그분이 이곳에 함께 하시며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공중 예배에서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형제 자매들도 함께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3. 다른 지체들을 섬겨라



    로마서 12:4-16은 신약적 교회의 기본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보여준다. 이것은 삶에 관한 교훈이지만 공중 예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롬 12:4-5, 16).





    4. 회개와 변화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보았을 때 이사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에 압도되어 얼굴을 땅에 대고 자신의 더러움을 깨달았다(사 6:1-5).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우리 영혼의 더러운 부분을 꿰뚫는 주님의 빛에 나갈 때 우리는 죄를 깨닫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의 거룩을 본다는 것은 그분이 없이 우리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예배 중에 우리가 눈을 떠서 그분의 나라와 의와 평강과 희락을 보기를 원한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장엄하심을 새롭게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 결과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7-18).





    5. 예언의 영이 풀어진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거하시므로 회중들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 21:3)

    선지자 엘리사와 거문고 치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예언의 영이 공중 예배에서 어떻게 풀어질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다.

    엘리사는 여호사밧을 위해 예언을 하려할 때 예언의 영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거문고 치는 사람을 요청했다.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왕하 3:14-15).

    거문고를 칠 때 엘리사에게 예언의 영이 임하여 엘리사는 예언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성령의 운행하심에 민감해지며 그때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6. 영적 전쟁



    예배 중에는 영적 전쟁이 일어난다. 우리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이 원수를 심판하시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유대군들이 찬양대를 앞세우고 찬양 행진을 했을 때 하나님이 적군과 싸워주셨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할 때 주님을 흑암의 세력들을 무찔러 주신다.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찌로다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시149:6-9).

    찬양 중에, 치유, 회심, 축귀,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주님께서 싸워주셔서 어둠의 세력이 쫓겨나고 각종 멍에가 부러지기 때문이다.





    7. 전도



    주님의 지상 대전도명령은 신자 모두가 따라야 할 사명이다.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필요한데 예배를 통해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

    찬양 행진으로 유명한 영국의 그래엄 켄드릭은 찬양 행진을 소개하면서 “사람들은 단지 기적만으로는 주님께 인도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했지만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적이고 개인적으로 만나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불신자들이 찬양 행진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주님을 영접했다.

    불신자들은 신자들이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회심하는 경우가 많다.

    주님의 강한 임재를 체험했을 때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사 40:1-3).

    찬양과 경배를 통해 다윗의 장막이 회복될 때 수많은 불신자들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9:11-12).

    (데이빗 모리스-작사자, 찬양사역자) *

    -----------------------
    말세의 징조들

     

    말세지말인 요즈음 성령의 부어주심이 전세계를 덮고 있다. 이전의 부어주심은 대부분이 단명이었지만 말세지말의 부어주심은 20세기초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성령이 말세에 하시는 이런 일을 알고 있는가?

     

    이○○씨와 더불어 1992년 9월28일 휴거론을 주창했던 하 XX씨가 최근 한국 교계 앞에 사과문을 발표하고 자신이 잘못된 시한부 종말론을 유포하여 교회와 사회에 혼란을 일으킨 사실을 진심으로 회개한다 고 밝혔다.

    이러한 오류는 역사적으로 무수히 있어왔고 지금도 간간히 일어나고 있다. 이런 오류의 중요한 이유는, 성경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성경이 말하는 말세를 휴거에 집중시키는 미래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개인 예언을 기록된 성경 말씀에 종속시키지 못한 오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건전한 종말론 마저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된다. 종말 사상은 성경 전체를 꿰뚫는 중요한 주제다. 종말에 대한 바른 이해는 성숙하고 건전한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준다.



    세상의 종말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감람산 강화’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24장에 잘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장장 40여년에 걸쳐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은 헤롯 성전을 가리키며 우쭐대고 싶었다(1절). 당시에는 “헤롯 성전을 보지 못한 자는 아름다운 건물을 보았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처럼 화려한 성전도 돌 하나도 남김 없이 무너질 것이라면서 대종말의 서두를 여신다(2절).

