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4월 30일 (수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목사를 막아라, 텅빈본당 /목사 연금 1,600억으로 '돈 장사'한 집사 구속/ 캄보디아 박율 목사 체포 충격               최태민 구국선교단 참여 목사들 / 십일조 하지 말라는 목사 /한우갈비’외치는 기감목사들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서울광장서 개막 /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무죄               선교사들 위한 안식관 두 곳/ '노트북이 뭐라고' 소송 총동원한 사랑의교회               언더우드 후손 28명 우리 고향은 South Korea/ 군종장교 범죄               박수홍,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 예의/ 죽음의 질(Well dying) 중요               목사님이 운영하는 중고자동차 매매센터               예장통합 ‘제2의 세습방지법안’ 총회 통과/ 예수님처럼 교회도 하늘에서 내려와야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적극 반대 /목회자의 고백 7가지 실수               총회장 2명을 배출한 여인의 힘! /복음화율 10% 안 되는데 주일학교만 1천 명              

  홈     이삼규     강문호.     고신일     곽선희.     김광일.     김기석.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성광.     김성수     김은호     김정호.     김홍도.     류영모.     명설교     박봉수.     오주철.     옥한흠     유기성     이동원     이성희.     이양덕.     이영무     이윤재     이재철.박영선     이정익     조봉희.     조용기.     주준태     지용수     피영민     하용조     한경직.     홍정길.임영수     해외목사님     관     괄사치유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한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사건별설교(구약)     사건별설교(신약)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샘플설교
  오래된 설교(왕)
  카드,핸드폰결제

설교내용검색

네이버.다음.구글


시작페이지 설정


호산나 자동차


교회인쇄주보디자인


밀알.현수막.주보


제주2박3일210.000원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남학매일성경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베리타스칼럼
  • 강남신앙간증
  • 아멘넷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강문호목사
  • 고신일목사
  • 김기석목사
  • 김대동목사
  • 김명혁목사
  • 김성광목사
  • 김승욱목사
  • 김형준목사
  • 김흥규목사
  • 명성훈목사
  • 박광철목사
  • 박건목사
  • 소강석목사
  • 이동원목사
  • 이성희목사
  • 이한규목사
  • 정근두목사
  • 정태기목사
  • 조태환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교단 사이트

    말씀,QT

    사전.지도사이트

    성화,주보그림자료

    성경연구공부자료

    성경신학 자료

    Home

    하나님의 확성기
    2002-02-25 11:40:10   read : 1863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 31:1-24 <2002년 2월 24일>



    고난, 별거 아닙니다.


    옛날 어느 나그네가 산길을 넘어가다가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팔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겠다." 고 호랑이가 말했더니 목숨을 잃는 것보다 팔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나그네는 팔을 주었습니다. 다음 고개에서는 다리를 주었고, 마침내 다음 고개에서 호랑이는 무력해진 나그네를 한 입에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호랑이는 나그네에게 말했답니다. "나는 늙어 이빨과 발톱이 없어진 호랑이였다네. 자네가 만약 맞서 싸웠더라면 나는 힘도 못 쓰고 도망갔을 덴데..."




    성도 여러분! 고난이란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축복과 행복의 개념은 고난과 어려움이 없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축복과 행복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하여 더욱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세밀하게 들을 수 있는 확성기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짧은 인생 길에 왜 이렇게도 고난이 많은가? 고난이 없이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생각해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항상 편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에게는 평안이 필요한 것처럼 고난도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따뜻한 태양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밤낮 태양이 비친다면 땅을 사막으로 변할 것이며 육신에 많은 병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도 필요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태풍도 없고 좋을 것 같습니다. 비록 태풍의 위험과 폭우의 위험이 있다 할지라도 이로 인해서 지구의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도 부족한 인간들이기에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초년에 평안하다가 노년에 고생하는 것보다는 젊어서 고생하다가 노후에 평안히 사는 것이 훨씬 좋을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것도 고난으로 끝나거나 그것이 계속된다면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위로가 있고 끝이 있다면 그리고 고난 뒤에 영광이 있다면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여기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고난을 당한 그것만이 아닙니다. 고난을 당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난을 극복해야 하다는 점이며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을 극복한 힘이 극기와 인내, 또는 제물이나 권력의 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습니다.