    제자들은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았다는 뜨끔한 생각에서 주님께 묻는다.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signs)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그 제일 첫번째 징조가 바로 제자들이나 당시 유대인들이 자랑하고 흡족해 하던 헤롯 대성전이 돌 하나 남기우지 않고 다 무너뜨리워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얼마 되지 않아 실제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유대인을 징계하시기 위해,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을 통해,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그대로, 돌 하나 남기지 않고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쑥대밭으로 만드셨다.

    예수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도망가라고 말씀하셨는데(15절), 실제로 로마군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이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9만7,000명이 체포되고 110만 여명이 굶어 죽는 전대미문의 끔찍한 재앙을 당했다.

    또한 디도 장군은 군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 어딘가에 보화가 묻혀 있으므로 발견한 자는 그 보화를 취득할 수 있다고 하여 군인들은 보화를 찾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뒤져서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예언의 복합 성취, 예언의 단축 시각.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예수님은 그날 환난 후에 예수님이 영광과 권능으로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다(29-31절). 예루살렘이 멸망 당한 AD 70년 직후에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셨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면 ‘그 날 환란 후에 즉시 이 세상의 대종말이 온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예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종말의 현상을 세상의 끝날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많은 미래주의자들은 예수님이 마 24장에서 말씀하신 사건들은 문자적인 세상의 마지막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해석한다. 과연 그렇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리는 신약 성경이 말하는 세상 끝 즉 말세를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 기간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이 미래에 대해 예언하신 말씀은 ‘단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어 계속적으로 성취된다는 ‘예언의 복합성취’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예언의 복합 성취란, 예언은 일차적으로 예언이 행해지는 당 시대의 어떤 사건에 관한 것이지만 당 시대의 특정한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한 시대 두 시대 또는 전 시대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요엘서가 말하는 메뚜기 재앙을 살펴보자. 선지자 요엘은 이스라엘에게 갑자기 닥친 메뚜기 재앙은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질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요엘은 죄 지은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시의 상황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2장에서 대종말의 사건으로 까지 연결시킨다. 메뚜기 재앙을 통해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까지 예언한다(욜 2: 28-32 및 행 2:16이하).

    예언의 복합성취를 또 다른 말로는 ‘예언의 단축시각’(prophetic foreshortening), 또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겹쳐진 산 봉우리를 보는 것과 같다고 해서 ‘예언적 망원’(prophetic telescop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언의 복합 성취, 예언의 단축 시각 , 예언적 망원>




     

    이것은 마치 멀리서 산봉우리를 보면 그 봉우리들이 하나의 (시간적인) 지평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가까이 가 보면 골짜기를 통해 (시간적으로) 서로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성경의 예언도 예언 당시에 보면 같은 시간 대인 것같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많은 시간 차이를 두고 반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루살렘의 멸망과 재림의 징조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예루살렘의 멸망이 말세에 나타나는 세상의 멸망의 한 패턴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마 24장에서 말씀하신 기록 중 어느 부분이 예루살렘 멸망과만 관계된 것이고 어느 부분이 재림과만 관계된 것인지를 유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 24:14, 29-31이 재림과만 관계된 것이고 24:15-31이 예루살렘과만 관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신약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말세(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의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날 일 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록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만 말세지말에는 이런 현상이 가속화, 증폭화 된다는 사실이다.



    말세의 징조에 대한 일반의 오해. 안 [개혁주의 종말론](The Bible & the Future)에서 말세의 징조에 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못 생각하는 부분을 다음과 같은 지적한다.

    첫째, 시대의 징조를 말세지말의 현상으로만 국한 시키는 오류와,

    둘째 말세의 징조를 비정상적이고, 극적이고 파멸적인 현상으로만 이해하는 오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인 지진, 전쟁, 기근, 거짓선지자의 출현 등은 말세지말 뿐만 아니라 2천년의 교회사를 통해 꾸준히 있어왔다.