    무의미한 고난이라면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는 자에게는 얼마든지 유익하게 됩니다. 성도의 고난에는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는 고난이 없습니다. 히12:10에 보면"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1) 고난은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자기 생활을 반성하게 됩니다. 자기 잘못이나 무질서를 뉘우치게 됩니다. 엘리야가 시냇가에 편히 앉아 까마귀가 갖다주는 떡과 시냇물을 마실 때 시냇물이 마르자 엘리야는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더 이상 시냇가에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잃어버리고서는 그것의 가치를 배웁니다. 친구를 잃고서야 우정의 가치를 알고, 부도를 통해서 돈의 가치를 알고, 이혼을 통해서 배우자나 가정의 소중함을, 건강을 잃고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때 "왜 하필이면 내게?"하지 말고 내가 이 문제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살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만드시기 위하여 문제들을 사용하십니다.




    (2) 영적으로 정신차리고 기도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 편하고 좀 넉넉해지면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의지하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시련이나 고난을 당하게 되면 정신이 번쩍 들고 기도하기를 시작합니다. 사실 문제가 없으면 기도의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들입니다. 히12:12절에 보면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라고 했습니다. 고난 자체는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불행한 것만이 아닙니다. 고난은 잘만 다루면 매우 유익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철들게 합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서 고난은 유익한 것입니다.




    (3) 고난은 나를 보호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문제는 실제로 불행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운 문제들을 만났을 때 옳은 방법으로 대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그분은 그 일을 선한 것으로 바꾸십니다. 모든 문제는 미래의 성공을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문제는 여러분이 가진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장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문제들을 놓고 주님! 제가 무엇을 바꾸시기를 원하십니까? 주님, 제가 어떻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진지하게 물어서 깨닫는 대로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여러분의 문제를 보시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십니다.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들을 통해서 더욱 확실하게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의 앞날을 책임져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은 위로의 통로가 됩니다.


    고난 없이 위로가 없는 것입니다. 큰 고난 가운데는 큰 위로가 있고 길고 긴 난관 가운데는 길고 더 긴 위로가 있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다는 말과 같은 이치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위로가 뒤따라온다는 말입니다.




    시편 31편에는 고난의 심연에 깊이 빠져 고통 당하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고난이란 인간에게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계속 끝없는 싸움의 연속처럼 고통의 문제를 안고 씨름하는 사람에게는 해답이 없습니다. 또 크리스천과 고난에 대해서 현대인들은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마귀의 짓이요, 죄 값이며 저주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을 통해보면 하나님의 심오한 뜻이 고난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C.S 루이스」가 "고통은 하나님의 확성기"라고 말했듯이 고난을 당한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신앙적인 반응을 배울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고통 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는가 하면, 자기의 불행을 탄식하며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9~10절). 13절에는 두려워하는 모습을 나타냈고 17절에는 원망과 복수의 소리가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최후의 결심으로 "주여 내 영혼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5절)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인간이 어려움을 당하면 복잡한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신자와 불신자가 고난을 당했을 때 다른 반응이 있습니다.




    신자는 14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내가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라 하였나이다"는 고백입니다.


    여기에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러하여도" 입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아무리 고난 속에서 괴로워할지라도 하나님을 부르는 자세입니다. 두 번 째 "나는 주께 의지하고" 이 말은 1절에 나오는 "내가 주께 피하오니"와 같은 뜻입니다. 세 번 째 "말하기를" 고백입니다. 고난 속에서 주는 내 하나님이라고 하는 고백이 크리스천의 반응입니다. 이 고백은 바로 욥의 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할 때 그가 대답한 말을 들어봅시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음 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




    신앙적인 반응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19절에 "쌓아 두신 은혜"가 있습니다. 이 "쌓아두었다"는 말은 "숨겨두었다" 말로 다른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숨겨두신 은혜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① 8절의「넓은 곳」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고난을 당할 때 필요한 곳입니다. 즉 오늘의 고난을 딛고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백만이 넘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오면서 혼자 올라간 곳은 호렙산 이었습니다. 그는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넓은 곳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광야에서 고생하나 후일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모든 고통을 잃어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② 20절의「은밀한 곳」입니다. 성경에 보면 은밀한 곳을 하나님의 면전이라고 기록된 곳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확 트인 넓은 곳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은밀한 기도의 장소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만남의 세계에 들어가면 죄를 회개하게 되고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가 됩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천국을 맛보게 하시고 고난을 감사로 바꾸는 능력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요구가 있습니다(23~24절)


    ①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도 "주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듣기 원하십니다.


    ② 강하고 담대하라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고난 속에서도 절망하지 말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신다고 약속하셨고 요한복음 16장33절에서는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고 보장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모든 고난과 고통에 반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넓은 곳과 은밀한 곳을


    날마다 사모해야 하고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모든 문제와 대결하는 용기를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고난의 배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가 아닌 것에는 지나칠 정도로 객관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타인의 고통과 실수와 좌절에 대해서 명확한 분석과 이유를 찾아냅니다. 때로는 질책과 비난으로 상대의 마음을 더 큰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며 모든 책임을 주변의 사람이나 환경으로 전가 시켜 버립니다. 이런 인간의 이기성에 대해 정상적인 분별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사랑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고통과 낭비가 병행되게 될 것입니다.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의 배경에는 이렇게 이기심과 자기 중심적인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사랑 때문에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인생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이 그런 인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배후에는 우리의 죄와 심판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먼저 언급했듯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눈 먼 사랑이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가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약점과 죄성 마저도 자신이 감당하시겠다는 그 사랑의 열정이 주님의 고난의 배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에 아무 조건 없이 동참하시는 주님의 순종에 대해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보다는 우리의 감정과 판단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면 우리는 그 다름으로 해서 힘들어합니다. 순종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주님이 순종하셨듯이 우리도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 순종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적용되게 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에 관한 8가지 결론


    어떻게 우리는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고난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고난이란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진 것일까요? 이 질문에 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난에 대한 8가지 결론을 다음과 같이 만들어 보았습니다.




    첫째, 밤이 되면 곧 별이 나오고 얼마지 않아 아침은 찾아온다는 결론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새로 역사가 바뀔 무렵이 가장 힘든 시기라는 것을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고난의 밤은 새롭고 역사적인 아침을 준비하는 요람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우리는 고난의 밤에 하나님의 은총의 별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둘째, 지름길에는 보통 길보다 잡초와 돌멩이가 많은 법이라는 결론입니다.


    고난은 목적지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는 방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난의 잡초와 돌멩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면 우리는 이미 지름길에 들어섰는지도 모릅니다.




    셋째, 육적 고난 속에 영적 부요함이 피어나게 된다는 결론입니다.


    수고가 많을수록, 시간이 들수록, 어려움이 많을수록 체험은 깊어지게 됩니다. 문자를 통해 배우는 것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고난의 경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해 줍니다. 그런 의미로 어려울수록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워짐을 알았던 사도 바울은 "예수의 도"에 통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다윗이나 모세 같은 위대한 영적 지도자도 고난의 순간을 지나며 그들의 지도자적 자질을 배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도 바울이나 다윗이나 모세같이 크게 쓰시려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위로를 얻어야 하겠습니다.




    넷째, 고난이 없이 얻어진 면류관은 대개 가치가 떨어진다는 결론입니다.


    장애물이 전혀 없이 성공으로 이르는 길이 있을까요? 만약 그러한 길이 있다면 그 길은 대개 마귀가 유혹하는 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더라도 값있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값있는 은혜란 고난 속에서 받는 은혜입니다.




    다섯째, 고난은 사색과 창조의 어머니라는 결론입니다.


    우리들은 어려움이 없으면 깊이 사색하려고 하지도 않고 창조 정신을 발휘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밀실에서 오랜 삶을 지낸 자가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에게는 사려 깊은 생각이 있고 어떤 어려운 일도 감당할 수 있는 개척 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고난은 선한 인생에게도 찾아온다는 결론입니다.


    악인에게 항상 나쁜 일이 생기는 법이 아니듯이 의인에게 항상 좋은 일만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이라고 해서 고난에서 면제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의인이 고난을 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선에 대해 가장 잘 반응하고 주위에 만연한 악에 의해 가장 충격을 받는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있거든 그 고난이 죄 때문이라는 생각은 아예 접어두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천지간에 나만 혼자 고난을 당한다는 어리석은 생각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고난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살피고 더 나은 내일을 모색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일곱째, 이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고난은 없다는 결론입니다.


    이 세상의 고난의 숫자는 이 세상의 전체 인구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활기차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삶이란 고난보다 훨씬 큰 것입니다. 고난이 아무리 극심할지라도 그 고난은 충분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지금 극복되지 않을지라도 흐르는 시간은 곧 극복의 기회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 필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또한 필요한 것은 바로 "용기"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으로부터 도피하지 말고 고난을 맞이하십시오. 파도가 심할 때 커다란 구축함도 파도를 피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파도 쪽으로 선수를 돌리면 배가 쓰러지지 않게 됩니다.