    셋째 징조를 통해 재림의 정확한 때를 예측하려는 오류이다. 말세의 징조는 재림의 확실성을 증거해 주는 것이지 정확한 때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말세의 징조를 통해 어떤 현상이 미래의 어떤 특정한 때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오류이다. 이 모든 오류는 예언을 단축 시각적 관점에서 해석하지 않기 때문에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말세의 징조. 그러면 말세에 일어날 징조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징조들. 이 중에는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고(마 24:14), 이스라엘의 구원이 충족함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롬 11;25-26).

    둘째,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징조들. 이중에는 환난, 재앙, 배교 및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포함된다. 이런 징조도 말세지말만의 현상이 아니라 말세 전체를 통해 꾸준히 있어온 현상들이다. 다만 말세지말에는 그 현상의 더욱 악화되고 증폭된다. 요즈음 마귀의 세력이 뉴에이지 운동, 점성술, 동방비교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포케몬 및 마법사 해리포터 등의 대중 문화를 통해 자녀들의 영혼을 도적질하고 있는 것도 말세의 징조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표적들. 전쟁과 지진과 기근이 일어난다. 말세지말인 요즈음 전세계으로 기근(전세계 인구의 1/3정도), 민족간의 전쟁, 홍수와 기근 및 지진의 자연 재앙, 불치의 질병이 만연하다.



    이것들은 대부분의 신자들이 알고 있는 말세의 일반적인 현상들이다. 그러면 그 외의 현상들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일어난다(벧전 4:17). 오늘날 유례 없이 많은 목회자들이나 신자들이 타락하여 징계를 받는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정화시키시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교계 지도자들의 존경을 받는 기독교 실업인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실정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되었고 최근 실형 선고를 받았다. 교계 지도자들은 기독교계에 대한 그의 공헌을 적시하면서 정부에 선처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의 여죄가 계속 드러나고 정부에서 단호한 입장을 보이자 구명 운동은 중지되고 말았다.

    나는 그때 하나님께 문의했다.

    “하나님, 그는 주님의 일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 사람만 그런 짓을 했습니까? 국내의 대기업가 치고 그런 짓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해주셨다. “나도 그가 나의 충성된 종임을 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더러운 돈을 받지 않겠다.”

    “그러면 그 사람의 돈만 더럽습니까?”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 실업인이다. 내가 그를 치는 것은 그를 통해 다른 기독 실업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더 이상 더러운 돈으로 내 이름, 내 영광을 욕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이름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잘못, 저런 실수로 인해 세상 매스컴의 집중타를 받고 기독 언론의 비판을 받아왔다. 하나님이 불신자를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정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에 대한 응징을 통해 신자 전체에게 경종을 울리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런 사람들을 정죄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죄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감히 무흠하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둘째 거룩한 삶을 사모한다(요일 3:2-3).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보다(what we do), 어떤 사람이 되는 것(What we are)을 더 강조하신다. 구원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이 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엡 1:4; 롬 8:29 참조).

    오늘날 내면을 치유하는 내적 치유가 성행하는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적 치유를 통해 마음이 깨끗하고 정결하게 될 때 인간 관계가 회복됨은 물론 신랑 예수의 재림을 예비하는 것도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부어주심이 유례없이 강하게 일어난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부어진 성령강림을 그때 그 장소의 현상만이 아니라 말세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행 2:17-18).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현상을 단회적으로 잘못 해석한다. 예언적 복합성취나 단축 시각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부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바른 해석이다.

    말세지말인 요즈음 성령의 부어주심이 전세계를 덮고 있다. 이전의 부어주심은 대부분이 단명이었지만 말세지말의 부어주심은 20세기초 미국의 부흥운동을 시발점으로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성령이 말세에 하시는 일을 알고 있는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

    <글로리아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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