    여덟째,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인생들과 함께 하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가라고 할 때 끝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나를 버린다 하여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고난 속에서 팽개쳐졌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이전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역시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길은 참으로 외롭고 서러운 길이나 하나님께서 앞서 인도하시는 길임을 깨닫고 오늘의 고난을 거름으로 삼아 찬란한 내일의 지평을 여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십시오. 오늘도 고난을 이겨나가는 믿음의 한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도 스스로의 자기 중심적인 감정과 이기심으로 인해 기쁨과 평안을 잃어버리고 힘들게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들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행위를 하기보다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중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세상이 아무리 우리의 영혼을 공격하고 주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 해도 주님의 사랑을 믿는 우리의 순종으로 인해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우리 영암교회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부족하고 연약한 죄인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자기 중심적인 감정이 결국은 주님을 십자가로 몰고 가는 아픔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기 중심적인 감정에 매달려 살게 된다면 그 순간 우리는 또 다시 주님을 십자가로 끌고 가는 범죄에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이 죄의 사슬로부터 벗어납시다. 자기 중심의 감정으로 인해 그만큼 지치고 힘들었으면 이제는 주님의 십자가로 자유해지는 열망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시간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소망으로 인해 여러분에 지친 심령이 기쁨으로 소생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많은 아픔과 시련이 다가옴을 느낍니다.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것은 그 아픔이 가시고 다시금 평온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료는 꽃이나 열매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병든 고래의 기름에서 나오는 물질이 가장 향기로운 향료가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의 재료는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수목 한계선"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겨우 웅크리고 있던 나무로 만든 것이랍니다.




    죽을 것만 같은 고비를 넘겨야 할 때가 우리에게는 많습니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우리는 그 고통과 시련을 생각하며 그 일로 인해 나에게 아픔보다 유익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고난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할 때에는 듣지 못하던 하나님의 음성을 크게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확성기입니다.





    오늘은 또한 3.1절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일본이 잔학하게 우리민족을 무시했고 압제했습니다. 인권이고 주권이고 모든 것을 약탈했습니다. 이 같은 압제를 받다가 견디지 못하여 들고일어난 것이 3·1 운동입니다. 지금 그 1세대들이 모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모두 역사를 통해서 들은 얘기입니다. 그렇지 만 우리는 이 날을 그냥 지나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3·1절이라는 지난날의 역사를 통해서 몇 가지 교훈 을 받게 됩니다. 하나는 "고난은 때로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고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고난을 거치면 사람이 다듬어지고 성숙해집니다. 성 경 전도서 7:14절을 보면 "너희는 곤고하거든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겪은 사람은 생각이 성숙해집니다. 어른스러워집니다. 고난을 겪고 나면 상상도 못했던 생각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고난이 지혜를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독립선언문을 보면 참 문장이 아름답습니다. 문학적으로도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고난이 없었더라면 그런 작품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책 상 앞에 앉아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다듬어서 나올 수 있는 글이 아닙니다. 그 글 속에 절절한 고난이 배어 있습니다. 그 고난을 통과한 후에 나오는 인간의 가장 소중하고 근본적인 외침이 거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고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3·절이 일어나기까지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곤혹을 치렀습니까? 이 날은 우리 민족이 아픔을 당하면서 겪은 것의 발로입니다. 유순했던 민족성으로 보아 우리 선조들이 어지간하면 봉기를 일으킬 사람들이 아닙니다. 너무 압제를 당하니까 몸부림을 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많은 생각 을 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3·1운동은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날입니다.




    우리 개인이나 공동체이나 민족이나 나라에도 평안할 때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배려하신 확성기로 고난을 해석하시고 사순절 기간에 주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세미한 뜻을 발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우리의 삶에서 부활해야 할 것
    바람직한 교회(2)
    바람직한 교회(1)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영향력 있는 사람
    감사는 믿음의 열매
    감사를 찾아서 하자
    내가 감사하고 높이리이다
    우리 속에서 씨앗을 보신다
    생명의 잠재력
    자유하셨습니까?
    인간의 한계 앞에 선 하나님의 할 일
    새 포도주의 기쁨을 새 부대에
    누가 내 삶의 주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삶과 쉼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개인정보취급방침 |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